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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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이라는 책의 제목은 사실 나에게는 친숙한 단어이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세대인 우리에겐 말이다. 이런 단어는 특히 ‘디씨인사이드’라는 웹사이트와 ‘아프리카TV’라는 인터넷 방송국 같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흔히 접할 수 있는 단어인데, 대략 무엇인가 흥분되는 것을 볼 때나 기대할 때 그 기대감에 내는 소리라고 알고 있고 또한 그렇게 자주 사용하기도 한다.

이 책을 들여다보면 재미로 툭툭 던지는 ‘야동’에 관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데, 거기에  나오는 홀딱 벗은 남녀가 내는 소리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쨌든 이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모든 글은 인터넷 세대의 공감을 받아서 골라낸 것이기 때문에 ‘하악하악’ 할 정도의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는 뜻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책을 두어 장 넘기다보면 목차가 등장하는데 목차의 제목들도 하나같이 가관이다. 털썩, 쩐다, 대략난감, 캐안습, 즐! 이렇게 각 장을 다섯줄기로 나눈 목차의 제목은 ‘하악하악’과 완전히 뜻이 반대되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단어들을 앞세운 이유는 아마도 우리의 현재 상황이 ‘하악하악’ 할 만큼 기대로 가득차 있지 않고, 대략난감하면서도 털썩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캐안습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이 목차들이 가지고 있는 뜻은 하나의 의미에서 만나기 때문에 사실상 이 책의 목차는 여타 다른 책들처럼 그렇게 큰 비중이나 주제를 함축하고 있진 않다. 그저 읽다가 한번 쉬어가는 정거장 정도로 이해하면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의 특징은 여백을 살린 것과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민물고기들을 삽화로 표현한 것도 나름대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특징은 틀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들이 인터넷의 바다 속에서 손가락이 향하는대로 클릭질하면서 왔다갔다하는 사이트들의 방문. 그런 행위들을 묘사하듯이 이 책의 이야기들도 그런 식으로 흩뿌려져있었다.

읽다보면 외로움에 대해서 한 꼭지 이야기 하는가하면, 악플러들에 대한 경고도 한 꼭지 포함시켜놓고, 인간반성의 글도 나오며, 해학, 풍자, 속담들 그리고 자존심이나 다양성과 같은 의미를 고찰해보는 글들도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유행하는 트위터나 미투데이 같은 방법을 먼저 사용한 유행의 일번지였다.

솔직히 목차위주의 점진적 구성이 아니기 때문에 어른세대들이 읽기엔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젊은 청소년 세대의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무겁게 생각하지 말고 첫 장부터 넘겨보지 않고 어디든 펼쳐보아도 자그마하게 담겨있는 그 글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전체를 놓고 분석해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정리를 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보았는데, 도통 명확하게 잡히는 것이 없는 경우는 정말 어려운 책들 외에는 이 책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머릿속에는 대충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악플러에 대한 비난을 하고 있다는 것과 어리석은 인간들을 동물에 빗대어 놀리는데 사실 알고 보면 그 동물이 하는 행동들 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글을 가지고 폄하하거나 책의 가격을 운운하는 이들에 대한 경고 등. 정말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그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쓴 모든 글들을 100%공감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책을 읽는 당신이 이외수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매일 접하는 기존의 딱딱한 틀을 깨고 젊은 세대들과 함께 소통하고자 젊은 단어들의 채집과 짧은 글들의 나열과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듯하다. 

책 속 글귀들 중 생존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에 가장 와 닿았던 것 같다.

“살아남는 비결 따위는 없어. 하악하악. 초지일관 한 가지 일에만 전심전력을 기울이면서 조낸 버티는 거야. 하악하악 그러니까 버틴다는 말과 초월한다는 말은 이음동의어야”

그리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이따금 경해와 주장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고 ‘틀린 사람으로 단정해버리는 정신적 미숙아들이 있다. 그들은 대개 자신이 ’틀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자신은 언제나 ’옳은 사람‘이라고만 생각한다. 성공할 가능성이 지극히 희박한 사람이다.”

