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피아노 교육의 가장 큰 맹점은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다른 교육이 재미없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며 이율배반적이다. 그런데도 전국의 피아노학원수가 1만여개라니 우리 학부모들의 음악교육열을 칭찬해야하는 것인지, 무지몽매한 부화뇌동을 탓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이렇게 비난은 편한 마음으로 하였으되 정작 피아노, 나아가 음악이라는 장르가 주는 재미란 무엇인가라고 되물어보면 대답이 썩 궁해지는게 사실이다. 재미? 흥미롭다, 신난다, 흥분된다, 기쁘다, 황홀하다.... 음악은 분명히 이상의 열거한 감정을 북돋운다. 그림이나 소리를 뺀 동영상은 결코 이만한 감정의 폭발을 야기하지 못한다. 신경세포의 수나 인지기관의 발달수준으로 볼 때도 청력은 시력의 상대가 못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 그런데 왜 우리는 피아노 교육을 재미있게 못하는 것일까. 소리 음,즐길 락. 그 뜻도 명확하게 소리를 즐기는 것인데 음악을 왜 고통스러움으로 만드는 것일까.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로베르 주르뎅-라는 책은 서울대 동물학과 최재천교수, 울산대 음대 채현경교수 부부가 결혼 20년을 기념하여 공역한 책이다. 역자들의 면면을 보건데 이 책은 음악과 과학의 만남을 담고 있는게 뻔하다. 그러나 서문만 읽어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책은 전공학도 아니면 나처럼 사업을 생각하는 이 정도가 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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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에서 제10장까지의 흐름을 보면 재미있다. 소리에서 음으로, 멜로디로, 하모니로, 리듬으로, 작곡으로, 연주로, 감상으로, 이해로, 그리고 황홀경으로. 책 전체가 미괄식으로 꾸며졌지만, 내 목적은 책 제목처럼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이기 때문에 거꾸로 읽기로 작정했다.
신경학 전문의인 올리버 색스박사는 많은 파킨슨씨병 환자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 순간 어색하고 부자연스런 증세들이 모두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동작을 보였으며, 심지어 웃으면서 지휘를 하거나 춤을 추기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려면 환자들이 그냥 수동적으로 듣기만 해선 안되고, 음악의 흐름에 대한 예상을 하며 적극적으로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주목하자.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얻는 '느낌'이란, '감각에 대한 예측'과 '실제 감각'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음악을 인식하는 정도 역시 우리의 <예측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음악의 움직임은 우리 몸의 움직임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음악으로부터 얻는 경험은 완전히 인위적이라서, 일상에서는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것을 올바른 방식으로 집중시키는 특별한 순간에만 음악이 주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완벽함이 있기 때문에 음악은 예술로 승화된다.
즉 음악이 파킨슨씨병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환자로 하여금 더 높은 수준의 인식 활동에 빠져들도록 하여 이 병의 증세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게 하는 것 뿐이다. 음악이 잠시나마(음악이 지속되는 동안만) 우리의 마음이 평소에 하지 못하던 것을 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는 <음악이 우리의 지적 능력을 높여준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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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느낌, 나아가 감정이라는 것과 어떤 관계를 갖는 것인지 음악의 기원을 더듬어 추론해보자. 음악이 종족을 불문하고 대대손손 전승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섹스는 번식을 해야한다는 절체절명의 코드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욕구를 만들어간다. 식욕이나, 좋은 와인을 고르는 것도 원초적 욕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순수한 정보일 뿐, 우리 몸에 아무런 물리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 않나. 게다가 인위적이라 이 세상에 대한 직접적 정보도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태초에 리듬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리듬이 최초의 뼈대를 이룬다고 하지만 이런 논리에 반하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다. 가령 이 책의 3장에서는 아이들이 음악을 배울 때 리듬보다 <어떻게 가사의 자연스러운 억양에 집중하며, 선율을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지> 가 나와있다. .
각도를 달리해보자. 매우 우수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야만 음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머리가 이렇게 큰 건가?라고 질문을 던져본다. 학자들은 인간이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키우며 협력하기 위해 두뇌가 발달했다고 본다. 즉 절대이기적인 모든 생물체는(인간을 빼고) 전체를 위해 내가 희생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데 협력을 하면서 '지금 주고 나중에 받는 것'을 잘하려면 오래 전의 일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하고 앞날의 위험 여부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오직 어떤 사실을 기호화할 수 있는 인간의 두뇌만이 이러한 일을 가능케한다.
