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인간들과는 절대로 엮이지 말아라.> 이렇게 한 마디로 딱 잘라 말하면 더없이 시원하고 칼큼하다. 다만 <싸가지>라는 단어가 교양없어 보여 좀 거시기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옳거니 <싹수>란 말이 있구나. 개운한 맛은 덜하지만 말뽄새는 한결 낫다.
사업의 성패는 인복이 있냐 없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작은 사업도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할 순 없다. 때문에 옆에 반드시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람이 항상 말썽이다. 결국 사람 볼 줄 알아야 사업에 성공한다. 몇년을 한지붕밑에 살았던 고등학교 후배한테 황당한 배신을 당하거나, 십년을 거두었던 아랫사람이 일년 가야 전화한통 안하는 박복한 인덕으로는 큰 돈 벌 생각 말아야한다.
그 사람들 탓으로 돌리려는 게 아니다. 저마다 뻐꾹새 우는 사연이 왜 없을까. 어쩌다 그들이 그렇게 되었을꼬. 그리 만든 내 잘못이 크다. 내가 잘 됐으면 그렇게 모진 마음을 먹진 않았으리. 그렇게 생각하는게 차라리 속 편하다. 배신감에 치를 떨기보다 그냥 체념하는게 백번 낫고 말고. 어쨌든 싹수 타령은 공연한 얘기가 아니다. 무식한 놈, 촌스런 놈, 머리나쁜 놈, 고집 센 놈... 이런저런 놈들 다 봐줘도 싹수없는 것들은 절대 용서해선 안된다. 대를 물려 백번을 다짐받아 마땅하다.
<싹수없는 것>들의 공통적인 속성들을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인사성이 없고 고마워할 줄을 모른다. 한살이 많아도 선배나 윗사람으로 모시는 분에게는 고개숙여 제대로 인사해야 한다. 멀뚱멀뚱하거나 뒷통수 긁적거리며 어영부영하는 것들. 뭘 줘도 고맙다는 말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들, 사람들 볼 때 두 눈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등신들은 일단 싹수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마음은 안그런데 표현을 못하는 것 뿐>이라는 변명도 초등학교 들어가는 순간부턴 안통한다. 상대방의 호의와 친절을 입고 감사의 응대조차 못하는 그런 사회부적응자들과는 더불어 어떤 일도 도모해선 안된다. 나아가 사소한 배려조차 할 필요가 없다. 그런 자들일 수록 얼토당토않은 욕심이 많고, 추잡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둘째, 돈 낼줄을 모른다. 으레 다른 사람이 내주는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후배가 밥값, 술값 내는 걸 못보는 성격이지만, 그래도 어떤 때는 뭐 이런 게 다있나 싶을 때가 있다. 마치 자기가 훌륭해서 사람들이 밥사주고 술사주는 줄 아는 덜 떨어진 녀석들이다. 계산대 앞에서 멀뚱멀뚱 먼산 쳐다보는 놈, 톨게이트 앞에서 옆사람 쳐다보는 놈, 술먹다 취한 척 도중에 사라지는 놈. 이런 치들은 영락없이 싹수없는 족속이다.
세째, 시간 약속을 안지킨다. 아랫사람들과 한 약속도 가볍지 않거늘 윗사람에게 식언을 남발하는 어처구니 없는 인간들이 있다. 시간 약속도 5분 늦는 사람과 5분 기다리는 사람은 입장이 사뭇 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싫다. 그럴 수 있다고 한편으로 생각하면서도 속으론 용서가 안된다. <나를 가볍게 보지 않으면 이럴 수는 없다>고 괘씸하게 생각한다. 5분뒤면 도착하는데 전화는 뭘. 이렇게 자기만 적당히 넘어가봐야 소용없다.
네째, 돈과 결부된 약속은 안하는게 상책이다. 정말 불가피한 경우는 단 하루의 이자도 계산해줘야 한다. 원금 떼어먹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우리 사이에 무슨 이자냐>고 손을 내젓는 사람도 속으로는 날짜계산까지 다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된다. <정 그렇게 사양한다면>하고 이자떼는 녀석과는 절대로 돈거래는 물론 인간관계도 끊어버리는게 후환을 없애는 길이다. 특히 친구나 동기간처럼 오래 봐야 하는 사람들간의 돈거래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이들과 주고 받는 돈은 독사나 다이나마이트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떤 경우든 돈 약속은 한번 어기면 끝이다. 평소에 아무리 서비스가 좋아도 단 한번의 잘못으로 싹수없는 인간이란 소리를 듣게 된다.
이상의 항목에서 단 하나만 해당되더라도 전화번호부에서 그 이름을 아예 지워놓는게 좋다. 고름은 절대 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도려내는 것이 화근을 없애는 첩경이다. 시간이 가면 나아지겠거니, 지금은 불쌍해서, 당장 아쉬우니까... 이렇게 차일피일 미룰 수록 나중에 내가 풀어야할 실타래는 난마처럼 더 꼬여있게 된다.
미국최고의 교육자상을 수상한 론 클라크 선생님의 <아이를 위대한 사람으로 만드는 55가지 원칙 - 원제 The Essential 55>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선생님들이 반드시 정독해야할 책이다. 클라크 선생은 우연한 기회에 전혀 원치않았던 시골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곧게 키우려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정말 훌륭한 원칙들을 만들어냈으며, 정말 정말 일관되게 실천해냈다.
