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사모으고, 두서없이 그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게 벌써 이년쯤 된다. 작심하고 공부했으면 일가까진 몰라도 웬만한 경지엔 올랐을게다. 그래도 후회는 안한다. 애시당초 이것으로 뭘 해보려는 의도따윈 없었다. 그저 좋았기 때문에 손에서 놓지는 않았으되 언제나 슬렁슬렁댔다.  그 덕에 여전히 그림을 보면 이게 누구 그림이더라, 제목이 뭐였지 라는 질문엔 항상 대답이 아리송하다.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기가 막힌 붓놀림이야.> <이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등의 대책없는 아마추어적 감탄이 먼저다.   

삼년쯤 됐나. 난생 처음 큐레이터라는 명함을 건넨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다. 동원의 소개로 만나 여럿이 밥도 같이 먹었다. 그녀가 나에게 물어주기를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물었다.. <제가 어떤 작가를 좋아할 것 같나요?>  갑자기 황당한 질문을 받은 그녀는 <글쎄요, 인상파 화가 쪽 같은데...>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그림보는 맛을 처음 들이고 있던 나는 <들라클루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끄덕거렸다. <인상파가 아니라면 아마 그쪽 이겠다 싶었어요.>

그림의 출발은 서사였다. 추상과 모던은 내게 아직 멀게만 느껴졌다. 신화는 평범했고 인물엔 무관심했다. 들라크루아와 다비드의 혁명가적 화풍, 베라스케스, 고야의 스페인 특유의 악마성에 전율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예상대로 인상파로 넘어왔다. 누구나 처럼 고호와 고갱, 모네와 마네, 르누아르, 드가 그리고 쇠라와 시냑으로 이어지는 점묘파의 그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연장선으로 쿠르베, 로트렉, 세잔으로 넘어왔고, 앵그르, 부셰, 프라고나르 같은 로코코와 신낭만주의로 되짚어 돌아가기도 했다. 렘브란트의 굴곡많은 인생역정을 담은 자화상들과 가장 행복했던 화가 루벤스의 그림도 좋았다. 카라바조와 엘그레코,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비너스의 탄생>을 베껴 그렸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카노바, 로댕으로 이어지는 조각정신의 뿌리를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화집에서 좋은 그림을 만나면 <내일은 좋은 일이 있으려나>하며 즐거워했다. 인터넷에서 사이즈가 큰 그림을 우연히 만나 모니터 가득히 열어놓고 살피노라면 시간가는줄 몰랐다. 보는 것 만으로 참지 못해 서툰 손짓으로 스케치북에 모사했다가 조금 비슷이라도 하면 좋아서 헤벌쭉 웃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차라리 미대 대학원을 갈까 주책없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그림에 대한 애착은 조금씩 깊어졌다. 그러다 문득 특정한 화가 몇몇에 대해 내가 쏟는 각별한 눈길을 의식하게 됐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들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에겐 다중지능이란 게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능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매우 다양한 영역의 지능이 있다는 것이다.  누가 내게 보내준 파일을 열어서 십여분 작성하고 계산했더니 이른바 나의 지능영역이 우선순위대로 뽑혀 나왔다. 언어영역이 첫번째라는 건 그대로 납득할 만하다. 그림을 좋아한 덕분에 그 다음순위는 공간지능. 그리고 동점으로 자기성찰지능이 뽑혔다. 오호! 자기성찰이라.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그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올해 내내 그 문제에 집착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 다음 순서가 나로서는 뜻밖이다. 하기야 몇년 전만해도 이것이 맨 앞으로 안나간 게 외려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자신만만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네번째로 뽑힌 것만으로도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 뭔가 변해도 단단히 변한 모양이다.

 <인간친화지능>이란 말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나는 인간과의 친화에 부정적,  회의적, 소극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좋게 지내는, 누구나  그만큼은 하는 정도라면 굳이 이런 개념어를 쓰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알고 보면 제법 그 연원이 오래됐다. 대학에 낙방하고 재수생이 됐을 때, 사람에 대한 유아적 호의에서 벗어나 비로소 액면 그대로 보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비로소 제대로 된 불신을, 그것도 수시로 경험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능수능란한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나는  겉 똑똑이에 불과한 바보였다. 한번 믿으면 무모하게 끝까지 마음을 주는 것도 그렇고,  의리와 충성심, 약속 같은 결코 신뢰해선 안되는 미덕을 맹신하고 집착했다. 철석같이 믿었던 선배들에게 두번 배신당했다.(그들은 아마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할게다.) 후배들에게 고비맏 연거푸 뒷통수를 맞았다. 오래동안 가까왔던 사람들도 어떤 계기로든 연락을 끊거나 멀리 떠났다. 그들을 원망하거나 괘씸해하거나 붙잡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좀 우습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 그 빈자리를 메꿔갔다. 그 악순환은 내겐 일상처럼 반복됐다.

멈춰서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람 사귐을 중지하자, 즉 인풋을 멈추자마자 로스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몇가지 깨달음을 갖게 됐다. 

우선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다. 인간관계가 자기중심적이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나를 중심에 놓지 않는 관계는 내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그동안 관계에 대해 내가 과도하게 책임을 지려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그건 선의에서 나오는 책임감이 아니라 이기적 집착이었다. 그런 책임감은 곧바로 상대를 질리게 하고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둘째, 그러면서도 공손하지 않았다. 시건방지게 행동했거나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했다.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고 말하려고만 했다. 배우기보다 가르치려 했다. 그럴 수 없는 관계, 즉 나이가 많은 장로들과는 가급적 마주 앉는 기회를 줄였다. 그들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들은 경륜으로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전혀 존경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결국 나는 <노인네들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그 양반들은 하나같이 왜 날 미워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불평하게 됐다.