이렇게 협력을 실천하는 머리 큰 인간에게 음악이 결속을 다지고 내부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분명히 음악은 인간의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즉 음악이 감정을 형상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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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감정이란 또 무엇이냐? 우리는 감정을 <비이성적인 것>과 동일시해왔다. 그러나 최근 심리학자들은 감정이 이성적 사고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한다. <감정은 예상치 못한 경험에 대한 반응>이라고 보는 것이다. 두뇌에서 우측 전두엽은 감정을 관리하는 곳이다. 이 곳이 장애를 일으키면 자신의 상태에 대해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 반면 좌측 전두엽을 다친 사람들은 감정이 살아있기 때문에 자기 상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두엽은 어떤 지침을 내리는 곳이며, 단기기억을 되살리는데도 큰 역할을 한다. 뭔가를 집중하게 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우리의 두뇌는 신체가 움직이며 겪는 일의 극히 일부만을 처리할 수 있다. 이 선택과 통제의 메카니즘이 전두엽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뇌는 끊임없이 어떤 판단을 내릴 동기들을 부여받고 있다. 평상시와 달리 전두엽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할 때 우리는 보통 <동기부여>라는 말을 사용한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동기부여의 특별한 예>라고 본다. 우리들의 감정은 그렇게 자주 폭발하지 않는다. 대부분 소폭으로 등락할 뿐이다.
자, 그렇다면 음악이 어떻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이 대목이 핵심이다. <음악은 어떤 예상이 일어나도록 하고, 이를 만족시킨다. 그런 기대를 계속 불러 일으키고 더 큰 만족을 줄 수 있다. 그러다가 갑자기 흐름을 변화시켜 사람들의 예상을 깨면, 우리들은 그것을 보고 <감동적>이라고 한다.> 감동은 일상적인 예상을 깨는 것이다. 너무 변화를 많이 주면 집중할 수 없고, 너무 변화를 주지 않으면 별 감동을 못받게 된다.
여기서 반대 질문. 왜 사람들이 같은 곡을 몇번씩 들어 이제는 곡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디서 변화가 일어날 지를 알게 됐는데도 계속 감동을 느끼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음악학자들은 곡을 이루는 화음이나 형식처럼 음악을 이루는 요소들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계속해서 기본적인 예상을 떠올리도록 한다는 것이다. 즉 전체 화음계가 갖고 있는 기본구조가 우리 머리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같은 곡을 여러번 들어도 우리는 매번 같은 예상을 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예상과 다른 흐름이 나올 때면 아무리 익숙한 곡이라도 여전히 감동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너무 규칙적으로 들리는 음악은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컴퓨터 연주곡같은 것이 그렇다. 우리 신경계가 변화하는 것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변화하지 않는 고정된 것에는 타성이 생긴다. 우리 두뇌는 새롭거나 잘 모르는 것에 집중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박자나 음조, 소리의 크기, 높낮이의 변화가 적을 수록 감동도 줄어든다.
물론 바로크 음악의 대다수는 시계처럼 정확하게 흘러가는데 이런 곡들도 우리를 끄는 것인 무슨 이유인가. 이런 음악의 매력은 그 형식의 정밀함에 있다. 이를테면 높이 솟은 빌딩이나 가구, 도자기를 볼 때 감정적 요소는 거의 없지만 그 형식들이 엮어내는 깊은 관계성을 인식하고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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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뛰어넘는 기쁨은 무엇인가? 이 개념은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에서 별로 다루지 않는다. 우리 삶이 기쁨의 연속이면서도 무엇이 우리를 기쁘게 하는지 아는 학자는 거의 없다. 기쁨이라는 것은 우리의 신경계안에 그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기쁨은 다양한 감각계, 운동계, 관념계의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가지 행동이 여러 종류의 기쁨을 주기도 한다.
