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재즈 일기 - 재즈 입문자를 위한 명반 컬렉션, 개정판
황덕호 지음 / 현암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이 책은 끝까지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해서 리뷰를 쓰지 못한 책이다. 

요즘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읽으려 했지만 결국 206페이지에 이르러 달리기를 잠시 멈춘다. 소세키의 고양이들로 알게 되어 이 책을 처음 신청했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껏 접해보지 못했던 음악 관련 도서가 그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니었다. 개정판 서문에서도 그는 "재즈를 조금은 작심하고 듣고자 하는 분"들에게 읽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남자의 재즈 일기>의 작가 황덕호와 소설의 형식을 빌린 <그 남자의 재즈 일기>의 주인공이 일기장 속에서 재즈를 대하는 자세는 집요했고, 진지했다. 실제 황덕호 작가는 재즈평론가로 활동하는 분인데, 주인공의 분투기를 읽으면서 어떤 분야의 평론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토록 지독할 정도로 깊이 읽어야 하나 싶었다. 황덕호 작가의 칼럼은 꾸준히 발행되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올라온 칼럼이 씨네 21에 기고한 <영화 <마일스>와 마일스 데이비스에 대하여 말하다>라는 칼럼이다.

 

2.

 

<그 남자의 재즈 일기>라는 이 책의 내용은 처음부터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의적이라고 할까? 작가가 재즈에 대해서 공부하면서 알게된 내용들을 조금씩 정리해 놓은 노트같은 인상이 강했다. 황덕호 작가는 자신이 재즈에 입문할 때 기록해둔 이러한 자료들을 어떻게든 활용하기 위해서 일기라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냐하면, 이 책은 글만 읽어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도 없고, 또한 읽는 속도를 붙여봤자 아무런 내용도 기억할 수 없는 종류의 책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의 기사 <아이돌 입은 '문예지', 비정상인가요> 도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악스트를 읽으면서도 그랬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라 기억해 둔 내용이다.

 

맨= 악스트의 위험성은 1차 창작물, 즉 작품이 많이 읽히지 않는 상황에서 2차 창작물이 비평이든 서평이든 흥미를 끌기 어렵다는 점이다. 관객 100명이 본 영화의 리뷰를 아무리 재미있게 써도 흥미를 못 끄는 것과 같다.

 

결국, 이 책은 일기의 형식을 취하지만 본질은 재즈라는 음악장르에 대해 평가를 시도하는 2차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초심자의 입장에서 책을 읽으면서 어떤 음악가의 재즈 작품을 소개하면서 다른 음악가의 재즈 작품과 비교를 시도하는 부분은 도무지 무언가를 느끼기기는 불가능한 작업이 아닌가 싶었다.

 

만약, 내가 정말로 재즈라는 장르에 대해서 진지하게 공부하려고 인내심이 있었다면 주인공이 소개하는 작품을 일일이 유튜브로 찾아 들으면서 공부했을텐데. 일 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는 재즈라는 음악에 대해 정도의 열정을 만들어내긴 어려웠다. 재즈에 대한 감상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143페이지에서부터 146페이지에 실린 이런 논쟁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144. 부르디외가 말했잖아요. 취미야말로 계급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고. 오늘날 지배계급과 서민들이 정치적 견해에서 일치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취향만큼은 결코 일치할 수 없단 말이죠.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결코 일치하려고 하지 않죠 왜냐하면 지배계급에게 취향, 취미란 곧 그들이 뭔가 우월하다는 하나의 '구별 짓는' 방식이니까요. 그런데 1990년대 중반 한국 유한계급의 취향이 뭐로 상징되었냐면 바로 재즈였어요.

 

3.

 

책을 읽으면서 느낀 2차 저작물이라는 한계라는 답답함은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온다. 내가 블로그를 통해서 생산하는 책에 대한 글. 이것도 역시, 여기서 지적하는 2차 창작물이라는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해당 책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내가 쓴 글을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곤 했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책을 읽어본 후에 블로그를 찾는 이웃보다 해당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블로그를 찾아오는 이웃이 훨씬 많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 그래서 공감 숫자만 올라가고 말이다.

 

125. 음악 골치 아프게 듣는 사람들 제일 이해가 안 가요. 그냥 들어서 좋으면 되는 거 아니에요?

 

이 문장은 주인공의 재즈음반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 중에 한 사람에게 마일스 데이비스의 <Kind of Blue>를 좋아하냐고, 좋아하면 대체 왜 그 좋아하냐고, 자기는 왜 좋은지 모르는데 혹시 당신은 왜 좋은지 아느냐고 물어봤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이것과 똑같이 어떤 책에 대해서 왜 좋은지 물어봤을 때 상대방이 "책도 골치 아프게 읽는 것보다 그냥 읽어서 재미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 되물으면 나 역시 주인공처럼말이 없어질 것 같아서 슬펐다.

 

4.

 

장르는 다르지만 황덕호 평론가와 나는 동류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어쩔 수 없이 이 책을 도중에 덮어야겠다. 그래도 프리재즈나 즉흥연주의 개념과 대위법같은 재즈의 특수한 기법들이 138. 음악 이론 말고 음악을 연주해봅시다. 우리들의 마음과 정서를 표현해봅시다. 라는 다짐과 함께 탄생되었다는 사실은 내게 그보다 더 훌륭한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없을 만큼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