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킹의 대화의 법칙>(How to Talk to Anyone, Anytime, Anywhere)을 읽으면서, 문득 나의 대화 스타일에 대해 궁금해졌다. 나는 말을 잘 하는 사람인가, 사람들은 나와 대화하고 싶어할까, 나의 대화철학은 무엇일까. 정말 대화를 잘했다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나. 교내웅변대회에 각반마다 한명씩 차출(?)되는데 반장인 내가 뽑혔던가 보다. 아버지가 나를 이층 베란다로 끌고 올라갔다. 거기서 동네사람들한테 아무 얘기나 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아니 꼬마인 제가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이러십니까. 깡을 키워주시겠다는 생각엔 충분히 감사하지만 이건 과잉교육이 분명합니다. 그 부작용을 말씀드리자면... <더 크게 소리 못질러. > 뒷통수에 불이 번쩍하자 나는 그때까지의 모든 이성적 견해와 설득력있는 논리구성을 포기한채, 아무 소리나 고래고래 질러대는 미친소년이 돼야 했다. 그때 골목어귀에 모여섰던 아줌마들은 박수로 격려해주셨고, 집집마다 열린 창문에는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이 감나무 홍시 매달리듯 하였더라. 

한껏 탄력 받은 아버지는 급기야 새벽잠 많은 나를 두둘겨 깨워 앞세우고 약수터에 올랐다. 그때까지 외운 원고를  대중앞에서 실연해보임으로써 소심한 아들의 배짱다지기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철없기에 망정이지 아마 나이든 놈 끌어다 그 일을 시켰으면 거품물고 쓰러졌을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극기훈련끝에 나는 결국 일등으로 그 성의를 보답했다. 그리고 1만여명에 달하는 전교생 앞에서 두손을 불끈 쥐고 책상을 연신 두드리며 여러분에게 호소하기를 거듭했다. 어느새 나는 연설잘하고 말잘하는 어린이로 인정받게 되었다. 6학년까지 이런 나의 이미지는 거듭되는 웅변대회 입상으로 별탈없이 유지됐다.

중학생인 나는 반에서 늘 앞줄을 차지하는 땅꼬마에, 대갈장군이며 얼굴에 항상 노랑꽃이 핀 못난이였다. 이제 반장이며, 웅변이며 하는 것들은 일단 몸이 받쳐줘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다. 공부하고는 또 달랐다. 초등학교 시절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았던 미술, 붓글씨, 웅변등의 특기와는 영영 이별을 고해야 했다. 그 대신 백일장만은 장원의 타이틀을 내내 놓치지 않았다.  고백하건데 당시 나의 작문은 적당한 베끼기와 윤문에 불과했다. 아버지의 고리짝에서 우연히 발견한 <학생 백일장 당선작 모음집>에는 뻬껴먹기 딱 좋고, 절대 들킬 리 없는 구슬같은 글들로 가득했다. 그중 주제와 어울릴 성 싶은 글 몇개를 짜깁기하고 양심상 내 생각 서너줄 섞어서 제법 그럴싸한 문장을 엮여냈다. 우습게도 당시 주제는 90%가 유신과 새마을운동, 백억불 수출과 천불 국민소득 등 대단히 현실적인 것들이었는데도 나의 이런 위작은 맹위를 떨쳤다. 유난히 백일장이 많았던 그때 나는 무려 십여회의 장원을 거머쥐어 전무후무한 사기 필력을 과시했던 것이었다.  

고등학교시절은 모든 면에서 나에겐 암흑기였다. 아무것도 말할 게 없고 말하고 싶은 것도 없다. 어머니는 큰아들인 내가 그 학교에 가게 된 것이 전적으로 당신의 진학지도 미스라고 책임을 통감하신다. 그때 허세부리지 말고 가까운 동네 고등학교에 보냈어도 아들의 인생이 홱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신다. 그때 얼마나 데었는지 외고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에 자기 자손을 보내는 것엔 결사반대하신다. 여하튼 고등학생인 나는 3년동안 학교와 과외를 쉴새없이 줄달음치는 허깨비에 불과했다.