우리 몸은 황홀함을 느끼기도 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하나의 유기체는 그 자신의 주변과 늘 균형상태(항상성)를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이 균형이 깨지면 고통이 발생하고 다시 균형으로 돌아가면 기쁨이 생겨난다. 따라서 기쁨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균형상태가 무엇이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신경계는 자신이 인지하고 행동하고 이해하게 되는 정도에 따라 그에 맞는 수준의 예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예상과 현실이 상충하는 정도에 따라 두뇌는 재빠르게 상황을 재인식하려하고, 이로인해 스트레스와 근심이 생긴다. 이와는 반대로, 나타나는 현실과 예상 간에 별 차이가 없다면 인식과정은 아무런 마찰없이 진행되며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이 논리에 따르면 성생활과 식도락처럼 지극히 동물적인 기쁨들이란, 결과에 대해 강한 예상(욕구)을 하고 이것이 충족되면 큰 기쁨을 느끼는 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
이 개념은 기쁨이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세상은 매우 혼란스럽고 서로 깊은 관련을 맺으며 갈등과 혼돈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모든 존재들은 어느정도 스트레스를 받고 산다. 우리가 하는 일련의 예상들이 현실과 맞아떨어지면 기쁨을 느끼지만, 그렇지 않으면 근심에 빠진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중 우리의 예상이 잘 맞아들어가 기쁨을 주는 일들은 음악을 비롯해 몇가지 안된다.
사실 우리가 어떤 음악을 듣고 기쁘다고 느끼는 것은 음악의 모든 요소로부터 받은 기쁨과 실망을 합쳐놓은 것의 평균이 기쁨쪽으로 기울었다는 정도를 뜻한다. 그래서 엉성한 곡은 기대감도 못주고 감동도 전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얘기!! <하지만 음악이 주는 가장 심오한 기쁨은 기대가 어긋나면서 생긴다.> 앞의 논리와는 반대가 아닌가. 평범한 음악이 주는 기쁨을 매일 아침 먹는 식빵으로 비유한다면 잘 만든 음악은 캐비어라고 할 수 있다. 잘 만든 음악은 사람들의 기대를 쉽게 만족시키지 않는다 빙빙 돌리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고, 곡이 전해줄 감동의 크기를 슬며시 보여준다. 이런 큰 감동을 전달하는 비결은 사람들에게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곳을 쓰는데 있다. 이런 점은 연애에 있어서나 음악에 있어서나 마찬가지다. 애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당신은 서프라이징 파티를 하거나, 신기한 선물을 주거나, 폭죽과 조명을 터뜨린다. 그것도 짧은 시간에 연이어, 가급적 일시에 전달한다. 우리가 피아노 교육에서 아이들을 기쁘게 만들 때도 이런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베토벤의 교향곡 클라이맥스에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의 모든 요소들이 최고의 관련성을 맺으면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훌륭한 연주자는 오랜 연습을 통해 그 악기로부터 특정한 구조의 소리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터득한다. 그 과정은 자신도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정말 훌륭한 음악을 들을 때에도 고통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멜로디가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으려면 그 사람은 그러한 멜로디의 변화와 형식에 익숙해져 있어야 한다. 즉 이미 깊은 수준의 감정을 겪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음악으로부터 감동을 받을 수 있다. 우리들이 삶으로부터 받은 경험만이 음악의 흐름에 대한 예상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고통은 그 예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 우리가 클래식을 통해 접근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고통스럽거나 덜 기쁜 현상으로 나타나기 쉬운 것도 이런 이유때문 아닐까.
어떻게 음악이 기쁨과 여타 감정들을 이끌어내는지 알아보자. 음악과 춤의 관계가 여기서 드러난다. 핸리 맨시니의 <핑크 팬더>를 들어보자. 이 음악은 물리적인 움직임, 즉 팬더가 몰래 접근할 때 느끼는 움직임에 의해 표현된다. 우리가 돌아다닐 때 우리의 신체구조들이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그 속에서 소리의 요소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같이 움직이는 것 같다. <음악을 들으면 웬지 춤을 추고 싶어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설명한다. 음악은 우리 몸의 근육을 움직이는 신체상의 요소들과 연결돼있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소리를 물리적인 감각으로 인식할까. 분명한 것은 음악이 우리의 근육계로 직접 흘러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 결과 우리가 음악을 <의식적으로> 근육계에 집어넣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겉보기엔 크고 작은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음악의 중요한 특징을 만들어내고, 근육을 사용해 음악을 표출하는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마음 속은 어떤 동작에 대한 예상으로 가득 차있어, 그 동작을 유발하는 운동력을 몸속에서 계속 느끼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체의 움직임을 통한 음악 표현이 갖고 있는 두가지 기능을 알아보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살펴보자.
