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창비세계문학 20
마샤두 지 아시스 지음, 박원복 옮김 / 창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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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이도 : ★★★

1. 이 책은 사후 회고록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주인공이 숨을 거두는 장면이 맨 처음에 등장한다. 주인공 브라스 꾸바스는 숨이 멈춘 육체에서 탈출하는 장면을 담담히 서술한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과거의 기억뿐이다. 꺼져가는 숯불 같은 모습처럼 조만간 흩어질 기억을 간직한 꾸바스는 자신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회고하기 시작한다.

2. 주인공이 이미 죽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까. 책을 통해서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들은 분명 브라스 꾸바스 자기 자신의 삶인데도 불구하고, 남 얘기하듯이 들려온다. 희한하게도 소소한 재미가 있다.

"이 책은 산만한 작품이오. 나 브라스 꾸바스가 로런스 스턴이나 그자비에 드메스트르의 자유로운 형식을 취했는지, 아니면 이 책에다가 염세주의의 투정을 집어넣었는지 나 자신도 모르오."

게다가 독자에게 미리 경고하는 그의 말처럼 주인공 자신도 무슨 성격인지 모를 회고록이다. 횡설수설이 기본뼈대라고 볼 수 있다.

3. 그의 고백은 횡설수설하긴 하나. 기본적으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흘러간다. 이 시간의 형태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닌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이 시간에 따라 그는 적절히 자신의 경험을 재생했다가 빨리감기한다. 그러다보니 독자에게 아무런 예고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쉰 살이 되어버리는 브라스 꾸바스를 만나야 하기도 한다.

4. 그를 머물게끔 한 기억의 공간에서 가장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는 사랑이 자리하고 있다. 독신으로 생을 마감한 브라스 꾸바스였지만, 그의 기억에서 꺼지지 않고 회고록으로 불타오르는 것은 사랑이었다. 그의 사랑은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철없는 소년의 사랑 같았다. 그래서 본능적이었다. 그래서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곰보로 인해서 빛을 잃었을 때 브라스 꾸바스는 비겁하게 도망치기도 했다. 나는 그것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그런 사랑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모했었던 것처럼, 버젓이 남편이 있는 비르질리아와 사랑을 나누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한다. 그 사랑의 끝은 개츠비의 안타까운 결과와 비슷하지만, 장례식장에서의 이름 모를 한 여인이 비르질리아라면 그의 사랑은 개츠비처럼 비극적이지는 않은 것도 같다.

5. 사후 회고록에서 사랑에 관한 부분을 빼면 권력에 대한. 재물에 대한 약간의 욕심. 그리고 가족에 대한 기억들이 브라스 꾸바스의 기억을 지배한다. 그 기억을 통해 브라스 꾸바스의 삶은 세속적으로는 큰 결실을 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혼란한 시대상황 속에 자기 한 몸을. 더 나아가 자신의 가문을 일으켜 세워보고자 했지만. 헛되이 흘러간다. 후마니티즘의 법칙에 숨어있는 인본주의의 그늘과 캉디드가 느낀 낙관주의를 동일시하며...

6. 이처럼 <브라스 꾸바스의 사후 회고록> 자체가 특출나지 않은 보통의 인간 브라스 꾸바스를 규정한다. 솔직히 말해서, 사후 회고록이라는 울타리가 쳐진. 그 장벽으로 인해 삶에 대한 열망을 거세해버린 그의 글은 나로 하여금. 인간사 어떤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관찰. 그리고 되새김질하려는 작가의 초연함을 엿볼 수 있게 하지만, 그래도 문학이라면 객관적인 초연함 보다는 더 뜨거운 것을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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