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1.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작위적인 소설이었다순문학에서 장르 문학으로의 전이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일인칭 화자 찰리의 현실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애써 현실을 자위하고 있는 쾌락주의자의 담대한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신선한 묘사는 올해 읽은 문학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다.

 

가령. 팀의 인맥은 내가 맥주통에서 생맥주를 따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사라져버렸다.”라던가 다른 사람들은 가슴에 심장이 달려 있는데 이 여자는 주판이 달려 있는 모양이다.”라던가이렇게 계속 뜸을 들이다가는 크리스마스 때까지 마주 보고 앉아서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주고받을 것 같았다.” 같은 문장들은 소주 한잔 걸치고 난 뒤에 낼 법한 소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문장. 그뿐만 아니라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제공되는 여러 음악을 실제로 들어보면서 주인공의 성격을 유추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이 음악의 목록은 초반 몰입을 도와줬던 음악들이다. 더 많은 음악이 있지만 딱 여기까지 찾아서 들었다.

 

1.Clubbed To Death : Escala

2.The Way I Am : Eminem

3.Feel : Robbie Williams

4.There You`ll Be : Faith Hill

5.O Mio Babbinio Caro : Jackie Evancho

6.Through The Barricades : Spandau Ballet

7.Canned Heat : Jamiroquai

8.Again : Janet Jackson

9.Halt Mich : Herbert Gronemeyer

10.Don`t Let Me Get Me : Pink

11.Take On Me (Album Version) : A-Ha

12.How Can We Hang On To A Dream : Tim Hardin

 

2. 이 소설은 순문학과 장르 문학의 전이가 이뤄지면서 쾌락주의자 찰리의 인생도 사회에 순응하는 샤를로타로 전이가 시작되는데이 전이된 후의 인생이 만들어내는 샤를로타의 문장이 찰리의 문장에 비해서 질적으로 떨어지는 점은 소설에서의 아쉬운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초반 몰입도가 너무나도 끝내줘서 금세 다 읽어버릴 것 같았지만, 이 부분 때문에 멈칫했다전이로 빚어진 형언할 수 없는 괴리감이 나에게까지 전염되었던 것 같았다만약작가가 이런 것까지 계획하고 썼다면 정말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천재성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3. 바로 전에 읽은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와 어떻게든 관련지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내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았다이 소설은 과연 행복은 무엇일까?” 라는 물음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석이 담겨있었다비프케 로렌츠의 생각은 W. 베란 울프의 사회적 유용성과는 달랐다아무래도 이 문장이 가장 핵심적인 것 같다.

 

67. “내 생각에 행복은 늘 오늘에 달린 거 같아어제나 내일이 아니라 오직 오늘이 가장 중요해.”

 

누구의 오늘도 아닌 나의 오늘이 가장 중요하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콤플렉스의 극복과 보상이 아니라 콤플렉스 끌어안기의 시도가 돋보였다.

 

4. 124. "누구나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이 꽤 있죠. 언젠가 실패했던 일들 말이죠. 민망하고 창피했던 모든 일이오.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전혀 일어나지 않은 일로 만들 수 있다면? 만약 그런 모든 일을 우리의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버릴 수 있다면? 마치 전혀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장르 문학으로의 전이는 세계의 '양자화'를 통해 이루어진다우리가 느낄 수 없는 초끈이론 상의11차원의 어딘가에서 일어날 법한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 어느 한 부분의 이야기를 다룬다비프케 로렌츠가 의도한 결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삭제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인간 같은 삶을 살아가는 여인으로 변신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와 같았다.

 

자신이 이끄는 삶을 포기한 대가는 자신이 봤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이었다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악과 패션. 이를 깨달은 찰리는 오늘을 되찾기 위한 전이를 시작한다찌질한 인생을 보여주는 헤픈 여자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찰리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헤픈 여자의 문구는 클라미디아로 살짝 수정되었다. 찰리의 인생에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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