첫째기능은 이렇게 신체를 통한 표현은 일종의 기록장치를 갖고 있어서 우리가 순간적으로 음악의 특징을 새겨 넣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런 특징들을 몇초 동안 보다 쉽게 기억할 수 있다. 춤을 통해 음악을 더 빨리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기능은 음악을 통해 우리의 경험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신체를 청각적 경험을 키우는 공명기로 사용한다. 마치 현에서 나는 소리는 작은데 바이올린 몸통을 통해 나오는 소리는 그렇게 큰 것과 마찬가지 경우다. 음악을 듣는 사람은 스스로 악기가 되어 자신을 음악에 맡긴 채 연주되도록 놔두는 것이다.
결국 춤이나 음악에 맞춘 신체의 동작은 음악을 더 잘 이해하고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기능을 갖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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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음악이 주는 황홀경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는 마약에 취한 상태와 유사하다. 실제로 음악을 통해 황홀경에 빠질 때는 뇌로부터 다량의 엔돌핀 즉 마약이 분출하게 된다.
음악이 주는 황홀경은 모든 예술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작용한다. 또 황홀경을 일으킬 가능성 또한 가장 높다. 다른 감각기관에 비해 청각이 더 직접적이고 압도적이다. 그 이유는 <소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즉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움직임'이야말로 모든 신경계의 존재이유 아닌가. 즉 우리의 신경계에 도달한 음악은 우리의 두뇌에 일련의 예상을 불러 일으킨다. 이 예상을 통해 음악의 멜로디와 하모니와 형식을 인식한다. 이런 예상을 만들어 내면서 음악은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의지를 이끌어내 황홀경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조금 더 알아보자. 위대한 음악은 아름다움(완벽한 질서와 논리에 대한 경험) 그 이상의 황홀경을 전한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음악의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결합시켜 새로운 환경을 머릿속에 조성한다. 두뇌는 그 안에서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심오한 관계성을 경험하고 마치 조물주처럼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을 갖게 된다. 마약에 취한 상태와 같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내 존재를 신격화하게 되며, 세상도 예전보다 더 아름답게 느낀다. 이것이 음악의 황홀경이다.
과연 앞으로 바흐나 베토벤이 만든 곡들보다 더 크고 훌륭한 구조를 갖춘 곡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그것들보다 더 깊은 관계성을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곡이 가능할까. 그들은 초자연적인 천재성을 갖고 태어났고, 엄청난 양의 연습을 했으며, 평생을 음악 만드는 일에 매진했다. 누가 이들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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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지만 문장을 잘게 잘라서 몇번 읽으면 문맥이 잡힌다.
음악은 우리 신경계의 예측과 실제 감각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마술이다. 그 예상과 현실이 잘 맞으면 기쁨이, 잘 안맞으면 고통과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그러나 음악이 주는 최고의 심오한 기쁨은 그 기대가 어긋났을 때 생긴다. 마치 연애하는 이들이 상대에게 기쁨을 줄 때 하는 행동처럼. 그렇게 절묘한 어긋남이 발생할 때 감동을 받는다. 그러나 기쁨은 이미 깊은 수준의 경험자에게만 다가온다. 즉 경험이 없는 자는 예상하지 못하고, 결국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음악은 의식적으로 운동계를 자극해 몸을 움직이게 한다. 즉 춤을 추게 한다는 뜻이다. 춤을 추면, 거꾸로 음악을 잘 이해하고 되고 경험의 폭도 저절로 더 넓어진다.
마치 음악은 마약처럼 시간과 움직임이라는 묘약을 통해 신경계를 장악하고 일련의 예상을 머릿속에 집어넣는다. 위대한 음악은 모든 음악요소를 완벽하게 융합시켜 머릿속에 새로운 구조를 짓게 되고, 두뇌는 그 구조를 경험하면서 조물주의 기쁨을 만끽하는데 이것이 바로 음악이 주는 황홀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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