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를 지키기 위한 한 여인의 투쟁
브루스 바콧 지음, 이진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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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손에 잡으면 다 읽기 전에는 눈을 떼기 어려운 이 슬픈 이야기는 지금부터 한국의 큰 강가에서 벌어질 사건의 데자뷰이기도 하다. 주홍 마코앵무새를 둘러싸고 최고의 법정 추리극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실화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우석훈

우리에게 88만원 세대로 잘 알려진 그는 이 책 <주홍 마코앵무새의 마지막 비상>에 대해서 ‘데자뷰’ 라는 자못 의미심장한 비유를 쏟아 내었다. 그는 왜 데자뷰라고 했을까? 도대체 무엇이 데자뷰일까? 나는 이 책을 통해 벨리즈라는 나라를 처음 알게 되었지만, 우석훈 교수의 이야기처럼 벨리즈라는 곳의 상황과 대한민국의 상황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우선 벨리즈라는 나라에 대하여 간략히 이야기 하자면, 그곳은 중앙 아메리카의 카리브 해에 인접해 있는 작은 나라로서 1981년 비교적 최근에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났다. 이곳은 오래 전 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유럽 열강의 자원 수탈을 위해서 관문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지역이었으며, 그곳에 머물러 있던 유럽인과 원주민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남미와 유럽의 복합적인 문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이곳은 우리의 독재정권이 독립 이후 개발 열풍에 사로잡혔던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과 자못 흡사한 독재정부와 독재 다수당의 계획에 따라서 막 개발을 시작한 나라였고, 하나의 기업이 모든 산업을 장악한 나라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이곳은 인간의 탐욕이 닿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이 책의 주 무대가 되는 마칼 강 주변에는 책의 표지에 아름답게 그려진 주홍 마코앵무새를 비롯하여, 맥, 재규어 등. 많은 희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들은 앞 세대에 걸친 많은 성공적인(?) 개발로 인해 전기와 수도와 같은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힘들이지 않으면서 사용하는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만, 벨리즈에 살고 있는 많은 국민들에게는 기본적으로 필요한 전기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이웃 멕시코의 전력을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만약, 지금 대한민국이 이들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산업 후진국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급자족할 전기를 위해서 댐을 건설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 결과 지금의 모습이니 말이다. 벨리즈인 역시 그들 주위에 펼쳐진 광활한 자연경관은 아직은 그렇게 소중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비극을 겪고 있는 우리들이 자연을 살려야 한다고 외치지만 그들은 우리처럼 이기적인 인간이므로,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드디어 벨리즈 정부는 마칼 강에 대한 개발 정책을 발표한다. 그곳에 댐을 건설하여 전력을 생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 정부의 정책에 한 여인이 반기를 들고 나섰다. 여인의 이름은 샤론 마톨라. 동물을 사랑하는 평범한 미국인이었다. 그녀는 이곳의 자연에 감동하여 오래 전부터 이곳에 정착하면서 작은 동물원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그곳 생태계에 대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샤론은 어느 정도의 개발에 대해서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에게 마칼 강에 대한 정부의 댐 건설 발표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정부가 건설하려고 하는 댐의 건설 결과가 책 표지에 있는 주홍 마코앵무새는 물론 그 지역의 모든 생물에게 멸종의 위기를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댐이라는 것 자체로 인해서 야기되는 자연파괴는 물론이거니와 나중에는 건설로 얻어지는 경제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댐 건설이 부패정부와 부패기업이 만들어낸 공정치 못한 계약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알게 된 그녀는 정부에 대항하여 맞서게 된다. 그녀는 그 지역의 모든 환경단체와 손을 잡았다. 더 나아가 전 세계의 유명한 환경단체들까지 이 싸움에 끌어들였다.

벨리즈의 독재 정권이 그녀의 이런 행동을 가만 놓아두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의 동물원 근처에 쓰레기 매입장을 세운다는 발표를 했고, 그녀의 박물관에 대한 지원금마저 끊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신분상 약점을 이용하여, 제국주의 미국인이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흑색선전을 서슴없이 퍼부었다. 그리고 반대하는 인물들 중 몇몇은 돈으로 매수하고, 건설에 필요한 모든 환경조

그들이 전문가를 고용해 환경조사를 시킨 후, 나온 1500페이지에 걸쳐서 나온 부정적 의견을 단숨에 하나의 표로 그리고 긍정적인 의견으로 왜곡시키는 정부 행위는 이 책의 백미 중에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잇단 소송에서 벨리즈 정부는 최고급의 변호사를 선임하여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나갔다.

