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 / 아이필드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커트 보네커트는 21살의 나이에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다.
포로로 잡히고 정말 운좋게도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오고
정말 우연하게도 부자가 된다.

돌아와서 금세 써내려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드레스덴 폭격 얘기는 20년이 지나서야 완성된다.

충격이 무르익는다는 표현이 적당하진 않지만,
한 인간이 전쟁이라는 체험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전쟁기간의 몇 배가 걸렸던 것이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보자.
포로로 잡힌 빌리 필그림이 시럽공장에서 시럽을 만들다
몇 스푼 훔쳐먹는데 온몸의 "세포들이 게걸스런 감사와 갈채"를 보낸다.
동료 죄수는 시럽을 먹고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군 시절 초코파이 하나에 감동해 본 사람은 다 이 기분을 알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도
굶주림은 저주처럼 끈질기게 찾아오고
또한 음식의 포만감도 축복처럼 찾아온다.

전쟁의 참혹한 모습에 대한 외상은
내가 살아난 이후에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쟁이 끝난 후에야 찾아온다.

'인간'이라는 이름의 저주다.

얼마나 미안했던지 주인공은 잠도 못이루고 밤늦게까지 베겟잎을 적신다.
그도 왜 그런지는 알고 있지만 그 죄책감을 이겨낼 방법은 없다.
지구를 떠나 외계인의 동물이 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인간의 모습에 대한 책임감은 덜할 것 아닌가.

그렇게 견뎌낸다.
사람들하고는 할 말도 없다. 말해봤자 전할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새하고 말한다.

"짹짹!" 

작가는 친구의 부인에게 다짐한다.
절대로 전쟁에 대한 환상을 자아내는 글은 적지 않겠다고.
그리고 자식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내 아들들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대량학살에 가담해서는 안되고
적이 대량학살당했다는 소식에 만족감이나 쾌감을 느껴서도 안된다고 늘 가르친다.
또한 대량 학살 무기를 만드는 회사의 일은 하지 말라고, 그리고 그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경멸감을 표하라고 늘 가르친다."

수잔 손택도 얘기했었다.
'우리'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자극'의 십자포화 속에서
내 '상상력'은 고갈되어만 간다.
꿋꿋히 견뎌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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