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에야 <코엘료 열풍>의 이유를 알았다. '연금술사(Alchemist)'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 책이 만만찮다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달됐다. 동화같은 책이다. 슬슬 읽으면 반나절만에 휙 던지고 소장함에 2백자 단평이나 꽉차게 쓰면 그것으로 마음 편한 책이다. 그런 책을 사흘을 붙들고 씨름을 했다. 마치 그안에 정말 납을 금으로 만드는 비법이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소설을 읽을 때 가장 짜증나는 것이 작가가 만만해보일 때다. 한번 꼬릴 잡히면 그것으로 작가는 끝이다. 재기불능이요, 복권불가능이다. 최인호가 그랬고, 이인화, 공지영 등이 그러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본전생각때문에 슬렁슬렁 별 생각없이 읽는 습관이 들었다. 그후로 소설을 잘 읽지 않게 됐다.
코엘료에게 내내 끌려다녔다. 어처구니 없었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지난 몇년동안 나를 침잠케하고, 불면케 만들었던 질문들 때문이었다. 나는 내내 목동 산티아고였고, 처음엔 그가 끌고다니는 양이기도 했으며, 중간엔 크리스탈가게 사장님이었다가, 또 입장바꿔 파티마이기도 했으며, 내친김에 연금술사 노릇까지 했다. 삶의 군상을 이렇게 전형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다니 놀랍다. 그들은 나에게 결코 쉽지않은 조언을 남겼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쉬임없이 던져지는 그 조언들은 하나도 허투루 넘길 수 없는 균등한 질량을 갖고 있었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유일한 의무지.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 뜻이 없는데 하늘이 도와줄 리 있나. 사주도 그렇고 산통을 흔드는 것, 카드점을 보는 것 모두 우주의 기운과 사람의 기운이 맞닿는다는 전제가 있다. 열심히 사는데도 안풀린다 싶으면 가만히 생각해본다. 내 마음 씀씀이가 잘못된 게 아닐까, 내가 열심히 사는 목적은 분명히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진정 내가 옳다 믿는 것일까. 내 소망은 우주가 도와줄만한 가치가 있는 보물일까.
팝콘 장수도 어릴 때 떠돌아다니기를 소망했지. 하지만 그는 양치기보다는 팝콘 장수가 남보기 근사하다고 생각한거지. 양치기들은 별을 보며 자야 하지만 팝콘 장수는 자기 집 지붕 아래 잠들 수 있잖아. 결국, 자아의 신화보다는 남들이 팝콘 장수와 양치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주요한 문제가 되어버린거지. <-- 팝콘 장수를 부러워할 것 없다. 그는 좌절하고 타협하고 끝내는 합리화해버린, 실패한 양치기일뿐. 한마디 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노심초사하지만 그들은 나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너는 누구에게 그렇게 관심이 많더냐?) 그야말로 저 혼자 지랄병을 하고 있는 것뿐. 설사 나에 대해 말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해도 관심둘 가치가 없다. 내가 그런 사람들을 얼마나 하찮게 보는지 잘 알지 않느냐. 그런 분들의 관심은 백해무익할 뿐이니, 알려질까 걱정할 일이며, 그만 잊혀지는게 상책이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데 있도다. <-- 이 세상 아름다움을 모두 보기엔 이땅이 너무 좁고 거칠다. 행복이든 아름다움이든 희소성의 원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아름다운게 귀한 곳이니 그 기쁨도 상대적으로 클 것이고, 나름대로 심미안도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언젠가 이 세상을 한바퀴 돌며 행복의 비밀을 찾을 때 노잣돈으로 쓸 기름두방울을 잊지 말란 말이렸다.
아무말도 하지 말아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 뿐, 사랑에 이유는 없어요. ... 내가 그대를 사랑하게 된 것은 내가 꿈을 꾸었고, 어느 늙은 왕을 우연히 만났고, 크리스털을 팔았고, 사막을 건너왔고, 부족들이 전쟁을 선포했고, 연금술사를 찾아 그 우물가에 갔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모든 천지만물의 섭리가 나를 그대에게 이르도록 했기 때문이에요. <-- 프로포즈는 이렇게 하는 것이렸다. 저를 왜 사랑하나요? 당신의 눈이 어쩌고, 내 아이의 엄마가 어쩌고하는 건 말장난이다. 내가 태어나서 당신앞에 설 때까지 모든 사건은 당신을 만나게 하고 사랑하게 하기 위해 신이 예정했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게 된 내 인생이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
내 마음이 내게 말했다. 내가 때때로 불평하는 건, 내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이야. 인간의 마음이란 그런 것이지. 인간의 마음은 정작 가장 큰 꿈들이 이루어지는 걸 두려워해. 자기는 그걸 이룰 자격이 없거나 아니면 아예 이룰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지.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영원히 사라져버린 사랑이나 잘 될 수 있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던 순간들, 어쩌면 발견할 수도 있었는데 영원히 모래속에 묻혀버린 보물같은 것들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두려워서 죽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아주 고통받을 테니까.
고통 그 자체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더 나쁜거라고 그대의 마음에게 일러주게. 어떠한 마음도 자신의 꿈을 찾아나설 때는 결코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은, 꿈을 찾아가는 매 순간이란 신과 영겁의 세월을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일세.
마음이 말했다. 지상의 모든 인간에게는 그를 기다리는 보물이 있어. 그런데 우리들, 인간의 마음은 그 보물에 대해서는 거의 얘기하지 않아. 사람들이 보물을 더이상 찾으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만 얘기하지. 그리고는 인생이 각자의 운명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그들을 이끌어가도록 내버려두는거야. 불행히도 자기 앞에 그려진 자아의 신화와 행복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사람들 대부분은 이 세상을 험난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세상은 험난한 것으로 변하는 거야. 그래서 우리들 마음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낮은 소리로 말하지. 아예 침묵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우리 얘기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기를 원해. 그건 우리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지. 왜냐하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마음이기 때문이야. 마음은 고통받는 걸 좋아하지 않네. <-- 내 마음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아주 작고 미미한 소리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마음이 하는 소리에 고통받지 말자. 내꿈을 얘기하는 것 뿐인데. 더구나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지 않은가. 이렇게 무애(無碍)의 상태까지 오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상처들이 있었나. 지금 그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상처는 다 아물어 마음이 모처럼 평정하다. 이때를 놓치지 말고 마음과의 관계를 복원해야겠다.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야자나무들이 지평선에 보일 때 목말라 죽는다.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지. <--어쩌면 눈썹위에 손으로 챙을 만들어 사막 저편을 응시하고 있는 나는 모래 언덕너머 오아시스를 코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토록 갈증이 심한 걸 보면 말이다.
늙고 교활한 마술쟁이같으니. 당신은 모든 걸 알고 있었잖아요? 미리 알려줄 수도 있지 않았나요?...아닐세. 만일 내가 미리 일러주었더라면, 그대는 정녕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으리니. 어땠나? 아름답지 않던가? <-- 인생이란 현재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보물을 빨리 발견했다고 해서 그만큼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를 그 여정으로 알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다. 책 겉장에 그림을 본다. 둥근 보름달빛을 받으며 저 우주와 더불어 멋진 구상을 보여주는 피라미드. 새벽녘에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분히 행복했으리. 생전처음 나도 사막에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