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3. 여자는 뭐든지 속이지 ②

 

 

 

 

 

 그 시각 인천의 한 모텔, 침대에서 여자가 남자의 몸을 탐닉하고 있었다. 대낮이었지만 커튼이 쳐져 있어 방은 마치 한밤중처럼 어두컴컴했고 붉은 조명이 그들의 열기를 부추겼다. 누워 있는 남자는 서른 세 살 동갑나기 여자의 강한 애무에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미 달아오른 여자가 제지했다.  
 "아잉, 가만히 있어."
 남자의 성기를 장악한 여자의 입놀림은 갈수록 분주해졌다. 이러다간 사정이 빨리 올 것 같았다. 참다 못한 남자가 여자 몸을 뒤집고 가랑이를 벌린 뒤 속살에 입술을 파묻었다. 그 때 머리맡의 모텔 전화기 벨이 울렸다. 
 "이재필 경감? 박 수사관입니다. 잠깐 얘기할 게 있는데 문을 좀 여실까요?"
 박 수사관의 목소린 문앞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남자는 사태를 직감하고 여자에게 창문으로 탈출하자고 말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여자는 사색이 된 채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다. 같은 경찰관인 남편이 안다면 자길 죽이려고 들 것이다. 여자는 옷을 대층 걸치고 창문으로 나왔지만 앞은 낭떠러지였다. 옆 건물로 건너가기로 했다. 먼저 건너간 이 경감이 손을 내밀었다. 여자가 그 손을 잡았다. 순간, 이 경감이 휘청거렸고 두 사람의 몸은 건물 틈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서창민이 이근우의 회사탐문 결과를 정화에게 전화로 보고해 왔다.

 "이근우 책상과 소지품에선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장기출장을 고려한 듯 아주 잘 정돈이 돼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 사람들 이야긴데 작년까지만 해도 바른생활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반듯한 친구였는데 올해부터 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이상한 행동?"

 "네, 예를 들면 무단결근을 한다든지,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거린다든지, 회식자리에서 동료에게 폭력을 행사한다든지, 그랬답니다. 그리고 공식 출장 말고도 중국에 자주 왕래했다고 합니다. 여권기록을 검토해 봐야겠습니다."

 본서로 연락해 이근우의 여권기록을 긴급조회해 보았다. 과연 중국 출입국 기록이 빈번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가장 최근의 기록은 올해 4월 초의 것이었다. 검사에게 연락해 이근우에 대한 출국금지와 긴급수배령을 요청했다.

 팀은 검찰 수사관들의 도움을 받아 이근우의 회사와 집에 있는 컴퓨터를 압수하고 지문과 체모, 빨래통에 들어 있던 세탁물을 수거했다. 현장 감식을 한 장기식에게 이근우 체모에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했다.

  이근우 주변인물 탐문은 규영과 서창민에게, 휴대폰 통화내역과 차량 이동경로 조회는 이길재에게, 자료 조사는 장기식과 박 란에게 맡겼다.

  이근우 거처 수색결과를 가지고 정화가 과장을 찾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서장에게 직접 보고를 했다. 규영이 모는 차를 타고 서로 돌아오자 최 과장과 연락이 닿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그의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그리로 갔다는 것이었다. 조사실로 홍기철을 데려오게 했다. 겁에 질려있던 그는 여자 경찰관을 보자 안도하는 듯 했다. 정화가 심문기록을 들춰보았다.

 

 돈이 궁했던 홍기철은 대학 선배인 이근우가 돈 많은 여자를 털자고 하는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호화 헬쓰클럽을 이틀 정도 지켜보다가 돈이 많고 품행이 헤퍼보이는 두 여자를 범행 표적으로 삼았고 여자들은 이근우가 모는 벤츠를 보고 그들의 꾐에 빠졌다. 각자의 승용차로 미사리에 가 술을 같이 마시면서 홍기철은 거기에서 멀지 않은 명일동으로 가 고인식으로무터 택시를 넘겨받아 무인카메라가 없는 카페 근처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여자들 모르게 술잔에 약을 탔다. 정신이 혼미해진 두 여자를 홍기철이 미리 대기해 둔 택시에 태웠고 이근우는 자기 차를 어디론가 몰고가 숨겨두고 다른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여자의 차는 키를 찾을 수가 없어 그대로 두고가기로 했다. 모텔에서는 여자들의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애초 성폭행을 하기로 공모했지만 막상 때가 오자 이근우가 기분이 안 좋다며 말렸다는 것이었다. 
 여자들이 깨어난 시각은 오전 7시 무렵이었다. 그들은 흉
기를 들이대고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여자들의 지갑에서 나온 신용카드와 현금카드의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건 아주 쉬웠다. 공포에 질린 여자들은 종업원에게 별 의심가는 행동을 보이는 것 없이 모텔에서 따라나왔고 택시에 강제로 태웠다. 그리고 이천 외곽에 있는 빈 농가로 끌고 갔다. 사전에 물색해 둔 장소였다. 홍기철이 이천과 장호원 일대에서 현금을 인출해 가지고 돌아왔을 때 놀라운 광경이 그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근우가 여자 둘을 끈으로 목 졸라 살해한 것이었다. 이근우는 여자들이 반항해서 그랬다고 태연히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여자들을 야산에 묻어버리기로 했다. 피해자들의 옷을 모두 벗긴 건, 혹시 여자들 옷에 묻어있을지도 모르는 자신들의 흔적을 없애고 빨리 부패시키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근우가 범행 과정에서 보인 행동에 이상한 점이 없었나요?" 정화가 물었다. 

 홍기철은 그에 대해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태연하다가도 허둥지둥했고,  자주 신경질을 부렸다고 했다. 이근우 회사 동료들의 이야기와 일치했다.

 홍기철에게 혹시 그가 마약을 한 것 같냐고 물었다. 그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또, 이근우가 자주 찾는 장소와 가까이 지내는 친구, 그리고 여자관계에 대해 캐보았지만, 그다시 시원한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일단 구속절차를 밟아.." 정화가 규영에게 지시했다.

 조사실을 나왔다. 점심을 먹고 서창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침 이근우의 전 아내 가운데 한 명을 만나고 있었다. 성과가 있느냐고 묻자 별로 없다고 했다. 이근우와 연락이 닿은 지 1년이 넘었다고 했다. 여자 인상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서창민은 어이가 없다는 듯 푸하하, 웃다가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
 "어찌 보면 팀장님 닮았는 걸? 이거 참 신기하네."
 미친 새끼, 정화는 전화를 끊었다.
 두 시간 뒤 서창민과 같이 다니고 있는 규영이 전화로 보고를 해왔다. 부동산 사업을 하는 이근우 아버지를 만나봤는데 이근우의 어머니인 아내와는 10년 전부터 별거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를 따라 나선 이근우와도 자연히 연락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근우가 결혼하고서도 알리지 않는 등, 오래 전에 내놓은 자식이라며 자기하고는 상관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올 초에 암으로 사망했고 그 외 다른 가족은 없다고 덧붙였다. 

 정화가 규영에게 다음엔 어디로 갈 거냐고 묻자 이근우 전처한테서 그의 애인 직장을 알아냈다며 그리로 갈 거라고 말했다. 
 저녁에 돌아온 서창민이 정화에게 종합보고를 했다. 전처 둘은 모두 호스테쓰 출신이며 결혼 기간은 각각 2년과 1년 6개월이라고 했다. 이근우 애인 안영미 역시 안양에 있는 한 유흥업소 종업원이었다. 이근우와 헤어진 지 두 달이 넘었고 그 뒤로 전혀 연락이 없다고 했다.
 "안영미가 그러는데 이근우가 평소 자기 첫사랑이 여자 경찰관이었다고 자주 말하곤 했답니다." 서창민이 그렇게 말하며 흥미롭다는 눈초리로 정화를 바라보았다.
 젠장, 이건 또 뭐야? 정화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서창민에게 이근우의 전처 사진을 보자고 했다. 주민등록증 사진을 확대한 것이었다. 왠지 밉상이었다.
 탐문보고서 가운데 이근우의 학력에 대한 부분이 있었다. 서울 D외고 졸업. 정화는 까무러칠 뻔했다. 정화도 그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입학년도를 보니 그녀보다 두 학년 아래였다.
 고교 후배라니......정화는 저도 모르게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이길재가 이근우의 컴퓨터를 재차 조사했지만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은 하나도 없다고 보고를 했다. 대포폰을 사용하고 다니는지 최근 석 달 동안의 휴대폰 통화기록에도 특별한 건 없다고 했다. 계좌추적을 맡은 규영도 별로 이상한 게 없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 놈은 차명계좌를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팀은 밤을 꼬박 새웠다.

