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허망한 것이 블로그에 글을 무턱대고 쓰는 일이다. 두시간여 쓴 글이 <새 페이퍼 등록> 버튼을 누르자 마자 사라졌다.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어디 한두번일까?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참극에 대비해 메모장 등에 카피해놓는 것을 왜 모를까마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대로 날려버렸다.
처음에는 신물같은 게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익숙해지니까 제법 여유로와진다. 마음을 다스리게 된다는 뜻이다. 날린 것도 속터지는데 그것때문에 내내 끌탕해봐야 심란하기만 하다는 걸 안다. 그냥 <또 멍청한 짓을 했군>하고 자책할 뿐이다. 그래도 속은 안좋은 듯 이런 버림글을 몇 줄 적어가며 성질을 달래야 한다.
좀전에 날린 글의 요지는 이렇다.
골초들이 담배를 못끊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라면 먹고나서 피워무는 담배의 환상적인 맛때문이란다. 그 담배맛을 즐기기 위해 라면을 먹는 축도 있단다. 뭐니뭐니해도 그 멋진 컴비네이션은 전방에서 군복무를 한 사람만이 진수를 알리라. 꽁꽁 얼어붙은 몸이 마지막 국물 한방울에 의해 얼얼하게 풀어지면, 척하고 피워무는 담배 한 모금에 사지가 녹아내리는 그 맛.
금연이 안되는 또다른 기억은 화장실이다. 초짜들은 화장실에 모여 담배를 빠끔빠끔 피워대지만, 변기에 앉아 담배를 무는 수준까지 가려면 적어도 일년은 걸린다. 하루 한갑정도는 돼야 그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삶의 기본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바지를 내리고 고즈넉이 한 모금 내뿜으면서 내 삶을 생각해보는 시간. 담배를 거듭 붙여 무는 것은 궁상스럽다. 똑 담배 한개피의 길이면 족하다. 담배를 피우면서 신문을 뒤적거리는 것 역시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담배도 커피처럼 그 깊은 맛에 집중해야 마땅하다.
담배를 끊으려면 애꿎은 담배를 가위로 자르는 어처구니없는 이벤트는 안하는게 좋다. (그런 사람치고 금연에 성공하는 걸 본 예가 없다.) 오히려 담배를 피우게 되는 모든 정황조건들을 제거하는데 주력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술자리에 가지 말고, 커피도 마시지 말며, 라면은 적어도 반년동안 먹지 말아야 한다. 담배피우는 인간들과 마주치지 말고, 가만히 앉아있으면 담배생각나니까 무조건 뛰어야 하며, 재떨이 라이터 등속은 땅에 묻어야 한다. 그러나 어쩌란 말이냐. 화장실에는 안 갈 도리가 없으니.
그래서 할 수없이 담배 말고 집중할 수 있는 대체물을 찾은 것이 책이다. 아무리 신호가 급해도 빈손으로 들어갈 순 없다. 책장을 훑고 근착도서가 쌓여있는 책상위를 뒤지다가 겨우 한권을 집어든다. 신문은 번잡스러워 피하고, 소설책은 오래 잡게 되기 때문에 삼가야하며, 어려운 책은 읽다가 집어던지게 되니 금물이다. 알라딘에 책 주문을 할 때 이런 용도의 책을 반드시 넣어놓지 않으면 일주일이 불편해진다.
<1분의 지혜>라는 책은 그다지 단정치 못한 자세지만, 가장 놀라운 집중력이 발휘되는 공간에서 읽기 적합한 책이다. 한편을 읽는데 1분 남짓 걸리지만 그 뜻을 새기려면 한참 생각해야한다. 그중 몇편을 옮겨적었는데 몽땅 날렸으니 이번에는 쪽수만 남겨놓는다. 혹시 이글을 읽는 분께서는 서재 책상앞에 똑바로 앉아 정독하고 크게 깨우치시길 바란다.
35쪽 머저리, 42쪽 생일파티. 100쪽 가장 비싼 것, 164쪽 팝콘과 병아리,204쪽 꿀잠. 238쪽 쇼크사, 252쪽 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