실수에 대한 그의 생각도 인상적이었다.

“길을 가다 돌부리에 넘어졌다. 길을 가던 내가 잘못이냐 거기 있던 돌이 잘못이냐. 넘어진 사실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인생길을 가다가 넘어졌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이 길을 가면서 같은 방식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한다면 분명히 잘못은 당신에게 있다.”

죄에 대한 생각도 역시…….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진실을 못 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진실을 보고도 개인적 이득에 눈이 멀어서 그것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죄일 뿐이다.”

이러다가는 책 속 글귀를 전부 옮겨 적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글귀들을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잠시 보고 덮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아쉬울 것 같다. 살면서 ‘하악하악’ 숨이 차서 무엇인가의 도움의 한마디가 필요한 그 순간에 이 글귀들 가운데 어느 한 가지는 반드시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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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 김대중 잠언집
김대중 지음, 최성 엮음 / 다산책방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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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김대중 잠언집 <배움>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이런 성질의 표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화려하진 않지만 어떤 의미가 담겨있어 우리들로 하여금 골똘히 생각하게 만드는 이런 그림들이 실려 있는 표지를 무척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 새겨져있는 그렇다고 일정한 방향으로 새겨져있지도 않고 이리저리 어지러이 흩어져있는 수많은 발자국들. 그것들 사이에 올바른 길을 가리키고 있는 발자국은 어떤 발자국인지 탐색해나가고 있는 한 작은 존재.

그런 작은 존재가 바로 우리들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지러운 발자국 속의 하나의 발자국인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발자국도 찍혀있을 테고 그 발자국이 가진 방향과 성격이 어떤 것인지 이 책은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이 책은 생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썼던 저서들 가운데서 <옥중서신>,<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내가 사랑한 여성>,<김대중 자서전>,<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의 책 속에 담겨있는 문장들 중에서 이 책을 엮어낸 최성 국회의원의 마음을 움직였던 구절들을 한데 엮어낸 책이라고 책의 서문에서 밝혀놓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갑판위의 생선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직접 경험해보지는 않았지만 상상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나를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생각해보았다.

삶에서의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 고기잡이배에 승선하여 하루 종일 그물망을 설치해놓고 기다리는 과정. 그물망에 걸려있는 생선들을 하나하나 분리해내는 고된 노동의 과정.

그런 기다림과 노동의 과정을 생략한 채, 그저 갑판 위에서 배와 등을 드러내면서 펄떡이고 있는 생선들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심정이 바로 내가 이 잠언집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삶의 여유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사회인들에게 산지에서 생산된 신선한 생선과 같은 싱싱함을 제공해줄 것만 같은 책 <배움>. 이 책 한권을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니면서 비늘을 제거하고 뼈를 발라서 손질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 책을 손질하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절반이 가지고 있을 편견은 뒤로 하고 말이다. 

논어의 위령공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군자는 말을 듣고 사람을 들어 쓰지 않으며, 사람을 보고 말을 버리지 않는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더불어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을 것이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도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을 것이다. 지혜로운 이는 사람을 잃지도 아니하고 말을 잃지도 아니한다.”

분명히 이 잠언집은 우리에게 필요한 ‘더불어 말할 만’한 내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하는 이념들 사이의 논쟁 때문에 서로를 적으로 생각하면서 말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그가 남겨놓은 중요한 가르침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누가 되었건 간에 그 사람도 말도 잃지 않을 것이다.’라는 논어의 가르침을 되새겨서 지혜로운 우리들은 우리를 갈라놓는 편 가르기는 일단 제쳐두고, 그가 경험한 80인생에서의 깨달음을 하나하나 기록해놓은 그 문장들을 곱씹어보자.

