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대가리 못깎는 화상이 남의 짱구머린 얼마나 잘보이나 모른다. 요 며칠 몇사람을 만나 코칭을 하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특히 코칭을 해준 경우는 전례없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러다가 작두 타는게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였다. 기분이 째질 만큼 좋았다. 튿어지는 입술을 추스리느라 고생깨나 했다.
어제 R선생과 장시간 코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득 내가 그동안 해온 코칭이 몽땅 사기 아닌가 의심이 생겼다. 도대체 상대방이 만족스러워 했던 것이 코칭 때문이었는지, 아님 서푼짜리 직관력 또는 신기에서 비롯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만일 코칭이 준 만족이라면 상대방의 긴 사설을 꾹 참고 들어줬다는 것. 그게 경청이지 코칭이냐. 그나마 고개만 끄덕였지 말그대로 경청한 것도 아니잖은가.
엊그제 코치 몇사람과 오는 11월 20일에 열리는 <대한민국 코치대회> 준비때문에 장시간 토론하게 됐다. 샌디 바일러스는 마스터 코치가 그날 대회에 와서 코칭 시범을 보여주게 돼있다. 무슨 주제로 어떻게 코칭시연이 진행돼야 좋을까 의견을 모으는 회의였다.
기사는 야마요, 공부는 성적이며, 이벤트는 청중이다. 이게 본질이다. 야마(제목) 안잡히는 기사는 기사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차라리 즐겁게 노는게 낫다. 청중 없는 이벤트는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샌디가 와서 대한민국에게 던질 질문은 무엇인가. 너저분해선 안된다. 뜬구름을 잡는 얘기면 안된다. 촌철살인으로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 질문이어야 한다. 그게 코칭의 진수아닌가.
그런데 그가 설사 죽이는 질문으로 신문의 머릿제목을 장식한다 해도 의문은 남는다. 그게 과연 코칭에서 나온 것인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있느냐 말이다. 코칭에서 나왔다면 코칭 특유의 문제 접근방식이 있을 것이고, 문제를 해석하고 가설을 도출해서 증명가능하게 만드는 방법론이 시퍼렇게 살아있어야 한다. 거꾸로 코칭이 아니면 그런 명 질문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샌디는 어떤 공개적으로 증명된 코칭기법을 사용하고 있나. 만일 그의 성공이 오랜 경험과 타고난 통찰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코칭은 보통명사일 뿐, 고유명사가 될 수는 없다.
그러고보니 코칭 교육기관은 많아도 대학에서 코칭을 정규학과로 가르치는 곳은 없는 것 같다. 호주에서 정규과목에 코칭이 있다곤 하지만 뭘 가르치는지 확실치 않다. 내가 지금 온라인으로 들어가서 보고있는 미국의 강의도 학문으로 가르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적어도 코치로서 자격증을 따고 그것으로 사람들의 성공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겠다 맘을 먹었으면 내가 하는 코칭이 과연 학문적/이론적으로 타당하다고 입증된 것일까 의문을 품어야 마땅하다. 한 20년 코치라고 떠들고 다녔는데 누가 같은 질문을 던지면 험험하고 헛기침만 하며 피할 순 없는 노릇아닌가.
지금 나와있는 것은 프로세스, 즉 절차뿐이다. 시대상황에 맞서 한마디 의미깊은 말을 해낼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꿰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3류 운동권이요, 견강부회하는 시장 장사꾼에 불과하다.
<우보천리>를 역설하신 정수일교수의 책을 읽어보고 나서 학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비록 학문하는 자는 아닐지라도 내가 하는 일이 학문의 끄트머리라도 잡을 수 있는 지는 알고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