세째, 인간관계를 절대로 관리하지 못한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대체로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말빨도 끝내주고 유머러스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는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무관심하다. 가끔 한두명 눈에 뜨일 만큼 강한 매력과 개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시큰둥하다. 그 자리에서는 매우 사교적으로 대하지만 이름을 계속 기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내가 주도해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 그런 일은 하기 싫어한다. 웬만큼 참을성이 강하고 내게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관계를 지속할 리가 없다. 일년이 가고 오년, 십년이 가서 이제는 새삼 전화를 걸어 안부조차 묻기 어려운 관계로 바뀌고 말았다.

이 세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인간친화>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게 됐다.  그리고 인간친화라는 말을 사교적이라거나, 사람관리를 잘 한다거나 하는 기술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나의 문제점을 알게 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보는 안목도 조금씩 깊어진다는 것을 안다.  이 세상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나뉘어있지 않다.  좋은 사람이 얼마든지 나빠질 수 있으며, 나쁜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건 아니다. 즉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이중적, 다중적일 수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그래서 서로에게 합당하지 않은 신뢰와 편견을 갖는 것은 관계를 악화시키는 치명적인 자세다.  잡는다고 떠날 사람이 주저앉을 리도 없고, 그렇게 영원히 앉아있을 리도 만무하다. 서로 부담스런 부채감만 있을 뿐이다. 즉 무리하게 설득하거나 종용해서도 안되고, 그럴 필요조차 없다. 다만 공손하게 들어주는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은 최소한의 관계유지는 꼭 하는게 옳다.  

글쓰기를 좀 오래 쉬어서 그런지 애당초 쓸 생각이 아니었던 얘기가 끝도 없이 주절주절 이어진다. 원래는 그림보기 3년여만에 내눈이 좋아하고 내 마음이 흐뭇해하는 그림들이 서서히 구분되고 있단 얘길 하려고 했었다.  이미 때는 늦어 돌이킬 수 없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누가 읽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글을 깔끔떨며 다듬는 결벽주의자도 아니니 나오는대로 얘기하고 힘들면 다음에 이으면 그만인 것을.

에곤실레 앵그르 르페브르 워터하우스 엘마-테디머 시펜 르동 모로 베르메르 부그로 베트리아노

이들이 사조적으로 어떻게 분류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하나같이 탐미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작가들로 보인다. 이들이 그린 여체는 살냄새가 진하다. 실레의 여인들은 창백하고 포르말린액의 냄새가 난다. 앵그르와 르페브르, 부그로의 여인들은 목욕하고 나온 여인들의 훈훈한 체온이 느껴진다. 특히 르페브르의 경우는 나도 몰래 손이 갈 정도로 몽환적이다. 해변에 서있는 여인을 불러보라. 그녀의 가슴은 곧 신화의 한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시펜이 그린 중국여인은 캔버스에 옮겨진 장만옥이다. 화양연화에서 보였던 나른하면서도 고혹적인, 무심하면서도 대단히 도발적인 여인이 등장한다. 워터하우스나 엘마-테디마는 모두 신화적, 역사적 모티브를 따왔지만 씬에 파고드는 힘은 엘마-테디마가 앞선다. 한마디로 집요하고 저돌적이다. 그 진정성과 디테일을 따라올 자 없다.  르동은 다른 이들과는 다른 독특한 영역의 그림이다. 파스텔적이고 원색적이다. 그래서 더 몽롱하다. 예수와 부처, 천사들, 몰락한 신, 흩날리는 꽃잎 등이 꿈처럼 명멸한다.

베르메르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서사적 낭만주의, 신고전주의에 취해있을 때 나를 유럽 근대화풍으로 유인해온 장본인이 바로 베르메르다. 소설<진주목걸이를 한 소녀>를 읽고나서 그의 매력은 더욱 강렬해졌다. 워낙 과작이기도 했지만 그의 그림이라면 부지런히 갈무리를 해서 아마 거의 다 있지 않나 생각된다. 비록 고물PC의 하드디스크에 담겨있지만 말이다. 여인들과 벽에 걸린 지도, 몇가지 악기들,  고풍스런 패브릭. 그리고 그것에 생명을 전해주는 빛. 그 빛의 섹시함에 대해 감탄할 뿐이다. 그는 진정 빛을 다룰 줄 아는 몇 안되는 화가였다.

 베트리아노는 적어도 그림으로만 본다면 1차대전 전후, 즉 <불의 전차>의 시대적 배경이 됐을 만한 때의 미국, 그것도 뉴욕의 남녀를 데리고 온 듯하다. 신사숙녀복을 루틴하게 차려입은 등장인물들은 그러나 몹시 퇴폐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독한 남녀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남자들. 어쩌면 당시 뉴욕은 이렇게 익명성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좌절이 들끓고 있는 곳이었나 보다.

