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2disc)
이창동 감독, 송강호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햇볕 한 줌에도 뜻이 깃들어 있다.
 
한국 귀국후 맞은 첫아침.
사뿐사뿐 때를 한겹 벗겨내고 찾은
울산의 멀티플렉스.
 
해적의 공습 속에 밀양은 한관 전체도 아니고,
손님들이 적은 오전과 밤 늦게만 볼 수 있다.
밤영화를 예약했다.
 
커플들 사이에 자리를 차고 앉아,
팝콘이 입안에서 와작거리며 씹히는 소리와
콜라가 목구멍으로 꿀꺽거리며 넘어가는 소리에
계속 귀기울이며 영화를 맞는다.
 
영화는,
눈에 보이는 인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에 대해 다룬다.
 
절대자는 햇볕의 모습으로, 살인범의 모습으로, 아들의 모습으로,
미용실 학생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전도를 하는 집사는 늘 말한다.
햇볕 한 줌에도 뜻이 깃들어 있다고.
 
이 말 참 무섭다.
인간은 신의 뜻을 이해할 수 없으니,
그저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남편을 앗아가고, 아들까지 잃은
한 여자 이신애에게
신의 뜻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해할 수 없기에,
저항할 힘이 없기에,
믿는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사람 아니 하나님이
자기를 배신하니
믿었던 사람은 이제 더이상 믿을 수도 없다.
 
자기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지기보다 먼저 하나님이 용서해버렸다니
자기는 더이상 용서할 수도 없고,
원수를 사랑할 수도 없다.
 
이해할 수 없고, 믿을 수도 없으니
이제 남은건 저항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이해할 수 없다고 저항하기엔 신의 힘이 너무 세다.
신을 능욕하려다가 실패하고,
신의 뜻에 대한 유일한 저항이라는 자살까지 시도하지만
역시 실패한다.
 
정신병원에서 나오는 길,
머리를 자르러 들린 미용실에서 학생을 만난다.
저번에 시련을 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신의 뜻이라 생각하여 구해주지 않았던 학생.
 
그 학생은 사고를 쳐서 소년원에 다녀오고
학교마저 때려치웠다 한다.
미용기술은 그곳에서 배웠단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이 장면에서 씽긋 웃고 있는
신의 모습이 떠올랐다면 과장일까.
신은 대항하는 인간에게 가차없는 보복을 가한다.
잔인할 정도다.
 
이신애는 신의 이런 처사에
진저리를 치며 미용실을 뛰쳐나오고
마지막으로 돌아온 집에서
그녀는 손수 머리를 자른다.
 
거울을 잡아주고 있는 사람은
그녀의 곁에 늘 있는 김종찬.
그녀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위안이다.
 
잘린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가고,
날려간 그곳에는 한줄기 햇볕이 내리쬐고 있다.
 
햇볕 한 줌에도 뜻이 깃들어 있다.
 
 
내 인생도 비슷한 느낌이 있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작동하고 있는 느낌.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간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
하지만 그 때문에 살 용기도, 희망도 가질 수 있는 것이리라.
 
내 옆자리의 팝콘 봉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비지 않았다.
영화 내내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던 이것도 신의 뜻이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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