 과장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그의 아내인 윤다정 경사가 같은 서에 근무하는 경감과 모텔에 투숙했다가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는 소문이 저녁부터 서 내에 파다해 있었다. 갑자기 그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대적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최 과장은 늘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가 소문처럼 성질이 고약한 경찰관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장이 출근해 팀 사무실을 들렀다.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수고하라는 말만 남기고 사무실을 나갔다. 팀원들이 수군거렸지만 정화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국과수가 1차로 자료를 보내왔다. 놀랍게도 이근우의 머리카락에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왔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종류는 신종 합성마약으로 '배스솔트'로 불리는 매우 환각성이 강한 것이었다. 병원에서 마취제로 종종 사용하는 약인데 습관으로 복용하면 상식과 동떨어진 폭력을 유발하는 마역이다. 환각성이 LSD나 엑스터시보다 강하며, 값이 싸서 미국과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 급격하게 퍼지고 있는 마약이고 주한미군이 그 공급루트다.

 자료가 오자 현장감식을 맡았던 장기식은 안절부절 했다.

 "어떻게 된 거죠?" 정화가 물었다.

 "그, 그게......장비가 워낙 구형이라 신종마약을 검출하기엔......"

 "그걸 말이라고 해요?" 정화가 서류철을 그에게 집어던졌다. 안 그래도 감식 전문가로서의 그의 능력을 의심해 오던 터였다. 장기식은 그녀가 부임한 이래 한 번도 그럴듯한 결과를 내 본 적이 없었다. 

 "홍기철한테서도 마약 성분이 나왔대요?"

 "아닙니다." 장기식이 대답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정화는 서창민을 불러 장기식을 데리고 안영미 집에 가서 구석구석 다시 뒤져보라고 했다. 그리곤 안면이 있는 국과수 장익환 과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1차 자료라도 좋으니 유전자 감식결과를 빨리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퇴근시간이 다가올 무렵, 서창민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베란다 화분 아래에서 필로폰과 LSD가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녀를 체포해 데리고 오라고 했다. 

 경찰서에 도착한 안영미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녀는 서창민의 심문에 고분고분 진술을 했다. 마약은 올 초에 이근우가 맡긴 것이며 자신은 결코 투약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감식반을 불러 그녀의 머리카락을 분석했다. 그녀 주장대로 결과는 음성이었다. 정화는 마약소지 건으로 안영미에 대한 구속 절차를 밟으라고 지시하곤 조사실을 나왔다.

 정화는 그 길로 장기식을 전담팀에서 해임하고 3팀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감식팀장에게 똘똘한 직원 한 사람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마홍수 경사를 추천했다. 정화는 마홍수를 직접 면담했다. 올해 36세로 나이는 그녀와 동갑이었다. 장기식과 달리 용모가 단정했고 다소 학구적인 냄새가 났다. 지방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경찰에 들어온 그는 요즘 응용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감식 업무만 8년을 했다고 말했다. 프로필을 보니 그가 다룬 것들 가운데엔 모 사이비종교단체 신도 살인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도 몇 있었다. 자기가 개발한 감식장비도 몇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정화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곧 과장을 찾아가 수사보고를 하면서 사정을 설명하고  마홍수를 장기식 대신 전담팀으로 발령내 달라고 요청했다. 과장은 요청을 들어주었다.

 

 다음 날 아침 국과수에서 기초 유전자 감식결과를 보내왔다. 마홍수에게 그걸 가지고 전산을 뒤져보라고 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올 무렵, 그가 복사물을 잔뜩 가지고 들어와 정화 책상에 올려놓았다.

 "팀장님. 대박입니다. 이걸 보세요."
 "뭔데?"
 "전산자료에서 글쎄......미제 살인 사건 두 개가 튀어나오더라고요."
 마침 자리에 있던 규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화는 기대감에 부풀어 두 뭉치의 서류로 얼른 손을 가져갔다.

 먼저 <2003년 4월에 발생한 파주 예지화원 40대 자매 피살 사건>이라고 적혀 있는 서류 겉장을 발견했다. 정화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잘 아는 사건이었다. 옆에선 규영이 팔짱을 낀 채 서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또 하나는 <2005년 청담동 성형외과 의사 청부살인 사건>이었는데 처음 들어보는 사건이었다. 마홍수가 말을 이었다.
 "파주 건은 경기청에서 다뤘고, 압구정동 사건은 당시 우리 서에서 했는데 해당 수사팀들이 동일범이라는 걸 몰랐는지 공조수사 기록은 없더군요. 예전에 압구정 사건을 다뤘던 수사관들은 지금 서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거기까지 조사하다니, 마홍수는 생각보다 꼼꼼하고 성실한 인물이었다.

 "알았더라도 자기들이 잡으려고 서로 정보를 안 알려줬겟지요." 규영이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컸다. 당시만 해도 관할지 중심의 비과학적인 수사관행이 횡행하고 있었으니까. 요즘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과도한 실적주의가 그 원인이었다. 
 "여기 파주 건 수사진 가운데 한 분이 팀장님이셨더군요. 기억 하시죠?" 마홍수가 물었다.
 왜 기억이 안 나겠는가, 정화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가 햇병아리 경위 시절에 파주경찰서 정보과 요원으로 경기청 광역수사대와 함께 수사한 사건이었다.

 

 당시 경찰은 가족으로부터 자매의 실종신고를 받은 지 3일 만에 화원 비닐하우스 안에서 흙에 파묻힌 그들의 시신을 발견했다. 감식반이 범인의 지문을 발견하지는 못했으나 정원용 가위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을 추출해 국과수에 보냈다. DNA가 나왔으나 그것과 일치하는 용의자 자료는 없었다. 이 소식이 우연치 않게 지역 언론에 보도되었고 범인을 잡으라는 지역 여론이 빗발치자 경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파주경찰서 요원들과 함께 범인 색출에 나섰다. 그렇지만 결국 범인를 찾지 못했고 3개월 만에 수사를 종료했다. 정화는 그 직후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상부의 배려로 미국 뉴욕총영사관으로 파견근무를 떠났다.

 청담동 사건 자료를 눈으로 대충 훑었다. 비공개 수사였다. 40대 중반의 성형외과 의사가 자신이 경영하는 병원 안에서 흉기로 피살된 사건이었는데 수사 결과 아내가 청부살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내룰 구속했으나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의사 아내와 범인이 동침했던 의사 집 침대 밑에서 휴지와 콘돔 등을 찾아내 유전자 감식결과를 얻어낸 것 말고는 수사 성과가 없었다. 

 두 사건에서 나온 용의자의 유전자가 같은 것이었다니, 정화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부녀자 납치살인과 청부살인, 마약. 정화는 간단한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곤 메모를 해 과장에게 보고하러 갔다. 그는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옆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보고를 마치자 그가 서장에게 인터폰을 했다. 둘 사이에 대화가 잠깐 오간 뒤 그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한 시간 뒤에 수사계장 급 이상 회의를 소집하라더군. 브리핑 준비 좀 해두게."
 정화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곤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과장이 다시 그녀를 불러세웠다.
 "난 지금의 팀을 확대해 오 팀장이 계속 지휘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네. 하지만 이런 결과가 나왔으니 다른 체계로 팀이 꾸려질 가능성이 크지. 서울청 광역대에서 지휘하겠다고 나설지도 모르겠군. 오 팀장 생각은 어떤가?"
 "저보다 실력 있는 수사관이 다루는 게 낫겠지요."
 과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정화는 방을 나왔다. 복도를 걸으며 바람난 짝을 둔 수컷의 심정은 과연 어떤 것일까에 대해 짐작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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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동창생들 - 3. 여자는 뭐든지 속이지 ①

 

 

위험한 동창생들 - 3. 여자는 뭐든지 속이지

 

 

 

 

 


 정화는 오랜만에 체력단련실로 갔다. 이른 시각이라 아무도 없었다. 런닝머신에서 30분 정도 땀을 흘리고 있을 때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땀 때문인지 시야가 흐릿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작년 말부터 정화는 야근이나 체력소모가 많은 운동을 했을 때 가끔 앞이 뿌옇게 보이는 현상을 겪고 있었다. 체중도 줄고 있었다. 작년에 그녀를 검진했던 친구 의사 혜경은 과로와 스트레쓰가 원인이라며 정화에게 충분한 휴식과 음식 조절을 권했다. 그러나 강력팀을 벗어나지 않는 한, 혜경의 권고를 따르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화는 머신에서 내려와 샤워실로 들어갔다. 얼마 뒤 옷을 챙겨입고 휴게실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을 때 규영이 천천히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발달한 근육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번들했다.
 "아까 인사했는데 왜 모른 체 했어요?" 그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아, 그게 너였어? 미안. 땀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여서. 그나저나 좀 쉬지, 왜 땀을 흘려?"
 "그러는 팀장님은요?"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녀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날이 갈수록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상의할 게 있는데요." 규영이 말했다.
 "뭐지?"
 그 때 상황실에서 연락이 왔다. 목격자가 전화를 걸어왔다며 신고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했다. 신고자는 양평에있는 한 모텔의 주인이라고 했다. 정화는 다음에 얘기하자며 먹다 남은 콜라캔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곤 재빨리 일어섰다. 단련실을 뛰쳐나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땅히 따라와야 할 규영은 그냥 그 자리에 선 채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빨리 와, 새꺄." 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목격자와 직접 통화하곤 장기식이 모는 차를 타고 양평 모텔로 달려갔다. 여주인과 남자 종업원은 실종추정일 자정 무렵에 중년의 두 남녀가 한 방에 투숙한 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들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 그러나 용의자 몽타쥬를 보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몽타쥬보다 젊어 보였고 30대 중후반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여자들은 술에 취해 정신을 거의 잃은 상태였고 남자들과는 그렇고 그런 사이로, 그룹섹스를 나누러 온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투숙한 방은 커다란 온돌방이었는데 룸과 화장실은 청소가 잘 되어 있었다. 투숙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던 터라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정기식이 가지고 온 장비로 이곳저곳을 채증했지만 별 소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종업원은 두 쌍의 남녀가 아침 7시 경 모텔을 조용히 빠져나가는 걸 봤다고 했다.
 "혹시 그들이 타고 온 차를 기억하십니까?" 정화가 물었다.
 "네. 주차장이 아니고 길 건너 멀찌감치 세워두었는데요, 택시였어요." 종업원이 말했다.
 결정적인 단서였다.

