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3. 여자는 뭐든지 속이지 ①

 

 

위험한 동창생들 - 3. 여자는 뭐든지 속이지

 

 

 

 

 


 정화는 오랜만에 체력단련실로 갔다. 이른 시각이라 아무도 없었다. 런닝머신에서 30분 정도 땀을 흘리고 있을 때 누군가 들어오는 기척이 났다. 땀 때문인지 시야가 흐릿해 누군지는 알 수 없었다. 작년 말부터 정화는 야근이나 체력소모가 많은 운동을 했을 때 가끔 앞이 뿌옇게 보이는 현상을 겪고 있었다. 체중도 줄고 있었다. 작년에 그녀를 검진했던 친구 의사 혜경은 과로와 스트레쓰가 원인이라며 정화에게 충분한 휴식과 음식 조절을 권했다. 그러나 강력팀을 벗어나지 않는 한, 혜경의 권고를 따르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정화는 머신에서 내려와 샤워실로 들어갔다. 얼마 뒤 옷을 챙겨입고 휴게실에서 콜라를 마시고 있을 때 규영이 천천히 그녀 쪽으로 걸어왔다 발달한 근육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번들했다.
 "아까 인사했는데 왜 모른 체 했어요?" 그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었다.
 "아, 그게 너였어? 미안. 땀 때문에 앞이 잘 안 보여서. 그나저나 좀 쉬지, 왜 땀을 흘려?"
 "그러는 팀장님은요?"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녀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날이 갈수록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상의할 게 있는데요." 규영이 말했다.
 "뭐지?"
 그 때 상황실에서 연락이 왔다. 목격자가 전화를 걸어왔다며 신고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했다. 신고자는 양평에있는 한 모텔의 주인이라고 했다. 정화는 다음에 얘기하자며 먹다 남은 콜라캔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지곤 재빨리 일어섰다. 단련실을 뛰쳐나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마땅히 따라와야 할 규영은 그냥 그 자리에 선 채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빨리 와, 새꺄." 했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목격자와 직접 통화하곤 장기식이 모는 차를 타고 양평 모텔로 달려갔다. 여주인과 남자 종업원은 실종추정일 자정 무렵에 중년의 두 남녀가 한 방에 투숙한 걸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들 사진을 다시 보여주자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 그러나 용의자 몽타쥬를 보곤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몽타쥬보다 젊어 보였고 30대 중후반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여자들은 술에 취해 정신을 거의 잃은 상태였고 남자들과는 그렇고 그런 사이로, 그룹섹스를 나누러 온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투숙한 방은 커다란 온돌방이었는데 룸과 화장실은 청소가 잘 되어 있었다. 투숙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던 터라 그들의 흔적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정기식이 가지고 온 장비로 이곳저곳을 채증했지만 별 소득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종업원은 두 쌍의 남녀가 아침 7시 경 모텔을 조용히 빠져나가는 걸 봤다고 했다.
 "혹시 그들이 타고 온 차를 기억하십니까?" 정화가 물었다.
 "네. 주차장이 아니고 길 건너 멀찌감치 세워두었는데요, 택시였어요." 종업원이 말했다.
 결정적인 단서였다.

 

 그때부터 팀은 택시회사들을 상대로 비밀리에 탐문 수사에 들어갔다. 그러길 3일 째, 드디어 명일동에 있는 한 택시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지입차 한 대의 블랙박스 기록이 수상하다는 것이었다. 해당일 그 택시의 주행기록이 미사리-양평-이천-명일동으로 되어 있었고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입금이 평소보다 많이 되어 있다고 했다. 택시기사는 고인식이라는 이름의 32세 남자로 정상 출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화와 규영, 그리고 서창민이 입금시간에 맞춰 택시회사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그를 체포했다. 고인식은 별다른 저항이 없었고 왜 체포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택시회사 빈 사무실에서 그를 심문했다. 그는 해당 시간에 평소 고향 친구 홍기철과 회사 몰래 택시 영업을 같이 하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회사에 등록하지 않은 자가 택시를 모는 건 엄연히 불법이었다. 고인식은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변명하며 선처를 구했다. 고인식의 진술에 따르면 회사 근처에서 홍기철에게 차를 넘겨준 시간은 4월 18일 오후 9시 경이었고 다음 날 오후 10시 경에 돌려받았다고 한다. 주행거리가 꽤 되었고 홍기철은 수입이 괜찮았다면서 평소보다 두 배 많은 40만 원을 내밀더라고 했다. 그것 말고는 딱히 이상한 기색은 못 느꼈다고 했다. 


