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이해인
나는 문득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누군가 이사오길 기다리며
오랫동안 향기를 묵혀둔
쓸쓸하지만 즐거운 빈집
깔끔하고 단정해도
까다롭지 않아 넉넉하고
하늘과 별이 잘 보이는
한 채의 빈집
어느 날
문을 열고 들어올 주인이
'음, 마음에 드는데....'
하고 나직이 속삭이며 미소지어 줄
깨끗하고 아름다운 빈집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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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알라딘의 서재도,
여태 내가 살아왔던 분당의 아파트도,
언젠가 내가 살게 될 탕헤르의 흰벽 집도,
그리고 나도
그냥 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
깔끔하고 단정하되 까다롭고 낯을 무척 가리는 그런 집 말이다.
십년 쯤 전에 꿈이 있었다.
처음엔 누가 물어보면 얘기하려고 준비해둔 꿈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러 번 얘기하다보니
그냥 진짜 꿈처럼 되고 말았다.
잘하면(잘못했으면) 그 꿈을 일찍 이룰 뻔 했다.
그땐 그렇게 비껴 간 것이 너무 속상하고 아쉬웠다(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정말 다행이다)
꿈이란 자기 만족이나 자기 과시가 절대로 아니다.
외딴 마을의 빈 집처럼
비어있되 송진향기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꿈 안으로 들어올 때
음 괜찮은데 .... 하면서 입가에 좋은 미소를 머금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시간을 이십년쯤 두고 조금씩 키워갈 일이다.
지금 내가 새벽 두시반에 갑자기 깨어
이렇게 시 한편을 고르느라 시집 한권을 다 읽는 것도
모두 그 시간의 귀퉁이를 채워가는 미련한 짓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