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휴양지
로베르토 이노센티 그림, 존 패트릭 루이스 글, 안인희 옮김 / 비룡소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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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붕킥에 나왔던 전시라고 또는 그림책이라고 여기저기 이야기가 떠돌기에 호기심에 보게되었는데, 책을 보자마자 얇고 넓어서 놀랐다. 책장에 새로로 꽂을 수 없는 크기의 얇은 양장 책이었다. 작은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의 크기에 놀라고 페이지를 펴자마자 덤빌 듯 큰 글씨가 박혀있는 첫 페이지에 깜짝 놀랐다. 상상력을 잃어버린 화가가 상상력을 찾아 온 이 휴양지에 도착하니, 낚시꾼 소년이 이런 말을 던진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세요.
여기는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휴양지'예요.

이 휴양지에는 무언가 찾아야 할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너무 유명해서 우리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주인공을 포함한 모두가 늘어지게 쉬거나 각자에게 몰입하는 동안 그들이 갖고 있는 상실들은 하나씩 치유되어, 이 휴양지를 떠난다. 다른 사람에게 방을 양보해야하기 때문이다. 사실적이면서도 묘하게 따뜻한 그림들을 보면서 다시한번 볼로냐 국제 원화전 앞에서 발길을 돌렸던 일을 후회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리뷰를 조금이라도 길게 쓰면 책 내용만큼 될 듯 하다. 그림 몇장 올려볼까 하다가, 미리보기 서비스도 있고해서 그림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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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에 노닐다 - 오주석의 독화수필
오주석 지음, 오주석 선생 유고간행위원회 엮음 / 솔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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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이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하는 것을 봤었다. 나는 읽을 책들도 있고해서 잠깐 미뤄두었다가 구입해야지 했다가, 책의 제목과 저자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문득 생각나서 구입해야겠다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친구와도 사이도 멀어져서 구구절절 설명하며 책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책과 연이 닿으면 읽을 수 있겠지 채념하고 있었는데, 우리 그림에 관한 책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표지만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저자가 지병으로 떠나며 남긴 유작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노인이 쓴 글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건만, 표지 안쪽을 보니 젊은 사람이었다. 왼쪽 가슴 안쪽이 저릿했다. 

한동안 일본의 우키요에와 일본미술에 관련된 글을 읽고나니, 우리 미술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우리 그림에 대해 접근을 하자니 어떤 책부터 접해야할지도 막막했다. "우리"라는 말을 붙여쓰면서도 참으로 생경한게 우리 그림이다 싶었다. 책은 생각했던 미술사에 관한 책이 아니라, 수필이었다. 수필에다가 유고집이면 아주 말랑말랑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 이재 초상>과 <이채 초상>의 도판을 나란하게 두고, 지금은 다른 인물로 되어 있는 그림이 알고 보면 한 인물임을 밝히는 내용의 이야기부터 시작되는 글은, 근거를 두고 밝혀가며 다시보고 바로보는 이야기로 진행된다. 흥미진진했다. <모계영자도>를 두고 양계장을 했던 이가 해주는 말을 귀기울여 듣고 그림을 살펴본 후 시선을 바꾼 이야기와 <월하정인도>의 달모양을 보고 단호하게 지적한 독자의 말에 다시 그림을 살폈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참으로 많은 것들이 그림에 설명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있기에 보다 넓은 눈으로 깊이 보는 차분함까지 갖고 있는 저자의 눈을 따라가며 그림을 읽으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수필인 까닭에 많은 그림을 다루지는 않고 있지만 우리 그림 읽기의 시작점에 읽기에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1/3이 추모글인 이 책을 읽고나니 마음이 차분하게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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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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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 잘 읽었다고 해 놓고선 기억나는 것이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시 펴 보니 그제서야 새록새록 다시 읽힌다. 남들보다 다독을 하지도 않으면서 기억력의 한계는 왜, 늘 코 앞에 있는 걸까?

첫번째 눈길을 잡아 끈 그림은 마그리트의 「골콘다」였다. 신세계 백화점 본점 공사할때 가림막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본 터라, 반가웠다. 반복된 창이 있는 집이 있고,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신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둥둥 떠 있다.
어떤 물건을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원래의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여 기이한 만남을 현출시키는 기법인 데페이즈망이라고 했다. 「골콘다」외에도 마그리트의 몇가지 그림들이 더 나오는데, 설명과 함께봐서 그런지 눈에 쏙쏙 잘도 들어오면서 은근하게 끌린다. 마그리트 전시회가 열리면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이 트롱프뢰유라는 눈속임 기법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손에 잡힐 듯 하지만 그림일 뿐인 이 기법도 참으로 흥미롭다. 제주도에 이런 그림이 많은 전시관이 있었던 것 같다.