나의 그림창고가 계속 업데이트 되는 동안은 새로운 화가의 명단들이 추가되거나 지금의 화가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를 기다리는 역사속의 화가를 찾기 위해 인연의 끈을 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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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프리랜서 해외통이다.  올해로 마흔셋이 된 그는 몇년전부터 프리랜서 생활에 불안감을 느껴왔다. 최근 외국의 대기업이 국내 제휴선을 찾는 일을 도와주다가 모 기업으로부터 영입 언질을 받고부터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덜컥 결정하자니 그 기업의 규모도 작고, 동선도 많이 협소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도 좀 그렇다는 것이다.

P:  국내 기업과 구체적인 언질이 오간 것은 아니지만, 마음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이번 일의 향방도 달라질 것 같습니다. 만일 그 제안을 받아들일 양이면 단순히 이번 일뿐 아니라 챙겨야할 일이 많을테니까요? 기업에 들어가야 할까요, 아니면 더 기다려보는게 좋을까요?

C:  우선 프리랜서 생활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것이 아마 동기가 된 것 같은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P:  30대에는 솔직히 겁나는게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거침없이 벌였고 대부분 성공했거든요. 그런데 마흔이 넘으면서 일이 하나둘씩 실패하기 시작하면서 작년에는 거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창피한 얘기지만 운이 없어서 그런가 싶어 점을 보러가기도 했습니다. 프리랜서가 이렇게 오랜기간동안 슬럼프에 빠지면 네트워크 관리가 안되거든요. 누가 성공도 못하는 프리랜서에게 일을 맡기려 하겠습니까?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보니 자꾸 초조해하면서 일을 서두르고, 그러다 무리수도 많이 범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업에 들어가 좀 안정적으로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C: 자꾸 몰리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셨다구요?  그전에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는데 한두번 실패했다고 그렇게 되진 않았을텐데,  한번 기억을 되살려 봅시다.  실패가 계속 반복될 것 같은 예감 같은게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요? 무엇이 당신을 계속 초조히게 만들고 있습니까?

P: 푸닥거리를 하든지,  뭔가 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하게 일이 잘 돼다가 갑자기 깨지는 일이 많고, 성사돼도 꼭 끝이 깔끔하지 않아 뒷통수를 맞거나 손해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일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너무 사기꾼과 거짓말장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항상 약자일수 밖에 없거든요.  인복이 없는걸까요?

C: 하시는 일이 외국과 국내를 연결하는 일이라면 대개 매치메이커 역할을 하시겠군요? 그 역할의 성공요소가 무엇인가요?

P: 서로 원하는 최적의 파트너를 찾아 연결시켜주고 최고의 성과를 내게 하는 것이 CSF입니다. 양자가 WIN-WIN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래야 제 수고의 댓가도 제대로 받을 수 있구요.

C:  알겠습니다.  당신이 실패했다는 건 관계자(당신을 포함해서)들이 만나서 WIN-WIN을 못했다는 뜻이겠군요?  만나서 좋은 성과를 못 거두었거나, 아니면 공정하게 성과배분이 안됐든가.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례를 떠올려보면 어떻게 해야 WIN-WIN 하던가요?

P:  글쎄요,  말씀하신대로 시너지효과가 반드시 나야겠죠. 그래야 나눌 게 있으니까요? 사실 1+1이 2보다는 커야 얘기가 됩니다. 그냥 2거나 그 밑이라면 거래 자체가 무의미해지니까요.

C:  일을 하시면서 시너지효과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서로 공유하고 계시겠지요? 역할분담과 성과배분에 대한 합의도 계약으로 분명히 정하지 않나요?

P:  그냥 감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그바닥에선 선수들이니까요. 계약도 자세한 내용을 적어넣으면 눈살을 찌푸리곤합니다. 뭐 그런 걸 다 넣으냐면서 일만 성공하면 확실하게 보상할테니 걱정말라면서, 이런 계약서를 들고 오너한테 못간다고 대개 난색을 표하지요.

C: 그렇군요.  지금 말씀하신 걸 들어보면 업 자체가 성공률이 높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윈윈관계를 확실히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시너지효과가 분명히 예측돼야 하며, 성과배분도 정확하게 약속돼야 하는데 우리 업계 풍토상 그게 잘 안되서 번번히 실패가 반복되고 있다.  맞습니까? 그렇다면  기업에 들어간다는 것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도가 되는 건가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기업에 들어가든, 프리랜서로 있든 성공하기 힘들 것 같아서 묻는 겁니다.

P. 아무래도 기업에 들어가면 생활이 안정되고 기업이 요구하고, 기업에 필요한 일에 우선 집중하게 되니까 그만큼 일의 완성도가 높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너지 효과도 더욱 분명해질테구요. 성과배분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점이 편할 것 같습니다.

C: 기업에 가시면 그런 점은 확실히 장점이 되겠군요. 혹시 염려하고 있는 문제는 없습니까?

P: 이 나이에 들어가서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워낙 프리랜서로 굳어져 있는데. 그리고 일이년은 버티겠지만 내내 보장될까? 만일 몇년뒤에 다시 나오게 되면 지금보다 더 상황은 안좋을 것 같은데. 뭐 이런 걱정이지요.

C: 물론 신입사원처럼 처음부터 배워가며 직장생활을 할 수는 없겠지만, 앞서 말씀하신대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기업에 가시는 거라면, 밖에 있는 것보다 훨씬 상황이 좋아질 것 같은데요. 그리고 그렇게 성공하게 되면 회사내에서의 입지도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그동안 연속되는 실패로 조금씩 실망해왔던 외국의 파트너들도 당신이 성공을 거두게 되면 다시 좋은 평판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P: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위축돼서 자신을 잃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도피처로 기업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면 그곳의 생활을 불안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주눅이 들어있었나 봅니다.

