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미술관 - 그림이 즐거워지는 이주헌의 미술 키워드 30 이주헌 미술관 시리즈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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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 잘 읽었다고 해 놓고선 기억나는 것이 없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시 펴 보니 그제서야 새록새록 다시 읽힌다. 남들보다 다독을 하지도 않으면서 기억력의 한계는 왜, 늘 코 앞에 있는 걸까?

첫번째 눈길을 잡아 끈 그림은 마그리트의 「골콘다」였다. 신세계 백화점 본점 공사할때 가림막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본 터라, 반가웠다. 반복된 창이 있는 집이 있고, 전혀 상관없어보이는 신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둥둥 떠 있다.
어떤 물건을 이질적인 환경으로 옮겨 원래의 실용적인 성격을 배제하여 기이한 만남을 현출시키는 기법인 데페이즈망이라고 했다. 「골콘다」외에도 마그리트의 몇가지 그림들이 더 나오는데, 설명과 함께봐서 그런지 눈에 쏙쏙 잘도 들어오면서 은근하게 끌린다. 마그리트 전시회가 열리면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다음에 눈에 들어온 것이 트롱프뢰유라는 눈속임 기법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손에 잡힐 듯 하지만 그림일 뿐인 이 기법도 참으로 흥미롭다. 제주도에 이런 그림이 많은 전시관이 있었던 것 같다.

소녀의 모습인지 노파의 모습인지, 이리보면 이렇게 바뀌고 저리 보면 저렇게 바뀌는 그림의 수법을 게슈탈트(독일어, 형태) 전환이라고 한다. 아르침볼도의 「베르툼누스」에서 수염난 남자인지 과일인지 야채인지 정신 없는 그림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다른 책에서 보았던 홀바인의 「대사들」에 괴이하게 늘어져 있는 해골그림도 한쪽 방향에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왜상(歪像)이라는 것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그저 비밀스러운 표시려니 했지, 한쪽에서 보면 완벽하게 보이는 상이라는 생각은 안해봤었다. 그외에도 정면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보게되는 재미난 그림들을 만나게 되는데, 루스의「생 사뱅」과 같은 실제공간에 그려 넣은 그림은 놀랍다. 최근 현대카드 광고 중에 하얀색 배경에 사각형 안에 선이 그어져 있는 방이 나오는데, 딱 그것을 말하는 기법이었다. 더 재미난 것은 반사왜상 이었다. 특수한 반사판으로 반사해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그림 감상법도 재밌었다. 왜 이렇게 배경을 시커멓게 그리는지 알 수 없던 그림들도 그 그림의 명함처리법을 키아로스쿠로(이탈리아어. '밝다'와 어둡다'의 합성어)라고 부른다는 말을 듣고보니 또 눈이 트이는 듯 하다. 유럽의 근대적 불안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렘브란트가 대표적이란다.

쓰다보니 한도 끝도 없을 듯 싶다. 천사상의 날개의 이유와 시대별 성별 누드에 대해 새롭게 알게된 사실, 과감하고 당당해진 클림트의 에로티시즘, 이콘과 성유물 이야기, 예술작품을 보고 흥분상태에 빠지는 스탕달 신드롬, 도대체 알수 없는 것들을 모아 놓았던 그림이라 막막했던 바니타스(라틴어. 허무, 허영, 덧없음)와 연관해서 다시본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는 아는 그림이라 그런지 급하게 와 닿았다. 도무지 아름답지 않은 죽은 사냥물들을 그린 그림들은 그 그림 자체로도 신분을 나타낼 수 있다니, 그림의 존재가 이해되었다. 잡다한 개인 박물관 콘수트카머(독일어. 예술의 방)는 도대체 알 수 없는 그림이었으나, 이유를 알고 보니 그럴사해 보였다. 진정한 동양이 아닌 보고 싶은 동양을 그린 오리엔탈리즘과 너무 샤방하여 평가 절하 되었던 빅토리안 페인팅의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었다. 듀브 물감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발생하지 못했을 인상파 이야기, 히틀러가 만들어낸 제3제국의 미술은 이 책을 읽는 와중에 [셔터 아일랜드]를 보게되어 화면에 스쳐지나가는 벽에 걸린 치글러의 「여성 누드」를 발견하는 잔재미를 주었다. 반달리즘으로 어이없고 무자비하게 파괴되는 예술품의 이야기도 놀라웠다. 학살의 그림과 냉전시대의 정책적으로 밀어주는 그림은 그림도 한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했다. 14건의 친자확인 소송을 낳은 클림트의 아틀리에로 시작해서 앤디워홀의 팩토리로 끝나는 화가들의 아틀리에 이야기도 재밌었다. 신경쇠약으로 기행과 자살의 확률이 많은 예술가 이야기, 예술품 약탈자의 대명사 엘긴의 '엘긴의 변명'과 유물을 약탈하는 '엘기니즘'은 기억해야할 단어다 싶다. 그리고 위작들의 이야기와 훌륭한 위작이라면 사인해 주었다는 화가들 그리고 위작의 대가들이 그려낸 작품들의 이야기도 새로움이었다. 아트와 안어울리는 마케터와 매니지먼트, 그리고 어드바이저들이 왜 필요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정리를 안하고 느낌만 쓰려다보니, 나중에 리뷰를 봐도 뭔지 모를 듯 싶어서 간단하게 정리해보았다. 한번 읽고 다 알기는 힘들겠으나, 이정도만 알아도 화집보면서 약간의 잘난척(?)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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