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테렌스 데 프레 지음, 차미례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알고 있다. 정확하고 자세히는 아니라도 누구든 몇마디 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양산되고, 여러가지 형식의 소재가 되어 책이나 영화로 되풀이 되었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수용소 관련 본 것과 읽은 것을 읊으라면, 드라마 [밴드오브브라더스] 전쟁과 함께 수용소의 적막한 풍경장면을 본 것,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안네의 일기], [더 리더]와 영화 [더 리더], 러시아 수용소 탈출 영화 [웨이 백], 영화 [피아니스트] 등이 있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영상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들 본 만큼은 본 듯하다고 생각했었고,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하여 누구나 그렇겠지만 위에 언급된 영상물이나 책을 안락하고 평온한 곳에서 읽고 봤을 것이고, 어떤 날은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갑논을박 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내가 함부로 이야기 했던 것들이 부끄러워졌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리뷰를 쓰면서 특별판을 읽었다고 써 놓은 리뷰를 읽자니 더 부끄러워진다. 그거 갖겠다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을 구입하고 얼마나 허세를 떨었던가. 이 책은 그런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었다.

팟케스트 "빨간 책방"에서 소개된 책이었고, 그 방송을 듣고 '어디한번 읽어보자'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 귀를 사로잡았던 내용은 수용소 안에서는 깨끗한 물이 지급되지 않았고, 물이라고는 아침에 지급되는 형편없는 묽은 커피가 전부였는데, 그 커피의 일부로 씻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볼일 볼 자유 조차 없는 처절한 상황에 떨어져도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라는 이야기다. 책은 문학작품에서 나타난 '생존자'들의 이야기로 '생존자'를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살면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는 '영웅'에 관한 이야기였지, 오래 버텨내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래 버틴 사람들의 정신력에 대해 칭찬하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 안타까움을 말하지만, 그 사람들을 영웅 취급하진 않는다. 이 책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잘 준비된 영웅적 죽음과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답게 생존하는 일은 어느쪽이 쉬운 일일까?

살아 남았다는 것이 과연 비굴한 일일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고 나니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 뒷통수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내 가까운 지인이라면,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휴전국이니 북한이 방귀만 꿔도 전쟁이 난다고 라면 사재기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보니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읽고 본 것들로 공포는 더욱 증폭된다. 그리하여 어짜피 다들 굶는 상황에서 나 먹겠다고 라면이라도 끓이면 그 냄새가 천리 만리 퍼져나가 테러 당해 죽기 딱이다. 그럴바에야 미리 이런저런 꼴 안보고 미리 죽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끝까지 살아남아 생존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 시작했다. 전쟁에 대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이 겪어야 하는 처절함에 대해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옳고 그래야, 안전한 곳에서 지휘봉이나 휘두르고 버튼이나 눌러대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어떤 결과로 오는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사명'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돌면 파상풍 주사라도 맞으러 갈까 싶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인간으로써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런 말살 당할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열망 중 '기록'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생존에 필요한 여건이 되지 않기에 '성욕'이 완전히 사라진 수용소 안에서 수면욕, 식욕과 더불어 기록에 대한 욕구가 생기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스러운 나날에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 남아 증언하겠다는 의지는 숭고했다. 수용소 안에서의 기록이라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종이도 없는 곳이고, 기록하는 것이 발견되면 살아남기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기록과 생존의 의지는 조직화 되어가고 생존을 없어서는 안될 일이 되어 간다. 생존에 필요한 물건이 지급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 가려면 조직화가 필요하고 그 조직화 된 집단은 서로를 돕는다. 또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전체의 생존을 위한 희생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관리직 유대인인 몇몇의 '카포'들이 나치 앞에서는 안심하도록 수용소 사람들에게 거칠게 굴면서도 아픈 재소자를 병원으로 빼돌리거나, 생존자와 죽은 사람을 바꿔처리하여 가스실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도 하고, 구하기 힘든 음식을 구했을 때 혼자 먹기도 바쁠 텐데 동료와 나누는 일, 누구나 혼자 서 있기도 힘든 상황임에도 아픈 사람을 부축하여 행군을 계속하는 일들 감행한다. 간결한 문체 속에서도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책 상태는,