결국 1,500페이지짜리 방대한 보고서는 에이맥의 몬트리올 지사에서 레이몬드 굴레트를 비롯한 몇몇 직원들의 손에 의해 편집되었다.

"맥을 구조하거나 서식지를 옮기려는 노력은 전혀 효과없음. 이라는 대목은 맥의 서식지를 이동시킬 대책이 요구됨으로 바꿔 썼다."

"댐이 완공되면 강줄기를 따라 서식하는 어류와 조개류를 쓸어버릴 것.이라는 대목은 하류의 어류들은 더욱 안정적인 강의 흐름을 볼 것으로 순화되었다."

"표에 의하면 댐 건설이 이 지역의 노동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래 보고서에는 "댐 공사에 필요한 인력 중 장기적인 고용은 12명을 초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국제적으로 중요한 보호대상 생물들의 멸종을 초래할 것이다."라는 크리스 민티의 결론을 단 한마디, '부정적인 영향으로 정리했다."

뿐만 아니라 에이맥은 댐 프로젝트를 반드시 오르는 주식처럼 묘사했다.  (321~323 쪽)

결과는 아쉽게도 샤론을 위시한 환경 단체의 노력은 벨리즈 정부의 교묘한 방어와 개발의 정당성에 의해 무너졌다. 벨리즈 정부는 그곳을 모조리 밀어버리고 댐을 건설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댐 건설에 반대하며 투쟁했던 그녀의 행위는 정치에 둔감했던 벨리즈 시민들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그녀는 환경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비록 댐 건설 반대계획이 실패 했지만, 아직도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희귀동물이 남아있었고, 그녀는 지금 현재도 그들을 지키기 환경운동을 꾸준히 실행 중에 있다.

"고맙다고 말씀드리려고요.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셨잖아요. 당신이 댐 문제로 항의하지 않았다면 우린 그럴 수 없었을 거예요.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할 수 있다는 걸 당신이 보여줬어요." (433쪽)

"난 절대로 멈추지 않아요. 싸움에 진다고 해서 멈추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계속 싸우는 거죠. 다른 일을 찾으면 돼요. 남아 있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할 일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절대 낙심하고 좌절하면 안 돼요. 멈출 수 없으면 옆으로 비켜서서 수레바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게 내버려둘 수 밖에요." (463쪽)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펼쳐 들었던 이 책으로부터 나는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얻었다. 이 책은 이때까지 읽었던 어떤 환경 관련 책보다 더 인상적이었고, 정부 비리를 폭로하는 책들보다 부패 정부와 기업 간의 유착 관계에 사실감이 넘쳤으며, 정부가 국민에게 통계자료들을 어떻게 왜곡ㆍ은닉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떤 환경 관련 판례들 보다 더 뛰어난 사례를 제공했으며, 마치 내가 환경 소송과 재판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책의 표지에 관련해서 이렇게 다양한 내용들을 감추지 말고, 더욱 부각시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책을 언뜻 보면 단순히 어떤 여자가 새를 사랑한다는 내용 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표지와 띠지에 있는 글들이 이 책을 10%도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밝은 배경 대신에 어두운 배경을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아름다운 새라는 카피 대신 멸종 위기의 새라는 카피를 넣었으면 어떨까? 아름다운 마코앵무새 하나만 달랑 그려놓은 표지 대신에 인간의 잔혹함에 앵무새가 그리고 모든 생태계가 피해를 보고 있는 장면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그리고 그 주위에 정부와 기업의 악수하는 장면과 과 돈 다발을 그려 넣었으면 어땠을까?

결코 밝지 않은 책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새겨 넣은 출판사의 의도를 확실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나는 책 내용 그것 만큼에 대해서는 단 한 줄의 불만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장담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우석훈 교수의 말 처럼 ‘데자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부족한 필력 때문에 이 책의 장점을 더 많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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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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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나는<허삼관 매혈기>라는 고전스러운 제목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궁금증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곧 책을 통해서 어렵지 않게 풀리게 되었다. 그 제목은 賣(팔 매),血(피 혈)을 사용해서 만들어낸 단어였으며, 문자 그대로 허삼관이 자신의 피를 파는 것을 기록한 문학작품이었다. 그리고 피를 파는 한 인물의 가족사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었다.