 

 그때부터 팀은 택시회사들을 상대로 비밀리에 탐문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길 3일 째, 드디어 명일동에 있는 한 택시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지입차 한 대의 블랙박스 기록이 수상하다는 것이었다. 해당일 그 택시의 주행기록이 미사리-양평-이천-명일동으로 되어 있었고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입금이 평소보다 많이 되어 있다고 했다. 택시기사는 고인식이라는 이름의 32세 남자로 정상 출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화와 규영, 그리고 서창민이 입금시간에 맞춰 택시회사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체포했다. 고인식은 별다른 저항이 없었고 왜 체포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택시회사 빈 사무실에서 그를 심문했다. 그는 해당 시간에 평소 고향 친구 홍기철과 회사 몰래 택시 영업을 같이 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회사에 등록하지 않은 자가 택시를 모는 건 엄연히 불법이었다. 고인식은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변명하며 선처를 구했다. 고인식의 진술에 따르면 회사 근처에서 홍기철에게 차를 넘겨준 시간은 4월 18일 오후 9시 경이었고 다음 날 오후 10시 경에 돌려받았다고 한다. 주행거리가 꽤 되었고 홍기철은 수입이 괜찮았다면서 평소보다 두 배 많은 40만 원을 내밀더라고 했다. 그것 말고는 딱히 이상한 기색은 못 느꼈다고 했다. 


 팀원 전체가 즉시 가까운 곳에 사는 홍기철의 집을 급습했지만 노모 혼자만 자리에 누워 있었다. 노모는 그가 3일 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회를 해보니 그에게 전과는 없었다. 장기식과 감식반이 범행에 사용된 택시를 조사했다. 회사 방침에 따라 고인식이 워낙 깨끗하게 관리했던지라 흔적을 찾긴 쉽지 않았다. 혈흔도 없었다. 겨우 머리카락 몇 가닥을 찾은 게 감식반의 성과였다. DNA분석만 해도 최소 며칠이 걸린다. 홍기철의 방을 뒤져 체모와 치솔을 수거했지만 그것도 빠른 결과를 얻기 힘들다.

 고인식을 경찰서로 데려와 당일 행적을 추궁했지만 과연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를 일단 유치장에 가둬두고 회의를 가졌다. 회의 중에 박 란이 긴급 보고를 했다. 신촌 현대백화점 인근에서 홍기철의 휴대폰 이동경로가 잡힌다는 것이었다. 과장에게 보고하고 형사기동대의 지원을 받아 그리로 출동했다.
 "봐, 임마 내 말이 맞지? 초짜에 가난뱅이." 차 안에서 서창민이 규영에게 말했다.
 "잡기 전까진 아직 모릅니다." 규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휴대폰 신호가 꺼지는 바람에 허탕을 쳤다. 홍기철이 통화한 상대의 전화는 대포폰이었다. 

 수사엔 진전이 없었다. 다음 날 더 자세한 통화기록이 정보과에서 넘어왔고 이길재가 분석을 맡기로 했다. 홍기철의 친구와 친척들에 대한 탐문수사가 진행됐다. 

 행운이 일찍 찾아왔다. 며칠 뒤 홍기철의 친척으로부터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팀이 출동했고 잠복하고 있던 규영이 역 앞 횡단보도에서 친척을 만나러 오는 홍기철을 벌견하곤 한 판 업어치기로 멋지게 제압해 수갑을 채웠다. 


 홍기철은 조사를 받는 내내 범행을 강하게 부인했다. 여자들을 만난 적이 없다며 당일 택시 이동경로마다 손님을 태웠다는 것이었다. 죄도 없으면서 왜 도망쳤냐는 정화의 추궁엔 얼마 전 택시를 몰다가 취객이 두고 간 지갑을 슬쩍한 적이 있어 그게 마음에  걸려 그랬다는 것이었다. 이길재가 얼마 뒤 휴대폰 통화기록을 들고 조사실로 들어왔다. 몇 개의 전화번호에 빨간 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날 밤 형사들은 돌아가며 강도가 높은 심문을 가했다. 드디어 홍기철은 다음 날 동이 트기 전에 범행 모두를 자백했다. 병 든 노모가 약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주범이 아니었다.

 

 주범은 34세의 이근우라는, 제법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라고 했다. 택배회사 과장으로 번듯한 직업도 있었다. 긴급조회를 해보니 전과는 없었다. 휴대폰 전원은 꺼져 있었다. 박 란이 출입국관리소에 연락해 보았다. 다행히도 아직 출국기록은 없었다.  그에겐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었고 전처들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홍기철은, 범행에 가담하긴 했지만 여자들을 죽인 게 이근우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애초부터 살인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라며 살인은 아주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근우의 대학 같은 과 후배였다.  

 "위험한 동창생들이군."
 이길재의 말에 정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험한 동창생들로 차고 넘치긴 그녀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 경찰대, 사법연수원, 육사......

 

 팀은 두 개의 조를 편성해 각각 이근우의 집과 회사로 급히 달려갔다. 정화 조가 아파트를 급습했는데 이미 달아난 뒤였다. 아파트 경비실 CCTV에 나온 그의 모습은 10일 전의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파트 내부는 다소 호화스러운 편이었고 정돈이 잘 돼 있었다. 거실 티브이 위에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영화 <세 가지 색 블루>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정화는 심장 한 구석이 짠해지는 걸 느꼈다. 큰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수수해 보이는 얼굴과 숏커트. 정화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줄비(줄리엣 비노쉬)였다. 

 정화와 그녀가 닮았다고 해 오래 전에 형사 하나가 농담으로 붙여준 뒤 처음엔 동료 경찰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별명이었다. 그런데 현아영 기자가 정화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그 별명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궁전엔 왕비, 경찰엔 줄비".

 그 후로 대중에게 제법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화는 줄리엣 비노쉬와 자신이 그다지 닯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 검사가 검찰 수사관 둘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다.

 방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비롯한 살인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이길재와 기술 요원이 컴퓨터에도 별 흔적이 없다고 했다. 

 "지나치게 정리정돈이 돼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길재가 말했다.

 "이미 주변정리를 해 둔 걸지도 몰라." 정화가 이렇게 말하곤 이근우의 회사로 출동한 서창민 조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1주일 전에 병가를 내고서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데요?" 서창민이 전화기 너머에서 대답했다.  혹시 위조워권으로 나간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낭패다.

 정화가 주방에서 감식반 일을 돕고 있을 때 이근우의 책장을 뒤지고 있던 규영이 그녀에게 다가와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이상하군요. 파일에 왜 이런 게 있죠?"
 정화가 그것을 받아들고는 찬찬히 들추어 보았다. 작년에 쓴, <검경 수사권조정 논의에 문제있다>는 인터넷 칼럼과 강남경철서 강력팀 발령 인터넷기사를 스크랩한 것이었다. 공개수사 발표 기사도 있었다. 
 "팀장님 팬이 여기 또 있었군요." 규영이 말했다.
 "와우, 규영이 경쟁자네? 브라보!" 서창민이 휘파람을 불었다. 규영이 그에게 농담하지 말라며 인상을 썼다.

 "내기에서 내가 이겼으니 술이나 사쇼."

 정화는 파일을 더 들췄다. 그 맨 아래 빛이 바랜 신문기사 스크랩이 하나 있었다. 정화는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제목은 <현역 경찰관 무단이탈 뒤 총기자살>, 2003년 7월 10일 자 모 중앙일간지 기사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 지난 7월 9일 새벽 3시 20분 쯤 경기도 파주군의 한 빌라 복도에서 경기경찰청에 근무하는 A(28) 경위가 쓰러져 있는 것을 여자 친구인 B(26) 경위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B경위는 총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 A경위가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따라 B경위의 변심에 고민하던 A경위가 문제해결을 하고자 총탄을 휴대하고 근무지를 무단이탈하여 여경의 숙소를 찾아갔다가 심하게 말다툼을 했고, 뜻대로 안 되자 홧김에 총기로 자살한 보고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

 

 "오 경위, 그게 뭡니까?" 검사가 물었고 팀원들은 정화의 표정을 살피며 모두 입을 다물었다.
 "또라이 새끼 같군요." 정화는 베란다로 나가 숨을 몇 번 들이쉬었다. 토할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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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한 동창생들 - 2. 2012년, 서울 강남 ④

 

 

 

 

 

 

  정화의 전담수사팀은 미사리에서 이천으로 향하는 주변 도로와 은행, 시신이 나온 현장 주변의 무인카메라를 다시 정밀 분석했다. 그러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범인들이 사전에 답사를 한 듯했다. 사건 현장 인근 휴대폰 기지국의 기록도 조사했지만 아직까진 별무소득이었다. 

