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 - 이탈리아와 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
리처드 폴 로 지음, 유향란 옮김 / 오브제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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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처럼 중세시대 이탈리아의 밝고 느리고 뜨거운. 그리고 장엄한 건축물을 시선에 담음에 자연스레 기지개를 켜듯 피어나는 감각적 쾌감을 음미하며 쓴 일기형식의 에세이가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2. 셰익스피어를 연구하는 학자 간에 암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이 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지방을 벗어나지 않고, 기록물에 근거하여 '이탈리아 희곡'(이탈리아의 도시가 배경이 되는 희곡들)을 썼다."인데, 이 책은 그 학설을 반박하고 "셰익스피어는 분명히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 위해 쓴 학술 서적에 가까웠다. 다소 건조하고, 불친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워낙 전문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리처드 폴 로는 알려지지 않은 유적지를 발굴하여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밝혀내는 고고학자처럼 아주 집요하게 직접 희곡의 배경이 되었던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여, 과거의 기록물. 그리고 토착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탐사함으로써 희곡에서 묘사하는 배경과 실제 배경이 일치함을 밝혀낸다. 

 

3. 열정적인 마음가짐으로 밝혀낸 근거를 토대로 기존의 판본에서 잘못 해석된 부분에 대해서도 새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하고, 일반인들이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으며 신경을 쓰지 않고 넘어갔던, 지명과 건축물이나 배경과 관계된 고유명사들(예를 들어 성 베드로 교회, 빌라프란자, 볼카노 섬)에 숨어있는 상징적인 뜻을 밝혀주어 희곡을 더욱 풍성하게 해석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 상징성을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속. 1967년식 폭스바겐이 생각났다. 작가는 이 차종을 통해서 비트 세대의 특징을 형상화했던 것인데, <자동차와 민주주의>라는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주 큰 부분을 간과한 채,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었을 것이다. 이런 사례처럼, 셰익스피어가 제공하는 지명과 건축물을 언급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잡아낸다면 그 시대의 인물 간의 갈등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4.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에 담긴 탐사물은 추리소설가 윤해환의 저작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모른다고 본문을 읽는 데 딱히 큰 문제는 없지만 안 읽으면 섭섭할 매우 편협하고 사적인 주석들>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 차이점이라면 리처드 폴 로가 원작자를 대신해서 주석을 남겼다는 정도랄까? 

 

5. 어쨌든 간에 이 책을 만날 사람을 위해 이 책을 가장 완벽하게. 즉, 저자가 이 책을 낸 의도에 충실하게 읽기 위해서 도움이 될 말을 덧붙이자면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희곡'과의 접근성이 떨어져 있는 상태가 아니라 최대한 해당 희곡과 이 책을 동시에 읽어야 장인이 요리한 디너 코스를 만끽하듯이 셰익스피어 희곡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6. 책을 읽는 지금의 시점에서 이 책과 나의 화학 반응이 일어나지 않음에 안타까움만 남겨둘 뿐이다. 그렇지만 이 저작을 위해 쏟은 작가의 시간과 노력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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