C: 그렇다면 아직도 한가지 문제가 남아있습니다. 지금 제안해온 그 회사의 규모가 작은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고 말씀하셨는데, 당초에 원했던 회사는 대기업이었나요?

P: 제가 전문성을 갖고 있는 영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재벌기업이 두세군데 있습니다. 그 쪽에 가면 제가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고 해외의 네트워크 관리도 더 잘될 것 같아서요.

C: 혹시 그런 대기업에서 일하기가 더 어려울수도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도 많이 나오는걸 보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P: 물론입니다. 대기업이라고 일을 무조건 많이 벌일 수 있는 건 아닐겁니다. 역시 그곳에서도 성과중심이니까 제대로 성과를 못내면 금방 위축될 수도 있구요. 사람이 많다보니 해외통도 저만 있는게 아니라서 잘못하면 꼼짝 못하게 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겁니다.

C: 지금은 당신이 다만 한두개라도 확실한 성공케이스를 만드는게 스스로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을 많이 벌여서 그중 한두개를 성사시키기 보다 일을 정확하게 진행해서 윈-윈하고 시너지내는 프로세스를 확실하게 챙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P:  그러기에는 지금의 회사도 그렇게 영세한 규모는 아닙니다. 지금 제게 필요한 일을 하기엔 대기업보다 어쩌면 저를 더 많이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그런 회사가 나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코칭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 좋은 결론을 얻었다니 다행입니다. 다음에는 <운>에 대한 얘기를 했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일이 갑자기 안되면 운의 탓으로 돌리곤 합니다. 저 역시 그랬구요. 하지만 운이 몇년동안 계속 나쁘다고 하기엔 뭔가 미심쩍은 점이 있습니다. 혹시 비슷한 유형의 실패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내가 운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해야할 점은 없는지 시간을 갖고 대화를 나눠보도록 합시다.

P: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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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럽다.  비위가 약해서 걸핏하면 얹히거나 울렁거린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일도 없는데. 현깃증이 아침부터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사르르 찾아온다.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나섰다. 차를 타고 서울로 가면서 여러통의 전화를 했다. 지난 8개월동안 이렇게 계속 전화를 걸어댔던 적은 없었다. 허전해서 그런가. 뭐가 허전하지?

뻔한 안부 허황된 웃음 하나마나한 얘기 언제 소주나 한잔 하자는 상투적인 작별인사. 그렇게 여나믄 명과 통화했다. 피곤하다. 눈앞이 핑 돈다. 그리고 나서 말문을 닫았다. 내릴 곳 근처에 왔을 때 택시기사에게 돈을 내밀었다. 기사가 속도를 줄이자 문을 열었다. 눈치빠르게 차가 멈췄다.

사람들은 내가 어디서 뭔가를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단다. 누가 그렇게 얘기했을 때 픽 웃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대충 옳았던 것 같다. 일주일새 두군데서 일해보자고 전화가 왔다. 고마웠다. 나를 기억해주니 감사했다. 조건을 자세히 들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 같다. 그 정도면 딱 좋은거다. 아주 좋은 것엔 항상 아주 곤란한 조건이 따라붙게 마련. 상대가 쭈뼜거리며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경험으로 그 정도는  알고 있는게 좋다.  눈치없이 반색했다가 표정 바꾸려면 한참 고생해야하니까.

이럴 때 단도직입이 좋다. 거절했다.  "IT는 이제 안합니다. 물론 피해가려면 힘들다는 것도 잘 압니다. 모르는 건 안할랍니다. 그동안 모르면서 아는 척 살아왔습니다. 이십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면 단 하루도 연장할 필요는 없겠지요 ?" 상대방은 놀라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IT말고는 다른 여지를 보였던 적이 없으니까. 좀 장황하다싶게 몇마디 덧붙였다. "앞으론 내가 어떤 가치를 팔든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돈버는게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돈을 받고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IT는 아닌 것 같다."

몇번  그런 얘기는 했지만 대외적으로 이렇게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좀 조심스러웠다. 한번 얘기가 그렇게 돌면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나는 IT계에서 은퇴하게 될 것이다. 굳이 내놓고 얘기할 거 뭐있나? 그렇게 얘기하는 방식은 또한 나의 변화된 태도와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그래도 후련했다. 이렇게 한꺼풀 옷을 벗는게 아닐까.

여기저기 닿는대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때마다 목적지가 분명히 있었고, 가는 곳마다 사람이든, 목적물이든 항상 있었다. 그러니 방황이란 단어는 맞지 않는다. 사무실에 가서 후닥닥 카피를 하고, 현장에 가서 한시간 동안 중요한 몇가지 사항을 확인했다. 서둘러 나와 다른 현장에 가서 포장친 것들을 점검했다. 스타벅스에서 옛날 함께 일했던 후배를 만나 앞뒤도 안맞는 얘기를 중언부언했다. 이 양반이 왜 이러나 싶었을 게다. 말허리를 툭 자르고 걸어가다가 친구에게 전화했다.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번엔 커피빈에 가서 기다린다. 가방에서 좀전에 받은 문서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제 몇 안 남은 친구다. 성정이 즐겁고 명랑한 이 친구는 쉬지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던진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잘 받아줬는데 오늘은 영 버벅거리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인생이 이제 얼마 안남았다고 이 고생이냐며 놀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저비용구조의 생활방식에 대해 말하고, 사는 낙에 대해 두세 마디 나누고,  주위 사람들을 씹다가 벽에 붙였다가 다시 씹는 일을 한시간 쯤 반복했다. 아침에  이 친구부터 만났으면 그저 오늘도 편안하게 지나갔었을텐데.