대화하는자로서의 진면목은 고교와 재수, 대학교 1년등 총 5년의 잠복기를 거친 후 화려하게 부활했다. 대학교 2학년때부터 본격적인 학생운동에 나선 나는 우리 과 선후배와 동기생들을 완전히 장악했다. 영문과처럼 토양이 부실한 현장에선 선동이나 섣부른 로직이 먹히질 않는다. 오로지 개별적 인간관계만이 학생대중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금방 깨달았다. 그리고 맹렬하게 실천했다.  수업도 안들어가고 하루종일 과사무실에서 사람들과 대화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경청이 중요하단 것을 알았고, 적절한 질문과 권위있는 메시징으로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게다가 고민이 많은 나이 아니던가. 사랑의 불장난부터 가정문제, 진학문제 등등 대화의 소재도 무궁무진했다. 나는 굳게 다문 입, 즉 철통같은 비밀보장으로 그  성가를 드높였다. 이를테면 남자쪽과 여자쪽으로부터 각각 얘기를 들었어도 전혀 금시초문인 듯 연기했다가 나중에 저희들끼리 맞춰보고 나의 자물쇠입을 찬탄해마지 않았다는 류의 전설이 횡행했다. 아니할 말로 내가 입벌리면 쌍코피 터질 사람이 오륙십명은 족히 됐지만, 대화의 철학에 흠잡힐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았으니 그때가 가장 멋진 놈이었다. .

대학에서 공부는 안했지만 사회가 필요로하는 대화훈련만은 최고로 연마했다. 전자신문에 들어와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과정, 그리고 스물여덟의 나이에 노조위원장이  됐던 것도 모든 그 내공의 덕이었다. 당시 나는 사람들과 무엇이든 같이 하고 싶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누군가 함께 해서 기쁨을 같이하고 싶었고 그가 내 노력에 힘입어 좋은 성과를 얻으면 내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나 자만한 탓일까. 대화의 달인으로서 갖춰야할 자세가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두사람의 측근이 생기면서 그들과 나머지 사람들을 나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즉 다른 사람의 얘기를 측근과 나누기 시작하면서 내 판단보다 그들의 판단에 의존하게 됐던 것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측근들이 이견을 내면 나는 쉽게 그들의 판단을 따랐다. 결과적으로 바보같은 짓이었다. 대화는 지구상에서 그시간에 나와 상대방 두사람만의 세계가 만나는 것이다. 천하의 사기꾼이라도 그때만큼은 솔직할 수 있으며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설사 나를 속인다 하더라도 내가 판단해야 옳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인의 장막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런 장벽이 쳐지면 사람들은 대화할 마음이 사라지고, 정치력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내 귀가 매우 얇구나하는 생각을 그때 했었다. 

노조일을 그만두고 일선기자로 복귀하면서 나는 취재와 인터뷰라는 방식을 통해서 대화의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었다. 전자신문이라는 특수성, 즉 모르는 얘기가 너무 많아서 대충 전화로 때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처음 일년동안 전화취재란 없었다. 무조건 만나서 얼굴보고 취재를 했다. 모르는 것은 솔직히 모른다고 했고,  내가 이해할 정도로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전문가라고 협박(?)했다. 덕분에 천부적인 기계치였던 나는 취재 3개월쯤에는 문리를 깨칠 수 있었고 반년이 채 못가서 업계 전문가행세를 했다.  쫓아다니며 교육받기에 급급했던 학생기자인 나는 어느새 기업들을 돌아다니며 가끔 강의도 하는 베테랑이 됐다. 그때 나는 책이나 자료보다 훨씬 효과적인 교육이 대면방식임을 절감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얻는 기술을 배웠고,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기회를 많이 얻었다. 결국 그 덕분에 조선일보로 가게되었다.