읽기 좋고 평범한 책이다. 목차만 읽어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다. 어찌나 많이 접고 줄 그었는지 다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하다.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지만, 읽은 후에 남는 여운이 꽤 길고 힘들다. 단지 읽었을 뿐인데도 무거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의 작가의 죽음은 '자살'이었다. 생존자로써 생존할 수 없을만큼 이야기의 무게가 무거웠으리라 생각한다. 정신이 맑고 건전할 때 읽어야 여운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담담하고 깔끔한 문장 임에도 내용 상의 문제로 여러가지 의미의 비위가 상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하나 읽고 리뷰 쓰는 일에 뭐가 그리 큰 결심이 필요하다고 리뷰를 써놓고 하루를 묵혔다. 이미 썼던 거칠었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뭐가 문제일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이 소설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다면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인간이 신의 이름을 팔아 장사를 하다니. 교회 영업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황당한 이야기 아닌가 말이다. 작가의 말 대로라면 대형교회들 안에서는 이 보다 더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논리도 없고 상식도 없이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목사를 그렇게 추종한다면 그게 목사 팬클럽이지 종교 단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아는 신은 기적을 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상식적이다.

이런 내용을 읽고나서 거칠게 리뷰를 써 놓았지만, 주저하게 된다. 몇년 전 [불교가 좋다]라는 책을 지하철에서 들고 읽었다는 이유 만으로 기독교인들에게 당했던 일을 생각하면, 그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의견 조차 내 놓고 싶지가 않았다. 그 까닭이 없어 보이는 폭력성에 할말이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용상의 문제는 뒤로 두고 소설에 관해서만 이야기 해보려고 다시 리뷰를 쓰지만, 내용을 빼면 이 소설은 흥미롭지 않다. 작가는 글을 써 온 사람이지만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소설이 너무 직설적이고 솔찍하고 쉽다. 누가 나쁜 놈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나는 어떤 종교인이든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보다 평온하고 착해야된다고 생각한다. 신을 믿는 자는 신의 뜻에 따라 신을 섬기고 이웃과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 그들 말에 의하면 모든 일이 신의 뜻대로 되는 일이거늘 안달복달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가끔 대형 교회들이 하는 해외선교를 보고 있으면 과연 신을 전파하려고 하는 것인지 상대를 자극하려는 것인지도 헤깔린다. 믿는 것이 있다면 그 믿는 것이 좋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선교가 되지 않을까? 의식주를 미끼로 말도 모르는 사람에게 따라 부르게 하고 노래 부르게 하는 것이 선교일까? 그런 선교를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김건축 목사라는 인물이 이 소설의 핵심인물이다.

 

정 목사가 은퇴를 하고 그 후임으로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는 김건축 목사를 지명한다. 여러 사람들의 반대가 많았다고 하는데, 정목사는 그 사람들이 하는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다 믿지는 못한 듯 하다. 하지만 세상에 믿지 못할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나. 내가 오래 전에 함께 일했던 어떤 사람은 한 자리에 한 가지 사건으로 함께 이야기 나누는 세 사람에게 각각 다른 거짓말을 하는 기적을 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따져 물으면 꼭 하는 말이 있다. 논점과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 거짓말을 하였으나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 희생하는 것 하나도 없지만 항상 희생한다는 것. 돈은 받았지만 그 돈은 돈이 아니라는 것, 본인이 쓰지 않은 책도 본인의 책이 되고, 말하지 않은 말도 말이 되며, 행하지 않은 일도 꾸미게 되는 기적 환타지 영역이 이 소설에서 존재한다. 김건축 목사가 꿈꾸는 기독교 세계 정복은 알맹이가 없지만 그 비상식을 유지하기 위해 참모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 중 장세기 목사는 성실한 사람으로 종교적 신념이 강하고 믿음 또한 강한데 귀가 얇다. 김건축 목사의 교회에서 처음에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다가 약간의 오해로 핵심이 되는 인물이다. 자신이 불리한 처지에 있을 때는 김건축 목사의 거짓에 울분을 토하지만, 권력의 맛을 보았을 때 전전긍긍하며 그 자리에 대해 쉽게 합리화 시키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장세기 목사의 시선으로 이어지고, 김건축 담임목사 아래서의 5년에 대한 이야기다. 서초교회는 그 후 어찌 되려나모르겠다.