밥을 얻어먹었다. 나는 얻어 먹는 걸 별로 안좋아한다. 올해들어 쓸데없이 밥사고 다니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까와서 그런게 아니다. 더불어 밥먹는게 불편해진 탓이다. 내동 얻어먹던 놈들도 낼 때가 되면 내는게 예의라고 한다만 솔직히 난 그런 얘길 하느니 차라리 혼자 밥먹을 것을 권한다. 밥을 누가 사느냐에 신경이 쓰이면 밥값이 허벌나게 싼 집으로 가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 굳이 함께 먹을 이유는 없다.  오늘 많이 먹었다. 양이 많이 준 게 확실하다. 말을 좀 줄였더니 빌어먹을! 많이 먹게 된다.

무척 피곤하다. 좀전에 10시쯤 됐는데 확 자버릴까 했다. 올해 들어선 아무리 늦게 자도 새벽에 눈이 딱 떠졌다. 그런데 달포전부터는 예전처럼 7시반이나 8시가 돼야 일어난다. 지금 자도 마찬가지겠지.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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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천둥의 신 토르가 망치를 되찾다


 

래컴, 토르천둥의 신 토르 Thor ▶
by 래컴 Arthur Rackham (1867-1939)
바그너 W.R. Wagner (1813-1883) 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
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중에서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고대 북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신들 중 하나인 천둥의 신 토르 Thor 가 그의 강력한 무기인 망치(!)를 신들의 적인 거인족에게서 되찾는 이야기랍니다. 건장한 체격, 붉은 수염, 불처럼 빛나는 눈을 지녔다는 토르의 모습은 오른쪽 그림에 잘 나타나 있죠.

    이 그림은 일러스트레이션의 대가 래컴이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 를 위해 그린 삽화들 중 하나입니다. 래컴의 "니벨룽의 반지" 일러스트레이션은 그의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뽑히며 잘 알려진 그의 동화 삽화들과는 달리 성숙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나중에 "시구르드" 전설을 제대로 다룰 때 래컴의 일러스트레이션을 더 소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토르가 망치를 되찾은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북유럽 신화에 대해 대략적으로 알아볼까요. 유럽인의 대부분은 크게 라틴어(語)파의 언어들을 사용하는 남유럽인, 게르만어파의 언어들을 사용하는 북유럽인, 그리고 슬라브어파의 언어들을 사용하는 동유럽인으로 나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라틴족의 대표적 신화라면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북유럽 신화는 게르만족의 대표적인 신화랍니다. 영어 또한 게르만어파에 속하기에 "베오울프 Beowulf" 같은 고대 영국의 영웅서사시에는 북유럽 신화의 영향이 나타나지요.

    그런데도 북유럽 신화가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또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유럽 학문과 예술의 중요한 원천이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게르만족은 4-5세기 경 남쪽으로의 대이동을 통해 서로마제국을 붕괴시키고 중세 시대를 열었으나, 로마 문화의 많은 부분을 이어받았습니다. 특히, 후기 로마의 국교가 된 크리스트교와 로마의 라틴 문자를 받아들였죠.

    따라서 중세 때 크리스트교 외의 신앙들이 배척되면서 북유럽 신화는 점차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라틴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던 그리스/로마 신화는 라틴 문자가 여전히 문화의 중심에 있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죠. 또 중세 말에 일어난 르네상스 운동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여겨 그것을 부활시키려는 운동이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그리스/로마 신화는 다시 부상한 반면, 북유럽 신화는 더 잊혀지게 되었습니다. 

래컴, 로키◀ 책략과 장난의 신(또는 거인) 로키 Loki
by 래컴 Arthur Rackham (1867-1939)
"니벨룽의 반지" 를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중에서


    유럽의 중심에서 이렇게 북유럽 신화가 잊혀질 동안, 그 전통은 북쪽 끝의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아이슬란드의 시인이며 학자인 스노리 스툴루손 Snorri Sturluson (1179∼1241) 의 시학詩學서 "에다 Edda"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스노리의 "에다"가 북유럽 신화의 전승에서 갖는 중요성은 그리스의 대표 시인 호메로스 Homeros (BC 800-750)의 "일리아스 Ilias" 와 "오디세이아 Odysseia", 그리고 로마의 대표 시인 오비디우스 Ovidius 의 "변신 Metamorphosis" 이 그리스/로마 신화의 전승에서 갖는 중요성과 견줄 만합니다.

    그후 17세기에 북유럽 신화가 담긴 8-11세기경의 서사시들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을 통틀어서 "옛 에다" 또는 "운문 에다 Poetic Edda" 라고 부르고 이에 대비하여 스노리의 에다를 "산문 에다 Probe Edda" 라고 부른답니다. 이 두 가지 에다와 그밖에 "사가 Saga" 라고 통칭되는 북유럽의 전통 문학을 통해 북유럽 신화는 전승되어 왔지요.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세련되게 다듬어져 있지 못한 반면에 소박하고 야성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정치적인 합리화와 교훈이 자주 등장하는 데 반해서 북유럽 신화에는 이런 것들이 거의 없죠.

