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평점 :
이 책을 알게 된 건 유시민씨의 미디어법 강의 동영상을 통해서였다.
그 때는 지금은 고인이 되신 노무현 대통령께서
조중동, 심지어 한겨레, 경향을 포함한 거의 모든 언론에게
맹폭을 당하고 있던 시기였다.
http://usimin.tv/knu/bbs/tb.php/knu_cine/16
도서관에 갔다 우연히도 눈에 띄어
분량이 많지 않길래 재빨리 읽어내려갔다.
1974년 출판된 이야기이지만,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이 적용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신문의 왜곡보도로 인해 명예가 훼손된 한 사람이
기사를 썼던 기자를 총으로 쏴 죽인다.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가정부가
한 파티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후에 그녀는 탈옥수이자 강도인 그 남자를 빠져나가게 만든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다.
독일의 '짜이퉁'라는 신문은 아직 조사가 진행중임에도
그녀의 혐의가 확정된 것처럼 마구 다룬다.
그녀를 도와줬던 주위 사람들까지도 기사로 난도질 당한다.
'빨갱이'라느니 '매춘부'라느니
국민의 알권리로 포장하여 써제끼는 기사들 앞에
개인의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만나본 기자는 죄책감 조차 없이 오히려 치근덕댄다.
그래서 그녀는 방아쇠를 당기고 경찰에 자수한다.
총을 쏜 후 체포될 때까지 그녀는 전혀 후회되지 않더라고 말했다.
(여기서 이방인이 떠올랐다. 내용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여기서 노대통령의 얘기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겹친다.
검찰은 확정되지도 않은 얘기들을 빨대들을 통해서 슬슬 누출하고,
언론들은 개인의 인권은 안중에도 없이 받아쓰기에 바빴다.
'노대통령은 부인이 돈을 받은걸 이미 알고 있었다.'
'1억원짜리 시계를 받아 논두렁에 던졌다더라.'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이 이미 사실인 것처럼 활자화되어 나온다.
사람들은 한두번 의심해보다가 믿고 만다.
노대통령은 카타리나 블룸과는 다르게 정말 안타깝게도
남을 죽임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을 죽임으로써 상황을 종료시켰다.
그 이후 신문들이 좀 변할줄 알았는데 여전하다.
기사 쓸 때는 헤드라인 기사로 눈에 콱 박히게 쓰지만,
사과할 때는 눈에도 안보이는 저 구석 1단짜리 기사로 지나가고 만다.
'수치'를 모르는 것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다.
짐승들에게 뭔가를 바란다는건 사치다.
짐승들이 잘못할 때는 말로 할게 아니라 몽둥이를 들어야 한다.
한 술 더 떠 이런 짐승들한테 신문 뿐만 아니라 방송까지도 준다고 한다.
사람들의 나라에 짐승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
아니면 이미 짐승들의 나라에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