 회의를 시작했다. 팀원들의 두툼한 수첩 페이지들은 깨알 같은 글씨로 꽉 차 있었다. 이천 전담팀이라곤 하지만 그건 형식에 불과했다. 그 전에 처리하고 있던 사건들은 대부분 3팀에 남은 직원들과 다른 팀에서 맡아주었지만 수사 연속성이 있는 일부 사건은 계속 처리해야 했다. 딱히 이 사건 뿐만 아니라 각자 맡고 있는 중요 사건이 서너 건도 넘었다. 팀장인 정화도 마찬가지다. 그녀의 파일엔 이것 말고도 다섯 개의 미제 사건이 들어 있다. 전담팀 회의를 마치면 곧장 3팀 회의를 주재해야 한다. 그 뒤엔 팀장회의......잠복근무와 당직도 해야 했고 때론 다른 부서나 형사기동대의 지원요청을 받고 긴급 출동도 해야 한다. 아차, 정신줄을 놓으면 사건과 용의자 이름이 머리속에서 마구 뒤섞인다. 실적주의가 경찰관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 그게 일선 수사경찰관의 고민이다. 한 사건만 추적하는 경찰? 천만의 말씀이다. 현실은 영화나 소설과 전혀 다르다.

 

 장기식이 막 나온 국과수의 검시 결과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피해자들은 실종 다음 날인 오후 6시에서 8시 사이에 숨졌고 매장되기 전에 목이 졸린 흔적이 있답니다."
 "생매장은 아니라 다행이군. 성폭행 흔적은?" 정화가 물었다.
 "시신의 상태가 안 좋아 그 여부를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른 사항은 없습니다."
 "여자들의 휴대폰 통화내역과 주변 인물을 조사해 봤습니다." 이길재가 수첩을 보며 말했다." 두 여자는 각각 중소기업 사장과 마사지클럽 매니저의 아내로, 비교적 부유한 편이더군요. 그런데 부부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통화기록을 통해 알게 됐는데 여자들의 남자 관계가 꽤 복잡더군요."
 "남편과 남자들 알리바이는요?"
 "모두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청부살인 가능성도 열어두고 조사했지만 아직 밝혀낸 건 없습니다."
 "후우." 정화가 한숨을 쉬었다. "일 주일이 지나도록 수사에 진전이 없으니 검사가 안절부절하더군요."
 "공개수사를 하는 게 어떨런지요" 서창민이 말했다. "과장님이 검토해 보라더군요."
 최재서 과장에게 직보를 하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정화는 내색하지 않았다. 최재서는 직원들의 근태에 대한 지적 말고는 그녀의 보고에 거의 토를 달지 않았다. 결제 서류를 스윽 훑어보곤 선선히 사인을 했다. 그는 전 서장의 측근이자 작년 말 감찰을 통해 비리와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었다. 그는 신임 서장을 매우 경계하고 있다. 그래서 서장과 친한 인물인 정화와 정면대결을 피하고 있는 중이다. 정화도 아직 그와의 대결을 원치 않고 있었다. 요즘 그는 무슨 일에 몰두하고 있는지 자리에 거의 있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최근 또다시 불거진 룸살롱 대부와 경찰과의 유착의혹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했다. 
 공개수사를 할 것인지 정화가 팀원들에게 물었고 모두 동의했다. 정화는 최재서에게 인터폰을 했다. 마침 자리에 있었다. 과장실로 들어가 보고를 했다. 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선선히 그러자고 했다. 그러면서 공개수사 발표 자리에 동석할 것을 요구했다. 정화는 그러겠다고 하곤 그의 방을 나왔다.  


 오후 두 시에 팀장 회의에 참석했다. 형사과엔 모두 다섯 개의 강력팀이 있다. 그리고 두 개의 전담 수사팀이 겹쳐 있다. 계장은 공석이었고 다섯 명의 팀장이 자리를 한 가운데 최 과장이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1팀장이 수서동 사건에 대해 장황하게 보고를 했다. 스크린에 나온 현장 사진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용의자는 아직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보고 내용에 알맹이가 빠져 있었다.
 정화는 전문가 소행이며 조직 범죄라고 알아차렸다. 그러나 정작 조직폭력을 다루는 1팀장은 그 가능성을 애초부터 배제하고 있었다. 치정에 의한 원한관계 쪽으로 방향을 몰고 가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그런데도 과장은 고개를 숙이고 그저 머리만 끄덕거리고 있었다. 참다 못한 정화가 문제제기를 하고 나섰다.

 "피해자들 몸에 난 열십자 상처들과 누워 있는 자세를 보면 전문가 소행이 확실합니다. 동일 수법 범죄자에 대해 조회를 해보셨나요?"

 팀장들 눈길이 정화에게 쏠렸다. 과장도 고개를 들었다.

 "물론, 했습니다." 1팀장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별다른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저 열십자 상처들은 고문 흔적으로 보이는데 고문을 가하다가 살해했을 가능성은요?"

 그 때  과장이 1팀장의 답변을 제지하고 나섰다.

 "다른 팀 수사에 깊이 간섭하는 건 옳지 않아요. 이 자리에서 공개하지 못하는 얘기도 있고. 오늘은 이만 하지. 오 팀장은 나와 같이 얼른 기자회견장으로 갑시다. 세 시로 당겨졌어. 해산."

 허무한 회의였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해서 신문을 펼쳐들었다. 기사 중간에 과장 옆에 서 있는 자신의 사진이 있었다. 그 아래엔 '사건팀장 오정화 수사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은 그런대로 잘 나온 편이었다. 스마트폰을 켜고 뉴스 검색을 했다. 일부 기사엔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대개 흉악범을 비난하고 있었지만 피살된 여자들을 비난하는 글도 많았다. 몇 개의 댓글에 눈길이 머물렀다. '"토막 살인이 아닌 게 다행이군.", "오정화 경위님 파이팅!",  "이 여자 이름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경찰이 이번엔 또 무슨 거짓말을 할까?", "결혼해 줘."......그 가운데 정화에게 있어 가장 자극적인 댓글은 "ㅋㅋ. 줄비 출동!!"이었다.


 공개수사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 썩 믿을 만한 신고는 없었다. 팀원들은 부지런히 뛰었다. 정화는 그 동안 이천경찰서와의 공조수사를 위해 현지를 두 번이나 다녀왔다. 사건 해결이 답보 상태에 머문 채 시간만 흘러갔다. 그렇게 또 일 주일이 지나가자 팀원들은 녹초가 됐다.

 아침 일찍 회의를 가졌다. 다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정화는 서두를 것 없다며 그들을 달랬다.
 "하여튼 요즘 여자들은 아무나 따라 간다니까." 

 서창민이 말했다. '요즘 여자들'이란 말에 에둘러 포함된 것 같아 정화는 속이 상했다. 그러나 그 말은 한편으론 사실이었다. 예전엔 여자들이 강제로 끌려가 당한 게 대부분이었지만 요새는 자발적으로 여관이나 모텔에 따라갔다가 몹쓸 짓을 겪곤 한다. 반항할 거면서 그 은밀한 장소에 왜 따라가? 같은 여자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범인 성향은 어떤 것 같아?" 정화가 규영에게 묻자 서창민은 베테링인 자기에게 안 물은 것에 기분이 상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고학력이고 돈이 좀 있는 자의 치밀한 소행 같은데요? 물론 살인 경력도 있고요." 규영이 말했다. "부유한 여자들이 자진해서 따라갔다는 점과 사전에 범행 현장들을 탐문했으며 범행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는 점이 그 근거죠. 그리고 초범이 두 사람을 죽이긴 쉽지 않아요. "
 "난 생각이 달라." 서창민이 말했다. "1,000만 원이나 뽑은 걸 보면 돈이 아주 궁한 놈이야. 동종 수법의 범행을 조사했는데, 돈이 있는 척 가장한 게 틀림 없어. 그리고 놈들이 초짜일 수도 있어. 누범일수록 의외로 헛점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그러나 초짜는 계획부터 아주 치밀하지. 그게 요즘 추세야. 그리고 혹시 놈들이 게이가 아닐까 해. 죽은 여자들의 몸매가 삼삼했거든. 그런 여자를 왜 안 건드렸을까? 독 안에 든 쥐인데, 흐흐."
 "서 형사!" 정화가 손으로 책상을 쳤다. "좀 진지하게, 그리고 단어 좀 골라가며 얘기할 수 없어요? 지금 죽은 사람들 모독하자는 거예요, 뭐예요?"
 서창민이 어깨를 움츠렸다.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이길재가 고참답게 정리를 했다.
 "게이들은 사람 죽이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아무튼 같은 수법의 전과자, 특히 그 가운데 증거인멸에 유능한 자들을 골라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자료라면 박 란 순경이 잘 뽑아내죠. 김 형사, 피해자들 금융계좌에다 사고 처리 해놨지?"
 규영이 그렇다고 했다. 