    그리스/로마의 신들은 안정적으로 절대적인 지위를 누리지만 북유럽의 신들은 거인족과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며 종말의 때인 라그나뢰크 Ragnaroek 에 이르면 신들도 모두 멸망합니다. 이런 면에서는 북유럽 신화가 더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북유럽 신화는 전체적으로 담담하고도 강렬한 비장미를 띄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토르의 망치 이야기는 꽤 유머스러운 이야기랍니다. ^^ 이 이야기는 짤막한 이야기이지만 고대 북유럽에서 최고신 오딘 Odin 을 제외한 가장 중요한 신들, 즉 천둥의 신 토르 Thor, 풍요와 사랑, 아름다움의 여신 프레이야 Freya (또는 Freyja), 그리고 거인과 신의 중간적 존재이며 책략가이자 장난꾼인 로키 Loki 가 등장하고 또 그들의 성격이 단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주목할 만한 이야기이죠. 

포겔베르그, 토르토르 Thor ▶
by 포겔베르그 Bengt Erland Fogelberg (1786-1854)
스웨덴 국립박물관 소장


    오른쪽의 조각은 북유럽 신화의 본고장인 스웨덴 출신의 조각가 포겔베르그의 작품입니다. 북유럽의 신을 이렇게 그리스의 신처럼 고전주의적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죠?

    벼락를 상징하는 망치 묄니르 Mjölnir 는 천둥의 신 토르의 주무기입니다. 토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신들이나 영웅들처럼 멋있게 검을 휘두르거나 우아하게 활을 쏘는 대신 망치로 적의 머리통을 박살낸답니다... 박력있다고 해야할까요... -_-;; 이렇게 무시무시한 신이지만 그는 고대 북유럽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그는 전투적인 면에서 가장 강력한 신이며 신들과 인간들의 수호자이기 때문입니다. "에다"들을 보면 토르가 신들의 거주지 아스가르드 Asgard 를 떠나있을 때 다른 신들이 거인족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 그리고 토르의 망치가 신들을 지켜줄 유일한 무기라고 하는 것이 보입니다. 최고신 오딘의 아들로 되어있는 토르는 적어도 전투적인 면에서는 아버지보다도 더 강력한 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혜롭고 차분한 지도자로 나타나는 오딘과 반대로 토르는 성급하고 거칠고 단순하고 모험을 즐기는 활기 넘치는 신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고대 북유럽인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화학자들에 의하면 토르는 본래 오딘보다 오래된 원시적인 신이며 오딘이 귀족 전사들의 수호신인데 반해 토르는 소박한 농민의 수호신이었다고 합니다.

    토르는 망치 외에 두 가지 보물을 더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망치를 휘두를 때 끼는 쇠장갑이고 나머지 하나는 매면 힘과 덩치가 배가 되는 허리띠입니다. 그가 염소 두 마리가 끄는 전차를 타고 하늘을 날면 폭풍우가 일고 천둥번개가 치게 된다고 합니다. 자, 그럼 토르가 망치를 되찾은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어느날 아침 토르는 잠에서 깨어 그의 강력한 망치 묄니르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이 마구 떨릴 정도로 흥분했다. 그는 로키에게 망치를 도둑맞았다고 말하고는 함께 프레이야에게 갔다. 그녀에게 망치를 찾아볼 수 있도록 깃털옷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선뜻 빌려주었다.

    깃털옷은 프레이야의 보물 중 하나로 이것을 입으면 매로 변하여 날 수 있었다. 거인족이 그 망치를 가져갔을 것이라고 짐작한 로키는 깃털옷을 입고 신들의 나라 아스가르드 Asgard 를 떠나 거인들이 사는 땅으로 날아갔다. 



리, 아스가르드◀ 아스가르드 Asgard (1984)
by 리 Alan Lee (1939-)


    북유럽 신화에서 거인들은 신들의 적이자 경쟁자입니다. 하지만 태초의 존재 위미르 Ymir 는 신이 아니라 거인이며 나중에 나타난 최초의 신과 거인의 자손이 결합하여 최고신 오딘이 태어났습니다. 오딘은 위미르를 죽여서 그 시신으로 세계를 창조합니다. 이때 위미르의 자손 거인들은 거의 다 위미르가 흘린 피에 빠져 죽었고 한 쌍의 거인 부부만이 살아남아 동쪽으로 도망쳤습니다. 따라서 이 거인 부부의 자손들과 신들은 원수지간이죠.

    여기에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올림포스 Olympos 신들에 앞서 거대한 티탄 Titan 신족이 먼저 탄생했고 올림포스 신들은 이 티탄 신족에게서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올림포스 신들은 티탄 신족 또 그들에게서 나온 거인족 기간테스 Gigantes 와 세계의 지배권을 놓고 전쟁을 벌입니다. 단 올림포스 신들의 경우에는 이들을 완전히 제압했다는 점에서, 거인들을 일단 퇴치했으나 그들을 도전을 계속해서 받아야 하는 북유럽의 신들의 경우와 다릅니다.

    북유럽 신화에서 거인들은 인간들이 사는 "중앙의 나라" 즉 미드가르드 Midgard 의 바다 건너 동쪽, 얼음과 서리로 덮인 험준한 땅 외툰헤임 Jötunheim 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신들의 거주지 아스가르드 Asgard 는 미드가르드의 위쪽이며 우주를 꿰뚫는 거대한 나무 위그드라실 Yggdrasil 의 줄기 위에 있다고 하죠.