피를 팔게 되는 소설의 중심인물 허삼관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그를 버리고 다른 살림을 차려서 떠나버렸다. 홀로 남겨진 그를 돌봐주었던 할아버지와 삼촌이 있었지만, 이 사내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가진 채 유년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 때문에 허삼관은 가족을 가지고 싶은 욕구와 함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어른으로 자라난다.

그는 피를 팔았다. 그는 피를 파는 대가로 얻는 돈을 가지고 그의 애정과 능력을 표현했다. 굳이 돈을 버는 것은 피를 팔지 않아도 할 수 있고, 현재의 기준으로 봤을 때 헌혈이라는 것이 큰 재산적 가치가 되지 않지만,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그 당시의 중국에서의 피의 가치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한 번 피를 팔면 삼십오 원을 받는데, 반년 동안 쉬지 않고 땅을 파도 그렇게 많이는 못 벌지.” (18쪽)
  

피를 팔 수 있는 건강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결혼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여 고을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던 허옥란을 아내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 당시 허옥란은 하소용이란 인물과 연애 중이었으나 허삼관은 건강한 육체 이외에도 또 한 가지 내세울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장인을 설득했다.

“아버님께서는 옥란 씨 하나뿐이시죠? 만약 옥란 씨가 하소용에게 시집을 가버리면 허씨 집안은 대가 끊기는 거 아니겠어요? 저한테 시집오면 저야 원래 허씨니까 태어날 아이들도 모두 허씨 성을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아버님 댁 자손도 이어지는 거지요.”(44쪽)


첫 번째 위기


사랑하는 아내와 세 명의 자식을 낳고 단란한 가정 꾸리는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한 차례의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첫째 아이인 허일락이 옛 애인 하소용의 자식임이 밝혀지게 되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자라 대가리’라는 놀림을 감내해야 했다.

허삼관은 이 사건으로 자신이 원하던 가정이 무너짐을 느끼고 쓰러지나 싶었다. 허나 그는 강한 남자요. 강한 남편이며, 강한 아버지였다. 비록, 그는 처음에는 일락이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는 것을 누구보다 어떠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던 그였기에 결국 일락이를 친자식처럼 보듬어 안는다. 

“일락아, 사람은 양심이 있어야 한다. 난 나중에 네가 나한테 뭘 해줄 거란 기대 안한다. 그냥 네가 나한테, 내가 넷째 삼촌한테 느꼈던 감정만큼만 가져준다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늙어서 죽을 때, 그저 널 키운 걸 생각해서 가슴이 좀 북받치고, 눈물 몇 방울 흘려주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 (205쪽)

두 번째 위기

그들에게는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온다. 그것은 바로 악명 높다던 ‘문화대혁명’이었다. ‘문화대혁명’은 그의 아내 허옥란에게 칼날을 세웠다. 문화대혁명의 주역이었던 홍위병들은 아내에게 2원에 몸을 파는 기생이라는 죄를 씌우고는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했다.

그리고 세 아들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머니에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허삼관은 가족 간의 비판투쟁대회를 통해서 자신도 불륜을 저질렀었다면서 자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하고 임분방은 딱 한번 뿐이었다. 너희 엄마하고 하소용도 마찬가지고, 오늘 내가 너희한테 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나도 엄마하고 똑같은 죄를 저질렀다는 걸 너희가 알았으면 해서다. 너희가 만약 엄마를 증오한다면, 나도 마땅히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도 너희 엄마랑 똑같은 놈이니까” (237쪽)

세 번째 위기

이렇게 두 번째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는가 싶더니 세 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정부 정책에 의해 자식들이 뿔뿔이 농촌으로 흩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전에 <홍위병>이라는 책을 통해서 농촌으로 강제로 이동했던 어린 학생들의 생활을 접한 적이 있었기에 고된 노역에 지쳐서 등장한 일락이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다시 험한 곳으로 내몰아야 하는 가슴 아픈 아버지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 마련한 돈을 그에게 전달한다. 

“전부 가져가거라. 이건 내가 방금 피를 판돈이니 다 넣어둬라. 이 안에 이락이 몫도 있다. 이 돈을 함부로 낭비하지 말고 아껴 써야 한다. 피곤해서 식욕이 없을 때 맛난 걸 사먹고, 명절 때 담배 두 갑하고 술 한 병쯤 사서 너희 생산대장한테 갖다 줘라. 그래야 적당한 때 널 배치해주지 않겠니?”(246쪽)

그 동안은 결혼을 위해, 옛 사랑을 위해, 친자식들을 위해 피를 뽑았던 그는 드디어 일락이를 위해서도 그의 힘을 그리고 사랑을 전달한다. 그리고 피를 뽑아 낸지 며칠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또 그의 아들을 위해서 피를 뽑아야 했다.