조선이후 전주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일을 해야했던 시기의 대화는 거의 명령이었다. 아무리 겉포장을 해도 그것은 명령을 받고, 명령을 하는 관계 그것뿐이었다. 취재를 통해 간신히 복구된 대화의 덕목은 또다시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나마 조선일보 전기에는 취재를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문제가 덜했다. 한국에서 디조로 소프트중심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뒤돌아보기도 겁날 만큼 폭압적이고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기였다.

그 시기에 나는 터무니없는 일욕심을 부렸다. 사람들은 무조건 내 기준에 맞춰야 했으며, 그렇지 못하면 무능하거나 나태한 자로 낙인찍혔다. 그럴 경우 대화는 형식만 존재할 뿐 내용으로는 전혀 인터액티브하지 않게 된다. 공동의 목표로 만들지 못한다면 대화는 명령을 주고받는 자리에 불과하다. 그때 그랬다. 나는 사람들에게 <나를 도와달라>고 했다. 이건 명백한 대화의 포기선언이다. 그가 나를 도와야할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면, 그리고 그 이유를 내가 설명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나를 돕지 않는다.> 

나는 경청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 말을 너무 많이 했다. 상대방이 말을 많이 하면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회의시간엔 나의 일방적인 설교가 넘쳐났다. 질문해서 깨우치기 보다 <이해가 안가면 물어보라>고 했다. 질문받기 귀찮아서 한꺼번에 설명하고 끝내는게 낫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자세히 설명했는데도 안되면 <바보같은 것들>이라고 무시했다. 가슴에 못박는 모욕적인 얘기를 서슴지 않았다. 짜증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평생 내 이름에 침을 뱉을 사람들이 생겼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요 악덕이다. 모든 교과서에서 대화성공의 원칙과 세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짓을 줄창 해댔으니 내가 성공했다면 그 책들은 몽땅 반품될 뻔하지 않았나.

그래도 위안을 삼는다면, 디자인중심에 참여하면서 프리젠테이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 두고두고 큰 자산으로 남았다. 컨셉을 잡고, 청중의 생각을 살피는 것, 흥미로운 예시와 설득력있는 논리로 마음을 잡는 기술,  결정적인 한방으로 대세를 결판내는 것, 그리고 확실한 마무리. 나는 커다란 칠판에 수십개의 빈칸을 그려놓고 한시간만에 그것들을 프리젠테이션 내용으로 다 채워넣는 훈련을 거듭했다. 컨셉과 카피와 디자인, 이미지를 가르쳐준 정말 훌륭한 디자인중심의 선수들에게 머리숙여 감사한다.

최근 몇달동안 독을 빼고 있다. 누구에게도 섣부른 주의주장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의도대로 상대방을 끌고 가려는 과거의 못된 습관을 버리려고 애쓴다. 이는 내 생각이 옳다거나 논리적이라고 내심 믿어왔던 황당한 자만심을 철저히 포기하는 것이니 내게 참 좋은 일이다. 내가 기대고 있는 코칭방법론은 이런 점에서 매우 파워풀하다. 상대방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우선인 점도 그렇고,  코칭 프로세스도 실험결과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코치의 철학적 포인트, 즉 인간은 항상 좋든 나쁘든 변화한다.  인간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그 자체로 갖고 있다. 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상대방에 대한 무한 신뢰가 생기고 나의 책임감이 한층 무거워진다. 코칭은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커뮤니케이션을 총체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를 만들어냈다.

30여년의 궤적을 살피다보니 대화의 커브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의 사이클을 그리며 음지와 양지를 거쳐왔다. 지금은 바닥에서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 신나는아이들의 교육시리즈를 완성하기위해 대화에 관한 책들을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이것 또한 내게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대화의 장인들을 만나면서 한수씩 배울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유명한 사회자들이 대담이나 좌담에서 던지는 각종 질문들과 자세를 평가해봄으로써 타산지석으로 삼고자 한다. 그렇게 재미없는 프로그램을 이렇게 라도 보지 않으면 아예 눈조차 돌릴 성 싶지 않다. 그나마 이것도 잘 생각한 것 같다.   

