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살았을 때의 어떤 말보다 아름다웠던 한마디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이 잎을 노랗게 물들였다.

지나가는 소나기가 잎을 스쳤을 뿐인데

때로는 여름에도 낙엽이 진다.

온통 물든 것들은 어디로 가나.

사라짐으로 하여 남겨진 말들은 아름다울 수 있었다.

말이 아니어도, 잦아지는 숨소리,

일그러진 표정과 차마 감지 못한 두 눈까지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그 순간 삶을 꿰매는

마지막 한땀처럼 낙엽이 진다.

낙엽이 내 젖은 신발창에 따라와 문턱을 넘는다, 아직은 여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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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2004-03-05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절에는 안 맞는 듯하지만...좋아하는 시를 서재에 옮기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