“이원으로 어떻게 식사 대접을 하느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락이네 생산대장인데, 식사대접이 시원찮아서 기분이 언짢아지기라도 하면 이락이가 당장 힘들어질 거 아냐. 하루빨리 돌아오는 건 고사하고 거기서도 고생이 심해질게 뻔한데”(247쪽)

아내의 푸념 섞인 목소리와 함께 그는 또 한 번 피를 뽑는다. 그리고 여러 차례의 수혈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자식의 안위를 위해서 생산대장이 권하는 술잔을 마다않고 마신다. 피를 며칠 사이에 두 번씩이나 뽑아낸 그가 술을 이겨낼 리 만무했다.

술을 세 잔째 털어 넣은 다음부터는 뱃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먹은 술이 거꾸로 넘어올 것 같았다. 그는 재빨리 문가로 뛰어가 웩웩거리며 토를 했다. 허리에 경련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몸을 일으켜 세울 수조차 없어 그대로 쪼그리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일어나 입을 닦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자리에 들어와 앉았다. (262쪽)

아……. 부성애란 이런 것이던가? 자식을 위해 제 한 몸 돌보지 않았던 허삼관의 행동을 보면서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그렇게 가기 싫다고 하던 장남 일락이를 억지로 보냈던 것이 결국 화를 불러GHT: bold">마지막 위기

이락이는 곧 죽을 모습을 한 일락이를 들쳐 메고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큰 병원에 가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아버지 허삼관은 이웃집을 이리저리 찾아다니면서 치료할 돈을 구걸했고, 그토록 싫어하던 하소용의 집에까지 찾아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다. 그는 자식을 살리기 위해 또 다시 피를 뽑으러 나선다.

그러나 며칠 사이에 두 번씩이나 피를 뽑았던 그에게 또 다시 피를 뽑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다른 지방의 병원을 찾아가라고 일러준다. 가까운 시기에 두 번의 피를 뽑았던 그의 몸 상태는 형편없었지만 그에게는 몸을 돌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허삼관은 여러 곳에서 피를 뽑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에겐 자신의 안위보다 자기 자식의 안위가 더 소중했다. 그는 한번 피가 뽑힐 때마다 죽음과 가까워짐을 경험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피를 뽑아냈다. 그러는 그를 보면서 한 노인은 그를 걱정했지만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야 내일 모레면 쉰이니 세상 사는 재미 다 누려봤죠. 이제 죽더라도 후회는 없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라 사는 맛도 모르고 장가도 못 들어봤으니 사람 노릇 했다고 할 수 있나요. 그러니 지금 죽으면 얼마나 억울할지……. (291쪽)

그는 연거푸 세 번의 피를 뽑아냈다. 하지만 세 번째의 피를 뽑았을 때 그는 의식을 잃었고 그가 뱉어냈던 피와 더불어 훨씬 많은 피를 수혈 받아야 했다. 더 이상 그에게는 피를 뽑아낼 능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버지가 유일하게 해 줄 수 있었던 힘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는 보충 받은 피와 남아있는 돈을 어떻게든 아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한 뱃전에 몸을 맡긴다.

그리고 희망…….

사실 그는 어떻게든 돈을 아끼기 위해서 노를 젓는다는 거짓말을 하고 배를 탔다. 그러나 노를 만져보지도 못했던 허삼관의 거짓은 곧 들통 났다. 그러나 배의 주인이었던 래희와 래순은 두 형제는 그를 내쫒지 않는다. 그리고 큰돈이 된다는 허삼관의 꾐에 넘어가 셋이서 피를 뽑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 시에 피를 뽑아낸 그들은 자연스레 친해졌고 허삼관의 과거사를 알게 된다.

그들은 허삼관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되었고, 그들의 피를 허삼관에게 내어주면서 그를 도와준다. 그들 역시 남을 도울 줄 아는 가슴 따듯한 사내였던 것이다. 허삼관의 정성에 아마도 하늘이 감복했기 때문에 래희와 래순과 같은 청년들을 만나게 해준 것이리라.