래리킹의 말씀대로 <말하지 않고 살수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말하고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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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고선 살수 없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진리다.  어떤 미디어에서, 어떤 방법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든, 훌륭한 대화자가 되려면 <열린 마음과 열의, 경청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열두사람이 모인 응접실이든 , 수천만이 주시하는 방송출연이든 마찬가지다. <철저한 준비, 청중에 대한 이해, 그리고 간결한 표현>은 성공적인 연설의 필수요소다.

성공적인 말하기의 기본 (1) 긴장되거나 혀가 꼬이면 솔직해져라.

마이애미에서 그가 처음 TV에 출연하던 날  나는 엄청나게 긴장했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계속 몸을 좌우로 흔들어댔다. 그 순간 나는 방송은 재미있고 볼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시청자들에게 <나는 지금 초조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 3년동안 라디오 방송은 했지만 TV는 오늘이 처음이고, 어떤 빌어먹을 녀석이 나를 이 불편한 회전의자에 앉혀놓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긴장하지 않았다. 그날 첫 TV방송은 성공적이었다. 모든 것이 시청자들에게 솔직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말하기의 기본 (2) 말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라.

이 책에서 정말 남기고 싶은 말을 한가지만 고르라면 그것은 말하는 대도다. 말하기는 귀찮은 일도 아니고 기분 나쁜 의무도 아니며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일은 더욱 아니다. 말은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된다. 그것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즐거움이다. 대화할 일이 생기면 좋은 기회로 생각하라. 당신은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다음 두가지를 좌우명으로 삼으면 된다. 첫째, 언제 어느 때나 말을 계속하겠다. 둘째, 열심히 노력하여 말하는 능력을 향상시키겠다.

성공적인 말하기의 기본 (3) 타인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보여라.

그는 저녁 토크쇼의 초대손님들에게 흥미와 관심이 많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도록 한다. 나는 상대방의 눈을 독바로 쳐다보고 말하려 한다. 그리고 의자를 당기고 몸을 앞으로 숙여 그들과의 거리를 좁힌 상태에서 질문을 시작한다. 어느누구에게나 적어도 한가지는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있다. 그런 전문성을 존중하라. 당신이 존중받고 있는지 아닌지 사람들은 바로 느낀다. 그럴 때 당신의 말을 더 주의깊게 드릉ㄹ 것이다.

당신이 처음 누군가와 말할 때 그 어색함을 어떤 방법으로 해소할 것인가. 아주 간단하다. 상대방을 편하게 만들어주면 된다. 그리고 그들 자신에 관한 질문을 해보라. 서서히 말문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당신도 말할 소재가 생길 것이며, 상대방은 당신을 매력적인 상대로 생각할 것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초대손님들에게 확실한 공감을 나타냄으로써 시청자와도 강한 연대감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출연자들이 언급한 문제에 대하여 진정으로 염려하고 그것을 곧 자신의 일로 여긴다. 그리고 출연자들에게 공감을 표시함으로써 그들은 그녀에게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성공적인 말하기의 기본 (4) 너부터 활짝 열어라. 네 얘기를 꺼내는데 주저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도 그만큼 베풀라. 플로리다에서 쇼를 하던 시절에 선천성 구개파열증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 등장했다. 그 사람의 말은 매우 알아듣기가 어려웠는데 알고보니 그는 대단한 부자였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큰 부를 축적했을까. 그의 직업은 놀랍게도 세일즈맨이었다. 그는 자신의 발음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그런 핸디캡을 받아들였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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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제 1법칙 경청하라.

