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뒤늦게 문리가 트인다 싶을 때가 있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그림일기를 왜 쓰라고 했는지>를 깨달았으니 이게 희희낙락할 일인지, 만시지탄인지 잘 모르겠다. 대개 학동들이 그림에 넌덜머리를 내는 가장 치명적인 계기는 밑도 끝도없이 강요되는 그림일기 때문이다. 동네방네 벽이란 벽엔 온통 낙서와 만화로 도배질하던 아이들이 <나는 그림에 절대 소질없어>라고 외면하게 만드는 원흉이 바로 그놈의 그림일기다.
지금도 똑같은 양식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전엔 누런 종이에 반을 갈라 밑에는 몇줄의 글을 쓰고 위엔 그림을 그리게 돼있었다. 그림칸은 크게 그리자면 좁고, 작게 그려놓으면 메꿔야할 공백이 많은 일종의 계륵같은 것이었다. 그러자니 고작 한가지 사건 (그래봐야 수박먹거나 친구와 축구하거나, 있지도 않은 토끼에게 풀을 주었다거나 하는 감동 전혀없는 일상이 단골로 등장할 수 밖에 )을 무성의하게 칠해던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림일기는 그렇게 한심하게 그릴게 아니었다. 독일식 글쓰기(그렇게 부르기로 했다.)에서는 초고 또는 시놉시스를 그림이나 이미지로 정리함으로써, 글이 엇나가거나 삼천포로 새는 일을 막고 <내가 왜 이글을 쓰기로 했던가>를 잊지않게 만들어주는 틀마름이로 그림일기 형식을 권하고 있다.
오늘은 내가 그것을 한번 시험해볼 작정이다. 나는 앞으로 미술공부를 열심히 해서 우리나라 미술계를 더욱 멋지고 품위있게 발전시키는데 일조하려고 한다. 그림일기의 제목은 잠정적으로 <신이 내게 주신 특권>으로 정했다. 그 배경은 이 글의 말미에 따로 적을까한다.
단도직입으로 시작하자면, 나는 미술 작품(그림, 조각, 사진, 건축 등)을 많은 사람들에게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하는 일을 하고 싶다. 작금의 미술잡지 몇권을 뒤적거려보니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미디어로서 어처구니없는 이율배반적 행동, 즉 애호가나 동조세력의 엉덩이를 걷어차 미술계 금밖으로 내쫓아버리는 짓을 하고 있는 듯하다. 적어도 기사만 봐서는 기자들이 작품을 볼 줄도, 느낄 줄도 모르는 것 같다. 작가분석에선 더욱 캄캄하다. 미디어만으로도 그 업계의 수준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지금 미술계는 인정받는 지도구심도 없고, 이렇다할 원칙도 없으며, 뭐니뭐니해도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어쨌든 나같은 사람, 내 친구 부부같은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미디어를 만들고 싶다. 내 추천에 권위를 얹어주고, 내 말을 귀담아 듣고 한푼두푼 모아 작품을 구매하며, 자기 아이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애쓰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글쓰기를 하고 싶다. 한달에 한두번 그림구경하러 모일 때 앞장서는 사람들, 일년에 한두번 준비하는 해외 뮤지엄투어엔 꼭 참석하려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사람들은 그런 일을 누군가 해주길 원한다. 내가 과연 그 바램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신은 그 일에 필요한 재주를 나에게 허락했을까? 내 안에 그만한 탤런트가 있는 것일까? 몇몇 사람들은 재미와 사명감은 있으되 돈이 될 것 같진 않으니 각오하란다. 당장은 그러리라고 나도 짐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둘씩 모여 그 수가 천을 넘고 만을 건너면 제법 밥술을 먹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일하기 즐거울 만큼만 돈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적어도 이 영역에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성공의 척도는 아닐 듯. 이제 돈을 좇아 일하는 잘못은 되풀이하지 않겠다.
국내 미술시장규모가 1천억이라고 한다. 많이 놀랐다. 웬만한 중견회사 매출도 그만은 할텐데. 허장성세라더니 많이 부풀려진 것 같다. 하지만 시작이 미미한 일을 도모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알만한 길이라 한결 자신있다. 앞길이 훤히 보이고 평탄하기만 한 길을 갔던 사람들은 잘 모를거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가는 길도 훨씬 힘들었지만 내 영역을 한뼘씩 부지런히 넓혀가고,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일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그때 경험을 대입해보면 아마 이런 양상으로 가지 않을까.