소녀의 모습인지 노파의 모습인지, 이리보면 이렇게 바뀌고 저리 보면 저렇게 바뀌는 그림의 수법을 게슈탈트(독일어, 형태) 전환이라고 한다. 아르침볼도의 「베르툼누스」에서 수염난 남자인지 과일인지 야채인지 정신 없는 그림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책에서 보았던 홀바인의 「대사들」에 괴이하게 늘어져 있는 해골그림도 한쪽 방향에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왜상(歪像)이라는 것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그저 비밀스러운 표시려니 했지, 한쪽에서 보면 완벽하게 보이는 상이라는 생각은 안해봤었다. 그외에도 정면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보게되는 재미난 그림들을 만나게 되는데, 루스의「생 사뱅」과 같은 실제공간에 그려 넣은 그림은 놀랍다. 최근 현대카드 광고 중에 하얀색 배경에 사각형 안에 선이 그어져 있는 방이 나오는데, 딱 그것을 말하는 기법이었다. 더 재미난 것은 반사왜상 이었다. 특수한 반사판으로 반사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그림 감상법도 재밌었다. 왜 이렇게 배경을 시커멓게 그리는지 알 수 없던 그림들도 그 그림의 명함처리법을 키아로스쿠로(이탈리아어. '밝다'와 어둡다'의 합성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고보니 또 눈이 트이는 듯 하다. 유럽의 근대적 불안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렘브란트가 대표적이란다.

쓰다보니 한도 끝도 없을 듯 싶다. 천사상의 날개의 이유와 시대별 성별 누드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 과감하고 당당해진 클림트의 에로티시즘, 이콘과 성유물 이야기, 예술작품을 보고 흥분상태에 빠지는 스탕달 신드롬, 도대체 알수 없는 것들을 모아 놓았던 그림이라 막막했던 바니타스(라틴어. 허무, 허영, 덧없음)와 연관해서 다시본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는 아는 그림이라 그런지 급하게 와 닿았다. 도무지 아름답지 않은 죽은 사냥물들을 그린 그림들은 그 그림 자체로도 신분을 나타낼 수 있다니, 그림의 존재가 이해되었다. 잡다한 개인 박물관 콘수트카머(독일어. 예술의 방)는 도대체 알 수 없는 그림이었으나, 이유를 알고 보니 그럴사해 보였다. 진정한 동양이 아닌 보고 싶은 동양을 그린 오리엔탈리즘과 너무 샤방하여 평가 절하 되었던 빅토리안 페인팅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듀브 물감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못했을 인상파 이야기, 히틀러가 만들어낸 제3제국의 미술은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셔터 아일랜드]를 보게되어 화면에 스쳐지나가는 벽에 걸린 치글러의 「여성 누드」를 발견하는 잔재미를 주었다. 반달리즘으로 어이없고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예술품의 이야기도 놀라웠다. 학살의 그림과 냉전시대의 정책적으로 밀어주는 그림은 그림도 한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했다. 14건의 친자확인 소송을 낳은 클림트의 아틀리에로 시작해서 앤디워홀의 팩토리로 끝나는 화가들의 아틀리에 이야기도 재밌었다. 신경쇠약으로 기행과 자살의 확률이 많은 예술가 이야기, 예술품 약탈자의 대명사 엘긴의 '엘긴의 변명'과 유물을 약탈하는 '엘기니즘'은 기억해야할 단어다 싶다. 그리고 위작들의 이야기와 훌륭한 위작이라면 사인해 주었다는 화가들 그리고 위작의 대가들이 그려낸 작품들의 이야기도 새로움이었다. 아트와 안어울리는 마케터와 매니지먼트, 그리고 어드바이저들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정리를 안하고 느낌만 쓰려다보니, 나중에 리뷰를 봐도 뭔지 모를 듯 싶어서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한번 읽고 다 알기는 힘들겠으나, 이정도만 알아도 화집보면서 약간의 잘난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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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감상법 빛깔있는책들 - 즐거운 생활 193
서차영 지음 / 대원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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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차영 | 대원사 | 125쪽 | 1997년 01월 31일 | 정가 : 6,400원


몇년 전에 아주 유명한 러시아 무용수가 연기하는 [백조의 호수]인지, [지젤]인지를 본 적이 있다(감동을 받지 못한 까닭에 리뷰도 없고 뭘 받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A석이었는데도 20만원에 육박했던 그 공연은 친구가 급한 일이 생겨서 못가는 바람에 대신 보러 간 공연이었다. 힘들게 구했다는 2층 구석자리는 쌍안경을 빌렸음에도 제대로 보이질 않았었다. 쌍안경으로 들여다보고 다시 육안으로 보는 일을 반복하다가 공연이 끝났던 것 같다. 그때 급한마음에 공연 보기 전에 사서 읽었던 책이 이 책이었다. 그때는 재미없어서 끝까지 읽지도 못한 것을 이번에 다른 발레공연 감상을 앞두고 찾아 읽었다. 