 그 때 밖이 소란스러웠다. 정화가 창 밖으로 현관 쪽을 내려다보니 차에서 한 사람이 막 내리고 있었다.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최재서 형사과장이 직접 그를 맞이했고 이어 사복경찰관 두 명이 그의 양 팔을 잡았다. 현관 계단을 오르는 그들 주위에서 기자들이 취재하느라 법석을 떨었고 경비경찰들이 소란을 제압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옆에서 지켜보던 장기식이 말했다.
 "룸살롱 킹 납시요."
 정화는 그 말을 듣고 그 남자가 사진으로만 보던 강남 룸살롱업계의 대부 이현광이라는 걸 알았다. 그는 작년에 경찰관들에게 뇌물을 건네주었다가 적발되어 구속된 김판후의 경쟁자다.
 "서장님도 참 끈질기시네요." 이길재가 혼잣말 하듯 말했다. "이번이 세 번째 소환인가요?"
 이번에 이현광마저 구속되면 강남 유흥가의 두 거물이 모두 정리되는 셈이었다.  팀원들의 관심은 이천에서 룸살롱 사건으로 넘어갔다. 정화는 말리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조직폭력계가 그녀의 주 관심대상은 아니었지만 돌아가는 정황을 알고 싶어서였다.

 과연 검찰이 그를 구속시킬 것인가를 두고 팀원들은 내기를 했다. 서창민과 장기식은 그의 배후에 경찰은 물론 판검사, 유력 정치인들이 있기 때문에 구속까진 안 갈 거라고 자신했고, 규영과 이길재는 경찰청장이 워낙 강남 쪽과 비리와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라 구속은 당연할 거라고 했다. 경찰 내 후유증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다. 전자가 작년 말에 이미 물갈이가 됐기 때문에 문제 없을 거라고 한 반면에 후자는 최소한 몇 명 정도 옷 벗을 각오를 해야 할 거라고 주장했다.
 "구속? 옷을 벗어? 누가?" 서창민은 두고보라며 껄껄 웃었다. "새끼, 좆도 모르면서."
 그의 욕설에 규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정화가 안 되겠다 싶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 마칩시다."

 미팅을 마치고 복도로 나갔다. 저만치에 있는 흡연구역에서 이길재가 담배를 꺼내들고 있었다. 그리로 다가갔다. 
 "서 형사가 이현광의 불구속을 저리 자신하고 있는 이유가 뭐죠?"
 "제보를 한 증인들이 사라지고 있잖아요."
 "사라지다뇨?"
 "아, 아직 모르고 계셨군요. 검찰에다가 유흥가와 경찰의 유착에 대해 제보를 한 이들이 지금은 그만둔 수사계장, 그리고 구청공무원들입니다. 강 계장은 필리핀에서 실종됐고 두 공무원은......아시다시피 최근에 피살됐습니다."

 정화는 약간 쇼크를 받았다. 1팀장 보고엔 그런 게 없었다.

 "두 공무원 피살이라면, 수서동 모텔 사건을 말하는 건가요? 전 수사계장도 필리핀에서 실종?"

 "네. 정말 모르고 계셨나요?"

 이길재가 의아하다는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화는 서 내의 동료들과 서먹하게 지내고 있는 것을 후회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이야기네요. 언제 자세하게 얘기 좀 해주시겠어요?"
 "저......김규영에게 물어보시는 게 좋겠는데요? 저도 그냥 들은 얘기라."
 이길재는 왠지 얘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정화는 일단 알겠다며 자리를 벗어났다. 한꺼번에 물으면 그가 입을 다물 것 같아서였다. 기회는 또 있다. 


 규영과 잠복을 나가려고 막 차에 탔을 때 전화가 왔다. 김영환이었다. 그는 ㅈ일보 정치부 기자다. 그를 안 지 2년이 넘었지만 올해 들어 관계가 소원해졌다. 이곳으로 발령났을 때 안부전화를 해온 게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된 데는 정화가 그를 멀리하기 시작한 이유도 있었다.

 정화는 규영의 눈치를 보며 다시 차 밖으로 나왔다. 통화에서 그는 지난 몇 개월 동안 특별취재 차 남미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저녁에 시간이 있느냐고 물었다. 정화는 없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걸려왔지만 받지 않았다. 불 같은 사랑이라도 언젠가는 식어버리게 마련이다. 빠르든, 늦든 말이다. 차에 타자 규영이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뭘 봐?"
 "심각해 보여서요. 애인이죠?"
 그 물음에 정화가 그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아니야, 임마. 어서 출발이나 해."
 차에서 정화는 규영으로부터 이현광과 김판후가 룸살롱업계의 강자로 등장하게 된 얘기를 간단하게 들었다. 그들은 각각 창촌파와 하남파라는 조직폭력배와 손을 잡고 있었는데 모두 신흥세력이었다. 기존 대형 조직인 범서방파, 양은이파, OB파 등이 궤멸된 뒤 등장한 군소조직이었고 작년에 김판후가 구속되면서 하남파가 힘을 잃었다. 그리고 이번의 수사로 창촌파도 세력이 약화될 거라고 전망했다. 김판후가 룸살롱 여종업원들의 제보로-이른바 '아가씨들의 반란'- 털린 반면, 이현광은 관련 공무원들의 배신으로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알면 다친다고 농담을 했다.
 "검찰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정화가 물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마는, 아마도 검경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경찰이 강하게 나오자 약점을 파고들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규영이 반문했다.
 "글쎄, 청장도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으려고 하는 것 같던데?"
 "아마 깊은 뜻이 있겠죠."
 "혹시 과장이 이현광과 가깝나? 아까 보니까 그 앞에서 설설 기던데 말야."
 "그런데 말씀드리기 참 조심스럽네요." 규영이 말했다. "서장님도 청장님처럼 이현광을 못 잡아먹어 안달하고 있죠. 팀장님은 그런 서장님의 최측근 아닙니까?"
 "최측근이라니? 이리 온 뒤로 두 번인가 찾아봤을 뿐이야.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하고 다녀?" 정화가 정색을 했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정화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거듭 만나자는 영환의 전화에 밤 늦게 그를 롯데백화점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말쑥한 차림의 그를 보자 각오와 달리 몸이 달아올랐다. 결국 예전처럼 대치동의 한 모텔로 들어갔다. 영환은 서둘렀다.

 "사랑해 줄비."

 그녀의 별명을 부르며 거칠게 침대에 뉘곤 입술을 포갰다. 가그린을 했는지 그의 입에서 박하향기가 났다. 이어 정화의 블라우스를 벗겨내고 브래지어 아래의 젖가슴을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의 손과 입술, 그리고 혀가 젖꼭지와 아랫배, 사타구니를 한껏 희롱했다. 강렬한 애무에 정화의 속살이 이미 젖어들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자 그걸 기다렸다는 듯 그가 바지를 벗었다. 그녀의 마지막 자존심이 몸에서 떨어져나갔다. 그가 막 그녀 몸 속으로 파고들려 할 때였다. 정화가 몸을 옆으로 피하며 말했다. 
 "오늘은 안 되겠어."
 "왜 그래? 갑자기."
 "준비가 안 됐어. 돌아가."
 영환이 한참동안 그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젠장, 하며 일어나 옷을 걸쳤다. 모텔 방문을 쾅, 닫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정화는 손으로 자기 머리를 짚었다. 정화는 그런 자신이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다가 그와의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는 애초의 다짐을 떠올리곤 힘 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정리할 인연이었다.

 일어나 창문의 커튼를 열어젖혔다. 창문을 열려다가 갑자기 눈앞이 어질어질해 오갤래 다시 싸구려 침대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았다. 과로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누워 천장의 조잡한 거울을 응시했다. 아랫도리만 벗은 자신의 우스꽝스런 모습이 들어 있었다. 오늘따라 음모가 수북해 보였다.