국내 미술계가 답답하게 정체돼있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어떻든 기존 동력만으로는 활성화되기가 불가능할 게다. 선수들의 시야가 좁고 그간의 얽히고 설킨 편협한 인간관계로 서로 발목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큰 일을 도모할 수 없다. 일상적인 피곤과 자신감 결핍, 현실적 역량부족으로 단한발자국의 진전조차 힘겨운 상황이기 쉽다.
IT도 그랬고, 디자인도 그랬다. 전혀 다른 성분의 활성촉매가 들어가지 않으면 자기들끼리 화학반응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쪽의 터줏대감으로 알려진 사람들은 자기 자리때문에 한마디씩 나서서 하지만, 막상 실행에 들어갈 땐 종적이 묘연해진다. 1%의 실패확률때문에 자기자리가 미동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결국 말만 많고 일은 전혀 안되게 만든다.
IT는 <매체>라는 촉매가 주효했다. 적극적인 프로파간다로 동조세력, 추종세력을 넓혀갔고, 구심세력들의 명분과 실리를 보호해주었다. 디자인은 카운터파트의 격상, 즉 그동안 실무자 레벨의 접촉에 머물렀던 위상을 <CEO의 전략적 고민을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부터 시작했다. IT는 조선일보라는 메이저가 차세대 주력아이템으로 지목하면서 언론계에 실로 가공할 연쇄폭발을 유도해냈다. 문민정부의 세계화 캠페인과 국가전략산업의 모색에 가장 적합한 아이템으로 IT가 낙점되면서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됐다. 디자인은 단순한 디자인 제작에서 벗어나 CI와 광고, 기업전략기획을 포괄하는 전문역량을 묶어 투입힘으로써 초창기 비약적인 도약이 가능했다.
그러나 디자인계의 천박한 개인주의적 사업작풍과 기대이하의 무지함때문에 산업화로의 성공 가능성은 금방 좌절되고 말았다. 장담컨데 한국의 디자인은 탈출구를 스스로 막아버렸다. 디자인에서의 이같은 실패는 미술계의 향후 전망을 가늠하는데 매우 유의미한 아젠다를 던지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 당시 IT나 디자인 모두 당대 사회의 핵심사안에 관한 참신한 담론을 갖고 있었고, 기업이나 국가의 고민을 능히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솔루션을 제시했다.
앞으로 10년, 20년동안 우리 시대가 안게될 아젠다는 무엇일까? 그 아젠다에 대해 미술은 어떤 메시지, 어떤 담론을 낼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떤 세력이 그 중심에 있을 것이며, 그들은 어떻게 리더십을 확대 강화해갈 것인가? 대중의 동조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 그들의 이해관계망에서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영역을 넓혀갈 수 있을지 질문이 꼬리를 문다.
연구소를 조그맣게 열어 근거지를 만들어볼란다. 글을 쓰고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사람들을 넓게 만나려면 강남이나 홍대앞 등에 내는 것이 좋겠다. 연구원을 두세사람 뽑아서 매체 작업 준비를 한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되 일단 자료를 풍부하게 올려놓는다. 작품소개와 작가소개, 추천, 칼럼, 화랑탐방 등 매거진의 기본 형태를 갖춘다. 온/오프라인 프로모션을 통해 네트워크를 확대한다. 핵심회원 5백명(기부회원), 방문회원(5천명)을 목표로 한다. 매주 한번씩 화랑을 선정해 갤러리 워크를 한다. 화가를 소개하고 아틀리에를 방문하거나 함께 식사를 한다. 일년에 한두번 해외 뮤지엄 투어를 한다. 테마 또는 나라를 정해 저명인사들도 함께 동반한다. 축적된 컨텐츠와 시의적절한 기획을 묶어 계간 매거진을 낸다. 대중적 애호가의 수준에 맞추되 고급취향으로 만든다. (소장용, 기증용, 회원확대용으로 1천부만 찍는다.) 가능하면 미술품거래에 필요한 정보를 담아 다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게 한다.
외국의 갤러리 또는 박물관, 미디어와 제휴해서 한국발 기사를 보낸다. 한국의 작가, 작품을 정기적으로 소개한다. 그런 인연으로 <Art in America><Art Forum><Flash Art> 등 세계적인 미디어와 기사교류 제휴 등을 맺는다면 금상첨화. 먼저 국내 미디어 현황과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야겠다.
