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보급판, 백범 김구 자서전
김구 지음, 도진순 주해 / 돌베개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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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은 일제에 검거된 뒤 감옥에서 지은 호인 백범(白凡)의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이름자를 고친 것은 왜놈의 국적에서 이탈하는 뜻이요, 백범이라 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하다는 백정과 무식한 범부까지 전부가 적어도 나만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하고자 하는 내 원(願)을 표하는 것이니, 우리 동포의 애국심과 지식의 정도를 그만큼이라도 높이지 아니하고는 완전한 독립국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본명은 김창암, 김창수였으나 그 뒤로 김구(金龜)라는 가명을 사용하다가 김구(金九)로 확정한 것이다. 그의 사상은 단순하다. 나라가 온전하지 못할 때에는 개인도 온전할 수가 없음으로 항일투쟁을 통해 조국의 해방에 투신하였으며, 광복 후 분단된 상태로의 정부수립은 완전한 해방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단독정부수립과 신탁통치에 반대를 하면서 통일된 정부수립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다. 그의 모습에서 어떠한 계산이나 사사로움을 찾을 수 없음은 우리가 그의 모습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을 보아도 요새 일부 청년들이 제 정신을 잃고 러시아로 조국을 삼고, 레닌을 국부로 삼아서, 이제까지 민족혁명은 두 번 피 흘릴 운동이니 대번에 사회주의 혁명을 한다고 떠들던 자들. 레닌의 말 한마디에 돌연히 민족혁명이야말로 그들의 진면목인 것처럼 들고 나가지 않는가. 주자(朱子)님의 방귀까지 향기롭게 여기던 부류들 모양으로 레닌의 똥까지 달다고 하는 청년들을 보게 되니 한심한 일이다.'

다시 보아도 통렬한 비판이 아닐 수 없다. 한 민족에게는 그 민족에게 어울리는 저항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80년대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지만, 많은 것을 잃기도 하였다. 그렇게 믿어왔던 사회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면서 그들이 열렬히 신망했던 사상들은 그 설자리를 잃고, 지금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IMF 이후 우리가 받아들인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더욱더 심한 고통을 겪고 있으면서도 감히 그 틀 속에서 빠져 나올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경제, 우리의 정신, 우리의 육체 등등 외국의 것에 의존하고 우리의 것을 개발하지 못할 때 잘못된 역사는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길이) 되리니...

사명대사가 쓴 이 시는 남북연석회의를 전후해서 백범이 만년에 가장 즐겨 쓴 휘호이며, 1949년 6월 26일 오전 암살 당하기 직전에도 썼던 것이다. 이 시를 통하여 백범은 현실의 정치보다는 역사의 심판을, 눈보라치는 조국의 위기를 당하여 일신의 안위보다는 후손들에게 모범이 될 자국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가 평양에 가서 도착 성명에서 이 시를 인용한 것은, 과연 백범의 자국이 '뒷사람의 길'이 된 것인가?

이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 지를. 더 이상 잘못된 것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기에는 그 짐이 이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까지 커져버렸다. 우리는 더 이상 잘못된 것들을 미화하는 세력을 용인하여서는 아니되며, 잘되어 가고 있는 것들에 딴지를 거는 세력도 용인하여서는 아니된다.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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