 

 그 자세로 한 시간 정도 잠을 잤다. 모텔방의 퀴퀴한 공기가 역겨워 집으로 갈까 하다가 당직실에 들르기로 했다. 몸이 안 좋다는 장기식 형사의 말이 기억나서였다. 공기가 탁한 당직실의 많은 경찰관 가운데 계장급 이상 간부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경감만 달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게 경찰의 현실이었다. 책상머리에 앉아 업무 대신 승진시험 등에 시간을 보내고도 오히려 근무평점이 현장의 형사보다 높은 경우가 수두룩했다. 정화의 동기 가운데 벌써 경정에 이른 친구도 있었다. 후배들이 경감 계급장을 을 단 사례도 부지기수다. 수사 현장에 있다보면 시험공부 할 시간은 커녕, 그럴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날마다 전쟁이다. 정화는 처음에 진급 시험에 합격하는 친구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생리에 익숙해졌다. 어치피 세상은 요령 있는 년놈들 중심으로 돌아간다. 대통령부터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장기식을 찾아 집으로 보내고 대신 자리에 앉았다. 정화 말고도 여자 경찰관 몇 명이 더 보였다. 심야에 여성들이 붙들려오는 경우- 대부분 성풍속 사범이다 -가 늘어나고 남자 경찰관에 의한 인권 침해 사건이 문제가 되자 그들의 역할이 중요해진 것이다. 정화는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여자 경찰관도 당직 근무를 회피하거나 위험한 임무를 기피하는 등, 여성이라는 그늘 뒤에 더 이상 숨어서는 안 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사건 1번지 강남.

 자정이 지나자 당직실의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현장과 지구대에서 넘어온 범죄 용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사과 경찰관이 도와달라며 한 남자를 데리고 들어와 그녀 앞에 앉혔다. 이어 남자 하나, 그리고 얼굴에 상처를 입은 여자 둘이 들어와 대기석에 앉는 게 보였다. 참고인들인 듯했다. 마주 앉은 남자는 눈두덩이 부어 있었고 말이 없었다. 경찰관이 넘겨준 서류를 보니 룸살롱에서 여종업원을 폭행한 걸로 나와 있었다. 인근에 사는 30대 후반 남자로, 남자는 조서 작성에 순순히 임했다. 직업은 모 대학 조교라고 했다.

 확인 차 그로부터 학과장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를 걸어보았다. 새벽이지만 전화를 받았다. 학과장은 조교가 성실한 사람이라며 선처를 부탁했다. 보기엔 분명히 인텔리인데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내가 연락도 없이 집에 안 들어와 초조하던 참에 술을 마시러 갔다가 종업원들이 홀대하기에 홧김에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조서를 꾸민 뒤 그를 유치장으로 넘겼다. 그리고 피해자 진술을 받았다. 얻어맞았다는 20대 후반 여자 둘의 상처는 가벼운 편이었고 매우 건방지게 굴었다.
 "보건증 줘 봐요." 정화가 손을 내밀었다.
 "네?" 여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화가 보건증 모르냐고 다그치자 겨우 한 여자가 말했다. "안 가져왔는데요."
 "사건은 일단 접수해 둘 테니까 의사 진단서하고 보관증 가지고 모레까지 오세요." 여자들은 낮은 목소리로 씨팔,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는 그들의 뒤에 대고 말했다. "아, 그리고 업소 허가증도 가지고 와요."
 아마 그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 뒤 두 사건을 더 처리한 뒤 유치장으로 갔다. 아까 그 대학 조교는 잠을 자지 않고 유치장 창살을 잡은 채 망연자실 서 있었다. 당직 경찰관에게 그를 조사실로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그를 풀어줄 작정이었다. 집에 돌아가도 좋다는 그녀의 말에 그가 의아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쌍방폭행인데 왜 당하고 계세요? 정화가 말했다. "며칠 뒤에 다시 출두하라고 연락이 갈 겁니다. 그 때 병원 진단서를 떼어가지고 오세요. 이 건은 보류해 두겠습니다."
 남자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다고 말하곤 조사실을 나갔다. 정화는 의자 깊숙히 몸을 묻었다. 이 시대 남자들이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취객, 음주운전자, 폭력사범, 아내 살인 용의자, 성매매하다 걸린 공무원들, 간통하다 들킨 남녀, 성폭행 용의자들이 당직실에 들끓고 있었다. 이러고도 나라가 굴러가는 걸 보면 참 대단한 일이다. 조금 일찍 차를 타고 경찰서 정문을 나섰다. 절망과 환멸의 거리, 테헤란로의 새벽이 비에 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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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한 동창생들 - 2. 2012년, 서울 강남 ③

 

 

 

 

 

 

 옆구리를 툭툭 치자 그가 이어폰을 귀에서 뗐다.
 "안 졸리냐구!" 정화가 목소리를 높였다.
 "당근 졸리죠. 팀장님은요?"
 "졸려." 그녀가 하품을 했다. "무슨 음악 들어?"
 그러자 규영이 스마트폰의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며 이어폰 한 쪽을 정화 귀에 끼어주려고 했다. 잠깐 눈길이 마주쳤다. 정화가 황급히 고개를 다른 데로 돌렸지만 그 손을 제지하진 않았다. 이어폰을 통해 시끄러운 전자음이 들렸다.
 "뭐야, 이건."
 "존 카펜터의 음악이에요. 영화 <인 더 마우스 오브 매드니스(In the mouth of madness)>에 나오는 곡이죠. 메탈 락 계통인데 어떠세요?" 
 존 카펜터 감독. 오래 전에 본 영화 <괴물(The Thing)>을 만든 감독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규영이 말한 영화나 음악은 금시초문이었다. 너무 시끄러워 이어폰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정신머리 사나워서 원. 영화 제목이 뭐라구?" 정화가 물었다.
 규영이 다시 한 번 제목을 이야기해주더니  "음악 안 좋아하세요?" 하고 되물었다.
 "가끔 듣긴 하는데 요새 노래는 별로야. 티브이를 봐도 벌거벗은 여자애들만 나오더라. 대체 노래를 하러 나온 건지, 교태 부리러 나온 건지, 씨팔."
 정화 입에서 욕이 나오자 규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른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이어폰을 해제한 스마트폰에서 빠른 박자이면서도 소울 느낌이 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 그 노래 괜찮군. 누가 부른 거지?"
 "아델(Adele)이란 영국 가수가 부른 건데요, 제목은 <롤링 인 더 딥(Rolling in the deep)>입니다. 12주 동안 빌보드 정상에 있었죠."
 "경쾌하고도 중독성이 있는데? 사랑의 열망을 노래한 건가?"

 "아니요." 규영이 정화를 마치 뭐 이런 노래도 모르냐, 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상처를 준 남자에게 복수하겠다는 여자의 바람이 들어있는 노랩니다."
 "됐네." 정화가 손을 저었다. "복수엔 취미 없어. 노래는 좋지만." 

 규영이 폰을 껐다. 경광등을 켠 순찰차 하나가 옆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정화는 다시 차 밖으로 나와 천천히 유흥가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순찰을 도는 경찰 두 명이 옆을 지나가며 그녀를 곁눈질했다. 바닥엔 벌거벗은 여자가 그려진 전단지들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다. 대개는 출장마사지 광고였다. 물론 불법 성매매를 알선하는 것이었다. 전화번호가 나와 있어 단속이 쉬운데도 왜 없어지지 않는 걸까, 정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편의점 앞 의자에 가 앉았다.

