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평전
최하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민족의 대전환기에서 사각지대에 숨어 중립을 견지한다는 것은 좌나 우로 기울어져 상처받고 절망하는 사람보다 올바르다고 하기 어렵다. 그 상처와 절망은, 그들의 시대를, 그들이 온몸으로 사는 데서 받는 것이며, 상처받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시대를, 그들이 거죽으로 산다는 것을 뜻한다. -116p-

 

김수영 전집의 글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자유와 참여의 정신을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왜?”라는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왜 그토록 자유를 갈망했고, 시가 현실참여의 성격을 나타내야 한다고 했을까?” 그런데 절판이 되어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남겨준 것 같다.

 

김수영 시인은 일제강점기를 경험했고, 대한민국의 해방을 경험했고, 신탁통치를 경험했고, 6·25전쟁을 경험한 근대사의 증인이다. 이 세월 동안 그는 산문집처럼 격렬한 목소리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다만 연극에 심취해있던 눈이 커다랗고 서양인처럼 잘생긴 청년에 불과했다. 강점기와 해방기 때가 끝난 직후, 그의 나이 고작 25세였으니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해방 후 좌익과 우익의 대립 사이에서도 그는 제3의 길(모더니즘의 흐름을 따라감)을 모색했다. 그가 우물쭈물 갈피를 못 잡던 바로 그때 6·25전쟁이 터졌고, 강제로 북쪽으로 끌려간 의용군 생활과 남쪽으로 탈출하면서 거꾸로 미군에게 반공포로로 잡혀 거제수용소라는 무시무시한 곳에 수감된다.

 

평전 내에서 짤막하게 소개되는 수용소 생활의 모습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에서 그려진 하루따위는 정말로 평범한 일상이라고 보일 정도로 충격적인 모습이었고 반드시 그와 관련된 서적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제수용소 내에서의 찬공포로와 반공포로와의 갈등과 포로들 간의 다툼 속에서 낳은 수용소 속의 다른 6·25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사상적으로 제대로 갈피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얻게 된 결과물이라고 자책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는 아마도 거죽으로 산다고 말했을 것이다.

 

김은실은 부르는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김수영의 큰 눈을 보았다. 그리고 포로 복장을 보았다. 그리고 복장에 붙어 있는 ‘prisoner of war(P.W.)’라는 영자를 보았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이 빨갱이 새끼!”하고 소리쳤다. 김수영은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뒷걸음쳐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177p-

 

전쟁 때의 여러 트라우마로 그는 아마도 미군과 소련군이 38선으로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만 존재하도록 갈라버린 대한민국 정부의 상황을 지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승만 정부의 독재정치로 말미암아 벌어진 4·19혁명을 그 혁명이 의거의 성격(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끝없는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현상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에 그친 의거)에 더 가까움에도 그것을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낸 값진 혁명이라고 소개한다.

 

왜냐하면, 시인이 보기에 그날은 남과 북도, 미국도 소련도 없고, 오로지 ‘독재타도’의 정신만이 대한민국의 서울의 하늘과 땅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웃지 않는 삭막한 얼굴을 가진 서울이 그때만큼은 활화산처럼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저항정신은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저항정신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의 눈에 보이는 모순이 가득한 대한민국의 상황에 더욱 많은 양의 자유가 필요해 보였을 것이다. 그 자유라는 치료제를 위해서 그는 참여시를 쓰자고 독려했던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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