당신이 다른 살마의 말에 좀더 귀기울이지 않으면, 그들도 당신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훌륭한 화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훌륭한 청자가 되어야 한다. 잘 들으면 잘 물어볼 수 있다. 잘 듣지 않고 무엇을 질문할까에 정신이 팔리면 이도저도 안된다. 

1992년 대통령선거때 댄 퀘일 부통령이 초대손님으로 나왔는데 그때 화제는 낙태에 관한 법령이었다. 래리는 대화중에 갑자기 예정에 없던 질문을 던졌다. <귀하의 딸이 낙태를 하러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댄 퀘일은 <자신의 딸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그 의견을 존중하겠다>라고 대답했다. 부시 대통령의 가장 보수적인 러닝메이트이며 낙태에 대한 확고한 반대의견을 표명한 공화당 대표주자가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래리는 그가 말하는 것을 경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이 가능했다.

대일카네기는 <남의 관심을 끌려면 남에게 관심을 가져라>라고 말한다. 상대방이 대답하기 좋은 질문을 해라. 그들 자신이 이룩한 성취에 대해 말하도록 해라. 당신과 대담하고 있는 상대방은 당신이나 당신의 문제보다 자신의 희망이나 자신의 문제에 백배쯤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해라. 사람은 본래 백만명을 희생시킨 중국의 기근보다 자신의 치통이 더 중요한 법이다.

마리오 쿠오모의 아들 앤드류는 매우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청년이다. 그 이유는 그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말을 아주 잘 경청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가 그토록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있었나. 아버지 마리오는 아들이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고 한다. 그분의 경험과 통찰력이 손자의 사고의 폭을 그렇게 넓혀주었던 것이다.  

대화의 제2법칙 시선일치

보디랭기지의 최고는 시선일치 즉, 상대방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그 사람과 대화하는 동안 내내 이것만 잘하면 당신은 성공적인 화자가 될 수 있다. 나는 이점을 강조하기 위해 대담도중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인다. 시선일치만 되면 나머지 부수적인 보디랭기지, 손동작이나 고개을 끄덕인다거나, 맞장구를 쳐준다든가하는 일련의 태도는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다.

대화의 제 3법칙 세상 돌아가는 정보에 밝아야 한다.

요즘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 대부분 신문방송을 보고 듣기 때문에 웬만한 사건들에 대해 다들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성공적인 화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것, 즉 최근에 들은 화제들에 대해 언급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성공적인 사교대화의 키워드는 현실과의 관련성이다.

대화의 제 4 법칙 익숙한 주제라도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관찰하라.

프랭크 시나트라는 익숙한 유행가라도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매우 다르게 해석해 부르곤 했다. 빠른 노래를 아주 느리게, 부드러운 노래를 원망하듯이 부를 수 있었다.  말도 그렇게 하면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연설할 때 청중의 기호를 알아야 하지만, 청중들의 예상을 깨야 한다. 그러자면 주제에 대한 판에 박힌 접근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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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나쁜 언어습관을 고치는 법>

1. 익숙한 말들을 잘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하는 말을 잘 들어보라. 얼마나 자주 중간에 멈추었다 새로 시작하는지, 이미 한말을 또 하는지, 그리고 쓸데없는 소리를 얼마나 자주 내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

2. 말을 하기 전에 미리 생각하라. 말을 절반쯤하다가 끝을 어떻게 맺어야 좋을 지 몰라 당황할 때 도움이 된다. 첫문장을 말하면서 다음 문장을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누구나 연습하면 할 수 있다.

3. 당신이 말하는 도중에 쓸데없는 군소리가 들어가는지 모니터를 부탁한다. 이 방법은 아주 놀랄만한 효과가 있다 배우자나 친구, 직장동료도 괜찮다. 즉시 지적해달라고 부탁해라. 하루에 최소 두시간정도만 해도 대단한 효과를 보게 된다.

 

<회의에 관한 몇가지 포인트>

1. 시간을 아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의에 안가는 것이 최고다. 반드시 가야할 자리가 아니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빠져날. 아니면 그 시간에 꼭 해야하는 일거리를 만들어라.