"방금 우리 피가 아저씨 피보다 진하다고 하셨죠? 우리 피 한 사발이면 아저씨 피 두 사발이라구요. 우리 세 사람 피는 모두 동그라미 형이니까.치리바오에 도착하면 아저씨가 우리들 피를 사세요. 우리한테 한 사발 사서 병원에 두 사발로 팔면 되잖아요?" (312쪽)

결국 그는 이웃들의 도움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청년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노년으로 급작스럽게 넘어간다. 노년의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피를 뽑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갑자기 피를 뽑은 후에 매번 먹었던 돼지간볶음과 황주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그것을 먹기 위해 병원을 찾아갔으나 늙은이의 피는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쓴 소리를 듣는다. 이제 그의 피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그와 동시에 그는 빈털터리가 되어버렸다. 그에게 있어서는 피라는 것이 사랑이었고 힘을 베풀 수 있는 매개물이었는데, 한순간에 사라져버렸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애를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의 뒤에는 성공한 세 아들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었으며, 사랑하는 아내가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그는 젊은 날 바쳤던 사랑에 대한 보답을 확실히 받는 일만 남아있었고, 그의 가족은 그것을 누릴 힘이 있었다.

이렇게 이 책은 모든 위기와 갈등이 해결되고 평화가 찾아오면서 끝났다. 바로 전에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과는 달리 이 책은 착한 사람이 반드시 결실을 얻는다는 권선징악의 구조로 되어있었고, 나에게 있어서는 이와 같은 이야기 전개가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뿌듯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결말이야말로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동양의 맛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책 곳곳에 숨겨져 있는 해학적인 표현 역시 동양의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목만 고전스러운 것이 아니라 내용도 고전스러웠으며, 나는 그 맛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허삼관! 이 개자식아, 너 어디로 도망친 거야. 난 아파 죽겠는데, 넌 어디로 도망간 거냐구……. 이 칼 맞아 뒈질 쌍놈의 자식 같으니라구. 빨리 와서 내가 힘쓰는 것 도우란 말이야. 더는 못 참겠어. 허삼관, 너 빨리 안와? 의사 선생님, 애가 나왔나요?”
“두 번째 출산인데도 이 난리군.” (51쪽)

“그러니까 애들 이름이 일락, 이락, 삼락이지. 내자 분만실에서 고통을 한 번, 두 번, 세 번 당할 때 당신은 밖에서 한 번, 두 번, 세 번 즐거웠다 이거 아냐?” (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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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곽복록 옮김 / 신원문화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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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복록 서강대 명예교수님이 번역하신 <변신>에서는 변신 이외에 다른 소설이 하나 더 담겨있었는데, 카프카의 고독 3부작 중 하나인 <심판>이었다. 헌법에 대한 책을 몇 권읽은 것이 고작인 나로서는 카프카가 이야기하는 소송에 관련된 의미심장한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기 수월치 않았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아직도 통용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심판>에서 이야기하는 카프카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심판>에서도 <변신>과 마찬가지로 인생을 결정지을만한 사건이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등장한다. 책의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은행 부장의 직위까지 올라있는 요제프 K. 탄탄대로를 달리던 그는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두 명의 감시원에 의해 자신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야기가 조무지 통하지 않았던 감시원들 다음에 등장하는 주임도 그에게 같은 사실을 인지시켜준다. 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본의 아니게 감시당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첫 번째 심리가 벌어지던 날. K는 작심하고 자신을 거칠게 다루었던 감시원들과 아무런 이유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심리하고 있는 재판부의 사람들을 격렬한 어조로 비판한다.




“이 사건 때문에 저는 불쾌했고 다소 화도 났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또다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습니까?” (170쪽)

“확실히 이 재판소의 모든 현상의 배후, 제 경우를 예로 들어 말씀드린다면 체포 및 오늘의 심리의 배후에는 하나의 커다란 조직이 숨어있습니다.” (172쪽)




K의 심리장에서의 발언은 그를 찾아왔었던 감시원들을 무서운 처벌을 받도록 만들고, 자신 또한 상부의 인물들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만다. K가 아무리 발악을 해도 상처를 받는 이들은 힘없는 말단 조직원이었고, 자기 자신이었다.




K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시골에 살고 있던 그의 숙부에게까지 전해지고, 사실을 알기 무섭게 숙부는 그를 데리고 자신의 친구인 훌트 변호사를 찾아간다. K는 그곳에서 레니라는 변호사의 하녀를 알게 되고, 그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훌트 변호사와 재판소의 고위 인물에게 또 한 번의 안 좋은 기억을 남기게 된다. 




어찌되었건 간에 훌트 변호사는 K의 사건을 맡아서 진행하게 되지만, K는 훌트의 지지부진한 작업속도에 불만을 느끼고, 점차 자신의 일을 등한시 하면서까지 소송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그로 인해 회사 내의 경쟁자였던 지점장 대리에게 허점을 보이기 시작한다.




