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탕달의『적과 흑』그의 총명함을 알아본 셀랑 사제에게서 쥘리앵은 라틴어를배우고 때마침 아이들의 라틴어 선생을 구하던 레날 시장의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시장의 부인은 처음 쥘리앵을 보던 날, 그에게서 이런 느낌을 받는다.
‘아직 어린애 같은 시골 청년이 몹시 창백한 표정으로, 마치지금까지 울고 있던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레날 부인은 그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친절하게 대하지만, 쥘리앵은 특권 계층에 대한 증오심으로 정숙한 레날 부인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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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그리워하면서도 알리사는 왜 제롬과 함께 가는 길을거부했을까? 그녀가 택한 길이 너무 좁아 둘이서 나란히 걸어갈 수 없었기 때문일까?
함께 지내고 함께 웃는 것만이 사랑은 아니다. 아프게 헤어지는 것도 사랑이다. 잠들지 못하고 혼자 맞는 푸른 새벽, 창밖을 내다보며 흘리는 눈물까지도 사랑이다. 얼굴을 떠올리면가슴에서 들리는 바람 소리도, 사랑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건 분명한데, 그런데도 가까이 가지 못하는 사랑・・・・・・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픈 사랑・・・・・・ 그러니 사랑은 슬픔과 이음동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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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왜 그토록 사랑 앞에서 잔인해야 했을까? 한 남자를사랑하면서도, 그 남자의 파멸을 지켜보면서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연은 무엇일까? 이기심일까 두려움일까?
아니면 이미 사랑의 종말, 그 부질없는 속성을 파악해버렸기때문일까.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이를 아프게 할 수밖에 없는 사랑,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그 사랑을 놔버리는 사랑, 가까이 두고싶지만 애써 거리를 멀리 두는 사랑. 그래서 사랑은 온 우주를드는 것보다 더 무겁고 힘들다는 말을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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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저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이 주최한 ‘인권법 캠프‘에서특강을 했습니다. 로스쿨 입학예정자 일흔명, 예비 사법연수원생 열명에게 어떤 법률가가 될 것인지 이야기하는 자리였죠. 강의를 시작하면서 청중에게 먼저 "왜 공익변호사를 꿈꾸는가?" 물어봤습니다.
이런 질문에는 정해진 모범답안이 있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 약자가 겪는 불평등에 대한 분노, 부모님이 겪었던 억울한 사건 등등사법시험 수석합격자 인터뷰, 로스쿨 입시면접 등에서 흔히 들을 수있는 답변이 그것입니다. 이런 뻔한 답변도 계의 세계에서 만들어낸이상적인 틀에 자신을 꿰맞춘 이야기들이죠. 그래서 그런 뻔한 답변말고 진짜로 왜 공익변호사를 꿈꾸는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고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제 얘기를 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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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메즈 목사의 강연은 기독교인인 저에게 어렵게 ‘선‘을 하나 넘는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를 쓸 때만 해도 동성애에 대한 저의 입장은 "죄인지 아닌지 따지는 얘기는그만 좀 하고, 내 주변에 동성애자 친구가 한명이라도 있는지부터돌아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개신교 보수신학의 입장에서 맨 바깥이지만,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경계선 안에 매달린 표현이었습니다. 당시 제 수준에서는 그 정도만 해도 적지 않은 용기를 낸 것이었습니다. 의문은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그런데 몇달 후 『불편해도 괜찮아』를 쓰면서는 "한명의 남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
한명의 여자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것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고 살짝 표현을 바꾸었습니다. 조심스럽지만 명백하게 개신교 보수신학의 경계선을 넘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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