 

이 소설에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비아냥이 많이도 섞여 있는데, 신지식인이라는 잊혀졌던 그 이름과 댓글 알바, 반대 편이면 무조건 '사탄', '빨갱이' 를 몰아버리고, 내용은 듣지도 않고 '할렐루야'를 남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촘촘히 박혀 있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이들이 이렇게 승승장구한다면, 이들의 기도빨이 신에게 직접 닿아 사랑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으.. 싫다.

 

책 상태는,

평범하게 좋다. 표지 그림도 마음에 들고 가벼워서 들고 읽기 좋다. 그러나 내용 상 읽는 내내 불편하고 속이 터진다. 읽어보라고 추천은 못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협동조합 만들자 - 협동조합 창업과 경영의 길잡이
김성오 외 지음 / 겨울나무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어쩌다보니 어떤 협동조합의 발기인이 되려는 참인지라, 공부 좀 하라며 추천 받은 이 책을 읽지 않을 수없었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협동조합을 유지하는 일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야 할 참이다. 오랫동안 어떤 신협과 어떤 생협의 조합원이었다. 그리고 협동조합인 서울우유에서 나온 우유를 마시고, 델몬트와 제스프리의 과일을 사먹고 농협, 축협과 수협에서 장을 본적이 있다. 몇번이나 사진전을 갔었던 매그넘도 사진협동조합이고 축구를 잘 알지는 않지만 축구클럽 바르셀로나 FC가 협동조합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지대가 낮은 네덜란드에 풍차 협동조합이 있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다.

2012년 1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제정되었고, 그 후로 여기저기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이야기들이 들려오곤 했다. 협동조합의 바람을 타고 갖가지 정책들이 나오고 있고, 새로운 시대의 대안으로 뜨기 시작하는 협동조합에 대한 두루뭉술한 이야기는 누구든 한번쯤 들어보았을 이야기이다. 하지만, 내가 협동조합을 만들고 협동조합원으로 활동하게 된다면 두루뭉술하게 알고 끝날 일은 아니다.

일단. 뭘하려고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인가를 생각해야하고 그 협동조합이 어떤 형태로 만들어 질 것인가부터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들이 모여서 소비를 위한 협동조합을 만들 것인가, 생산자들의 협동조합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직원인 협동조합을 만들 것인가, 여러 관계자가 모인 다중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을 만들 것인가를 정해야 한다. 그 후 사람을 모으고 사업계획을 세우고, 정관 등 규정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발기인 총회를 열어 기본사항을 의결하고 그 내용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하게 된다. 말은 쉬워도 간단하진 않다. 정관 등 규정을 만드는 일, 돈의 배분에 관한 일, 운영에 관한 일, 각종 서류를 작성해야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갖가지 양식들에 휩쌓이다보면 공적서류에 대한 인지가 없는 사람들은 질려버릴 듯 하다. 내부 운영에 관한 일과 예산과 결산을 짜는 일, 그리고 세금을 신고하는 등의 일은 책을 읽고만 있어도 그 일의 양이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이다. 더군다나 개인이 혼자 할 경우에는 만들지 않아도 되는 많은 서류들과 주요결정사항을 정리해야할 의사록 등의 반드시 만들고 비치해야할 서류들을 생각하니 막막하다.

협동조합에는 여러사람의 출자금이 들어가고,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일어나는 결정의 문제와 책임의 문제도 따른다. 물론, 좋은 사업계획을 갖고 있고 수익성이 보장된다면 상관없겠지만, 특별한 수익구조가 없이 임대료 및 관리비 등의 고정비가 끊임 없이 들어가야 하는 경우라면 한 치 앞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복잡한 상황들을 생각하고 정리하기 위한 안내서였으나, 읽고 나니 걱정이 더 생긴다. 괜한 일에 발을 디뎌 골치 아파지는 것은 아닌지 괜히 돈 잃고 친구 잃는 것은 아닐지 걱정부터 앞서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인 듯 하다.

