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사모으고, 두서없이 그 책들을 읽기 시작한 게 벌써 이년쯤 된다. 작심하고 공부했으면 일가까진 몰라도 웬만한 경지엔 올랐을게다. 그래도 후회는 안한다. 애시당초 이것으로 뭘 해보려는 의도따윈 없었다. 그저 좋았기 때문에 손에서 놓지는 않았으되 언제나 슬렁슬렁댔다. 그 덕에 여전히 그림을 보면 이게 누구 그림이더라, 제목이 뭐였지 라는 질문엔 항상 대답이 아리송하다. <언젠가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기가 막힌 붓놀림이야.> <이 미소는 무슨 의미일까 >등의 대책없는 아마추어적 감탄이 먼저다.
삼년쯤 됐나. 난생 처음 큐레이터라는 명함을 건넨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다. 동원의 소개로 만나 여럿이 밥도 같이 먹었다. 그녀가 나에게 물어주기를 기다리다가 내가 먼저 물었다.. <제가 어떤 작가를 좋아할 것 같나요?> 갑자기 황당한 질문을 받은 그녀는 <글쎄요, 인상파 화가 쪽 같은데...> 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그림보는 맛을 처음 들이고 있던 나는 <들라클루아>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웃으며 끄덕거렸다. <인상파가 아니라면 아마 그쪽 이겠다 싶었어요.>
그림의 출발은 서사였다. 추상과 모던은 내게 아직 멀게만 느껴졌다. 신화는 평범했고 인물엔 무관심했다. 들라크루아와 다비드의 혁명가적 화풍, 베라스케스, 고야의 스페인 특유의 악마성에 전율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예상대로 인상파로 넘어왔다. 누구나 처럼 고호와 고갱, 모네와 마네, 르누아르, 드가 그리고 쇠라와 시냑으로 이어지는 점묘파의 그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연장선으로 쿠르베, 로트렉, 세잔으로 넘어왔고, 앵그르, 부셰, 프라고나르 같은 로코코와 신낭만주의로 되짚어 돌아가기도 했다. 렘브란트의 굴곡많은 인생역정을 담은 자화상들과 가장 행복했던 화가 루벤스의 그림도 좋았다. 카라바조와 엘그레코, 보티첼리의 <프리마베라><비너스의 탄생>을 베껴 그렸다. 도나텔로, 미켈란젤로, 베르니니, 카노바, 로댕으로 이어지는 조각정신의 뿌리를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화집에서 좋은 그림을 만나면 <내일은 좋은 일이 있으려나>하며 즐거워했다. 인터넷에서 사이즈가 큰 그림을 우연히 만나 모니터 가득히 열어놓고 살피노라면 시간가는줄 몰랐다. 보는 것 만으로 참지 못해 서툰 손짓으로 스케치북에 모사했다가 조금 비슷이라도 하면 좋아서 헤벌쭉 웃기도 했다. 얼마전에는 차라리 미대 대학원을 갈까 주책없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로 그림에 대한 애착은 조금씩 깊어졌다. 그러다 문득 특정한 화가 몇몇에 대해 내가 쏟는 각별한 눈길을 의식하게 됐다.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들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에겐 다중지능이란 게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지능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실제로는 매우 다양한 영역의 지능이 있다는 것이다. 누가 내게 보내준 파일을 열어서 십여분 작성하고 계산했더니 이른바 나의 지능영역이 우선순위대로 뽑혀 나왔다. 언어영역이 첫번째라는 건 그대로 납득할 만하다. 그림을 좋아한 덕분에 그 다음순위는 공간지능. 그리고 동점으로 자기성찰지능이 뽑혔다. 오호! 자기성찰이라.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그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올해 내내 그 문제에 집착했으니 그럴만도 하지. 그 다음 순서가 나로서는 뜻밖이다. 하기야 몇년 전만해도 이것이 맨 앞으로 안나간 게 외려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게다. 그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자신만만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제 네번째로 뽑힌 것만으로도 의외라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 뭔가 변해도 단단히 변한 모양이다.