K는 차라리 자신이 직접 진술서를 작성하고 무죄를 밝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변호사를 찾아가지만 훌트는 법조계 세계의 진실에 대한 어두운 사실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카프카는 개인이  아무리 몸부림 쳐봤자 부질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변호사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개인적 연고이고, 변호의 가치는 그 대부분이 이 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변호사들이 정보를 캐내거나 몰래 찾아가 서류를 뒤져서 고객을 유치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고육지계에 불과하며 진실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정정당당한 인간관계가 차차 뚜렷하게 재판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279쪽)




내게는 높은 지위에 있는 지극히 훌륭한 재판소 직원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여러 가지 정세에 대해 지극히 호의적으로, 또는 적어도 금방 풀 수 있는 수수께끼의 형태로 이야기해 줍니다. (280쪽)




즉, 홀트 변호사는 K에게 재판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빽의 힘이 중요하며, 자신의 고위층에 연결된 인간관계가 바로 그 해답일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이야기해준다.




훌트는 이렇게 말만 번지르르 하게 늘어놓고 여전히 그의 사건의 처리에는 미온적인 반응을 계속 유지했고, 그 덕분에 K는 소송에 대한 압박감으로 점점 더 일에 대한 집중을 잃어갔으며, 그러던 그때 자신의 고객 중 한명이 화가에 대한 정보를 그에게 제공한다.




재판관들의 지정 화가 일을 업으로 삼고 있던 티토렐리는 K가 아무리 무죄라고 해도 한번 결정된 사실은 캔버스에 그려진 모든 재판관을 줄지어 놓고 앞에서 변호하는 것이 실제의 재판을 받는 것보다 나을 정도로 절대 번복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즉, K는 무죄였으나 이미 유죄라고 체포되었으므로 아무리 재판을 거쳐도 결국 그는 유죄라는 것이었다. 이런 그에게 티토렐리는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세 가지의 방책을 알려준다. 그것은 실질적 무죄, 형식적 무죄, 소송의 진행 방해. 이렇게 세 가지의 방식이었다.




티토렐리는 자신이 이제껏 살면서 실질적 무죄로 벗어나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일러두면서 다시 K에게 완전 무죄는 없음을 인식시킨다. 결국 K에게 가능한 방법은 형식적 무죄와 소송의 진행 방해 이렇게 두 가지였는데, 이 두 가지 방법은 K가 생각하기에도 충격적이었고, 나 역시 그러하였다.




형식적 무죄는 일시적인 무죄의 방식으로 하부 조직의 재판관들을 설득하여 무죄를 얻어내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통하면 티토렐리가 근무하는 재판소의 재판관들로 하여금 무죄를 받아낼 수는 있으나, 그 위의 재판소가 다시 소송을 제기하면 혐의는 다시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즉, 이 방법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지막 방법인 소송의 진행 방해. 티토렐리에 따르면 이 방법이 가장 효율성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즉, 말 그대로 유죄인 상태에서 소송의 진행과정을 답보상태에 계속 머무르게 하여, 죄를 보유하고 있으나 처벌이 없는 상황을 계속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이 방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계속적으로 사건의 관련 재판장과 같은 인물들에게 호의적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성공하게 되면 정기적으로 심문이 진행된다 하더라도 출석할 필요 없이 알아서 처리될 것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공짜란 없던가? 이야기를 마친 후 티토렐리는 갑자기 자신의 그림들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K에게 이야기한다. 과연 그것이 무엇을 의미했던 것일까? 그렇다. 자신이 정보를 제공해 주었으니 대가를 요구했던 것이었다.  




절대적인 결백을 증명할 수도 없었으며, 모든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 뇌물과 같은 것이라는 카프카의 날선 비판을 담은 이야기에 구토가 밀려왔다. 결국 K는 화가가 이야기한 두 가지 방법을 모두 다 거부하고 자신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서 싸움을 해나갔었던 것 같다.




그는 또한 지지부진한 움직임을 보이던 변호사와의 관계를 청산했다. 그곳에서 만난 상인 블로크의 진술도 그에게 변호사와의 결별을 위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블로크는 5년간 훌트와 소송을 준비했지만 현재까지 해결될 기미가 없었으며, 그 이외에 7명의 다른 변호사들을 고용하여 일을 진행시키느라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있었다.




