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6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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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 <데미안> 123p.- 

 

1.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며, 헤세의 문학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알을 깨라는 투쟁의 의미가 담긴 메시지다. 일일이 열거하긴 어렵지만, 다른 작품에서도 헤세는 어떤 문제점과 더불어 그에 대한 해법을 함께 그리곤 했다. 그런데 <수레바퀴 아래서>에는 스스로 알을 깨기는커녕, 때가 되어도 부화하지 못했다. 제목처럼 수레바퀴 아래서 짓눌려버린 한 사람의 인간이 존재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뒤에 출간될 헤세의 다른 작품과는 달리 정답이 없는 작품이다. 다만, 답이 없는 대신.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와 유사한 삶에 동질감을 느낄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경고를 건네주는 것에 만족한다. 어쩌면 이것을 깨닫는 것 자체가 알을 깨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그 경고는 한스의 삶 자체가 아픈 삶이고, 방황의 삶이라는 점에서 요즘 청년이 겪고 있는 삶과 유사하다. 따라서 여전히 유효하다. 앞으로도 분명히 유효할 것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집중하지 않고, 그런 아픔과 방황을 회피한 채. 한스처럼 그저 시간이 흐르면 해결되겠지 생각하거나. 또는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서 세상의 관념이 부여한 직업을 수락했을 때, 어떠한 결과를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나쁘지 않은 것 같은 삶'에 육체와 정신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2. 물론, 이 소설에서도 알을 깨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깨달음을 지닌 (지금 이 상황. 이 시스템이 분명히 잘못되었다는 생각 ) 헤르만 하일너 같은 특수하면서도 선구적인 인물이 등장하긴 한다. 

 

그러나 <수레바퀴 아래서>의 시작 부분에서 설명되는 세계관 (개방적인 것 같으나 겉치레에 불과하고, 사회의 규범에 비굴할 정도로 맹목적인 복종을 드러내는 아버지로부터 파생되는 권위주의적 세계)은 하일너를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그가 속한 세계관의 일방향적인 고루함에 질식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수레바퀴 아래서>를 통하여 개인의 잘못보다 사회적인 시스템이 가진 부조리에 먼저 호소하는 듯했다.  

 

3. 차라리 한스가 헤르만 하일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낫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삶이 안타까웠다. 그의 죽음을 보면서 절대로 꿈을 이룰 수가 없는 환경에 속한 사람들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꿈에 관한 감각을 던져준다는 행위가 당사자에게 어쩌면 정의할 수 없는 고통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마치, <정글의 법칙>을 통해 연예인들이 정글의 삶을 체험하는 반대편의 시선. 촬영하러 나온 이국의 연예인들의 화려함을 본 원주민들이 느낄 이질감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다. 

 

4. 하지만 이토록 가슴 아픈 실패담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훗날 헤세의 문학은 우리로 하여금 투쟁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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