    아스가르드는 "아스 As 의 나라" 라는 뜻이죠. 고대 북유럽의 신들은 아스(복수형 애시르 Æsir )와 바나 Vana(복수형 바니르 Vanir)의 두 가지 신족으로 나뉜답니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 신족과 거인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이그드라실을 주제로 한 칼럼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그나저나 북유럽 신화의 여러 이야기로 미루어 볼 때 태초의 위미르를 제외한 거인들은 신들과 그다지 체격의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고 그저 어느 정도 큰 정도였던 것같습니다


     거인들의 왕인 트림 Thrym 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자신의 사냥개와 말을 돌보고 있다가 로키를 발견하고 물었다. "애시르는 잘 있소? 무슨 일로 거인들의 나라에 온 거요?" "잘 있지 못합니다. 당신이 토르의 망치를 숨겼나요?" "그렇소, 내가 토르의 망치를 땅속 깊이 숨겼소. 프레이야를 내 신부로 여기 데려오지 않으면 아무도 그 망치를 얻지 못할 거요."

    로키는 아스가르드로 돌아가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토르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들은 다시 프레이야에게 서둘러 갔다. "프레이야, 신부의 아마포를 걸쳐요! 우리 거인들의 땅으로 갑시다." 그러자 프레이야는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화를 냈다. 그녀의 격노로 온 홀이 흔들리고 그녀의 목걸이 브리싱가멘 Brisingamen 이 끊어질 정도였다. "내가 세상 누구보다도 남자에 미친 여자가 되지 않고서야 거인들의 나라로 가겠어요?"

    그러자 애시르의 모든 신들이 서둘러 모여서 어떻게 하면 토르의 망치를 되찾을지 의논했다.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를 잇는 무지개의 다리 비프로스트 Bifrost 를 지키는 신 헤임달 Heimdall 이 이렇게 예언했다. "우리는 토르에게 신부의 아마포와 브리싱가멘를 걸치게 할 것입니다. 그가 여자옷을 입고 신부의 보석으로 머리와 가슴을 치장하게 합시다."

    토르는 그 짓은 차마 못하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로키가 망치를 되찾지 못하면 거인들이 아스가르드를 점령할 것이라고 말하자 마침내 토르는 신부 의상을 입은 프레야로 변장했다. 로키는 시녀로 변장했다. 


래컴, 프레이야풍요와 사랑, 아름다움의 여신 프레이야 Freya ▶
by 래컴 Arthur Rackham (1867-1939)
"니벨룽의 반지" 을 위한 일러스트레이션 중에서


    여기서 프레이야에 대해 잠깐 알아볼까요. 북유럽 신화의 주요 신들이 대부분 아스 신족인데 반해서 그녀는 아버지인 니외르드 Njörd, 오라비인 프레위르 Freyr 와 함께 바나 신족에 속합니다. 초기에 애시르와 바니르는 전쟁을 벌일 정도로 반목했었는데, 이후 화해하면서 이들 가족이 인질 교환 형식으로 아스가르드에 온 것이죠. 그들은 자연스럽게 애시르의 일원이 되어 아스가르드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애시르 신들이 음울하고 파괴적인 면이 강하다면 바니르 신들은 밝고 생산적인 면이 강합니다. 주인 Lord 을 뜻하는 이름의 프레위르와 여주인 Lady 을 뜻하는 이름의 프레이야는 둘다 풍요를 관장합니다. 또 프레이야는 아름다움의 여신답게 음악과 꽃을 좋아하고 알프헤임 Alfheim 에 살고 있는 빛의 요정들을 아낀다고 합니다.

    또 사랑과 풍요의 여신답게 그녀는 매우 자유분방한 생활을 합니다. 그녀에게는 수많은 신, 인간, 요정 연인들이 있으며, 때로는 난쟁이족과도 정사를 가졌습니다. 그녀의 특별한 목걸이 브리싱가멘 Brisingamen 은 브리싱족 Brisingar 의 네 명의 난쟁이들과 동침하고 선사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_- 그런 그녀도 신들의 적인 거인만은 싫었던 모양이죠? 아니면 결혼해서 매이는 것이 싫었든지... ^^;;

    그러나 이 바람둥이 여신에게도 순정파적인 이야기가 있답니다. 프레이야에게는 원래 오드 Od 라는 남편이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찾아 전세계를 헤메고 다녔는데, 이 때 흘린 눈물이 바위에 스며들어 순금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금을 “프레이야의 눈물” 이라고 부른다죠. 오드라는 이름이 최고신 오딘과 흡사하고 또 프레이야 또한 오딘의 아내 프리그 Frigg 와 이름이 비슷하기에 프레이야는 종종 오딘의 아내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사랑의 여신인 반면에 전투를 즐기는 전쟁의 여신이기도 했습니다. 전쟁터에서 죽은 용사들의 절반은 오딘의 전당인 발할라 Valhalla 로 가고 나머지 절반은 프레이야의 전당인 폴크방가르 Fólkvangar 로 간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프레이야는 메소포타미아의 여신 이슈타르 Ishtar 와 닮은 점이 참 많습니다. 풍요, 사랑, 아름다움과 동시에 전쟁을 관장하는 여신이라는 점, 자유분방한 연애 편력에 격렬한 성격이라는 점, 그러나 소중한 연인을 찾아 세상을 헤메기도 한다는 점 등등... (이슈타르에 대해서는 12호 칼럼 "이슈타르, 사랑과 전쟁의 여신"을 참고하세요.) 그럼 이야기로 돌아가죠.