 잠시 복수라는 낱말에 대해 생각했다. 출소한 종서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휴대폰 벨이 울렸다. 다른 데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서창민 경사였다. 그는 계급 상 부하직원이지만 정화보다 두 살 많다.
 "쌀쌀한데 이만 들어가죠?" 전화기 너머로 서 형사가 말했다.
 "조금만 더 수고해 줘요." 그녀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아직 지시가 안 내려왔거든요."
 "에이 씨팔, 우리 사건도 아닌데. 이왕 나온 건데 그러지 뭐. 몸 조심 하슈." 그가 무례한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속에서 열이 올라왔지만 한숨으로 달래며 다시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남서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팀원들 15명 거의가 그녀를 백안시했다. 여자 간부로서 능력이 있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신임 서장의 낙하산 인사이며 경찰 경력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붙임성이 없는 그녀의 성격 탓이었다. 그렇지만 지난 두 달 동안 두 건의 강력사건을 말끔히 처리하자 팀원들의 인식은 바뀌었다. 논현동에서 벌어진 조직폭력배 술집난동사건과 역삼동 부녀자 납치 살인사건을 혼자 말끔히 해결하는 걸 보고 팀원들은 물론, 강남서 전 직원들이 혀를 내둘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팀을 모두 장악한 건 아니었다. 특히 서 형사는 정화가 거리를 두고 있는 형사과장의 끄나풀이었다. 사고뭉치기도 했다. 인터넷 도박과 경마에 빠져 큰 빚을 지는 바람에 이혼 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근무 시간에도 도박을 하다 몇 번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힘이 좋고 용의자 심문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라 수사에 매우 요긴한 인물이었다. 그건 정화도 인정하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 담배 냄새가 났다. 규영이 그 새를 못 참고 피운 모양이었다. 옆에서 주욱 지켜보니 하루에 한 갑 이상은 너끈히 피우는 듯했다. 규영은 서 형사와 다른 점에서 문제아다. 아내가 있음에도 근무 시간에 자주 여자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엔 경찰서에까지 찾아온 여자가 외근 나간 그를 만나겠다며 난동을 부린 적도 있다. 강력사건 수사 초보자이기에 실수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장점이 있다. 무술유단자이고 용의자의 각종 인터넷과 휴대폰 정보조회를 빨리 파악하는 데에 소질이 있었다. 한때 인터넷 게임중독에 빠졌던 게 도리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키가 크고 잘 생겼다는 것이었다.
 "담배 좀 끊지?"
 "그 좋은 걸 왜 끊어요? 예전에 안 피우셨나요?"
 "피웠지. 그것도 엄청. 술도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거의 끊었어."
 알콜 중독에 시달리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대체 취미는 뭡니까?" 규영이 물었다.
 정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별다른 게 없었다. 참 시시하게 살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쓸쓸해졌다. 그러다가 뭔가 머리를 반짝 스쳤다.
 "영화 감상." 정화는 그걸 취미로 승화시킨 것에 마음이 뿌둣했다. "가끔 쉬는 날이면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감상하곤 해."
 규영이 불법다운로드를 하면 곤란하지 않느냐고, 불펌카페가 분명하다고 했고 그녀는 저작권 행사를 두고 가진 자의 횡포라며 맞섰다.
 "네가 유튜브에서 음악 듣는 거랑 똑같아."
 "그런 면도 있네요." 규영은 굳이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더니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뭐냐고 물었다.
 "<라쇼몽>." 정화가 말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건데 본 적 있어?"
 규영이 고개를 저었다.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엇인가, 한 사건을 다각도로 본다는 게 어떤 것인가......이리저리 헷갈릴 때 그 영화를 보곤 해. 아마 열 번도 더 봤을 걸?"
 "인생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모양이군요."
 정화가 그렇게 말하는 규영을 째려보았다. 규영은 정화의 가슴과 바지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정화가 눈치를 주자 규영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그 카페주소 좀 알려주세요. 실은 저도 영화 좋아합니다." 뭐가 재미있는지 그는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래?  <무비인>이라는 사이트인데 주소를 이메일로 보내줄게."
 "그래주시면 고맙죠."
 젊은 남자와 공감대가 하나 생겼군. 정화는 기분이 확 풀어졌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상황이 발생했다는 징조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규영은 쉬지 않고 헤비메탈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댄스동아리에 대한 얘기도 해주었다. 지난 달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한 초청행사에서 그가 몇몇 동료들과 함께 셔플댄스 공연을 한 걸 본 적이 있다. 다시 30분이 더 흘렀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드문드문했고 딱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도 없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규영의 어깨를 툭 쳤다. 
 "김 형사, 철수할까?"
 그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3시 반이네요." 했다. 정화는 다른 팀에 전화를 걸어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두 시간이나 일찍 자리를 떴다는 걸 과장이 알면 내일 회의에서 한소리 들을 것이다. 새끼, 맨날 책상머리에나 앉아 있는 주제에, 정화는 속으로 욕을 해주었다. 어떻게 된 게 이놈의 조직은 경감이나 경정만 되면 도통 현장에 안 나가려고 했다. 정화가 경찰 수사권 독립에 반대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피곤한데 팀장님 오피스텔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신사동 네거리에서 규영이 물었다.
 "안 돼." 정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속으론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얘가 오늘따라 갑자기 왜 그러지? "집에 가서 마눌 찌찌 만지면서 자."
 규영이 피식, 웃었다. 그는 정화를 그녀의 임시 거처인 포이동의 허름한 오피스텔 앞에 내려주곤 자기 집 쪽으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녀는 오피스텔에 들어와 옷을 벗으려다가 멈칫, 하곤 규영이 킥킥거린 이유를 알아차렸다. 청바지 앞 자크가 활짝 열려 있었던 것이다. 음모 부위에 분홍색 키티가 그려진 흰 속옷이 다 드러나 보였다.
 '새끼.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나?'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자명종 소리에 정화가 눈을 떴다. 7시 30분. 네 시간만 잔 것이다. 대충 씻고 아침도 거른 채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정문에서 의경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처음 보는 신참이었다. 정화는 핸드백에서 아이디카드를 꺼내 보여주고 정문을 통과했다.

 팀 사무실엔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간밤 당직이던 박 란이 다가와 깍듯하게 상황보고를 한 뒤 퇴근하겠다고 말했다. 정화는 그러라고 하곤 방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27세 여경인 박 란은 정화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게으른 데다가 젊은 여자 특유의 오만함을 드러냄은 물론, 은연중에 정화 앞에서 대놓고 텃세를 부리곤 했다. 그 막 돼먹은 성격을 단박에 고친 게 정화였다. 체력단련실로 데리고 가 흠씬 패주었던 것이다. 결국 박 란은 엉엉 울며 무릎을 꿇고 빌 수 밖에 없었다. 

 토스터에 식빵을 넣고 스위치를 켰다. 빵이 구워질 동안 포트에 물을 끓여 봉지커피를 탔다. 신문을 보고 있을 때 규영이 들어왔다.
 "일찍 일어났네?" 정화가 포트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커피 한 잔?"
 "아니요, 제가 타죠. 새벽에도 얻어 먹었는데." 정화와 규영의 손이 동시에 포트 손잡이를 잡았다. 그 때 서창민과 감식 담당 장기식 형사가 들어와 그 모습을 봤다. 서 형사가 말했다. 
 "어럽쇼? 그림 좋은데요? 두 사람 혹시 어제 집에 안 들어가고......"
 "형님!" 규영이 그의 말을 끊었다. "아침부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의 귓불은 이미 벌겋게 되어 있었다. 이길재  형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벌써 오셨네요?" 이길재가 정화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마흔 한 살의 경사로, 계급은 낮지만 경찰 생활은 그녀보다 한참 고참이다. 그렇기에 너무 예를 갖추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언제나 깍듯하게 상관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는 수사전산망 조회와 증거물의 기술적 분석, 그리고 휴대폰 통화내역 조회를 맡고 있다. 파트너인 박 란이 당직이었던지라 그는 어제 혼자 잠복근무를 섰다. 정화가 고개를 까닥 숙이곤 신문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퇴근한 박 란을 제외하고 팀원들이 모두 모였다. 다들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눈동자가 빨갰다. 서창민과 장기식 몸에서 그리 상쾌하지 않은 냄새가 났다.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다 온 듯했다. 

 

 정화 팀이 이천 사건을 맡게 된 것은, 지난 달 미사리에서 자취를 감춘 40대 전업주부 2명이 약 10일 뒤에 이천의 한 야산에서 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된 직후였다. 처음 이 사건은 실종자수사팀에서 맡고 있었다. 시신이 나오자 서장은 강력3팀장 오정화 경위를 비롯한 수사관 6명으로 전담수사팀을 꾸리기로 결정했다. 지휘 검사는 새파란 애송이였는데 원점에서 수사를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약칭 '이천 건'으로 부르기로 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지난 4월 18일 오전에 두 여자의 실종 신고가 들어왔다. 전날 오후 헬스클럽에 들른 뒤로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클럽 CCTV를 확인한 결과 두 남자가 여자들 주위에 있었다. 두 여자의 휴대폰은 미사리 근처에서 꺼진 걸로 나타났다. 평소 강남경찰서에 접수되고 있는 실종자 신고는 하루에 십여 건에 달했다. 처음에 단순 가출로 추정한 경찰은 일단 여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클럽 회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 경찰의 수사는 미적지근했다.
 실종 추정일인 19일 오전에 두 여자의 계좌에서 1,000만 원 가까이 빠져나갔다는 가족의 새로운 신고가 들어오자 그제야 실종수사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천과 장호원의 세 은행 CCTV에 찍힌 장면엔 공통점이 있었다. 인출자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남자였다. 미사리와 이천, 장호원 일대를 집중 탐문한 경찰은 이틀 뒤 미사리 한 카페 주차장에 세워진 실종자의 승용차를 발견했고 카페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심문한 결과 두 남녀가 그 날 밤 11시까지 함께 술을 마신 뒤 카페를 나갔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휴대폰이 꺼진 시각과 일치했다. 경찰은 남자들의 몽타쥬를 작성해 두 여자의 사진과 함께 이천과 장호원 일대 숙박업소와 유흥업소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시신은 낙엽과 흙으로 덮여 있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알몸 상태였다. 감식반이 조사한 결과 여자들 몸에 범인의 지문이나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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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한 동창생들 - 2. 2012년 5월, 강남 ②

 

 

 

 

 

 

 청담동 유흥가의 밤.

 강남경찰서 형사과 강력3팀장 오정화 경위는 하품을 하며 운전석의 김규영 경사를 돌아보았다. 그는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비록 시선은 유흥가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동자에 촛점이 없었다. 그와 파트너가 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말수가 적은 그는 남들이 기피하는 정화의 파트너를 자원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렇고 집안 일에 대해 한 번도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물론 굳이 규영도 정화의 사생활에 대해서 묻진 않았다. 편했지만 그게 어떨 때는 지루하게 느껴졌다. 바로 옆 공원 화단에서 풀벌레 소리가 났다. 수컷이 짝을 찾는 게 틀림 없었다. 장시간 차 안에 앉아 있는 건 지겨운 일이다. 드디어 졸음이 몰려왔다.