유명한 발레공연이야 검색으로 하면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을 수 있지만, 한국 창작 발레 일 경우에는 다양한 정보가 부족하게 마련이다. 이럴때는 발레의 기본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읽었지만 감상법보다는 발레에 대한 교과서적인 설명이 짧은 책에 몇번을 되풀이하며 쓰여져 있다. 「발레를 감상하는 길」로 시작된 책은 발레의 역사와 세계 유명 발레단과 전용 극장으로 넘어가면서 머리아픈 이름들에 잔득 시달려야 한다. 발레 작품 감상이라는 부분도 발레 감상을 하기 싫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 안타까웠다. 즐겁기 위한 발레보다, 이 책을 읽고 잘 외웠다가 공연과 상관없는 잘난척 할 순간을 노리는 사람에게 적절한 책이 아닌가 싶다.

말이 없는 공연이기에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유용하게 읽었고 발레 용어를 해설하는 부분도 유용하게 읽었지만, 그 정도의 정보는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으리라 본다. 글로 배운 발레의 자세들을 상상하자니 모양이 잘 안나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 처럼 발레에 대한 흥미를 키우는 사람이 발레 감상을 앞두고 읽을 책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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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
헤르만 헤세 지음, 전영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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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저/전영애 역 | 민음사 | 239쪽 | 327g | 132*225mm | 2000년 12월 20일 | 정가 : 8,000원


엄마가 책장사에게 구입한 전집에 데미안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0권에 달하는 전집이 차례대로 꽂혀 있는 책장을 누워서 바라보며 제목을 읽고 있자면 참으로 낯익었다. 몇년을 그렇게 꽂혀 있던 책들은 읽지 않은 채로 치워졌지만, 나는 아직도 그 책들을 읽었다고 착각한다. 그 세로 줄에 오늘쪽에서 왼쪽으로 읽는 한문이 많았던 그 전집을 말이다.

[데미안]을 읽으며, 세월의 흐름 속에 있는 나를 뒤돌아 봤다. 그리고 데미안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이 완전하면서 불경스러운 존재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게도 데미안이 있었다면이라는 욕심과 안타까움이 마음에 차 올랐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P.123 

문득 생각했다. 지금도 머리가 띵한 느낌으로 읽었는데, 이 책이 과연 청소년 필독서가 맞을까? 물론, 무슨 책이든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다. 내가 어린왕자를 두고두고 계속 읽을 때 마다 다른 느낌으로 읽는 것 처럼 데미안도 그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읽히지 않을까 싶다. 좀더 일찍 만나지 못한게 안타깝다. 생각이 충돌하며 많은 이야기가 머리 속에 차 오르는데, 글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몇번 더 읽은 후에 리뷰를 보충해야겠다.

P.167
나 자신도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번개같이, 내가 그에게로 쏘아버렸고, 그의 심장을 맞춘 화살이 그 자신의 무기고에서 꺼낸 것이었음을 수치와 충격으로 느꼈다. 그가 냉소적 음색으로 이따금씩 내뱉던 자기 비난의 어휘들을, 이제 악랄하게도 내가 그에게 한껏 극단화된 형태로 던졌던 것이다. 

P.168
「자네가 옳아」 조금 뜸을 들인 다음 그는 천천히 계속했다. 「한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맞서 옳을 수 있는 바로 그만큼 말일세」

P.169
그의 이상에서는 <골동품 냄새가 났다>. 그는 과거를 향한 구도자였다. 그는 낭만주의자였다. 그리고 갑자기 나는 깊이 느끼게 되었다. 피스토리우스는, 그가 나에게 준 것을 그 자신에게는 줄 수 없었으며 내 눈에 비쳤던 그의 모습도 그의 실체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는 길잡이인 자신도 넘어서지 못하고 떠나야 했던 길로 나를 인도했던 것이다.

그가 나의 말을 운명으로 인정함으로써 그는 내가 나 스스로를 미워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나의 경솔함을 천배 더 크게 만들었다. 때리려 달려들었을 때 나는 방어력 있는 강한 사람을 쳤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맞은 사람은 인고하는 고요한 인간, 말없이 항목하는 무방비한 사람이었다.


덧붙여, 장성한 아들을 두고도 매력있을 수 있는 애바 부인이 몹시 부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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