<인간친화지능>이란 말이 낯설게 느껴질 만큼 나는 인간과의 친화에 부정적, 회의적, 소극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좋게 지내는, 누구나 그만큼은 하는 정도라면 굳이 이런 개념어를 쓰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불신의 뿌리는 알고 보면 제법 그 연원이 오래됐다. 대학에 낙방하고 재수생이 됐을 때, 사람에 대한 유아적 호의에서 벗어나 비로소 액면 그대로 보게 됐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비로소 제대로 된 불신을, 그것도 수시로 경험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대단히 정치적이고 능수능란한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나는 겉 똑똑이에 불과한 바보였다. 한번 믿으면 무모하게 끝까지 마음을 주는 것도 그렇고, 의리와 충성심, 약속 같은 결코 신뢰해선 안되는 미덕을 맹신하고 집착했다. 철석같이 믿었던 선배들에게 두번 배신당했다.(그들은 아마 내가 배신했다고 생각할게다.) 후배들에게 고비맏 연거푸 뒷통수를 맞았다. 오래동안 가까왔던 사람들도 어떤 계기로든 연락을 끊거나 멀리 떠났다. 그들을 원망하거나 괘씸해하거나 붙잡지 않았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좀 우습게 생각했다. 그러면서 무수한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 그 빈자리를 메꿔갔다. 그 악순환은 내겐 일상처럼 반복됐다.
멈춰서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사람 사귐을 중지하자, 즉 인풋을 멈추자마자 로스가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몇가지 깨달음을 갖게 됐다.
우선 나는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이기적이다. 인간관계가 자기중심적이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나를 중심에 놓지 않는 관계는 내 관심대상이 아니었다. 그동안 관계에 대해 내가 과도하게 책임을 지려했던 이유를 알게 됐다. 그건 선의에서 나오는 책임감이 아니라 이기적 집착이었다. 그런 책임감은 곧바로 상대를 질리게 하고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둘째, 그러면서도 공손하지 않았다. 시건방지게 행동했거나 적어도 그렇게 느끼게 했다.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고 말하려고만 했다. 배우기보다 가르치려 했다. 그럴 수 없는 관계, 즉 나이가 많은 장로들과는 가급적 마주 앉는 기회를 줄였다. 그들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들은 경륜으로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전혀 존경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결국 나는 <노인네들한테 얼마나 잘하는데 그 양반들은 하나같이 왜 날 미워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불평하게 됐다.
세째, 인간관계를 절대로 관리하지 못한다.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대체로 호감을 느낀다고 한다. 말빨도 끝내주고 유머러스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나는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대체로 무관심하다. 가끔 한두명 눈에 뜨일 만큼 강한 매력과 개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 시큰둥하다. 그 자리에서는 매우 사교적으로 대하지만 이름을 계속 기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내가 주도해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 그런 일은 하기 싫어한다. 웬만큼 참을성이 강하고 내게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관계를 지속할 리가 없다. 일년이 가고 오년, 십년이 가서 이제는 새삼 전화를 걸어 안부조차 묻기 어려운 관계로 바뀌고 말았다.
이 세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인간친화>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게 됐다. 그리고 인간친화라는 말을 사교적이라거나, 사람관리를 잘 한다거나 하는 기술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나의 문제점을 알게 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보는 안목도 조금씩 깊어진다는 것을 안다. 이 세상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나뉘어있지 않다. 좋은 사람이 얼마든지 나빠질 수 있으며, 나쁜 사람이라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건 아니다. 즉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이중적, 다중적일 수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그래서 서로에게 합당하지 않은 신뢰와 편견을 갖는 것은 관계를 악화시키는 치명적인 자세다. 잡는다고 떠날 사람이 주저앉을 리도 없고, 그렇게 영원히 앉아있을 리도 만무하다. 서로 부담스런 부채감만 있을 뿐이다. 즉 무리하게 설득하거나 종용해서도 안되고, 그럴 필요조차 없다. 다만 공손하게 들어주는 자세로 일관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부담스럽지 않은 최소한의 관계유지는 꼭 하는게 옳다.
