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디오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이 말해준 것들
리사 나폴리 지음, 김유미 옮김 / 수이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1. 부탄이라고 하면 국민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국가로만 막연히 알고 있었다. 그 막연함이라는 단어를 심층적으로 파헤쳐보지 않고,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면 도대체 얼마나 행복한 거지?'라며 막연히 동경했고, 우리나라보다 훨씬 살기 좋은 곳이겠거니.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부탄의 행복은 완벽함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었던 것 같다. 그런 막연함이 오히려 유토피아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가 가진 소망을 투사하여 행복해 보이는 모든 것을 부탄이라는 나라의 행복 안에 채워넣은 것은 아닌가하고 말이다.

 

처음에는 부탄의 유토피아를 상상하면서 책을 펼쳐 들었다. 부탄의 행복이 과연 무엇일까? 그 비결을 알고 싶어서 말이다. 

 

아마 지은이 리사 나폴리도 나와 마찬가지 심정이었을 것이다. 과거의 불행한 사건 때문에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 뭉텅 잘려나간 채 맞이할 독신 생활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게다가 현실의 압박에 찌들어 하루하루을 보내는 데 급급했던 그녀에게 손을 내민 부탄 여행의 기회는 행복한 나라로의 여행을 꿈꾸는 자체만으로도 행복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녀가 방문한 부탄은 속세에 찌들지 않은 순수함을 오래도록 보존하고 있는 국가였다. 하지만 국가의 폐쇄성에 기인한 낙후함 역시 공존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했다. 불행을 낳는 근본적인 원인인. 욕망이라는 놈을 펼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욕망이 자라나지 않은 상태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마주쳤다. 

 

2. 그런데 그랬던 부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더욱 행복해지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이 차츰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바라보면서 불현듯 <행복한 라디오>를 읽는 동안 작년에 읽은 <카일라스 가는 길> 생각이 났다. 

 

라사는 어느새 쾌락의 도시가 됐다. 매춘 전문 홍등가도 있고 매춘이 가능한 발마사지 업소도 수십 군데 이른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원칙적으로 매춘은 불법이지만 자기 헌신을 통해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티베트의 영혼’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국정부는 쾌락의 병균을 은밀히 퍼뜨리고 있다. 수많은 한족들이 물밀듯 티베트로 몰려들고 있고, 하루가 다르게 현대적 빌딩과 마켓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달라이 라마의 망명으로 속이 텅 빈 포탈라궁은 암표상들이 둘러싼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됐다. 

-카일라스 가는 길 27p-

 

물론, 부탄과 티베트는 다른 경우다. 티베트 자치구는 중국 정부에 의하여 강제로 개발 당하는 입장이고, 부탄같은 경우는 왕실과 정치인들이 어떻게 국민의 행복에 대하여 고민을 거듭한 결과로 문호개방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 경우다. 특히, 부탄 왕은 왕족의 권리를 스스로 내려놓고, 입헌군주제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국회의원과 사회지도자를 선출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그렇게 부탄에 민주주의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행복으로 가는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이러한 민주주의와 함께 문호개방도 시작되었다. 개방 정책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물결이 조금씩 부탄의 내부로 흘러들게 하였다. 그러한 물결 가운데서도 TV, 드라마로 상징되는 미디어가 가장 빠르게 부탄에 침투했고, TV와 라디오의 영향으로 자기 나라에서 사는 삶보다는 미국 드라마 속의 화려한 삶을 동경하고, 그러한 성공을 꿈꾸며 부탄을 탈출하려는 젊은이의 숫자가 증가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3. 글쎄. 부탄과 전혀 관계가 없는 제삼자의 눈으로 봤을 때, 어떻게 발전하는 것이 부탄의 행복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지금껏 살아온 자본주의에 숨겨진 단점이 어떤 것인지 충고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한 라디오>를 쓴 리사 나폴리는 급격히 변화하는 부탄의 모습에 마주하며 최대한 올바른 쪽으로 사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충고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외부인의 도움은 한계가 있다. 국가와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자기 생각이 확실해야 하는 법이다. 부탄의 행복한 사회는 성장통을 겪고 있지만, 부탄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을 엿보면 바른 방향으로 자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네팔계 부탄인들의 처우개선만 좀 해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말이다.  

 

290. 평화와 안전과 행복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갖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지금까지 우리 국가와 국민이 지켜 온 근본적인 가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단순하고도 영원한 목표를 추구한다면, 그리고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 미래의 자손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303. 우리의 과제는 학교가 인간관계, 환경, 가족 대신 성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경제적 동물을 배출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소유한 물질은 인격과 별개라는 것을 자녀에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 부탄 왕국은, 이제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거대한 힘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이 강력한 힘은 우리에게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는 뿌리 깊은 우리의 문화유산뿐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국토까지 위협할 수 있는 무서운 세력도 있습니다. 

 

4. <행복한 라디오>는 일기 형식으로 서술 된 에세이지만, 작가 내면의 생각만 담은 책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과 대화까지 고스란히 살려서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책이기도 했다. 

 

특히, 등장인물의 상징성에 큰 흥미를 느꼈는데,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나왕이라는 인물에게서 부탄의 젊은 현재를 상징하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고, 화자이자 주인공. 또한, 실제 저자인 리사 나폴리에게서 온순한 민주 자본주의의 상징을, 매킨지앤컴퍼니에게서는 악덕 자본주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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