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럽다.  비위가 약해서 걸핏하면 얹히거나 울렁거린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일도 없는데. 현깃증이 아침부터 잊을 만 하면 한번씩 사르르 찾아온다.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나섰다. 차를 타고 서울로 가면서 여러통의 전화를 했다. 지난 8개월동안 이렇게 계속 전화를 걸어댔던 적은 없었다. 허전해서 그런가. 뭐가 허전하지?

뻔한 안부 허황된 웃음 하나마나한 얘기 언제 소주나 한잔 하자는 상투적인 작별인사. 그렇게 여나믄 명과 통화했다. 피곤하다. 눈앞이 핑 돈다. 그리고 나서 말문을 닫았다. 내릴 곳 근처에 왔을 때 택시기사에게 돈을 내밀었다. 기사가 속도를 줄이자 문을 열었다. 눈치빠르게 차가 멈췄다.

사람들은 내가 어디서 뭔가를 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한단다. 누가 그렇게 얘기했을 때 픽 웃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대충 옳았던 것 같다. 일주일새 두군데서 일해보자고 전화가 왔다. 고마웠다. 나를 기억해주니 감사했다. 조건을 자세히 들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 같다. 그 정도면 딱 좋은거다. 아주 좋은 것엔 항상 아주 곤란한 조건이 따라붙게 마련. 상대가 쭈뼜거리며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경험으로 그 정도는  알고 있는게 좋다.  눈치없이 반색했다가 표정 바꾸려면 한참 고생해야하니까.

이럴 때 단도직입이 좋다. 거절했다.  "IT는 이제 안합니다. 물론 피해가려면 힘들다는 것도 잘 압니다. 모르는 건 안할랍니다. 그동안 모르면서 아는 척 살아왔습니다. 이십년을 그렇게 살아왔으면 단 하루도 연장할 필요는 없겠지요 ?" 상대방은 놀라는 표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IT말고는 다른 여지를 보였던 적이 없으니까. 좀 장황하다싶게 몇마디 덧붙였다. "앞으론 내가 어떤 가치를 팔든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돈버는게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돈을 받고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IT는 아닌 것 같다."

몇번  그런 얘기는 했지만 대외적으로 이렇게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좀 조심스러웠다. 한번 얘기가 그렇게 돌면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나는 IT계에서 은퇴하게 될 것이다. 굳이 내놓고 얘기할 거 뭐있나? 그렇게 얘기하는 방식은 또한 나의 변화된 태도와는 거리가 있지 않은가. 그래도 후련했다. 이렇게 한꺼풀 옷을 벗는게 아닐까.

여기저기 닿는대로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때마다 목적지가 분명히 있었고, 가는 곳마다 사람이든, 목적물이든 항상 있었다. 그러니 방황이란 단어는 맞지 않는다. 사무실에 가서 후닥닥 카피를 하고, 현장에 가서 한시간 동안 중요한 몇가지 사항을 확인했다. 서둘러 나와 다른 현장에 가서 포장친 것들을 점검했다. 스타벅스에서 옛날 함께 일했던 후배를 만나 앞뒤도 안맞는 얘기를 중언부언했다. 이 양반이 왜 이러나 싶었을 게다. 말허리를 툭 자르고 걸어가다가 친구에게 전화했다.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이번엔 커피빈에 가서 기다린다. 가방에서 좀전에 받은 문서를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이제 몇 안 남은 친구다. 성정이 즐겁고 명랑한 이 친구는 쉬지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던진다. 지난번까지만 해도 잘 받아줬는데 오늘은 영 버벅거리고 있다. 그는 이번에도 인생이 이제 얼마 안남았다고 이 고생이냐며 놀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저비용구조의 생활방식에 대해 말하고, 사는 낙에 대해 두세 마디 나누고,  주위 사람들을 씹다가 벽에 붙였다가 다시 씹는 일을 한시간 쯤 반복했다. 아침에  이 친구부터 만났으면 그저 오늘도 편안하게 지나갔었을텐데.

밥을 얻어먹었다. 나는 얻어 먹는 걸 별로 안좋아한다. 올해들어 쓸데없이 밥사고 다니지 말자고 다짐했다. 아까와서 그런게 아니다. 더불어 밥먹는게 불편해진 탓이다. 내동 얻어먹던 놈들도 낼 때가 되면 내는게 예의라고 한다만 솔직히 난 그런 얘길 하느니 차라리 혼자 밥먹을 것을 권한다. 밥을 누가 사느냐에 신경이 쓰이면 밥값이 허벌나게 싼 집으로 가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먹고 싶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 굳이 함께 먹을 이유는 없다.  오늘 많이 먹었다. 양이 많이 준 게 확실하다. 말을 좀 줄였더니 빌어먹을! 많이 먹게 된다.

무척 피곤하다. 좀전에 10시쯤 됐는데 확 자버릴까 했다. 올해 들어선 아무리 늦게 자도 새벽에 눈이 딱 떠졌다. 그런데 달포전부터는 예전처럼 7시반이나 8시가 돼야 일어난다. 지금 자도 마찬가지겠지.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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