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음악의 세계
발표: 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석좌교수
제가 총장으로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김봉렬 교학처장님이 나눔문
화에서 발표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시기에 그냥 "예"라고 답했습니다만, 이렇게 연령층과 분
야가 다양한 분들 앞에 서니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떨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는 별
로 아는 것도 없고, 천지를 모르고 그냥 음악이 좋아 음악을 듣다 나이가 든 사람일 뿐입니
다. 하지만 제 경험담을 들려 드리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할 이야기가 많습
니다.
음악은 자연스러운 것인가?
제가 미국에 가서 음악인류학이라는 학과목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음악인류
학이라는 말을 듣고 매우 놀랐습니다. 음악인류학이 무엇인가? 음악교육학, 음악역사학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음악인류학이라는 건 매우 새로운 분야였습니다. 음악학, 통합 음악
학, 분과 음악학, 체계적 음악학, 역사적 음악학 등 새로운 어휘들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
금은 이러한 어휘들이 한국에서 상식이 되어있지만 그 당시 저에게는 음악에 대한 학문에
이렇게 다양한 분야가 있는가 하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음악인류학' 한마디에 모든
것을 배운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음악인류학자는 음악과 인류학을 동시에 연구하는 학자를
말합니다. 그때 제가 수업을 들었던 음악인류학 교수님은 매우 명망이 높으신 분이었기 때
문에 그분의 말씀이라면 공자님 말씀이라 생각하고 들었습니다. 영어가 짧았기 때문에 제대
로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못 알아 들으면 못 알아 듣는 대로
감동이고, 어쩌다 알아 들으면 놀라서 감동을 받았습니다.(웃음)
그러다 하루는 교수가 "Is music natural or artificial?"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는
음악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
니다. 그 교수의 말에 의하면 "음악은 너희들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 실제
로는 인간이 인위적인 것으로 만든 것"이라 합니다. 당시에는 끝까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가 없었습니다. 베토벤도 그렇고 슈베르트도 그렇고 그 얼마나 자연스러운 선율인데 이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니 그 말씀을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국어도 배워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업은 계속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또 자연스러운 것이 인간의 경험과는 상
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인가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다섯을 세는
방식이 국가마다 다르다는 예시를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엄지손가락부터 다섯
을 세는 방법이 미국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국어와 외국어가 다르고, 모국어적 능력과 외국어적 능력이 다르다는 말을 자주하
는 편입니다. 모국어와 외국어 모두 '배운 것'이지만 모국어는 저절로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외국어는 인위적으로 배웠다고 생각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외국어는 배우고 나면
나중에도 공부하느라 힘들었던 과정이 생각나고, 열심히 공부했어도 자연스럽지 못하기 때
문에 그것은 '배웠다'는 인식을 동반합니다. 하지만 모국어는 언제 배웠는지 모르고, 저절로
배워졌으니 '안 배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가치관이라든가 생각하는 방식이라든
가 혹은 습관이라든가 이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성적으로 타고 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
습니다만 제가 느끼기로 모국어가 자연스럽게 배워지듯이 모르는 사이에 학습되고 형성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러움은 것은 문화적으로 조건 지워진 것
'동의하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동의의 의미
이고 좌우로 흔드는 것은 부정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음악인류학 교수님 말씀으로는 어떤
부락에서는 좌우로 흔드는 것이 동의의 표현인 곳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동의의 표시
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하루는 인도사람의 집에 초대받았는데 된장과 비슷한 음식이 있었습니다. 혼자 상상으로
'아! 된장이라는 것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온 것이구나. 지금 나는 그 된장의
원류를 맛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맛을 보고는 다 토해 버렸습니다. 혀도 물리적 혀
와 문화적 혀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는 똑같은 혀인데 우리나라 사람은 나중에 김치를 맛있
다고 느끼는 혀가 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김치를 매워서 못 먹는 혀가 되는 것입니다. 한
국인의 혀를 가진 저는 인도 사람들이 맛있다고 먹는 그 음식을 토해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귀도 그렇고 혀도 그렇고, 원래 태어날 때는 인간의 조건을 똑같이 타고 났지만, 살면서 문
화의 영향을 받아 달라집니다. 배고프면 밥 먹는 것은 같지만 어떤 밥을 먹고, 어떻게 먹느
냐는 나라와 문화에 따라 달라집니다. 며칠 후에 답례로 그 인도인을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대접했더니 그 인도인은 맛있게 먹더니 나중에는 화장실을 찾았습니다.(웃음) 저에겐 맛있
는 된장이 그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러움이란 문화적으로 조건
지어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살고 있는 문화에 따라 당신의 음악적 운명이 결정
여기 계시는 분들 중에 특정 시공간에서 존재하는 음악문화로부터 해방된 사람은 없다고
확신합니다. 어떤 음악문화 속에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음악적 운명이 정해지는 것입니