결국, 카프카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해답이 없다는 것이었다. 변호사를 고용해 봤자 돈만 받아먹고 시간을 낭비할 것이며, 재판관을 구워삶아 형식적 무죄나 소송의 진행 방해를 해봤자 원래부터 무죄였던 K를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떤 이의 음모로 인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이었다.




이 책의 미완성으로 인해 도중에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는 면이 약간은 있었으나 마지막에 가서 K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죄명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것이 카프카의 실존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그 시대의 실제라고 생각하니 <변화>에서 느꼈던 분노보다 훨씬 더 강렬한 분노가 찾아왔다.




대체 누가 무고한 그를 고발한 것인가? 누가 상부에 로비를 벌여 그를 타락으로 이끌었는가? <심판>에서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으나,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보았다. 책의 미완의 단장에 의하면 이야기 내내 유능한 것처럼 보였고 자기 실력만 가지고 그 자리까지 올라왔다고 생각했던 K도 역시 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하스테라라는 검사와의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지점장 눈에 띄게 되었고 그가 초고속 승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능력에 관계없는 인사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가 가장 피해를 입었을까? 바로 지점장 대리라는 생각이 바로 정답으로 떠올랐다. 오랜 시간동안 은행에서 일을 하면서 구축해 놓은 인맥도 있었을 것이며, 돈을 관리하고 대출해주는 입장이었으므로 그를 궁지에 몰아넣을 인물을 포섭하기에도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왜 K는 끝까지 검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직까지도 수수께끼다.




변신과 심판 이 두 가지의 소설을 통해 사르트르보다 더 매운 실존문학의 맛을 본 것 같다. 다소 직설적이고, 근거가 없는 사건의 발생이 일어났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깊숙이 파고들어 따져볼 수 있다면 사회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과연 머리에 쓴 책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었음을 이 책은 증명해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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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2010-02-20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K를 타락하게끔 고발하게 만든 사람이 지점장 대리일꺼라는 추측! 저도 지점장 대리의 K에 대한 띠꺼운(?)태도들을 읽으면서 혹시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제 생각과 비슷한 글을 보니 왠지 반갑네요!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곽복록 옮김 / 신원문화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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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변신>( 만약 당신의 가족이 벌레로 변한다면? ) 
 

카프카의 팬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은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하지만 나는 다행스럽게도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를 통해서 간략하게나마 실존문학의 맛이 어떠한 것인지 알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또 다른 실존문학의 선구자인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 것은 배추김치를 집집마다 다른 방법으로 담그는 것에 비교하면 저렴한 비유가 될는지 모르겠으나 그 만큼 색다르고 맛 다른 경험이었다.




카프카의 <변신>은 밑도 끝도 없이 바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가 독충으로 변신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불쌍하게도 카프카는 왜 그렇게 되었는지 전혀 설명해 주지 않았다. 덕분에 그레고르는 가족들(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을 전부 부양해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불평 없이 충실이 이행하던 장남에서, 하루아침에 가족들에게 있어서 외부에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는, 쓸모없는 존재인 독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저자가 갑작스럽게 그를 미물로 만들어버린 의도는 확실히 알 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가 만들어낸 독충을 통해서 우리 시대의 일자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왔다. 사회는 그들에게 백수라는 낙인을 찍고난 뒤에 능력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준다.




더욱이 그들에게는 경우에 따라서 가족 내에서도 우리 아들이, 딸이, 형이, 누나가, 동생이 백수라고 밝히기 부끄러운 존재로 전락한다. 그레고르가 독충이 되어버린 현실과 우리들이 백수가 되어버린 현실이 무엇이 다를까? 독충이 되는것과 다를바 없는 우리들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책을 읽어나갔다.




카프카는 예상대로 그레고르의 가족들을 비인간적으로 표현한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독충이 된 그레고르가 자신들의 가족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에게 위로와 슬픔과 격려를 주기는커녕 그레고르의 슬픔은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에게서 도망가 버린다.