사람들은 목차에 열거된 55가지 원칙이 너무 평범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어른 말에 공손하게 대답하기><서로 칭찬하고 축하해주기><고맙습니다라고 말하기><선물에 대해 불평하지 않기><다른 곳을 방문했을 때 칭찬하기><공손하고 예의바르게 전화받기> 등등 너무 당연한 규범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거기에 있다. 누구나 당연히 지켜야 하고, 또 지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원칙들은 실생활에서 거의 실천되지 않고 있다.
며칠 전 산에서 우연히 친구가족들을 만났다. 친구의 아내와 두아이는 처음 보았다. 친구와 내가 악수를 하고 난 뒤에도 아이들은 멀뚱멀뚱 쳐다보며 제 아비의 바짓가랑이만 붙잡고 있을 뿐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친구의 아내였다. 내가 머리숙여 인사를 했건만 그녀는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자기 남편에게 <누구? 언제적 친군데?>라고 묻기에 바빴다. 만일 그곳이 산이 아니었다면 친구녀석에게 가정교육 좀 똑바로 시키라고 호되게 나무랐을 것이다. 어떻게 아비의 친구에게, 남편의 친구에게 인사 하나 제대로 못시킬 정도로 권위가 없단 말인가,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서둘러 떼어버리고 마저 산행을 했지만, 내려가다 혹시 또 만날까 겁이 났다.
토요일 아침 동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우루루 한떼의 중학생들이 몰려들어왔다. 아마 교외 학습의 하나로 스쿼시를 배우러 온 모양이다. 한팀이 스쿼시를 배우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제멋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난장판을 만들어 놓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있든 없든 큰 소리로 욕을 하면서 운동기구들을 다 헤집어 놓질 않나, 계집애들은 바닥에 벌렁누워 벌집을 쑤셔놓은 듯 수다를 떨지 않나 도무지 정신이 산란해 견딜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참다못해 다들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를 치니까 구석으로 슬금슬금 피하던 녀석들은 얼마후 다시 곤두박질하고 난리가 났다. 그때 인솔교사라는 여선생이 들어와서 고작 한다는 얘기가 기막혔다. <야, 밖으로 나가지 말고 여기서 떠들어. 도망가면 죽어.>
이런 예는 일일히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숱하게 많다. 우리나라 교육에 오만정이 떨어진 것도 이런 아이들, 이런 선생들 때문이다. 집을 팔아서라도 이런 개떡같은 인간군상들과는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출세시키려는 게 아니라 보호하기 위해서 발동하는 긴급조치다. <너만 빠져나가면 되겠느냐,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따진다면 <미안하지만 나는 남의 집 가정교육까지 관여할 능력도 없고, 학교선생들까지 어떻게 할 만큼 여유가 있지 않으니, 내 발등의 불이라도 꺼야 하지 않겠소>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요즘 애들 싹수가 노랗다고 말하기 전에 집안 단속, 우리 반 단속이라도 제대로 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다지 호감을 갖고 있지 않은 공병호씨가 <10년후의 한국>에 대해 뭐라고 썼다길래 사놓고 아직 열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우리나라 교육의 뿌리가 이미 썩어버렸기 때문에 한국의 미래는 볼 것도 없이 암담하다고 단언한다. 지금의 아이들은 그 부모세대인 우리들때문에, 또 우리들은 아버지세대 때문에, 그들은 또 그 윗세대의 잘못때문에 이 지경이 된 것이니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이 낳은 30년후의 세대들은 어떠할 것인가. 나라는 혁명으로 바뀌지 못했지만 교육은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학교도 가정도 모조리 개조돼야 한다. 개혁으로는 어림도 없다.
클라크선생은 노스캐롤라이나의 깡촌에서 , 뉴욕의 할렘에서 팽개쳐진 아이들을 하나하나 추스리며 작은 혁명을 만들어냈다. 교육혁명가인 그는 단호하게 원칙들을 지켜나갔다. 어떤 아이한테 잘했다고 칭찬하며 선물을 주었더니, 기뻐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다가 그만 고맙다는 말을 깜박 잊었단다. 클라크 선생은 <네가 원칙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 선물은 다시 가져가겠다>고 말하고 정말 그 아이의 손에서 나꿔채갔다. 웬만하면 그냥 봐줄만도 하건만 클라크선생은 예외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선물에 대해 불평하지 말라><선물을 받기전에 뭐냐고 물어서도 안되고 골라서도 안된다>는 원칙 때문에 아이들에게 나눠주려고 밤새 구웠던 과자를 통째로 옆반에 넘겨주는 일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땐 화가 나고 실망도 컸겠지만 죽을 때까지 절대로 그 원칙들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교육이란 한편으로 다정다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냉정하고 단호해야 한다.
보통 선생님에 관한 책들은 하나같이 자애롭게 희생적인 교사상으로 메워져 있다. 사실 그런 분들도 손에 꼽을 지경이니 뭐라고 토를 달 형편도 못된다. 다만 교육현장에서 아이들을 혁명적으로 바꿔나가야하는 책무가 지금 선생님들에게 맡겨져 있다면 클라크처럼 원칙에서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불퇴전의 투쟁정신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