글쓰기를 좀 오래 쉬어서 그런지 애당초 쓸 생각이 아니었던 얘기가 끝도 없이 주절주절 이어진다. 원래는 그림보기 3년여만에 내눈이 좋아하고 내 마음이 흐뭇해하는 그림들이 서서히 구분되고 있단 얘길 하려고 했었다. 이미 때는 늦어 돌이킬 수 없지만 아무려면 어떠랴. 누가 읽어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글을 깔끔떨며 다듬는 결벽주의자도 아니니 나오는대로 얘기하고 힘들면 다음에 이으면 그만인 것을.
에곤실레 앵그르 르페브르 워터하우스 엘마-테디머 시펜 르동 모로 베르메르 부그로 베트리아노
이들이 사조적으로 어떻게 분류되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하나같이 탐미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작가들로 보인다. 이들이 그린 여체는 살냄새가 진하다. 실레의 여인들은 창백하고 포르말린액의 냄새가 난다. 앵그르와 르페브르, 부그로의 여인들은 목욕하고 나온 여인들의 훈훈한 체온이 느껴진다. 특히 르페브르의 경우는 나도 몰래 손이 갈 정도로 몽환적이다. 해변에 서있는 여인을 불러보라. 그녀의 가슴은 곧 신화의 한 장면이다. 그런가 하면 시펜이 그린 중국여인은 캔버스에 옮겨진 장만옥이다. 화양연화에서 보였던 나른하면서도 고혹적인, 무심하면서도 대단히 도발적인 여인이 등장한다. 워터하우스나 엘마-테디마는 모두 신화적, 역사적 모티브를 따왔지만 씬에 파고드는 힘은 엘마-테디마가 앞선다. 한마디로 집요하고 저돌적이다. 그 진정성과 디테일을 따라올 자 없다. 르동은 다른 이들과는 다른 독특한 영역의 그림이다. 파스텔적이고 원색적이다. 그래서 더 몽롱하다. 예수와 부처, 천사들, 몰락한 신, 흩날리는 꽃잎 등이 꿈처럼 명멸한다.
베르메르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서사적 낭만주의, 신고전주의에 취해있을 때 나를 유럽 근대화풍으로 유인해온 장본인이 바로 베르메르다. 소설<진주목걸이를 한 소녀>를 읽고나서 그의 매력은 더욱 강렬해졌다. 워낙 과작이기도 했지만 그의 그림이라면 부지런히 갈무리를 해서 아마 거의 다 있지 않나 생각된다. 비록 고물PC의 하드디스크에 담겨있지만 말이다. 여인들과 벽에 걸린 지도, 몇가지 악기들, 고풍스런 패브릭. 그리고 그것에 생명을 전해주는 빛. 그 빛의 섹시함에 대해 감탄할 뿐이다. 그는 진정 빛을 다룰 줄 아는 몇 안되는 화가였다.
베트리아노는 적어도 그림으로만 본다면 1차대전 전후, 즉 <불의 전차>의 시대적 배경이 됐을 만한 때의 미국, 그것도 뉴욕의 남녀를 데리고 온 듯하다. 신사숙녀복을 루틴하게 차려입은 등장인물들은 그러나 몹시 퇴폐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독한 남녀들.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눈을 들여다 볼 수 없는 남자들. 어쩌면 당시 뉴욕은 이렇게 익명성으로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꿈과 좌절이 들끓고 있는 곳이었나 보다.
나의 그림창고가 계속 업데이트 되는 동안은 새로운 화가의 명단들이 추가되거나 지금의 화가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를 기다리는 역사속의 화가를 찾기 위해 인연의 끈을 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