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나랏말쌈 7
박지원 지음 / 솔출판사 / 199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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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는 견문기라는 큰 틀을 지키면서도 그 속에는 일기, 소설, 수필, 사회 비판과 같이 각기 다른 장르의 작품들이 녹아 들어 있다. 잘 알려진 한문 소설 「호질(虎叱)」과 「허생전(許生傳)」도 <열하일기> 속에 포함되어 있다.

<열하일기>의 「관내 정사」에 나오는 작품인 「호질」은 남자 주인공 북곽 선생과 여자 주인공 동리자를 등장시켜서 당시 양반 계급, 선비들의 위선과 부패상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소설이다. 호랑이가 북곽 선생이라는 선비를 꾸짖었다고 해서 제목을 「호질(虎叱)」이라고 붙였다.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동물이라고 칭송해 놓고, 북곽 선생은 학문이나 덕행이 대단하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열녀 정문을 받은 과부 동리자와 통정하다가 들켜서 똥통에 빠지는 위인으로 설정하였다. 여기서 호랑이는 북곽 선생의 허위를 신랄하게 꾸짖었고, 북곽 선생은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했다. 호랑이가 가 버린 것도 모르고 그러고 있는데, 농부가 나타나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자, 하늘과 땅을 섬긴다고 거드름을 피우며 대답한다는 것이 이 작품의 기본 골격이다. 여기에는 실학자인 연암의 당시 양반의 허위 의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깔려 있다.

한편 <열하일기>의 「옥갑 야화」에 나오는 「허생전」은 당시 조선의 취약한 경제 구조 비판과 이상 사회를 꿈꾸는 연암의 의식이 드러난 작품이다. 백면 서생인 허생은 아내의 바가지에 못 이겨 장삿길에 접어든다. 그는 이름난 부자를 찾아가 돈을 빌린 다음, 전매 행위를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그 후 허생은 생계 때문에 도둑이 된 무리들을 이끌고 계급도 신분 질서도 없는 이상 사회를 건설한다. 이러한 허생의 능력에 감동한 양반 이완은 그를 부르는데, 그 자리에서 허생은 양반과 관료들의 보수성을 비판하면서 망한 명나라를 그리워하지만 말고, 신흥 제국인 청나라를 통해 발달한 과학 기술과 무역술을 배워 백성들을 편안히 살게 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작품을 통해 연암은 실학파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 준다. 「허생전」에서 연암은 당시에 풍미하던 존명배청(尊明排靑)의 풍조, 소중화(小中華)의식, 북벌 론 등의 허구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풍자하였으며 오히려 청나라의 좋은 점을 배우고자 역설하였다. 그 한 대목을 보면 '의복이 명나라 것과 닮았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상복(喪服)이 아니냐? 머리를 깍지 않는다고 자랑하지만 상투는 남쪽 오랑캐의 풍속과 같지 않느냐? 티끌만큼도 그들(청나라)보다 낫지 못하면서 상투 하나 가지고 잘난 체하다니…….'라고 당시의 잘못된 생각들을 지적하였다.

연암은 <열하일기>를 통해서 정치, 경제, 병사, 천문, 지리, 문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였다. 또 청나라를 본보기로 하여 우리나라의 제도, 정치, 기술 등을 개혁하고,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열하일기>는 당시 유교 사상에 빠져 있던 유학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 '친중국적인' 성격이 너무 강해 주체적인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연암은 평양과 패수(浿水) 의 위치를 확인하는데 있어 종래의 통설에 반론을 제기하고 근대적 민족주의의 사상적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도 있다. 고조선의 강역과 한사군의 위치 문제(낙랑,진번,임둔,현도)를 고증하는데 있어 패수의 위치에 따라 고구려의 국경선이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패수는 대동강이 아니라 요동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그것이다.

연암은 당쟁에 빠져 있던 당시 조선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허울 뿐인 명분싸움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오랑캐라고 여기고 있었던 청나라의 문물일지라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신랄한 비판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더라면 그의 사후 100년 안에 다가왔던 우리 민족의 치욕적인 굴욕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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