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도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는 말이 있다. 소설 <표류도>를 남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불륜이야기가 될 것이고,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로맨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불륜보다는 로맨스로 소설을 읽어주길 바라는 것 같아 보였다. 왜냐하면 <표류도>는 미혼모이자 불륜녀 강현회의 일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나'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반드시 강현회라는 여인에 대한 많은 공감이 필요하고, 공감대가 무사히 형성되었다면 우리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었던 한 여성의 인생을 반추해나가기 때문에 불륜녀라는 이미지는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 대신 거듭 찾아오는 시련에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여인의 초상이 똬리를 틀고 앉는다. 그 아픔을 느꼈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을 이겨내려고 하는 의지를 지닌 주인공으로 뇌리에 남게 된다. 

 

만약, <표류도>의 불륜의 이미지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이 소설은 사람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해 암묵적으로 합의된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것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지닌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남의 남자를 탐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한 일이 아닐뿐더러. 그 조바심이 낳은 불안이 당신을 집어삼킬 것이라는 경고 말이다. 따라서 강현회의 삶은 인과응보의 성격이 짙어진다. 

 

2. 강현회 그녀는 참으로 아픔이 많은 여인이었다. 현회 뿐만 아니라. 광희의 인생 또한 참으로 비극적이었다. 과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아픔이 없었던 사람이 어디 있었겠느냐만 서도, 이렇게 한마디 말로 그녀들의 아픔을 이해하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를 아무렇지 않게 불륜녀로 낙인 찍는 것 역시 무례다. 그녀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표류도>를 통해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테고, 그녀의 사연 중에 많은 부분이 현재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신 어르신이 쌓으셨던 섬들이 표류했었던 모양이 바로 이러할 것이다,  

 

3. <표류도>는 일반적인 사실주의 소설과는 다르게 의식의 흐름을 통해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그녀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거의 대부분의 페이지가 할애된다. 이 부분이 참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통찰이 담긴 문장을 많이 수집할 수 있었다. 많은 부분이 부조리에 관한 내용이긴 했지만 말이다.  

 

4.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해설을 읽어보니 박경리 작가의 인물에 대해서 의지와 긍정의 정신을 지닌 초인론이라는 틀에 담아 평을 하는데, 그것을 읽으며 <카프카의 서재>에서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한 인간의 미래를 예측할 수조차 없는. 현재 걷는 길이 과연 올바른가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는 없는 상황.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조리인데, 인간은 그러한 부조리를 느끼면서도 그것에 반항해야 하는. 반항이라기보다는 부조리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는 작가의 집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 ---- <카프카의 서재> 

 

어떻게든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 즉, 우리의 현실이 비록 궁핍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최대한 충실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 <표류도>의 교훈이었다. <표류도>는 그녀의 의지의 불씨가 꺼질 뻔한 위기의 상황에서 희미한 빛을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그러므로 빛이 어떤 모양일지는 우리의 상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빛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말이다.  

 

5. 그 외에도 그녀의 세 남자. 감정의 남자 상현. 지성의 남자 찬수. 의지의 남자 환규의 인물을 지켜보는 일도 흥미로웠다. 셋 다 매력적인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을 현회로부터 얻지는 못했지만, 현회가 성적으로 매력있는 여인이 아니라 훌륭한 정신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임을 알아보고, 끝까지 그녀의 곁에 남아주었던 환규가 멋있게 느껴졌다. 소설 대부분에서는 김 선생이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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