이 책은 협동조합의 역사와 정의 그리고 원칙과 같은 기본 내용으로 시작하여 협동조합과 주식회사를 비교하여 이해를 돕기도 하고 창업과 경영에 관하여 신경써야 할 부분들도 작은 책에 비해 꼼꼼하게 다루고 있다. 더불어 협동조합을 만들때 챙겨야 하는 사항들을 순서대로 정리하거나 표준정관을 첨부하여 본인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 인지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주고 있다. 생소한 이야기들인데도 쉽게 풀어놓아 읽기가 좋다. 협동조합을 생각하고 있다면 읽어볼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 - 파격과 야성의 요리사 열전
후안 모레노 지음, 미르코 탈리에르초 사진, 장혜경 옮김, 박찬일 감수 / 반비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즐겨 듣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중 '내가 산 책' 코너에 소개 된 책이다. 메인으로 소개된 책도 안사 읽는데, 이 책에 소개된 요리사 이야기에 호기심이 동했다. 신간인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닌 책을 받아들고 사자마자 다 읽었지만, 리뷰를 바로 쓰지는 못했다. 문장을 소화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요리 책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엄마의 책꽂이에는 365일 메뉴가 나오는 두꺼운 요리책이 있었다. 그 책에는 엄마의 밥상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음식들을 글과 사진들이 있어서 실제로 맛볼 수도 없으면서 마음대로 맛을 상상해보기를 즐겼었다. 지금은 다섯권의 요리책을 갖고 있고 여전히 그 요리책에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지는 않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즐겁다. 깔끔하고 정갈하게 잘 차려진 밥상을 보는 기분은 얼마나 따뜻한지. 

그런데 이 책의 표지에는 오른 손에 칼을 들고 왼손에 타고 있는 시가를 들고 있다. 털이 숭숭난 팔을 갖고 있는 이 아저씨는 내가 생각하는 요리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맛과 향을 내야하는 요리사가 시거를 피우며 음식을 만들다니! 자칫 담배냄새나는 음식을 맛볼 것 같지 않나?

 

이 책은 요리사가 요리하는 요리 책이 아니다.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요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에 나온 요리사들이 요리를 너무 사랑하는 요리사들도 아니다. 물론 요리로 성공한 요리사도 있지만 그렇다고 성공담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요리사는 요리사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사람들도 있다. 요리를 잘 하고 유명한 사람이지만 요리사가 아닌 다른 삶을 꿈꾸는 사람도 있고, 식당이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정말 먹을 수 있을까 의심되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식당을 하기도 한다. 인터뷰한 요리사 중에는 지금 생존해 있는지도 미지수인 사람도 있다. 그 요리사는 맥도날드에서 요리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책에 언급된 대부분의 요리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요리사의 기준에는 맞지 않는다. 몇몇 요리사의 요리는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요리사가 자신의 레시피를 소개하는데, 어떤 레시피는 100인분이 기준이다. 특이한 삶 속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전해져 흥미롭지만, 잘 읽히지 않는다. 독일어 원문의 문제인지 번역의 문제인지 문장이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다. 책을 읽을 때 문장을 인식하지 않아야 잘 읽는데, 이 책은 문장이 보인다. 영화 보면서 배우의 연기가 보이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 불편했다.

 

책 상태는,

좋다. 17명의 요리사를 소개하는 강렬한 사진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마지막에 그들이 소개한 요리가 사진으로 마무리 한다. 컬러 사진을 넣었지만 책 두께와 크기에 비해 책이 가벼워 들고 다니면서 읽기 부담없다. 하지만, 2만원이라는 가격은 부담된다. 내가 왜 이 책을 샀을까 후회하게 되는 가격인데, 얼른 커서(?!) 책 사기 전에 가격도 따져볼 줄 아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덮으면서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몇페이지가 뒷통수 치는 반전이라는 등의 말은 여러번 들었던 터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먼저 읽고 싶은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를 읽지 않으면 마지막을 읽어봤자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던 탓에 시작부터 끝까지 달리듯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 '에이. 씨'를 외치며,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읽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일어날까봐 이야기를 곱씹으며 소설을 읽었다. 한번에 읽고 비밀을 풀겠다는 생각으로 이야기의 퍼즐을 모으고 맞추려는 순간에서야 전체 그림을 보게 된 기분이다. 비밀이 문제가 아니라 이 이야기 전체가 퍼즐이었다. '이제 퍼즐 다 모았으니 가볍게 2,000피스 퍼즐을 맞춰보렴'이라고 줄리언 반스 선생이 웃으며 팔짱끼고 저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퍼즐 테두리만 겨우 맞추고 있는 나는 얄미워서 발을 동동구르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주인공 1인칭 시점인 소설로 진정한 1인칭이다. 토니 웹스터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노인이다. 어느 날 받은 편지 한통으로 삶의 기억들이 하나, 둘 재편성 된다. 고등학교 시절 에이드리언을 선망했던 토니는 자신이 사귀었지만, 물음표만 남기고 헤어져야했던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것을, 에이드리언의 편지로 알게 된다. 베로니카와의 교제에 대해서 알리는 목적이었겠지만, 정중하게 허락을 구하는 형식을 갖고 있는 그 편지에 토니는 화가나긴 했지만 쿨하게 인정하는 답장을 보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갔다고 생각한다. 그 얼마 후 에이드리언은 자신의 자살 이후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체 자살한다.

