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기원 -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브라이언 보이드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1. 이 책의 부제는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다. 

 

왜냐고? 좀 무책임한 결론일 수도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은 그렇게 진화해왔기 때문에 스토리에 탐닉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영하 작가 또한 이에 동의하는 발언을 했다. "모든 사람 각자는 훌륭한 예술가다. 당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우수한 스토리텔러이라는 하나의 명백한 증거다."라고 말이다. (TED 김영하: 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2. 진화해 왔다는 것의 뜻은 선택의 결과라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전적인 특질은 수십만 년의 시간 이래로 선택받아 온 결과물이며, 그러므로 인간이 스토리텔링을 탐닉하는 특질 또한 진화적인 효용성을 가진 산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자는 책을 통하여 주장하고 있다. 인간 활동의 부산물 따위가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가 어쩌면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공작새의 깃털처럼 성선택 같은 매력을 이성에게 제공할 수도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가능성 안에 그것이 속할 따름이다. <이야기의 기원>이 말하는 효과는 유혹보다도 훨씬 더 큰 효과였다.  

 

3. 예술(픽션)은 몇 가지 효과를 인류에게 제공하는데, 우선, 이야기는 인간의 지능을 발달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 인류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인간 활동에 대한 어떤 유형을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유형의 반복은 마치 눈사람을 만들 때, 작은 눈을 굴려서 큰 덩어리를 만드는 것처럼 어떤 유형 하나. 하나의 모음으로 인간의 정보처리 속도를 향상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우리가 정보를 받아들여서 생각할 때 무의식의 도움을 받아 무언가를 선명하게 떠올릴 때. 그 사이에 왕복하는 무수한 과정의 생략을 말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그리고 작은 곳에서 큰 것으로의 유형 말고도 이야기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관점에서 만들어지는 유형은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을 통한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며 그러한 결과를 통하여 입체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결국, 이러한 지능의 발달은 효율성을 높여주는 결과로 이어진다. 

 

4. 그리고 예술(픽션)은 인간 사회의 논제로섬(한정된 자원을 뺐고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발전할 수 있는 사회)을 유지하는 장치로서도 활용된다고 한다.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게임이론에서 상대를 배신하게 하는 상황은 게임이 벌어지는 그 판이 마지막 판이라는 조건에서 특히 강하게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야기는 마지막 판에서의 사회악을 낳는 행위. 즉, 배신자를 걸러내는 기능을 지속적으로 담당해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변신이야기나 유명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보면 대체로 권선징악의 결말을 전달하는데, 이것은 악한 행동을 하면 그것은 완전 범죄로 묻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경고를 던져서 사람들의 잠재의식에 배신에 대한 처벌의 두려움을 심어두는 것이다.

 

이처럼 이야기는 사회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역할도 크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배신에 대한 경고라는 차원을 넘어서 협력을 통해서 더 우수한 성과를 얻을 수 있고(이것의 증명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무한 반복으로 얻어질 수 있다.), 오랜 시간이 누적되면 개개인의 협력의 성과가 쌓여서 더욱 월등한 존재로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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