삶의 목적이 ‘무엇’이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의미에 집중했다는 그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인생, 아내와 가족, 관계는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참으로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이 <배움>의 생선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회로 먹을 것인지, 매운탕으로 해먹을 것인지, 구이로 해먹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보면 어떨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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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야, 바람 보러 가자 - 자연과 대화하는 벌랏마을 선우네 이야기
이경옥.이종국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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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인 책을 꼽아보자면 우리는 가장 먼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 혁명 이후의 근대화. 그 한 가운데에 서서 세계를 진두지휘하던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소로우는 점차 인간들의 삶에서 여유라는 즐거움이 빠져버리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또 하나의 책을 꼽아보자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법정스님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소유에 얽매이면 결국 주와 객이 전도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야기였다. 즉,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대출해서 구입한 집이나 자동차를 소유하기 위해 돈을 벌게 되고,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일러주었다.

그 두 사람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바라보지 않고, 노동력이나 경제력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 속에서 벗어나서 자연을 친구삼아 그들만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고 현재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선우야, 바람보러가자>를 펴낸 한지공예가 이종국님(마불)과 명상가 이경옥님(메루) 또한 그들처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마블과 메루가 살아가는 자연 속의 삶은 소로우와 법정스님이 가지고 있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 녹아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이고, 특히나 그들 사이에는 선우라는 아이가 있기에 이 책은 그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 가족이 자연 속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인간미가 물씬 풍겨져 나온다.  

그렇지만 선우네는 자연에 그저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마을속의 울타리 안에서 혼자 있음에 익숙한 선우를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말처럼 자연은 곧 책이요. 친구이므로 선우가 현재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내의 말처럼 친구들을 접하고 어느 정도 사회성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기에 선우를 학교를 보내서 또래친구들과 어울리도록 해야 하는 것인지.

“두 분은 부부싸움도 안 하실 것 같아요. 이런 무릉도원에서 화가랑 명상가랑 사는데 싸울 거리가 뭐 있겠어요?”

많은 사람이 선우네를 만나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교육방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들.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의 문제들에 대한 의견충돌이 있지만, 그들 부부는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서 인정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해당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평온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 역시 인간인지라 일치하지 않는 문제와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서로 짜증내고 화낼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고 공통점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역력하게 비쳐지고 있는 책 속의 편지들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에 그저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선우네 가족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었고, 그런 경제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과 경제적인 문제를 풀어가기 앞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선우네의 삶에 있어서 인간의 존재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것에 모자라서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으며, 꾸준하고 지겹도록 오랜 시간동안의 노력으로 선조들의 한지를 더욱 발전시켜 빚어낸 독창성 있는 한지공예작품들.

그것이 내포한 우리문화의 신비함을 무기로 여러 나라에 전시회를 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까지 이른 선우네를 보고 있으니, 우리가 매일 ‘영어’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우리들의 것을 더욱 갈고 닦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재주를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앞과 뒤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오지였지만 하늘은 열려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고 이야기하는 선우네. 겨우내 온 몸이 찌릿찌릿 할 정도로 시리게 만드는 강추위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겨울 뒤에 만물이 태동하는 봄의 마력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선우네. 산 속 곳곳에 있는 먹을거리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살고 있는 선우네. 곡식을 아끼는 마음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귀하기 때문임을 알고 있는 선우네.

도시의 삶에 익숙해져버린 일반 사람들에게 일주일정도 살아보라 한다면 며칠 있지 못하고 곧바로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게 될지도 모를 그 곳 벌랏마을. 그 멀고 깊은 곳에서 우리는 그들의 주위에서 항상 친구처럼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만족하고, 우리의 선조들의 문화에 가슴이 뛰는 선우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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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역사 (양장) - 산업혁명에서 정보화사회까지
양정혜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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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사회적ㆍ경제적 변화에 따라 광고의 메시지 형태나 내용이 일정한 패턴으로 생성되고, 성장하고, 소멸하는 양상을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명제는 광고의 세계에서도 불변의 진리인 셈이다. 광고의 역사가 보여주는 주기성과 순환성에 대한 이해는 향후 다가올 시대를 예측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머리말 중에서…….  