 팀원 전체가 즉시 가까운 곳에 사는 홍기철의 집을 급습했지만 노모 혼자만 자리에 누워 있었다. 노모는 그가 3일 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회를 해보니 그에게 전과는 없었다. 장기식과 감식반이 범행에 사용된 택시를 조사했다. 회사 방침에 따라 고인식이 워낙 깨끗하게 관리했던지라 흔적을 찾긴 쉽지 않았다. 혈흔도 없었다. 겨우 머리카락 몇 가닥을 찾은 게 감식반의 성과였다. DNA분석만 해도 최소 며칠이 걸린다. 홍기철의 방을 뒤져 체모와 치솔을 수거했지만 그것도 빠른 결과를 얻기 힘들다.

 고인식을 경찰서로 데려와 당일 행적을 추궁했지만 과연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를 일단 유치장에 가둬두고 회의를 가졌다. 회의 중에 박 란이 긴급 보고를 했다. 신촌 현대백화점 인근에서 홍기철의 휴대폰 이동경로가 잡힌다는 것이었다. 과장에게 보고하고 형사기동대의 지원을 받아 그리로 출동했다.
 "봐, 임마 내 말이 맞지? 초짜에 가난뱅이." 차 안에서 서창민이 규영에게 말했다.
 "잡기 전까진 아직 모릅니다." 규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휴대폰 신호가 꺼지는 바람에 허탕을 쳤다. 홍기철이 통화한 상대의 전화는 대포폰이었다. 

 수사엔 진전이 없었다. 다음 날 더 자세한 통화기록이 정보과에서 넘어왔고 이길재가 분석을 맡기로 했다. 홍기철의 친구와 친척들에 대한 탐문수사가 진행됐다. 

 행운이 일찍 찾아왔다. 며칠 뒤 홍기철의 친척으로부터 신고가 들어온 것이다.  팀이 출동했고 잠복하고 있던 규영이 역 앞 횡단보도에서 친척을 만나러 오는 홍기철을 벌견하곤 한 판 업어치기로 멋지게 제압해 수갑을 채웠다. 


 홍기철은 조사를 받는 내내 범행을 강하게 부인했다. 여자들을 만난 적이 없다며 당일 택시 이동경로마다 손님을 태웠다는 것이었다. 죄도 없으면서 왜 도망쳤냐는 정화의 추궁엔 얼마 전 택시를 몰다가 취객이 두고 간 지갑을 슬쩍한 적이 있어 그게 마음에  걸려 그랬다는 것이었다. 이길재가 얼마 뒤 휴대폰 통화기록을 들고 조사실로 들어왔다. 몇 개의 전화번호에 빨간 색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날 밤 형사들은 돌아가며 강도가 높은 심문을 가했다. 드디어 홍기철은 다음 날 동이 트기 전에 범행 모두를 자백했다. 병 든 노모가 약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주범이 아니었다.

 

 주범은 34세의 이근우라는, 제법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라고 했다. 택배회사 과장으로 번듯한 직업도 있었다. 긴급조회를 해보니 전과는 없었다. 휴대폰 전원은 꺼져 있었다. 박 란이 출입국관리소에 연락해 보았다. 다행히도 아직 출국기록은 없었다.  그에겐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었고 전처들 사이에 아이는 없었다.

 홍기철은, 범행에 가담하긴 했지만 여자들을 죽인 게 이근우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애초부터 살인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라며 살인은 아주 우발적으로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근우의 대학 같은 과 후배였다.  