 그녀 나이 어언 서른 여섯 살, 요즘 들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새벽 한 시. 유흥가의 화려한 불빛이 업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어울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유혹적으로 춤추고 있었다. 밤 깊은 골목엔 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취객, 호객꾼, 대리운전기사들로 넘쳐났다. 주변 아파트 단지는 대개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다만 몇 가구에 불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잠복을 하고 있는 다른 팀으로부터는 아직 별다른 연락이 없다.
 
 정화는 차에서 내려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하나를 규영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규영이 말했다. 그의 시선 끝은 모텔로 들어가는 중년 남녀에게 있었다. "참 말세네요, 말세."
 "뭐가?"
 "보셨죠? 모텔에 들어가는 것들. 과연 그들은 부부일까요?"
 "그거야 사생활이지." 정화가 차에 등을 기대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초짜 같이 왜 그래, 어디 한두 번 봐? 그런데 요즘 아내하고는 어때?"
 강력팀 형사의 결혼생활이 원만할 리가 있겠는가, 그걸 증명하듯 결혼한 지 2년도 안 된 그의 책상엔 가족 사진이 없다. 그러나 정화는 곧 그 질문을 한 걸 후회했다. 그의 수려한 얼굴에 그늘이 진 걸 발견한 것이다.
 "사생활이죠." 규영이 곧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래. 우리, 다른 얘기 하자."

 그러나 규영은 화제를 바꾸지 않았다.

 "아침에 1팀에 배당된 수서동 모텔 살인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죠? 공무원 남녀. 불륜관계였다는군요."
 규영이 왜 자꾸 그런 이야길 꺼내는지 정화는 신경이 쓰였다. 자기의 고민과 관련이 있는 건지, 아니면 정화의 자유분방한 남성편력을 꼬집으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후자는 아닐 듯했다. 그런 생각은 정화의 자격지심에서 나왔으리라.
 "불륜이라......난 꼭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아."

 정화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씀이죠?"
 예상했던 대로 규영은 어리둥절한 눈초리로 경찰대 출신 만년 경위를 바라보았다.
 "아직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도덕 기준으로 보면 그렇겠지." 정화가 운을 떼었다. "그렇지만 나는 바람 피우는 남녀들이 생물학적 욕구에 솔직하다고 생각해. 남자는 될수있으면 많은 유전자를 퍼뜨리고, 여자는 강한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많이 생산하는 것 말야. 이미 1부1처제는 무너지고 있어. 아니지, 인류역사 상 그게 구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어려운 얘기네요. 동의할 수도 없고요."
 "세계 200개 이상 국가들 가운데 1부1처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10%에 지나지 않아. 그걸 제도로 가진 서구사회에서도 구성원의 25%만 결혼을 해. 놀랍지? 그 대신 싱글족, 한부모가정, 동성애가정 등 새로운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있어. 마음에 안 들거나 관계가 식상해지면 헤어질 자유가 있고 어떨 땐 한 사람이 두세 명의 이성과 느슨한 관계를 맺기도 해. 프랑스 대통령 애인 얘기 알아? 예전에 지금 애인인 대통령을 비롯한 좌우파 정치인들과 동시에 섹스를 나누고 있었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야.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기혼자들 가운데 외도를 하는 여성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여성들이 일터로 진출함에 따라 경제적 지위가 올라갔고 남자를 접할 기회와 능력도 많아지는 게 그 이유지. 물론, 먼저 그랬던 건 남자들이야."
 "꼴페미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마치 남자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것 같아요." 규영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정화는 어깨를 으쓱, 했다.
 "너무 무책임한 말씀을 하고 있는 거 아세요? 그렇게 되면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애들은요?"
 "지금 당장 그러자는 게 아니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아 차근차근 풀어나가자는 거지." 정화가 한 발 물러섰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고 우리가 타깃으로 삼는 성범죄들 말야, 성폭력이나 매매춘, 특히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고 표현하는 사건들이 왜 많이 일어나는지 알아? 인간의 본능을 제도나 법, 도덕으로 마구 틀어막으려하니까 탈이 생기는 거야. 그 밑바닥엔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이 사회의 아주 고질적인 불합리성이 도사리고 있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논지는 정화가 미국에 파견나갔을 때 뉴욕주립대의 '성과 심리학'이라는 강좌를 청강하고 나서 메모해 둔 것이었다. 규영이 따분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그에겐 낯선 얘기일 게 뻔했다. 더 이상 논쟁을 하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참 아는 것도 많으셔. 팀장님은 그래서 결혼 안 하시는 겁니까? 자유연애 하려고요?" 규영의 말투에 약간의 비아냥이 들어 있었다.
 "내가 결혼 안 한 이유를 꼽자면 여러가지야. 남자에게 구속을 받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있지. 그렇다면 네 분석이 맞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이유가 더 있다면요?"
 "충실한 결혼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 우리 직업이 그렇잖아? 게다가 사랑이 결혼을 통해 생활이 되면 말이지......그 사랑은 점차 눈 녹듯 사라지기 마련이지. 그게 상처로 남을 것 같아."
 규영은 말이 없었다. 양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턱을 괴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화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골치아픈 애길 해서." 그나저나 오늘 우리 만난 지 처음으로 대화 많이 했네?"
 그러자 규영이 정화에게 얼굴을 돌렸다.
 "팀장 님, 물어볼 게 있는데요......"
 정화가 응? 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규영은 "다음에 얘기할게요." 하며 다시 침묵모드로 빠져들었다. 정화가 차에서 몸을 뗐다.

 

 얘길 하다보니 오랜만에 떠오른 옛 생각이 있었다. 정화는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나이 때문일까, 요즘 그런 일이 잦았다. 5월 중순이지만 올해는 아직도 날이 추웠다. 밤공기는 탁하기만 했다. 화장실이 있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 안엔 남녀 청소년들이 군데군데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녀석이 기껏해야 중3 정도? 두 쌍은 아예 지남철처럼 붙어 서로의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한 녀석이 그녀가 보고있는 걸 눈치채고 욕설을 했다.
 "조또, 뭘 봐, 아줌마?"
 정화는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20대 때 같았으면 벌써 놈은 그녀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았을 것이다. 말세라던 규영의 말에 한편으론 공감이 갔다. 

 어린 여자 아이가 변기에 몸울 숙이고 음식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골반바지가 밑으로 내려가 희멀건한 엉덩이살의 골까지 다 보였다. 여자 망신이군, 정화는 눈살을 지푸리고 빈 변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안은 엉망이었다. 변이나 피가 묻은 화장지, 생리대, 담배꽁초가 바닥에 널려 있었고 변기도 더럽긴 마찬가지였다. 일을 보는 동안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남자들이 이를 알면 아마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정화가 몇 번 본 남자 화장실도 더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 더럽진 않았다.

 문을 열고 나오니 아까 그 여자아인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여자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그들이 나누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스카라가 짙은 여자가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생리가 나올 것 같아. 오늘은 대충 끝내고 들어갈래?"
 "아이요. 좀 더 해야지요" 립스틱 여자가 대답했다. 말투가 조선족이었다. 각각미니 스커트와 몸에 꽉 붙는 바지를 입었다.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얼굴과 몸매. 노래방 도우미들이 분명했다.
 "오늘도 2차 갈 거야?" 마스카라가 다시 물었다.
 "언니는 관계 없어요. 내 일이니까요."
 "그러다 탈 난다. 욕심부리지 말고 일찍 들어가."
 그 말마따나 그녀들은 성범죄의 주 대상이다. 경찰 생활 10여 년 동안 룸살롱 여종업원이나 노래방 도우미들의 처참한 시신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그러나 정화는 거기까지 듣고 화장실을 나왔다. 입구에 SUV 차량이 보였고 남자 하나가 서성이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술판은 계속되고 있었다. 보도방 영업이나 청소년 심야술판도 단속 대상이었지만 오늘은 그 임무가 아니었다. 풍속사범 단속팀에 연락을 취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안 그래도 대형 사건 때문에 업무가 폭주하는 판이었다. 이런 건은 관할지역에서만 하루에 100 건도 넘게 접수되고 있다. 당직근무자들에게 성가신 일만 생길 것이다. 


 수원에서 여성 토막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일선 경찰관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비상근무에 불심검문 근무가 그들을 괴롭혔다. 수원 경찰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자 여론은 나빠졌고 언론은 연일 선정적인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 그들의 임무는 강력2팀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나이트클럽 여종업원 피살 사건의 용의자가 이 일대에 나타날 거라는 첩보에 따라 수사동 건으로 바쁜 1팀을 제외하고 지금 주변엔 주 담당인 2팀과 정화의 3팀, 그리고 수사과와 형사기동대를 포함, 2인 1조 10여 개 팀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정화와 규영은 낮에 이천 현장 주변의 숙박업소를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하고 왔던지라 심신의 피로가 말이 아니었다.  

 "규영아, 안 졸려?" 정화가 차에 오르며 물었다. 남들 보는 앞에선 김 형사로, 팀원들까리 있을 땐 이 스물여덟 살짜리 초짜 경장에게 이름으로 부른다. 규영은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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