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라는 문화평론가가 있다. 전작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를 통해서는 음악애호가로서의 그의 모습에 푹빠졌었다. 이번 책은 문학에 관한 얘기들이다. 레종데트르. Raison D'Etre. 불어로 존재의 이유라는 뜻이다. 다 읽고나니 기대와는 다르게 꽉 찬 느낌보다는 한 권의 잡지를 읽고난 것처럼 조금은 휑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무척이나 시가 읽고 싶고, 고전 속으로 빠져들고 싶고, 이것저것 책을 마구 지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건 이 책 최대의 미덕이라 하겠다. 작가가 왜 책 제목을 레종데트르라 했을까. 인용된 쇼펜하우어의 말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자. "중요한 것은 의지에 비해 지성이 우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지는 지속적으로 심한 고통을 불러오는 데 비해... 지성은 권태를 제압하고 인간을 내적으로 풍부하게 만든다. 따라서 활발하고 폭넓은 지성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온갖 기분풀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한히 큰 즐거움을 누리게 한다." 지성은 권태를 제압한다. 무한히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