저자는 광고를 보면 시대상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의 사례를 통해서 광고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런데 저자는 유럽도 있고 일본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미국의 광고 역사를 위주로 이 책을 구성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미국이 현재 전 세계의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는 공룡이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에 주둔하여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끼친 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광고의 탄생배경

광고의 탄생에서 산업혁명은 큰 기여를 한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운송수단의 발달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상품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으며, 거대한 공장으로 인한 대량 생산된 소비재들은 소비자들의 손길을 갈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 홍보를 띈 내용을 담은 광고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창기의 광고들은 지면상의 공간이 매우 제한되어 있었고, 흡사 우리가 보는 교차로와 비슷한 형식의 지면광고가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그래서 초기의 광고대행사의 역할은 ‘카피라이터’의 광고대행사의 성격이 아니라 광고가 할당된 신문지면을 구입하여 분양하는 부동산 중개인과 비슷한 역할만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설명된다.

미국 광고의 역사

그렇지만 엄청나게 생산되는 물량과 더불어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많은 기업들의 물량과 경쟁 속에서 많은 기업들은 기업의 명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제품과의 차별성을 설명해야함을 깨닫게 되었고, 점차적으로 제품의 장점을 설명하기 위한 광고로 가닥을 잡으면서 광고의 비중을 늘리게 된다. 그리고 광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광고만을 담당하는 대행사가 들어서게 된다.

1910년, 1920년, 1930년, 1940년, 1950년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차례로 겪으면서, 미국의 광고들은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전쟁기에는 내셔널리즘을 표방하고 있는 광고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국민들에게 입대를 권유하는 형식의 광고와 더불어 기업의 기술력이 전쟁무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기업 인지도를 높이려는 광고가 유행했다.

대공황의 시기의 광고는 창의적인 광고의 형식과는 거리가 먼 제품의 기능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동시에 불황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사와의 비교 광고가 크게 유행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근본적인 욕구인 건강과 성에 호소하는 광고들이 주류를 이루게 됨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60년대의 광고는 지금껏 경직되어 있던 하드셀 위주로 제품의 특징의 설명에 급급한 광고의 성질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저자는 ‘크리에이티브 혁명기’라고 지칭하고 있다. 오늘날의 광고를 보면 모 증권사의 ‘Creative With You' 라는 카피가 특히 유행하면서 창의력 있는 광고가 주목을 받고 있는 시기인데, 그런 광고의 태동이 바로 1960년대에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창의력을 추구하는 광고가 늘어난 이유로 전쟁과 공황을 거치면서 살아남게 된 기업들 간의 인수합병을 통해서 거대화된 기업들의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점상태의 몇몇 기업들은 그들의 점유율과 브랜드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가 필요했음을 직감했기 때문에 단순 제품광고보다는 기업이미지의 홍보에 열을 올렸다는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광고들과 더불어 기업의 브랜드 마케팅이 상당히 유행했던 시기로 평가된다.

1970년대의 미국 광고계는 오일쇼크로 인해서 다시금 불황이 찾아온다. 그리고 방만하게 운영되는 광고의 효율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광고조사라는 개념이 크게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기업들은 이런 조사의 결과를 바탕으로 불황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사용한다. 즉, 하드셀(제품의 특성을 주로 설명하는 광고)과 포지셔닝(제품에 대한 장점을 최초로 부각시키는 광고)그리고 비교 광고가 유행하게 된다. 이런 광고들은 2009년. 현재도 우리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광고인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불황기를 증명하는 광고들.

왜 불황기가 찾아올 때마다 불황기를 규정짓는 광고들이 유행할까? 그것은 아마도 소비자들의 심리적인 운신의 폭이 줄어들게 되어 점점 더 꼼꼼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추구하려는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일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의 광고들은 소비자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내렸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부여해주기 위해서 노력한다.

