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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 몸과 마음, 언어와 신체, 건강과 치유에 대한 한 회의주의자의 추적기
팀 파크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백년후 / 2012년 6월
평점 :
이 책에는 회의주의자의 서술이 담겨있다.
자신이 보거나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만을 믿는 팀 파크스가 전립선 부근에 발생한 병의 원인을 의학적으로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 직면하여. 무엇이 이 병의 원인인지 혼자서 끙끙 앓다가, 우연히 <전립샘염과 골반통증의 새로운 치료법>(골반의 두통)이라는 생소한 책을 읽으면서 수십 년간 쌓아놓은 믿음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의 과정들을 서술한 책이다.
68. 병은 사랑처럼, 또는 증오처럼 모든 걸 병으로 끌어당기는구나. 모든 것을 자신으로 바꾸어 버리는구나. 무슨 생각을 하든 결국 다시 그것으로 귀결되었다. 내 병으로.
확실히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상황이 부정적으로 바뀌게 되면 그 원인을 병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기능이 병이라는 것에는 있는 듯하다.
102. 작가들은 지금까지 백여 년 동안 언어,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하는 이야기에 암호로 기록된 가치를 수상쩍게 여겨 왔다. 그들은 이야기를 바꾸어 관습을 폭로했고, 단어들을 놀랍게 결합하여 그들 언어의 생각 없는 순응성에 도전했다. 그것이 현대소설이다.
뭐랄까. 팀 파크스의 내면에 있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은 문장으로 예고도 없이 툭하고 튀어나오기도 한다. 페이지의 대부분에서 병과 병의 고통과 병을 상대하는 내면. 그 내면 속에서 저자가 배워왔던 여러 가지 인문학적 소양들이 발현된다. 작가 스스로도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을 말로 표현하고 있음을 인정하듯이, 그걸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던 작가의 글이 쉽게 와닿지 않았던 것 같다.
팀 파크스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굳건하게 믿고 있었던 글이라는 가치와 묘사라는 방법에 골몰하여 몸을 돌보는데 소홀했던 나머지 어떠한 신체적인 변형이 찾아왔고, 초기 진단 후 20년 넘게 그 사실을 부정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랬던 기억조차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을 맛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조금 더 일찍 고통을 마주하고 그것과 싸워 이겨내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반복했어야 했다. 그래도 늦게나마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늦게 깨달은 덕분에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가 탄생했다. 팀 파크스의 경험을 통해 고통을 품은 채로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단 고통부터 정리한 뒤에 가만히 앉아 있든, 뭐에 집중하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궁금증이 풀렸다. 가만히 앉아 있기 위해서는 나도 모르게 내 주위를 덮고 있는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들 정리해야만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