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 퓨처클래식 2
바데이 라트너 지음, 황보석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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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문장


많은 사람이 소설의 첫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그 이유를 알고는 있는데. 나로서는 그것이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기존에 읽었던 작품 중 <롤리타>의 첫문장1에서도 실감하지 못했다. (롤리타를 처음 접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지금 살펴보니 그 경탄해 마지않는 목소리의 이유를 알 것 같긴 하다. 오.. 롤리타!) 그런데 바데이 라트너 <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는 첫 페이지를 펴자마자 무언가 각인되었다.


전쟁은 로켓탄 폭발음이 아니라 발소리, 복도에서 내 방을 지나 엄마 아빠 방으로 가는 아빠의 발소리와 함께 내 유년의 세계로 침입해 들어왔다.


아빠의 다급한 발소리를 통해서 전쟁이 자신의 세계로 침입해 들어왔다는 이 묘사. 단, 한 문장만 읽었음에도, 이 글을 쓴 화자가 얼마나 아빠를 사랑하고 또 의지하는지 잘 드러난다. 아빠와 딸 사이의 사랑뿐만 아니라, 어려움에 직면한 가족이 그들에게 침입한 전쟁에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바데이 라트너의 <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 (원제 : In the Shadow of the Banyan)>는 소설의 첫 문장만큼이나 세밀한 표현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2. 1975년 캄보디아. 킬링필드


킬링필드2라는 단어는 작년에 읽었던 <불평등의 킬링필드>라는 책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 단어가 탄생한 배경을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되었다.(본래의 뜻 로라면 불평들의 킬링필드는 이미 학살이 벌어진 것으로 읽어야 했다.) 


각주의 설명을 보면 사회주의 유토피아 건립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었던 전 세계의 수많은 혁명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읽었던 작품 가운데서는 <동물농장>이 이 상황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절하고, 션판이라는 작가가 쓴 <홍위병>이라는 작품이 라미의 고난과 가장 흡사하다. <홍위병>에서 주인공은 공산당으로부터 부모를 잃지만, 분노를 참고 거짓으로 당에 잠입한 뒤, 와신상담의 마음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신임을 얻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아마도 <홍위병>의 주인공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원인은 완전히 혼자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3. 한국어 제목. 원서 제목

바데이 라트너가 쓴 작품의 한국어 제목은 <나는 매일 천국의 조각을 줍는다>다. 이것은 번역가 선생님이 이 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신호라고 봤다. 즉, 라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에게 남아있는 순수한 사랑의 조각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하나씩 모아간다는 의미로 읽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한편, 원서의 제목은 <In the Shadow of the Banyan>이다. 이것은 "38. 우리 중에 반얀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꼭 그만큼만 남게 되겠지.". "우리 중에 반얀나무 그늘 아래에서 쉴 꼭 그만큼만 남게 되겠지. 전쟁은 계속 될 거고 안전한 곳이라고는 여기...반얀나무 그늘 아래뿐이니."라고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입에서 맴도는 단어인데.

예언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할머니의 말. '안전한 반얀나무 그늘 아래'는 463페이지의 라미의 생각을 통해 부정되고, 이것은 소설 전체의 메시지로 번져간다.  


라미는 깨닫는다. 463. 삼촌이 왕비 할머니와 다른 가족들 모두가 그 예언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에 속해 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말로 나를 위로해줄 작정이었다면, 나는 삼촌에게 그런 것은 없다고, 그런 예언도 그런 저주도 없다고 하고 싶었다. 또 우리가 그 그늘 밑에서 안전해질 신성한 나무도 없다고, 있는 것이라고는 이 매장지뿐이고 우리 모두 여기에서, 우리의 공동묘지에서 죽게 될 것이라고.

4. 아빠. 가족. 그리고 사랑


이 책은 정말 가슴을 아프게 한다. 겨우 7살 소녀. 게다가 소아마비를 앓아서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라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혁명과 전쟁. 그로인한 죽음과 학대라는 고통은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했다.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탐욕을 외치는 자들은 희생양을 바쳐야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스러져갔던 영혼들이 훨씬 더 많았다. 라미와 동행했던 삼촌과 숙모와 고모와 쌍둥이와 할머니는 킬링필드로 인하여 스러져간 무수한 영혼을 응축하여 탄생시킨 상징들처럼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족을 지키는 힘은 '사랑'. '가족 간의 사랑'이었다.  

혁명과 전쟁 그로 인한 죽음과 학대라는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 나머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날개를 꺾어서 딸에게 달아준 위한 아버지의 마음. 사랑이 없었던 가정에서 태어났기에 자기 자식은 사랑이 가득한 환경에서 키우리라 다짐하고 온 힘을 다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이 소설의 모든 것이다.