다. 음악문화권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집에 아이가 3명 있습니다. 미국 유학을 가면서 첫째 딸은 서울 장모님께, 둘째 아들
은 대구어머님께 맡겼고, 막내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그 음악인류학자의
말에 대해 동의해야할지 말아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모두 제가 있는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서 온 딸은 절 '아빠'라고 부르고, 대구에서 온 아들은 '아부
지'라고 부르고, 미국에서 태어난 막내는 'daddy'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말하
는 것은 특정문화권에서 태어나면 그 문화권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가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
니다. 저는 내가 어디에서 태어나서 어떤 영향 아래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내가 속한 문화의 조건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항아리 속의 금붕어
어느 날 막내가 졸라서 금붕어 4마리가 들어있는 항아리를 사주었습니다. 항아리에 갇혀
있는 금붕어를 보면서 가끔은 술을 한 잔씩 마시며 외국생활의 외로움을 위로하곤 했습니
다. 그러다 하루는 아이들이 먹이를 잘못 주어서 금붕어 한마리가 죽었는데, 야단을 쳐도
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 세 마리가 연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교육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을 하고 있었는데 교육학에는 "telling is not teaching" 이라는 말이 있습니
다. 말하는 것이 곧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제가 그것을 가르치면서도 저 스스
로 아이들에게 telling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금붕어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저는 마지막 남
은 한 마리는 살려주자는 심정으로 비닐봉지에 담아 호수에 놓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제 욕
심에는 놓아주면 살겠다 싶었지만 그놈은 호수 가장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했습니다. 그
래서 왜 그럴까 보니 그 금붕어는 항아리 속에서 헤엄치는 속도와 똑같이 헤엄치고 있는 것
이었습니다. 같은 헤엄이지만 항아리 속에서와 호수 속에서의 헤엄이 달라 이 금붕어에게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유학중이던 1965년 당시 저는 음악평론가로서 한국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왔는
데 이 경험을 통해 물고기와 비슷한 저를 발견했습니다. 항아리 속에서 폼 잡고 살던 사람
이 영어 문화권에서 꼼짝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항아리에 갖힌 게 아니라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모국어로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았으니 제가 모르는
항아리 속에서 그동안 살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생각
하고 있는데 실은 모국어를 배우듯이 음악을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조건지어진 항아리가 나
에게 주어진 것인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현재의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이런 상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나 자신의 항아리가 뭔지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때 서양음악역사를 공부하기 시
작했습니다.
Master pieces of music before 1750's
우리나라의 음악의 큰 병폐가 '음악'하면 '기악성'을 생각합니다. 기악이 탄생하기 이전에도
음악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음악의 기술도 4000여종이 넘고, 음정관도 다르고, 음정수도 다
릅니다. 톤 스킬도 다양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장음계, 단음계만 자연스럽게 여기고 다른 것
은 다 이상하게 듣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좋다고 말하는 장음계, 단음계가 다른 문화에서는
부자연스러울 수가 있습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따고 미국 미시건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할 때, 학생들에게 "Is music
natural?"라고 물었습니다. 미국인들도 음악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라는 말을 독어, 중국어, 일어, 영어 이렇게 5개국 언어로 적
고는 학생들에게 어느 것이 제일 자연스럽냐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I like music."이 가장
자연스럽고 다른 것은 부자연스럽다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들을 가르치면서 어떤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사고가 형성되도록 만든 나의 개인적 역사와 집단적 역사를 보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서양음악사를 강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서양음악사에
관한 책 중에 《Master pieces of music before 1750's 》라는 책이 있습니다. 1750년
이전의 음악이라는 뜻인데요. 1750년에 바하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라는 음악적 항
아리 속에 사는 사람에게 바하는 음악의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1750년을 기준으로 해서보
는 음악관이 아무런 논쟁 없이 상투적으로 받아들여진 사회에서는 그 이전의 음악은 음악이
아닌 것으로 경시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항아리 속에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150년간에는 "음악은 국경이 없다" "음악은 만국공통어다" 이런 식의 말이 허용되던 시
기였습니다. 베토벤, 슈베르트, 차이코프스키, 슈만, 브람스 등 뛰어난 작곡가들이 탄생한 시
기입니다. 저 역시 이 음악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계기를 통해 '이것뿐만이 아
니다' 이러한 사고를 깨치게 되었습니다. 역사 공부를 하니 다른 시대에도 좋은 음악이 많
이 있었습니다. 제가 준비한 악보를 봐주십시오.
