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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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많으니, 책을 읽으실 분은 피해주세요.
 
연말이 다되어서 한가지 결심을 했는데,
가능하면 직접 읽고, 보고, 하고나서 말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아는 척하고 살아온 자신에 대한 자그마한 뉘우침에서다.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을 읽은 이유도 똑같다.
어려서부터 말은 많이 들어왔는데 실은 한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민음사 판 '동물농장'은 경희대 영문과 교수인 도정일 선생께서 번역을 해서 믿음을 가지고 한자, 한자 읽어나갔다.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에세이'자유와 행복', '나는 왜 쓰는가', 그리고 도정일 선생의 '작품해설'을 거쳐 '조지 오웰 연보'로 끝난다.
 
1) 동물농장
120페이지의 짧은 분량이지만, 주제의 날카로움은 발간된지 60년이 지난 지금도 예리하다.
동물농장은 1943년 11월~1944년 2월까지 약 3개월의 시간에 씌여진 작품이다. 독일이 소련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한후 연합군이 급격히 유리해지던 시기이며, 카이로회담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던 시기다.
조지 오웰은 10월혁명 후에 스탈린의 독재가 심해지던 소련을 각 동물들에 대입하여 비판하고 있으나, 사실 이 부분은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시대적 상황에 관계없이 소설의 주제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은 크게 두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은 동물들이 자기들의 운명을 깨닫고 인간에게서 농장을 빼앗는 시기.
합심해서 인간을 몰아낸 <외양간 전투>의 승리후에 그들은 일곱계명을 세운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 머리 나쁜 동물들을 위한 가장 큰 전제.
<일곱계명>
1. 무엇이든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두번째 부분은 농장을 빼앗은 동물들 사이에 계급이 생겨나는 시기다.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스탈린)은 농장을 빼앗은 후 '스노볼'(나폴레옹에게 축출당한 혁명가 돼지(트로츠키))'을 축출하고, 다른 동물들이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이용해 다같이 세웠던 일곱계명들을 하나둘 바꿔가면서 그렇게 적대하던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두 발로 걷는 인간들과 거래를 하고, 인간의 옷을 입고 다니며, 인간처럼 침대에서 잠을 자며, 인간같이 술을 마시고, 다른 동물들을 과 '스노볼'과 내통했다고 모략하여 공개적으로 죽인다.
 
<나폴레옹에 의해 바뀐 계명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 - 가장 큰 전제가 바뀐다. 인간이 더 좋다는 것이다.
4. 어떤 동물도 '시트를 깔고'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너무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
 
마지막에는 마침내 두발로 걷게 된다.
 
<돼지 하나가 두발로 서서 걷고 있었다.
스퀼러였다. 그는 상당한 덩치의 몸뚱이를 두 발로 지탱한다는 것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듯 약간 어색하게, 그러나 완벽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뒷발로 서서 마당을 걷고 있었다. ...중략... 나폴레옹은 윗발굽에 회초리를 들고 있었다.   p.116. >
 
윗 글은 읽으면서 소름이 끼쳤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인간이 되어가는 내 모습이 겹쳐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물농장'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나폴레옹 무리와 인간 무리가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며 포카를 하는 모습을 다른 동물들이 지켜보면서 누가 동물이고, 누가 인간인지 혼란에 빠지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후우~
내 자신을 돌아보면 어떻게 변해가는지는 명확하다. 무섭다.
 
 
2) 자유와 행복
에프게니 자이에친의 SF소설 '우리들'을 읽으면서 조지 오웰의 생각들을 써놓았다.
이 책의 인상적인 부분.
 
"당신이 지금 말하고 있는게 혁명이라는 걸 아시오?"
"물론 혁명이죠. 그래서 안 될 이유가 있나요?"
"혁명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오. <우리의> 혁명은 마지막 혁명이었소. 그러니까 또 혁명이 있을 순 없어요.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오"
"세상에, 당신은 수학자 아니던가요? 마지막 숫자가 뭐죠? 말해 보세요"
"마지막 숫자라니, 무슨 소리요?"
"그럼 제일 큰 숫자라고 해요. 제일 큰 숫자는 뭐예요?"
"말도 안 돼. 숫자는 무한이오. 마지막 숫자란 건 있을 수 없소"
"그럼 마지막 혁명이란 말은 왜 하세요?"
 
이 글의 제목인 '자유와 행복', 그리고 언급되는 자이에친의 소설 '우리들'에 등장하는
'자유와 행복은 양립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조지 오웰의 화두인 것 같다.
 
'자유'롭다고 해서 항상 '행복'하지는 않다. '자유'롭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하지 않다.
'자유'를 '타율'로 통제하면 '행복'하지 않다. '자유'를 '자율'로 통제하면 항상 '행복'하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자율'적인 삶이 해답이다. 내 자신의 심판자는 내가 되어야 한다.
 
 
3) 나는 왜 쓰는가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의식, 곧 불의(不義)에 대한 의식이다.'
 
가치가 분명한 글을 쓸 때야 생명력 있는 책들을 쓸 수 있었다는 조지 오웰의 자기 고백.
 
 
 
책을 접으며...
총 160페이지의 책, 어느 한구석 빈 곳이 없다. 내가 읽고 난 후에야 고전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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