최근 가장 이에 부합하는 비교 광고는 ‘하이카 다이렉트’ 광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거울 앞에서 세상에서 가장 저렴한 보험회사가 어디인지 묻는 장면과 늘어서 있는 자동차들……. 그리고 “비교해봐”라는 메시지는 그들의 내세우는 보험 상품들이 가장 저렴하고 합리적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하나의 비교 광고는 맥주광고 ‘MAX’가 아닐까 한다. 이 광고를 보면 맥스와 타사의 맥주의 색깔을 단순히 비교시켜 주는데 이를 통해 우리는 직접적으로 ‘MAX’의 제품이 우수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드셀을 강조한 광고로는 '소울' 자동차 광고일 것이다. 이 광고는 '소울'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 몇 가지를 주력해서 설명하고 있는 광고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광고는 단순하고 지겨울 수 있는 하드셀 광고의 특징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다른 버전으로 광고했다는 점은 단순한 하드셀을 벗어나서 한층 진화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그리고 친숙한 도레미 멜로디의 마지막에 'Sing a SOUL'이라는 광고카피를 더해서 우리들에게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을 통해 제품 홍보 효과를 극대화 시켜준다.

그리고 포지셔닝의 광고로는 펩시의 제로 칼로리 ‘넥스’ 광고를 들 수 있겠다. 경쟁사인 코카콜라에도 저칼로리인 라이트 제품과 제로 칼로리 콜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펩시는 이민호씨를 영입해서 크게 성공했던 ‘꽃보다 남자’ 드라마의 구준표 이미지를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제로 칼로리 맞아?”라는 카피를 통해 여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 마치 제로 칼로리 콜라를 새로 개발한것과 같은 효과와 제공해준다.

모든 제품이 공통적으로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타사가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장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들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양 선점해서 떠들어대는 광고. 즉, 먼저 개발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달해야하는 것이 포지셔닝의 핵심이다.  

1980년대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요동을 치고 전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 지금껏 힘을 축적해 두었던 거대기업이 점차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게 되고, 세계의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광고들이 유행한다.

또한 유명인들을 광고에 적극 투입시키는데, 이때 나이키가 마이클 조던을 모델로 한 제품들이 빅히트를 치게 되면서 스포츠스타나 할리우드 스타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들이 유행하고, 신문, 라디오, TV 광고의 영역을 넘어서 기업들이 각종 사회적인 활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기업의 면모를 과시하고, 프로구단의 후원활동을 증가시키면서 더욱 파급력을 발전시킨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컴퓨터가 일상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기기의 사용을 두려워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을 덧붙인 그리고 그런 두려움을 해학적인 요소로 완화시키는 광고들이 등장하는 동시에 지금껏 사용되었던 소재들을 재사용하면서 복고적인 분위기를 연출시킨 광고들도 속속 등장한다. 그리고 온라인 시장의 형성과 더불어 닷컴광고가 태동하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1990년대의 광고의 역사였다.

<광고의 역사>가 내게 준 것

광고의 역사라는 소재를 가지고 시간대별로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내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나는 시대의 광고들을 읽으면서 지금의 광고들과 대입시켜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고 또한 앞으로 등장하게 될 광고를 통해서 시대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었던 것 같다. 나같이 광고에 대해 백치인 사람들도 한눈에 광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또한 이 책은 시대를 선도했던 많은 광고 기법들과 유명인들을 알려주었는데, 특히 나에게 있어서는 ‘크리에이티브 혁명기’의 대표적인 인물. 데이비드 오길비와 그의 저서를 알게 되면서 그를 탐구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만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아쉬운 점도 있었는데 먼저, 책의 모든 광고의 역사가 미국 위주로 흘러가는 서술과정에서 빠져있는 우리의 광고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비록 자본주의가 정착하고 많은 시간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100년 역사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우리의 광고는 어떻게 흘러왔는지 너무나도 궁금하다.