어머니는 그레고르의 모습을 잘 살펴보기 위해 들여다보고 있기는 했지만, 발은 그와는 반대로 정신없이 뒷걸음질을 쳤다. (39쪽)

아버지는 구원의 손길은커녕 이때다 하면서 그에게 가차 없이 일격을 가했다. 그레고르는 피를 뿜으면서 방 안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40쪽)




그리고 마지막 남은 희망이었던 그의 누이동생마저 그에게서 멀어져 간다. 독충으로 변한 그의 식성을 알아내고자 여러 음식을 가져다준 따뜻했던 마음은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누이동생은 예전과는 달리 아침이든 낮이든 가게에 나가기 전에 뭐든 있는 대로 쓸어보아 그레고르 방에 밀어 넣고 나가버렸다. 요즈음에는 청소도 대강대강 해치웠다. 이제 먼지는 벽을 따라 띠처럼 쌓이고 군데군데 쓰레기와 먼지와 오물들이 흩어져 있었다. (80쪽)




마지막까지 보살펴주던 동생마저 그에게서 떠난 순간, 그를 담당하게 된 사람은 가족이 아니라 새로 들인 하녀가 되었다. 가족들에게서 버림받은 그레고르가 하녀라고 대접해줬을까? 그렇지 않았다. 하녀는 그를 마치 실제 벌레처럼 취급했다. 가족의 손을 떠난 순간 그에게는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




가정부가 늘 하던 대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을 때 그레고르는 화가 나고 말았다. 그래서 덤벼들 듯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가정부는 놀라기는커녕 태연히 문 옆의 의자를 들어올렸다. 그녀는 들어올린 의자로 그레고르의 등을 내려치기 전에는 결코 그 입을 다물 것 같지 않았다. (83쪽)




가족들은 그레고르의 수입에 의존했던 과거에서 벗어나서 스스로 일거리를 찾아나섰지만,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생활고 때문에 살고 있는 집을 처분해야 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된다. 하지만 집을 처분하려면 그레고르의 문제가 걸릴 수밖에 없었고 그것 때문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요. 이 괴물 같은 벌레 앞에서 오빠 이름조차 거론하고 싶지 않아요. 이제 우리는 이 괴물로부터 벗어날 궁리를 해야만 해요. 우리는 이제껏 이 괴물의 시중을 들어왔고, 또 이 괴물로 인한 고통을 꾹 참아왔어요. 우리는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거예요. 그러니 이제는 이 괴물을 버리고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를 나쁘다고 할 사람은 없어요.” (92쪽)




누이동생의 가시돋힌 독설을 백번 옳은 주장이라며 맞장구치게 하면서 카프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들의 비정함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일어나는 가족의 비정함을 더욱 극대화 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카프카는 결국 그레고르를 가족들의 버림 속에서 괴로움만 겪다가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는 불쌍한 존재로 만들면서 극을 고조시켰다.




그레고르는 삶의 무게를 벗어던졌다. 그러나 나는 그것과는 다른 무엇을 바라고 있었다. 나는 제발 그를 원래대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했다. 그레고르가 꾼 꿈으로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으니 꿈이라고 말해달라고 기도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만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카프카는 나의 기도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카프카의 이야기에서 그레고르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카프카는 떠난 그레고르를 바라보는 가족의 미묘한 심리를 표현해내면서 나에게 분노와 씁쓸함을 가득 안겨다 주었다. 가족들은 어찌되었건 악몽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만들하고 이리 와. 지난 일에 얽매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내 생각도 좀 해줘.” (103쪽)




그레고르가 떠난 뒤 그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들에게는 가족보다 더 중요했던 경제적인 안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긋지긋한 과거에서 벗어나 점차 생기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는 새로움 꿈과 아름다운 계획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씁쓸하면서 한편으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에 한숨이 흘러나왔다. 가족 개개인에게 독충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는 부담해야 할 짐이었으며, 바깥으로 드러나서는 안될 치부가 되었다. 카프카의 이야기처럼 사라져 주는게 오히려 낫다고 가족들은 생각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은 지겹도록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가족들마저도 그 본능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카프카의 메시지를 접하고 나니 뭔가 빠진 것처럼 허무해졌다.




아마도 카프카가 노린 것이 이것일까? 허전한 마음을 돌아보고 이 이야기에서 스스로 무엇이 부족한지 찾아보라는 것이 책에 숨겨진 그의 질문이었던 것인가? 허무한 결말대신 권선징악의 대표작들처럼 인륜을 저버린 이들에게 행복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로서 그들을 괴롭혔다면 어땠을까? 왜 그들의 불행을 그리지 않았을까?




카프카는 끝까지 매정했다. 차도살인이라고 했던가? 우리에게 칼만 쥐어져 놓고서는 유유히 떠나버렸다. 우리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들이 맞이할 불행을 우리가 직접 그리던지 아니면 우리는 그들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다고 판단할지...  하지만 어느 면을 보더라도 <변신>은 타당한 근거를 가진 완벽한 모습을 하고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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