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삶의 해부
테렌스 데 프레 지음, 차미례 옮김 / 서해문집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누구나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알고 있다. 정확하고 자세히는 아니라도 누구든 몇마디 쯤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세월이 지나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로 양산되고, 여러가지 형식의 소재가 되어 책이나 영화로 되풀이 되었다.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수용소 관련 본 것과 읽은 것을 읊으라면, 드라마 [밴드오브브라더스] 전쟁과 함께 수용소의 적막한 풍경장면을 본 것, [수용소군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안네의 일기], [더 리더]와 영화 [더 리더], 러시아 수용소 탈출 영화 [웨이 백], 영화 [피아니스트] 등이 있고 그 이외에도 다수의 영상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들 본 만큼은 본 듯하다고 생각했었고,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하여 누구나 그렇겠지만 위에 언급된 영상물이나 책을 안락하고 평온한 곳에서 읽고 봤을 것이고, 어떤 날은 와인잔을 기울이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갑논을박 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서는 내가 함부로 이야기 했던 것들이 부끄러워졌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의 리뷰를 쓰면서 특별판을 읽었다고 써 놓은 리뷰를 읽자니 더 부끄러워진다. 그거 갖겠다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특별판을 구입하고 얼마나 허세를 떨었던가. 이 책은 그런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었다.

팟케스트 "빨간 책방"에서 소개된 책이었고, 그 방송을 듣고 '어디한번 읽어보자'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 귀를 사로잡았던 내용은 수용소 안에서는 깨끗한 물이 지급되지 않았고, 물이라고는 아침에 지급되는 형편없는 묽은 커피가 전부였는데, 그 커피의 일부로 씻은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볼일 볼 자유 조차 없는 처절한 상황에 떨어져도 자신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라는 이야기다. 책은 문학작품에서 나타난 '생존자'들의 이야기로 '생존자'를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살면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는 '영웅'에 관한 이야기였지, 오래 버텨내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래 버틴 사람들의 정신력에 대해 칭찬하고 그 어려운 상황에서 안타까움을 말하지만, 그 사람들을 영웅 취급하진 않는다. 이 책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잘 준비된 영웅적 죽음과 생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답게 생존하는 일은 어느쪽이 쉬운 일일까?

살아 남았다는 것이 과연 비굴한 일일 것인가?

이런 질문을 받고 나니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이 뒷통수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내 가까운 지인이라면,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죽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휴전국이니 북한이 방귀만 꿔도 전쟁이 난다고 라면 사재기 하는 나라에 살고 있다보니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읽고 본 것들로 공포는 더욱 증폭된다. 그리하여 어짜피 다들 굶는 상황에서 나 먹겠다고 라면이라도 끓이면 그 냄새가 천리 만리 퍼져나가 테러 당해 죽기 딱이다. 그럴바에야 미리 이런저런 꼴 안보고 미리 죽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생각이 약간 바뀌었다. 끝까지 살아남아 생존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 시작했다. 전쟁에 대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이 겪어야 하는 처절함에 대해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이 옳고 그래야, 안전한 곳에서 지휘봉이나 휘두르고 버튼이나 눌러대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들이 어떤 결과로 오는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사명' 같은 것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전쟁이 난다는 소문이 돌면 파상풍 주사라도 맞으러 갈까 싶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다. 인간으로써의 삶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런 말살 당할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열망 중 '기록'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웠다. 생존에 필요한 여건이 되지 않기에 '성욕'이 완전히 사라진 수용소 안에서 수면욕, 식욕과 더불어 기록에 대한 욕구가 생기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통스러운 나날에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 남아 증언하겠다는 의지는 숭고했다. 수용소 안에서의 기록이라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종이도 없는 곳이고, 기록하는 것이 발견되면 살아남기도 어려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기록과 생존의 의지는 조직화 되어가고 생존을 없어서는 안될 일이 되어 간다. 생존에 필요한 물건이 지급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 가려면 조직화가 필요하고 그 조직화 된 집단은 서로를 돕는다. 또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전체의 생존을 위한 희생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관리직 유대인인 몇몇의 '카포'들이 나치 앞에서는 안심하도록 수용소 사람들에게 거칠게 굴면서도 아픈 재소자를 병원으로 빼돌리거나, 생존자와 죽은 사람을 바꿔처리하여 가스실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도 하고, 구하기 힘든 음식을 구했을 때 혼자 먹기도 바쁠 텐데 동료와 나누는 일, 누구나 혼자 서 있기도 힘든 상황임에도 아픈 사람을 부축하여 행군을 계속하는 일들 감행한다. 간결한 문체 속에서도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책 상태는,

읽기 좋고 평범한 책이다. 목차만 읽어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일지 짐작할 수 있다. 어찌나 많이 접고 줄 그었는지 다 옮기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하다. 꼭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지만, 읽은 후에 남는 여운이 꽤 길고 힘들다. 단지 읽었을 뿐인데도 무거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의 작가의 죽음은 '자살'이었다. 생존자로써 생존할 수 없을만큼 이야기의 무게가 무거웠으리라 생각한다. 정신이 맑고 건전할 때 읽어야 여운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담담하고 깔끔한 문장 임에도 내용 상의 문제로 여러가지 의미의 비위가 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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