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 - 이인직 소설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29
이인직 지음, 권영민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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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인직 (1862 ~ 1916), 한일의정서 (1904), 혈의 누 (1906 ~ 1908), 일제강점기 (1910 ~ 1945) 

 

현실. 특히, 정치나 사상적인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다면, 누구나 그것을 바꾸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면 그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었던 혼란의 시기에 이인직은 선택했다. 일본의 근대화 모델을 따르기로 말이다. 

 

70. 구씨의 목적은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를 독일국 같이 연방도로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비스마르크) 같은 마음이요. -혈의 누-

 

이번 고블린의 토론은 <혈의 누> 였지만, 뒤에 실린 <귀의 성>, <은세계>를 읽지 않고 넘어가려니 찝찝했다. 그래서 남은 분량을 다 읽었다. 그 결론은 이렇다. 이인직의 소설은 "조선 말기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동시에, 일본과 미국의 지식을 받아들여 조선을 근대화하려는 이상향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계몽시키려한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혈의 누>가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대중에게 드러내려는 목적이 강한 소설이라면, <신의 성>과 <은세계>는 그러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당위성. 그러니까 자신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덧붙임을 위한 소설이었다. 

 

이인직. 순수하게 소설가로서 판단하자면 그는 타고난 이야기 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데 능한 이인직 소설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면, 소설 속 인물이 조선의 부조리를 몸소 겪으면서. 탐관오리 척결과 동시에 근본적인 체질 개선. 즉,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본과 미국에서 근대 지식을 배우지만. 조선으로 귀국한 주인공은 아무런 활약도 하지 않은 채. 소설이 미완성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봤을 때, 이인직은 지금껏 배운대로만 하면 분명 달라질 것이라고.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서 근대화의 거시적인 모델과 이상적인 모습까지는 그릴 수 있지만,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것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추구하는 계몽주의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가깝다.

 

2. 어떤 의도

 

이 소설을 다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인직의 의도가 궁금하다. 이인직의 판단이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과 권력 추구를 우선시해서 내린 결정이었는지 말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흑백으로 분리해 논할 것이 아니라, 그 혼탁함의 비율이 3 : 7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본다.  

 

그런 의도 (3 : 7의 마음)로서 그가 친일을 택했다면, 그것은 그 당시 자신이 받은 교육을 통해 얻은 지식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학습한 친일 제국주의 식민사관)을 짜내서 내린. 자신에게 있어서는 가장 현명한 선택1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마음을 백 보 양보해서 헤아린다면 말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그가 살아 목격하지 못했던 강점기의 세월 동안. 자신의 손으로 쓴 우리의 글자와 말까지 그들에 의해 말살되고, 두 차례의 세계 대전동안 일제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만행을 우리에게 저지르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선택이 임진왜란이 남긴 치욕의 기록물인 징비록의 반복을 낳을 것이라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을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적으로 제한되었던 이인직의 시야는 그릇된 선택을 낳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그가 택한 선택이 가져올 치욕스러운 역사를 알기 때문에 이인직의 선택 자체가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따라서 친일파들을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라고 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결과론을 보고 모든 잘못에 대한 모든 비난을 퍼붓는 것의 지나친 감도 있다.

 

3. 진짜 매국노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는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소송 소식에 분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이인직 같은 과거의 사람들 (정확히 말해서, 강점기 이전. 조선의 근대화에 대해서 잘못 판단한 사람들)은 미래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친일사전에 등재하는 것으로서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다. 

 

친일사전에 등재한다는 의미는 과거의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과 미래를 알건 모르건 간에. 일단 선택에 대한 잘못과 그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의미가 공존한다. 즉, 지금이 일제강점기가 아닌 이상. 그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낳은 치욕적인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있는 그들의 후손은 적반하장 국가에게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재를 모두 털어 만주의 독립군을 지원한 분도 계신데 말이다.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대체 무엇이 그리 떳떳해서 자신들의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선택은 자유지만, 책임은 따르는 것이 이 나라의 법칙인데 말이다.  


  1. 이 시기는 그의 또 다른 소설 귀의 성과 은세계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조선 내에는 재물을 위해 무고한 사람을 매질해서 죽이는 탐관오리가 득세하고, 조선 외부에서는 청나라, 러시아, 일본이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던 진퇴양난. 거기에서 승자가 살짝 일본으로 기우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거 개화파 김옥균이 그랬던 것처럼 조선은 일본을 모델로 삼아 근대화를 이룩하고 (이인직은 김옥균의 사상에는 동조하지만, 그들처럼 자주적인 근대화를 꾀할 시기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 왜냐하면, 이미 일본은 두 차례의 승리를 통해서 타국으로부터 한반도의 통제권을 거머쥐었기 때문) 와신상담하며 가장 강력한 연방으로 거듭날 때를 기다린다는 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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