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사내라면 외 길을 올곧이 한 마음으로 뚜벅뚜벅 갈 일이다. 어제만 해도 그렇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하나같이 심기가 틀어졌다. 허 이 사람들이 왜 이러나. 여느 때처럼 껄껄 웃으며 히떠운 소리로 넘겨볼까 하다가 나도 심술이 났다. 냅다 핀잔을 했다. <해야겠다 싶은 것만 하라구. 하기 싫음 말든가.> <어머 어쩜 그렇게 말씀하세요. 함께 일하는 게 모처럼 즐겁고 보람있었는데. 더구나 이 일은 제가 사명감을 갖고 하는 일이란 말에욧.> <사명감? 그런 걸 왜 가져. 돌쇠처럼 일하지 마. 눈치 빠르게 살라구.>
기어코 불편하게 헤어졌다. 집에 와서 꾸벅꾸벅 생각했다. 지난 몇달동안 그래도 즐겁게 지냈는데, 어쩌다 이리 찝찝해졌누? 사람들은 내게 달란트가 있다고 한다. 난 무척 버벅거리는 것 같은데 사람들은 말을 재미있게, 실감나게 잘 한다고 한다. 뭘 알아듣기 쉽게 가르칠 줄도 안다고 한다. 작지만 반짝거리는 눈도 좋다고 한다. 그래서 처음엔 많이들 좋아한다. 반가와 하기도 하고 즐겨 말을 섞어준다. 나 역시 공손하게 대하고 인사도 잘한다. 그럴 땐 사람들이 모두 좋게 느껴진다.
내가 틀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내막에 눈이 떠지면서 부터다. 이브가 마침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다. 친해지면 사람들은 속내를 드러낸다. 미운 사람, 싫은 사람, 아니꼬운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세 사람만 만나서 짜맞추면 그림이 거의 다 나온다. 오호라.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었군. 이 양반이 이랬단 말야. 금수로세. 그러고도 어찌 사람행세를 하누. 나는 꼬리에 삼지창을 단 사탄이 되고 만다. 내 눈빛은 교활해지고, 머리속이 한결 복잡해진다.
우물안 개구리 같은 그들이 우스웠다. 손톱만한 이해때문에 아귀다툼하는 그들이 한심해보였다. 처음에 몰랐을 때 그저 섬기고 공경했던 사람들이 점차 눈아래로 보였다. 그들의 비린내나는 대화에 끼어들면 서슴치 않고 말을 막해버렸다. 그 말은 바람처럼 퍼졌고 한 두사람씩 나에게 칼을 품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그런 것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오만방자하게 가슴을 펴고 다녔다. 일하기가 힘들어졌다. 다 된 일들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중도에서 어그러졌다. 어느 날 나는 그 커뮤니티에서 홀로 걸어나왔고 사람들은 내 뒷모습을 보며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깨달음 하나. 외길을 제대로 가려면 초심 그대로 가야한다. 친하다고 잡스런 말에 귀기울여선 안된다. 대의만 보고 앞으로 갈 뿐 옆눈질로 눈호사를 해선 안된다. 마치 암초 바다에서 사이렌을 만난 듯 돛대에 동아줄로 나를 칭칭 묶어야 한다. 빨리도 말고, 공손하게 묵묵히 가야한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던 처음의 마음과 모습으로 겸손하게 말이다. 신문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코칭을 처음 시작했을 때. 전주에 처음 갔을 때. 그 무렵의 착하고 뭘 모르는 눈으로 말이다.
깨달음 둘. 쓸데없는 욕심에 눈을 돌려선 안된다. 내 욕심 챙겨서 과연 챙겨진 적이 있던가. 그렇게 주렁주렁 열리던 감나무가 하루아침에 폐목이 되고, 문전옥답 금싸라기들이 늦가을 장마로 쓸려가지 않았던가. 언젠가 삼청동 무녀가 그랬다. 커다란 과일 바구니가 탐스럽기도 해라. 그 많던 과일을 웬놈들이 다 집어가는데. 너는 화내지 말거라. 뺏으려고도 하지 말거라. 더 많이 채워질 텐데 무슨 걱정일까. 그때는 아무렴요. 다 퍼줄랍니다 그랬다. 집에 땡전 한푼 갖고 들어간 적 없다. 호주머니가 다 비어야 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어느날 마가 끼더니 욕심에 눈이 멀었다. 그후로 마구니가 떨어져 나가지 않고 욕심부린 만큼 재물을 축내기 시작했다. 쉽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다 나갔겠거니 하면 고개를 바짝 쳐든다. 이 놈을 어떻게 잡느냐가 하반생을 좌우하리라 생각한다.
깨달음 셋. 중놈은 졸음이 웬수라더니 나는 망각이 웬수다. 이렇게 아프게 다짐하고 또 명심해도 잊어버린다. 잊어버리고 또 그 짓을 반복한다. 더러운 말에 귀기울이고, 내 욕심에 정신이 나간다. 그 징후를 간파하고 충고하려드는 이들에게 나는 구렁이같은 혓바닥으로 요설을 떨어 그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그리고는 곧장 천길 낭떠러지로 내 몸을 던져버린다. 무슨 업보란 말인가.
오늘 아침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미뤄둔 메일을 다 뒤져내서 하나씩 마무리를 지었다. 서너시간 노가다 일을 즐겁게 해치우니 또 그런 일만이 유발하는 엔돌핀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내가 도움이 될만 한 일을 찾기 시작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미력하나마 최선을 다해볼께요. 아유, 저 시간 많아요. 어려워 말고 얘기하세요. 잡일은 내게 맡기시고 더 중요한 일 하세요. 그럼요. 그렇고말구요.
제발 이렇게 살자. 쓸데없는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사람좋게 웃어가며 살아가자. 신경의 끝이 끊어진 밧줄처럼 갈라져있어도, 낼 모레 교회를 가든지 머리를 깎든지 결판을 낼 지언정 여기서 살 작정이라면 이대로 살 일이다. 모름지기 사내새끼는 외길을 올곧이 앞만 보고 뚜벅뚜벅 가야 한다. 그래야 목숨 부지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