멤버십을 강화하는데 가장 유효한 어프로치는 교육이다. 미술교육은 무수한 아이템을 매우 창의적으로, 자발적으로 짤 수 있다. 외국의 유수 미술교육프로그램을 참고해서 새로운 교육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우선 일반인 대상의 미술교육을 CTT방식으로 해본다. 미술에 눈뜨고 싶은 사람에게 미술의 참맛, 제대로 즐기기, 함께 즐기기, 생활에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미술품거래 등에 관한 내용을 CTT에 맞춰 만들어본다. 초중고 특기적성교육에 맞는 커리큘럼도 개발한다. 이미지를 학습에 적용하는 방법과 훈련방법 등을 정리한 교재를 제작한다. 직업적으로 이미지를 다루어야 하지만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전문직 종사자들(방송국, 신문사, 광고회사, 관계 공무원, 경영자, 마케터 등)을 위해 교육프로그램을 만든다.
무엇이 주력이 될 것인지는 시간을 두고 관찰해보자. 나는 미디어와 교육사업에서 경험을 갖고 있다. 미디어는 미술영역의 핵심을 정면으로, 직접적이면서 강력하게 치고 들어간다. 위험부담과 노고가 많은 만큼 사업적 확장가능성도 그에 비례한다. 예전 같으면 물어볼 것도 없이 미디어사업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교육은 주변적이며, 간접적이고 속도도 늦지만 매우 강력한 기반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두 영역만큼 상호보완적인 사업도 없을 것이다. 미디어에서 교육사업을 부대사업으로 키울 수도 있고, 교육사업을 통해 출판미디어를 안정적으로 키워내는 것도 가능하다.
이와같은 일을 해내기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하나? 아트 저널리즘 공부를 해야겠다. 미국과 유럽, 일본의 미술/ 미디어 시장구조와 비즈니스 구조 및 내용을 분석해보자. 컨텐츠기획과 글쓰기 방식, 사업기획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보자. 매체별 경영방식과 성공사례, 갤러리와 뮤지엄, 옥션 등의 운영현황과 성공사례를 각각 파악한다. 외국의 미술교육 철학과 연구 교육기관,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현황, 자료 및 성과 등을 조사한다. 제휴관계를 맺을 만한 전문 출판사 등을 파악한다.
영어원서읽기, 글쓰기를 생활화한다. 우선 개별 그림이나 화가에 대한 정리작업을 하면서 짤막한 글쓰기를 병행한다. 국내화가와 외국의 컨템포러리 아티스트에 주목한다. 사람만나는 일을 정례화한다. 넓은 범주의 사람들을 소개받고 그중에서 나중에 함께 일할 사람들을 챙긴다. 사람들과 만나면서 국내외 미술계에 대한 안목과 경험을 넓히고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알아놓는다. 정례적으로 화랑과 옥션을 돌고 주요 이벤트는 꼭 다녀보고 글로 남긴다. 올해안에 유학갈 학교를 알아봐서 한번 답사를 다녀온다.
이제 왜 이 글의 제목을 <신이 내게 주신 특권>이라고 잡았는지 설명하고 끝을 맺으려 한다. 18일 토요일 새벽에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보았다. 첫번째 게스트가 누군지 봐서, 시원찮으면 끄고 일찍 잘 생각이었다. 이승철이 나왔다. 아흔아홉가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지만 정말 노래 하나 잘하는 것으로 그 백배의 허물을 너끈히 덮는, 운좋은 친구다. 첫곡이 끝나고 윤도현과 이야기를 나누는중에 그가 이런 신통방통한 말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특권을 제게 주신 신에게 감사합니다. 신이 허락하는 한 이 몸안에 담긴 특권을 최선을 다해 여러분께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 정말 그의 노래는 신의 특권이라 할 만큼 사람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신이 그에게 음악이라는 특권을 주셨다면, 나에겐 어떤 특권을 주셨을까? 나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열광하게 만들 수 있나? 그동안 나는 주변만 맴돌았다. 소소한 능력에 자만했을 뿐, 신의 특권을 그 중심에 놓지 못했다. 일년여의 반성끝에 뿌옇게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이제 아닌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할 준비가 됐다. 코치의 천품과 능력을 나는 갖추었을까? 올해까지 힘껏 알아보자. 과연 미술은 그 답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