그리고 두 번째 아쉬운 것은 이 책이 2009년에 출간 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2000년에 들어와서 온라인에 범람하는 광고의 성질과 역사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다는 점이었다. IT산업의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 그 IT분야가 이루어낸 새로운 광고영역을 빼놓고 책을 펴냈다니 “화룡점정이 안 되었다” 말은 바로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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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굴장으로 - 제139회 나오키상 수상작
이노우에 아레노 지음, 권남희 옮김 / 시공사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그에게 끌린다, 남편을 사랑하는데……. 더 이상 나아갈 수도 없도 되돌아 나올 수도 없는 마음의 갱도”

표지에 적혀있는 낚시 밑밥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 이 책은 요즘 드라마의 빠지지 않는 소재인 불륜을 주제로 잡았구나’ 라고 단순히 생각하면서 그 불륜이 이루어지는 현장을 덮치기 위해서 ‘대체 언제 나올까’ 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하나씩 넘겨나갈 수 밖에 없었다.

섬 마을에 새로 부임한 비밀이 많아 보이는 이사와를 바라보는 주인공 세이. 시크하고 무뚝뚝한 그의 모습이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도 않은 것도 사실인데, 왜 세이는 이사와를 쳐다보는 시선을 뗄 수 없을까? 왜 세이는 이사와에게 마음 놓고 사투리를 못쓰는 것일까?

서로에게 관심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 제3자인 내가 보기엔 왜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터져오르는 불꽃을 애써 불투명 유리막으로 막아 놓듯이 그렇게 조바심 나고 감질나게 표현해놓는걸까?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돌아서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벗겨도 벗겨도 그대로인 양파라고 할까? 두 사람의 불륜의 현장은 꼭 양파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나와 우리가 원하는 두 사람의 감정의 폭발점이 시각적인 효과로는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보통사람들이 잠시 심리적으로 한눈을 팔았다가 곧바로 되돌아오는 바로 그런 상황들처럼 세이와 이사와 간의 사이는 그렇게 끝까지 어색일변도의 분위기로 흐른다. 하지만 미처 우리들이 잡아내지 못한 바로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사랑의 불꽃은 번쩍이면서 튀어 오른다.

예를 들어, 처음 남편과 세이가 같이 걷던 그 때 몰래 지켜보던 이사와의 그림자 속에서 불꽃은 희미하게 나타나고. 동료교사 쓰키에와 이사와가 하룻밤을 같이 보냈고 이제 곧 결혼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묘하게 움직이는 세이의 마음속의 움직임들…….

세이에게 왜 능력 있고 자상한 남편을 놔두고 이사와 같은 사람에게 한눈을 파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질문 그 자체로서도 이해할 수 없고 바보 같은 질문일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첫눈에 호감가고 좋아하는 이성이 존재하고 이는 반드시 한명이 아닐 수 밖에 없다.

그 때문에 이런 감정들은 사랑을 갈구하는 싱글일 때 자신과 맞는 여러 매력을 가진 사람 중에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미 인생의 반려자를 맞이하고 난 이후에도 이런 여러 가지 모습의 이상형들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누구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 자체를 금지하라! 그것이 발전하면 바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예 호감의 싹을 잘라내라.” 아내나 남편들에게 이런 터무니없는 요구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대체 생활을 하면서 무심코 다가오는 이성들의 특이한 매력들을 어떻게 넘겨야할까?

에쿠니 가오리와 같은 시기에 문단에 데뷔한 이후 10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는 저자 이노우에 아레노는 이 작품이라면 땅 속에 누워있는 유명한 소설가였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다고 고백한다. 특수하지 않은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잔잔한 마음의 고동소리를 어쩌면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해낼수 있을까?

나도 이런 흔들리는 감정의 선을 미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코 겉으로 말하지 않더라고 그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하면서 독자들이 각자 스스로 느끼도록 만드는 바로 그 힘. 연륜이 깊지 않은 내가 전부 이해하기엔 놓친 부분이 너무나도  많아 보이는  소설이다.

잠시 손에서 떼놓은 후에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책장을 열었을 때 또 다른 맛을 느낄만한 소설을 또 한권 찾은 듯 같아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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