    그들은 토르가 타는 염소가 끄는 전차를 타고 하늘을 날았다. 토르가 거인들의 땅으로 가자 화산들이 폭발하고 대지는 갈라져 불꽃을 냈다. 그러자 트림은 거인들에게 외쳤다. "모두 일어나서 자리를 마련해라! 나의 아내가 될 프레이야를 모셔와라. 모든 부와 보물을 가지고 있는 내게 없는 것은 오직 프레이야뿐이다."

    만찬이 시작되자, 프레이야로 변장한 토르는 황소 통째로 한 마리, 연어 여덟 마리와 그밖에 날라진 모든 음식들을 먹어치우고 벌꿀술 세 통을 마셨다. 놀란 트림은, "신부가 저렇게 많이 먹는 걸 본 적도 없고 아가씨가 저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것도 본 적이 없어," 라고 말했다. 그러자 시녀로 변장한 로키가 재빨리 대답했다. "프레이야님은 거인들의 나라로 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시느라 여드레 동안 아무 것도 드시지 않았답니다."

    그러자 트림은 프레이야에게 키스하고 싶어서 신부의 베일 밑을 엿보다가 뒤로 펄쩍 뛰었다. "왜 프레이야의 눈이 저렇게 무섭지? 불처럼 이글거리는군!" 이번에도 로키가 재빨리 대답했다. "프레이야님은 거인들의 나라로 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시느라 여드레 동안 한숨도 못 주무셨답니다."


    로키는 언제나 꾀가 많고 임기응변이 강한 인물로 나타납니다. 그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거인이나 최고신 오딘과 형제의 연을 맺고 애시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짖궂은 장난으로 신들을 괴롭히기도 하고 기지로 신들을 도와주기도 하는 로키는 대표적인 트릭스터 Trickster (양지와 음지의 중간적 존재이며 장난과 속임수 등으로 질서를 교란시키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점점 도가 심해져 나중에는 오딘의 아들 빛의 신 발드르 Baldr 를 죽게 하고 라그나뢰크에는 신들에 맞서는 존재가 됩니다. 로키에 대해서는 발드르의 죽음에 대한 칼럼에서 더 자세히 다루게 될 것입니다. 


레지, 토르◀ 프레이야로 변장한 토르가 외툰하임에서
눈의 거인을 죽이다 (1997)
by 아눕 레지 Anup Rej
캔버스에 유채, 194 x 162 cm


    그때 거인의 여동생이 들어와서 신부의 선물을 달라고 졸랐다. "시누이의 사랑을 원하신다면 부디 새언니 팔에 있는 불그스름한 금으로 만든 팔찌를 제게 주세요." (아마도 신부가 시집오면 시누이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었나 보죠?) 그러자 신부에게 줄 선물이 생각난 트림은 "신부를 축복하기 위해 그 망치를 가져와라. 묄니르를 그녀의 무릎에 놓고 우리를 부부로 축복해라."

    토르는 망치가 그의 무릎 위에 놓이자 속으로 껄껄 웃었다. 그는 망치를 쥐고는 우선 트림을 쳐죽이고 거기 있던 그의 친척 거인들을 모조리 쳐죽였다. 신부의 선물을 졸랐던 트림의 불쌍한 누이도 선물 대신 망치 휘두름을 받아 죽고 말았다. 이렇게 토르는 그의 망치를 되찾았다.



    위의 그림은 5년 전쯤에 서울에서 북유럽 신화를 주제로 한 전시회를 가졌던 노르웨이의 물리학자이자 아마츄어 화가인 아눕 레지의 작품입니다. 당시 그의 부인이 노르웨이 대사여서 그는 한국에 머물고 있다가 한국-노르웨이 문화교류의 일환으로 이 전시회를 열었다고 해요. 그때만 해도 북유럽 신화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이 전시회는 신선한 인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토르가 프레이야로 변장한 모습은 잘 상상이 안 가는군요.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여장한 것 같지 않을까요? ^^



Moon의 미술관 속 비밀도서관
http://ncolumn.daum.net/isis177
(제 친구의 언니가 하시는 사이트입니다. 볼 거리가 꽤 많으니 한번 가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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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tella.K > Rafal Olbinski - 공연포스터


 

 

 

 

 

 

 

 

 

 

 

 

 

 

 

 

 

 

 

 

 

 


 

 

 

 

 

 

 

 

 

 

 

 

 

 

 

 

 

 

 

 

 

 

 


 

 

 

 

 

 

 

 

 

 

 

 

 

 

 

 

 

 

 

 

 

 

 

 


 

 

 

 

 

 

 

 

 

 

 

 

 

 

 

 

 

 

 

 

 


 

 

 

 

 

 

 

 

 

 

 

 

 

 

 

 

 

 

 

 

 


 

 

 

 

 

 

 

 

 

 

 

 

 

 

 

 

 

 

 

 

 

 


 

 

 

 

 

 

 

 

 

 

 

 

 

 

 

 

 

 

 

 

 


 

 

 

 

 

 

 

 

 

 

 

 

 

 

 

 

 

 

 

 

 

 

 

 

                                                                                    
      

 

 

 

 

Rafal Oblinski 

TIME 이나 Newsweek 에서 가끔 표지를 사진이 아닌 일러스트로 할 경우, 그에게

맡길 정도로 최고로 인정받는 일러스트레이터. 

출처: http://blog.naver.com/anec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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