2. 말은 적게 할 수록 좋다. 과묵한 살마이 입을 열면 모든 살마의 관심이 집중된다.

3. 남을 비하하는 말으 하지 말라. 때로는 참기 어려운 욕구가 생기지만 그대 입을 잘못 ㅇ려면 순식간에 평생원수를 만들게 된다.

4. 준비없이 발언하지 말라. 특히 회의를 주재할 사람은 반드시 준비하고 들어가야 한다.

5. 확실한 결론을 끌어내라. 그리고 확고한 자세를 취하라. 엉뚱한 소리를 오래 지껄이는 사람에게 사회자는 <여보게 미안하네만 다른 안건을 또 처리해야 하거든>같은 방식으로 얘기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당신의 역량을 높이 평가할 것이다.

 

<최고의 이야기손님을 선택하는 기준>

1.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

2. 자신의 일을 시청자에게 분명하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

3. 무언가에 약간 화가 나 있는 사람

4. 유머감각, 특히 자신에 관한 농담도 즐길 수 있는 여유와 자신감.

 

<방송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다섯가지 방법>

1. 당신이 편안한 것만 해라. - 하기싫은 인터뷰는 하지마라.

2. 최근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웬만큼은 알아야 한다.

3.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라. - 심각한 실수라해도 내일 그것을 기억할 사람은 별로 없다.

4. 라디오든, TV든 본질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라.

5. TV의 경우라면 목소리, 말투와 어감, 외모들의 중요 요소들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해라.  - 즉 연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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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보슬비 > 섬과 자연이있는 아름다운 풍경



꽃동네[광양]


낙안마을의새벽[순천]


낙안의겨울


낙안의 아침


선암사승선교[순천]


낙안의새벽[보성]


낙안의여름

물레방아[보성]


물레방아[보성]


순천만낙조


돌산 대교[여수]


백도[여천]


백도의봄


백도의 환상


환상의백도


백도전경


백도의 노을


매바위



향일암



오동도전경


동백낙화[여수]


봄의향연[여수영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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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Kush(1965, Moscow)


African Sonata

Arrival of the Flower Ship

Awakening of Millet

Butterfly Apple

Departure of the Winged Ship

Eye of a Needle

Fauna in La Mancha

Fiery Dance

haven

Heavenly Fruits

Hic Saltus

I Saved My Soul

Icarus

Islands of Memory

Key of Passion

Music of the Woods

Pearl

Ripples on the Ocean

Rose Awaiting

Sacred Gift

Sounds of the Morning

Still Life with Mandolin

Stopped Moment

Sunrise by the 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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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쓸모없는 나무>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게 큰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부르네.
몸통은 너무나 뒤틀렸고,
옹이로 가득 차
아무도 곧은 널빤지 한 장 얻어내기 힘들지.
나뭇가지들은 어짜나 굽었는지
아무리 궁리해도
쓸모있게 잘라낼 방법이 없다네.

길가에 서 있는데도
들여다보는 목수조차 없어.

당신의 가르침이 그런 것 같네....
크기만 할 뿐, 쓸모가 없어."


장자가 대답했다.
"자네는 들고양이를 본 적이 있는가?
몸을 웅크리고 먹이를 노려보면서
이쪽 저쪽 높고 낮게
펄쩍 뛰다가 마침내
덫에 걸려들지.

그렇지만 들소를 본 적 있는가?
천둥구름처럼 거대하고
위엄있게 서 있지.
크냐고? 물론,
쥐도 잡지 못하네!