딸이 아빠를 위하는 마음. 아빠가 딸을 위하는 마음. 엄마가 남편과 딸을 위하는 마음. 이 애틋한 마음을 나는 마음대로 줄일 수도 옮겨적을 수도 없었다. 살짝 단락을 몇 개 가져와서 맛만 보여줄 따름이다.


126. "너 내가 왜 네 이름을 바타아라미라고 지었는지 아니? 그간 네가 내 사원이고 내 정원이고 내 신성한 대지이고 너에게서 내 모든 꿈을 볼 수 있기 때문이야. 어쩌면 그것이, 자기 자식에게서 때 묻지 않은 선량함을 보는 것이 아빠로서는, 모든 부모로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네가 할 수 있다면, 라미, 너 스스로 그걸 보았으면 해. 네 주위에서 네가 그 어떤 추악함과 파괴를 목격했건 나는 네가 언제나 여기저기서 아주 조금씩 얼핏얼핏 보는 아름다움이 신들의 거처를 반영한 것이라고 믿었으면 해. 그건 실제로 있는 거니까, 라미. 세상에는 그런 곳, 그런 신성한 곳이 있어. 그리고 너는 그곳을 마음속에 그리고 꿈을 꾸려고만 하면 돼. 그곳은 네 마음 속에,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으니까."


128. 언젠가 여행길의 꿈결 속에서

내 영혼을 간직한 아이와 만났다네.


183. "글이란, 너도 알다시피 우리로 하여금 본질적으로는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게 해주는 거란다. 불의와 상처로 가득 찬 세상을 아름답고 시적인 곳으로 바꾸게도 해주고. 설령 종이 위해서만이라도. 나는 네가 소아마비로 앓아누웠던 날 너를 위한 시를 썼어. 내가 네 요람 곁에 서 있는데 네가 그렇게도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아서 나는 네가 내 슬픔을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었지."


195. 갑자기 내가 잠을 깨기 전에 꾸었던 꿈이 기억났다. 꿈에서 아빠는 인간인 동시에 신이고 무력하면서도 용감한 신화적인 킨나라, 경쟁하는 실체들의 당기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번개에 찔려 땅으로 떨어진 킨나라와 매우 흡사한 존재였다. 그는 날개가 잘려나가 피를 흘리고 있었고 빗속에서 홀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선택한 그는 자신의 불멸을 밤의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희망의 빛을 바꾸었다. 그 이미지들이 계속 내 마음속에서 음악 선율들처럼 맴돌았고, 다음에 나는 내가 온전히 나 스스로 잠을 깨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240. 모든 현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의 집이며 정원이며 도시가 하루아침에 안개처럼 증발해버릴 수 있는 세상에서, 정원이며 도시가 하루 아침에 안개처럼 증발해버릴 수 있는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빠 하나뿐이라는 것. 아빠는 내 아빠고 나는 아빠 딸이며, 아빠가 살아왔던 모든 전생으로부터 길 안내를 하기 위해, 나를 사랑하고 보살피기 위해, 처음으로 내게 육신을 준 것이 이 우주에 어떤 질서가 있다는 충분한 증거라는 것.


371. "나는 내 아이들이 사랑으로 둘러싸이게 해주어야겠다고 결심했어. 나는 너와 네 동생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너희 둘 모두가 똑같이 많은 사랑을 받는 세상을 만들려고 애썼어. 사랑은 현실이고 그래서 그걸 꾸며내거나 애매모호한 말들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 돼. 이를테면 내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때로는 가장 아끼는 것도 포기해야 한다는 그런 말에서는. 아니, 그런 말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어. 그런 말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는 자식들인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사랑은 솔직하고 분명해야 돼. 우리가 보고 만지는 일상적인 것들에 배어 있어야 해. 적어도 그게 내가 생각했던 거고...

하지만 사랑은, 이제 나는 알고 있는데, 온갖 장소들에 숨어 있고 마음속 가장 슬픈 구석에도 깃들여 있어서 우리는 누군가가 가버리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정말로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


243. 날개. 나는 아빠가 그 날개를 잘라내어 내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내가 스스로 계속 날 수 있도록


373. "너를 차마 볼 수 없고 너와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때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너는 내가 네게서 나 자신을 보고 네게서 내 끔찍한 슬픔을 본다는 걸 알아야 해. 우리는 별로 다르지 않아. 너하고 나는."




  1.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몸의 불이여.. 나의 죄,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혀 끝이 입천장을 따라 세 걸음 걷다가 세 걸음째에 앞니를 가볍게 건드린다. 롤-리-타.
  2.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이던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 정권이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린 후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이다.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는 1975년 4월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함에 따라 약화된 캄보디아의 친미 론 놀 정권을 몰아냈다. 당시 폴 포트가 정권을 잡자 론 놀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환영하였다. 그러나 폴 포트는 새로운 농민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이주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 아래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 명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크메르루주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킬링 필드 [Killing Fields]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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