한국에게 서양음악사는 1750 - 1900년에 국한
먼저 제일 위에 있는 것이 <그레고리안 성가>입니다. 서양음악을 좋아하는 귀를 가진 이
라면 이 곡을 좋아합니다. 단선율인데 반주도 없고, 화성도 없고, 박자도 없고 단지 가사만
있습니다. 가사만 존재하지만 굴곡이 있기 때문에 그냥 가사만 읽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현재의 예술음악 입장에서는 매우 다른 음악입니다.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 베이스 이것이
4성부 음악인데요. 원래는 4성부 음악이 없었고, 그 이전에 단성부, 2성부, 3성부 음악이
다 있었습니다.
다음 곡이이 2성부 음악인데 일종의 합창입니다. 단성부 음악을 듣다가 2성부 음악을 들으
면 오른쪽 음악을 들어야 할지 왼쪽 음악을 들어야 할지 헷갈리게 됩니다. 그런데 2가지 음
악이 같이 울리니까 그 음향효과가 예전에 비해 낫다고 느끼게 됩니다. 낫다고 생각하는 사
람은 진보적인 사람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음악에는 항
상 진보와 보수가 있어 왔습니다. <그레고리안 성가> 같은 단성부 음악은 서기 600년에서
850년의 150년간의 음악입니다. 그런데 850년에 2성부 음악이 나타나니까 이것은 전혀 새
로운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새로운 소리는 아니어서 아주 거부할 수는 없으나 받아
들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2성부 음악에 익숙해져 150년 정도 지나고
나니 사람들은 2성부 음악마저 지겨워졌습니다.
그 다음세대의 3성부 음악으로 가면 상승부는 전혀 새로운 멜로디지만 그 밑의 성부는 같
은 멜로디입니다. 그러나 음향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서양의 예술음악은 아는 것과 모르
는 것이 하나로 움직입니다. 완전히 모르는 게 나오면 사람들이 뭐가 뭔지 모르고 완전히
아는 게 나오면 재미가 없기 때문에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교묘하게 섞습니다. 그러나 그
섞는 타이밍, 언제 섞느냐에 따라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
다.
또 한 세월이 흐른 악보를 보면 상승부의 음악은 모르는 멜로디이지만 그 밑에 있는 멜로
디는 길이만 변했을 뿐 원래 알던 것이 숨어있습니다. 원래 알던 음악이 숨어서 존재하는
'은폐의 미학'이 담긴 것이지요. 이렇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섞이며 음악은 변하
고 진보해왔습니다.
이 후 시대 1300년은, 처음으로 현대음악이 태어난 해라고 규정지어집니다. 때문에 어떤
이는 14C 음악을 4살 먹은 음악이라고 표현합니다. 1600년에는 오페라가 처음 나타났는데,
기악이라는 것은 아직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음악사를 공부하다보니 저는 '1750
년~1900년의 150년'이라는 항아리가 '한국에게 주어진 항아리'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국은 아직도 이 항아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항아리를 바꾸자
그러나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이 영어에도,일본에도, 중국에도 있듯이 서양에만 음악
의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양에도 유구한 역사가 있었고 갖가지 좋은 음악이 있었습니
다. 다만 서양음악과는 다릅니다. 악보도 다르고 음 체계도 완전히 다른 음악이 수천 년을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저는 동양음악을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말해 국
악을 공부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인간의 의식구조 상으로 동서양의 음악
전체가 다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맘대로 먹어라"는 것의 진짜 의미는 전세계 음식
을 모두 가져다 놓고 골라 먹으라고 해야 제대로 된 것입니다. 지금의 음악적 현실은 호떡
집에 가서 맘대로 먹어라하는 짝입니다. 물론 인간적인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수많은 학문
중에 우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차피 선택을 하게 되어 있다면 선택의 폭이 넓은 항아
리와 선택의 폭이 좁은 항아리는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좁은 항아리를 벗어나려면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한국예술종
합학교를 설립하고 '인정받는' 학교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야 우리나라의 항아리
가 바뀌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이나 집단적 차원에서나 항아리를 개조해합니
다. 개조 자체가 자기이익을 위해서라면 속물근성입니다. 진짜 인간의 삶을 위해서 우리가
그 속에서 숨쉬고 헤엄칠 수 있는 항아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눔문화에서 제가 받은 느낌은 사람이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이 새로운 항아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럭저럭 그냥'은 안 됩니다. 이 자리에 참여한 젊
은 이들에게 특별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죽을 각오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도 여러분의 경쟁자가 될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구에도 경주에도 부산에도 있지만 동경과
런던, 뉴욕에도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사회도 모두 좋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