자네의 큰 나무도 마찬가지, 쓸모없다고?
그러면 텅 빈 들판,
황야에 그걸 심어봐.
한가로이 주변을 거닐고,
그늘아래에서 쉴 수 있겠지.
아무도 도까나 낫으로 겨냥해
그걸 베려 하지 않겠지.
쓸모없다고? 조금도 걱정할 게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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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신부 토머스 머튼이 쓴 <장자의 도(The Way of Chuang Tzu)>의
첫 장이 이 이야기로 시작된다.
우화는 시와 동기간이다. 특히 장자의 내용은 지극한 비유와 은유로
이어져 있으므로, 전체가 하나의 연작시로 봐도 무방하다.
이솝우화나 안데르센의 동화같은 서양얘기들은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없는 무게와 향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장자를 읽고 또 읽는다. 코쟁이 신부님도 장자의 팬인 모양이다.

언제였던가. 자괴감에 잠 못들던 어느 날들 중의 하루였을게다.
선배에게 <제가 그렇게 쓸모가 없나요?>라고 물었다.
<무슨 자다가 봉창 터지는 소린가>하고 심드렁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 양반은
이윽고 <지난 십수년동안 너는 꽤 인기가 좋았던 모양인데,
적어도 나한테는 별로 쓸모가 없는 녀석이었어.>라고 말했다.

대학 다닐 때 광화문 등지에서 반독재 가두시위가 있던 날이면
학교나 경찰서에서 집으로 득달같이 연락이 왔다.
댁의 아드님은 밖에서 보이기만 해도 군대에 잡혀가니
알아서 잡아놓으슈.
그날 창문을 따고 담을 넘다가 나는 눈시울을 붉히며
<어머니, 역사가 저를 부릅니다.>라고 중얼거렸다.
훗날 이 얘기를 했더니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마치 버스가 급정거해서 운전석까지 굴러간 놈이 무안을 감추려고
<기사 아저씨가 나 안불렀대>라고 했던 것처럼
친구들은 <그때 내가 너 안불렀어>라고 놀렸다. 나도 바보처럼 킬킬 웃었다.

쓸모있다가도 쓸모없어지는게 세상사요, 세상인심인가보다.
세상이 원하는 쓸모를 요리조리 눈치빠르게 따라가지 못했던가..
왜 그랬을까? 나는 세상에 어떻게 쓰이길 바랬던가.
아침이면 바삐 일터로 달려가는 수많은 저 인파는 어떤 쓸모가 있는걸까.
그들은 그 쓸모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가.
아니면 언제 쓸모없다고 내쳐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는건 아닐까.

여태 그 쓸모에 들고 싶어 안달했던 결과는 피폐하고 참담했다.
어쩐지 <이게 그다지 쓸모 없을텐데> 했던 내심의 걱정이 현실로 나타났다.
내가 확신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며, 따라서 전력하지 않았던 그 쓸모는
내가 손을 놓는 순간, 바닥에 곤두박질 쳐버렸다.
처음엔 몹시 당황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슴이 가끔 벌렁거리곤 한다. <그러지 말걸 그랬나?>

하지만 이제 다시는 창녀처럼 화장하고 내키지 않는 몸을 팔진 않겠다.
장자는 다시 말한다.
"산봉우리의 나무는 제 자신이 적이요,
불꽃을 일으키는 기름은 제 몸을 사른다.
계피나무는 먹을 수 있기에 베어지고
옻나무는 돈이 되기에 잘린다.
쓸모있다는 것이 얼마나 쓸모 있는지는 모두들 안다."

그 쓸모라는게 궁극에는 어떤 것인지 모두들 알텐데
다들 줄서서 고뇌와, 이젠 어쩌지도 못하는 궁색한 처지로
스스로를 몰아넣는 까닭은 무엇일까?
세상의 범속함, 그리고 <튀어봐야 별 수 없다>는 부화뇌동은 예수도 넘고 부처도 내쫓는다.
대단한 구속력이 아닌가.
내 쓸모는 한동안 내가 정하는대로 벼려질 것이다.
분칠하고 연지곤지 찍었어도 내가 원하는 신랑이 아니면
장옷 소매를 결코 내리지 않겠다.

그렇게 세상의 쓸모를 뛰어넘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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