 

40년 후, 베로니카의 어머니인 사라로부터 500파운드의 돈과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 유산으로 남겨졌다는 소식을 접한다. 돈은 당장 받을 수 있지만, 일기장은 베로니카에게 있어 바로 받을 수 없다는 변호사의 말. 토니는 베로니카에게 그 일기장을 받아 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은퇴하고 삶을 마무리하는 사람으로써 뭔가를 마무리 지어 놓고 관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일까? 토니는 남의 삶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내리고 확신한다. 그때, 베로니카에게서 받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 중 단 한장에 적혀 있는 암호를 받아 들고 토니는 나름의 상상력을 펼친다. 베로니카는 일기 한장을 보낸 후, 토니가 그들에게 보낸 편지의 복사본도 보내주는데, 토니가 쓴 편지는 토니의 시간과 기억을 뒤 흔든다. 그렇게 화낼일이 없을 것 같은 베로니카가 지나치게 화를 내며 자신을 대하는 것에, 베로니카가 여전히 모난 여자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토니는 자신이 40년 전에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진짜 편지를 받아 들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역사가 무엇인가에 대해 에이드리언이 라그랑주를 인용해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했던 것이 귀에 쟁쟁 울리는 듯 하다. 이야기는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 토니의 사과에도 여전히 비 협조적인 베로니카와 그 베로니카에게 일기장 전체를 받고 싶었던 토니. 결국 베로니카의 알수 없는 질주와 에이드리언과 꼭 닮은 남자를 보고 토니는 자신의 저주로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났다는 사실에 미안해 한다. 그러나 진실은 더 먼 곳에 있었다.

 

이 소설은 한번에 끝나질 않는다. 연타로 반전을 겪은 후, 멍한 상태로 바로 다시 읽고 퍼즐 맞추는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두번째 읽고 책을 덮으며, 1부에 나오는 나열된 이야기들이 2부와 맞물려 돌아가는데, 잘 맞물린 기계가 돌아가는 듯 했다. 기억이 삶을 얼마나 농락하는지, 기억에 의존하여 진실을 만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허술한 일인지. 지난 주말에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짰던 계획 조차도 다시 만나 이야기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물며, 세월의 무게가 더해진 기억은 오죽할까. 그 모든 복잡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토니 웹스터 같은 남자는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끝났다.

 

고백하자면,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이 책의 모든 비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의 내 느낌은 뭔소린지 모르겠다는 것이었고, 이 책을 읽는 중에도 이 소설의 이야기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마지막 반전을 알게 되었을 때도 깜짝 놀라기도 했다. 집중하고 곱씹어 듣지 않는다면,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 한지 이 책의 내용과 맞물려 생각하게 되었다. 방송 들을때는 그다지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다가 다른 책 사려고 검색하다가 아는 제목이고 할인까지 하기에 구입했는데, 이렇게 몰아치게 읽게되는 소설일 줄이야.

 

책 상태는,

양장으로 손에 잘 들어오는 사이즈이고 가방에 넣고 다녀도 부담되지 않는 사이즈다. 책은 잘 읽힌다. 현재의 이야기를 시작하면 진실이 궁금하여 책을 놓을 수 없다. 특히나 40년 전에 쓴 편지 발견 시점 이후로는 이야기를 끊기가 어렵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