 "위험한 동창생들이군."
 이길재의 말에 정화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위험한 동창생들로 차고 넘치긴 그녀 주변도 마찬가지였다.  서울대, 경찰대, 사법연수원, 육사......

 

 팀은 두 개의 조를 편성해 각각 이근우의 집과 회사로 급히 달려갔다. 정화 조가 아파트를 급습했는데 이미 달아난 뒤였다. 아파트 경비실 CCTV에 나온 그의 모습은 10일 전의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파트 내부는 다소 호화스러운 편이었고 정돈이 잘 돼 있었다. 거실 티브이 위에 줄리엣 비노쉬가 주연한 영화 <세 가지 색 블루>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정화는 심장 한 구석이 짠해지는 걸 느꼈다. 큰 눈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그리고 수수해 보이는 얼굴과 숏커트. 정화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줄비(줄리엣 비노쉬)였다. 

 정화와 그녀가 닮았다고 해 오래 전에 형사 하나가 농담으로 붙여준 뒤 처음엔 동료 경찰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별명이었다. 그런데 현아영 기자가 정화에 관한 기사를 쓰면서 그 별명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궁전엔 왕비, 경찰엔 줄비".

 그 후로 대중에게 제법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정화는 줄리엣 비노쉬와 자신이 그다지 닯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지나 검사가 검찰 수사관 둘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했다.

 방들을 샅샅이 뒤졌지만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비롯한 살인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이길재와 기술 요원이 컴퓨터에도 별 흔적이 없다고 했다. 

 "지나치게 정리정돈이 돼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길재가 말했다.

 "이미 주변정리를 해 둔 걸지도 몰라." 정화가 이렇게 말하곤 이근우의 회사로 출동한 서창민 조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1주일 전에 병가를 내고서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데요?" 서창민이 전화기 너머에서 대답했다.  혹시 위조워권으로 나간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낭패다.

 정화가 주방에서 감식반 일을 돕고 있을 때 이근우의 책장을 뒤지고 있던 규영이 그녀에게 다가와 파일 하나를 내밀었다.
 "이상하군요. 파일에 왜 이런 게 있죠?"
 정화가 그것을 받아들고는 찬찬히 들추어 보았다. 작년에 쓴, <검경 수사권조정 논의에 문제있다>는 인터넷 칼럼과 강남경철서 강력팀 발령 인터넷기사를 스크랩한 것이었다. 공개수사 발표 기사도 있었다. 
 "팀장님 팬이 여기 또 있었군요." 규영이 말했다.
 "와우, 규영이 경쟁자네? 브라보!" 서창민이 휘파람을 불었다. 규영이 그에게 농담하지 말라며 인상을 썼다.

 "내기에서 내가 이겼으니 술이나 사쇼."

 정화는 파일을 더 들췄다. 그 맨 아래 빛이 바랜 신문기사 스크랩이 하나 있었다. 정화는 심장이 멎는 듯 했다.
 제목은 <현역 경찰관 무단이탈 뒤 총기자살>, 2003년 7월 10일 자 모 중앙일간지 기사였다. 내용은 간단했다.  

         

 - 지난 7월 9일 새벽 3시 20분 쯤 경기도 파주군의 한 빌라 복도에서 경기경찰청에 근무하는 A(28) 경위가 쓰러져 있는 것을 여자 친구인 B(26) 경위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B경위는 총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 A경위가 쓰러져 있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주변 인물들의 증언에 따라 B경위의 변심에 고민하던 A경위가 문제해결을 하고자 총탄을 휴대하고 근무지를 무단이탈하여 여경의 숙소를 찾아갔다가 심하게 말다툼을 했고, 뜻대로 안 되자 홧김에 총기로 자살한 보고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 -

 

 "오 경위, 그게 뭡니까?" 검사가 물었고 팀원들은 정화의 표정을 살피며 모두 입을 다물었다.
 "또라이 새끼 같군요." 정화는 베란다로 나가 숨을 몇 번 들이쉬었다. 토할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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