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2. 2012년, 서울 강남 ③

 

 

 

 

 

 

 옆구리를 툭툭 치자 그가 이어폰을 귀에서 뗐다.
 "안 졸리냐구!" 정화가 목소리를 높였다.
 "당근 졸리죠. 팀장님은요?"
 "졸려." 그녀가 하품을 했다. "무슨 음악 들어?"
 그러자 규영이 스마트폰의 유튜브 영상을 보여주며 이어폰 한 쪽을 정화 귀에 끼어주려고 했다. 잠깐 눈길이 마주쳤다. 정화가 황급히 고개를 다른 데로 돌렸지만 그 손을 제지하진 않았다. 이어폰을 통해 시끄러운 전자음이 들렸다.
 "뭐야, 이건."
 "존 카펜터의 음악이에요. 영화 <인 더 마우스 오브 매드니스(In the mouth of madness)>에 나오는 곡이죠. 메탈 락 계통인데 어떠세요?" 
 존 카펜터 감독. 오래 전에 본 영화 <괴물(The Thing)>을 만든 감독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규영이 말한 영화나 음악은 금시초문이었다. 너무 시끄러워 이어폰을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정신머리 사나워서 원. 영화 제목이 뭐라구?" 정화가 물었다.
 규영이 다시 한 번 제목을 이야기해주더니  "음악 안 좋아하세요?" 하고 되물었다.
 "가끔 듣긴 하는데 요새 노래는 별로야. 티브이를 봐도 벌거벗은 여자애들만 나오더라. 대체 노래를 하러 나온 건지, 교태 부리러 나온 건지, 씨팔."
 정화 입에서 욕이 나오자 규영이 고개를 끄덕이곤 다른 노래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이어폰을 해제한 스마트폰에서 빠른 박자이면서도 소울 느낌이 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 그 노래 괜찮군. 누가 부른 거지?"
 "아델(Adele)이란 영국 가수가 부른 건데요, 제목은 <롤링 인 더 딥(Rolling in the deep)>입니다. 12주 동안 빌보드 정상에 있었죠."
 "경쾌하고도 중독성이 있는데? 사랑의 열망을 노래한 건가?"

 "아니요." 규영이 정화를 마치 뭐 이런 노래도 모르냐, 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상처를 준 남자에게 복수하겠다는 여자의 바람이 들어있는 노랩니다."
 "됐네." 정화가 손을 저었다. "복수엔 취미 없어. 노래는 좋지만." 

 규영이 폰을 껐다. 경광등을 켠 순찰차 하나가 옆으로 천천히 지나갔다.

 

 정화는 다시 차 밖으로 나와 천천히 유흥가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순찰을 도는 경찰 두 명이 옆을 지나가며 그녀를 곁눈질했다. 바닥엔 벌거벗은 여자가 그려진 전단지들이 엄청나게 떨어져 있었다. 대개는 출장마사지 광고였다. 물론 불법 성매매를 알선하는 것이었다. 전화번호가 나와 있어 단속이 쉬운데도 왜 없어지지 않는 걸까, 정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편의점 앞 의자에 가 앉았다.

 잠시 복수라는 낱말에 대해 생각했다. 출소한 종서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휴대폰 벨이 울렸다. 다른 데서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서창민 경사였다. 그는 계급 상 부하직원이지만 정화보다 두 살 많다.
 "쌀쌀한데 이만 들어가죠?" 전화기 너머로 서 형사가 말했다.
 "조금만 더 수고해 줘요." 그녀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아직 지시가 안 내려왔거든요."
 "에이 씨팔, 우리 사건도 아닌데. 이왕 나온 건데 그러지 뭐. 몸 조심 하슈." 그가 무례한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속에서 열이 올라왔지만 한숨으로 달래며 다시 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남서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팀원들 15명 거의가 그녀를 백안시했다. 여자 간부로서 능력이 있다는 소문은 돌았지만 신임 서장의 낙하산 인사이며 경찰 경력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붙임성이 없는 그녀의 성격 탓이었다. 그렇지만 지난 두 달 동안 두 건의 강력사건을 말끔히 처리하자 팀원들의 인식은 바뀌었다. 논현동에서 벌어진 조직폭력배 술집난동사건과 역삼동 부녀자 납치 살인사건을 혼자 말끔히 해결하는 걸 보고 팀원들은 물론, 강남서 전 직원들이 혀를 내둘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팀을 모두 장악한 건 아니었다. 특히 서 형사는 정화가 거리를 두고 있는 형사과장의 끄나풀이었다. 사고뭉치기도 했다. 인터넷 도박과 경마에 빠져 큰 빚을 지는 바람에 이혼 당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근무 시간에도 도박을 하다 몇 번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힘이 좋고 용의자 심문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라 수사에 매우 요긴한 인물이었다. 그건 정화도 인정하고 있었다.

 

 차에 오르자 담배 냄새가 났다. 규영이 그 새를 못 참고 피운 모양이었다. 옆에서 주욱 지켜보니 하루에 한 갑 이상은 너끈히 피우는 듯했다. 규영은 서 형사와 다른 점에서 문제아다. 아내가 있음에도 근무 시간에 자주 여자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엔 경찰서에까지 찾아온 여자가 외근 나간 그를 만나겠다며 난동을 부린 적도 있다. 강력사건 수사 초보자이기에 실수를 많이 했다. 그러나 그 또한 장점이 있다. 무술유단자이고 용의자의 각종 인터넷과 휴대폰 정보조회를 빨리 파악하는 데에 소질이 있었다. 한때 인터넷 게임중독에 빠졌던 게 도리어 직장생활에 도움이 된 것이다. 그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키가 크고 잘 생겼다는 것이었다.
 "담배 좀 끊지?"
 "그 좋은 걸 왜 끊어요? 예전에 안 피우셨나요?"
 "피웠지. 그것도 엄청. 술도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거의 끊었어."
 알콜 중독에 시달리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대체 취미는 뭡니까?" 규영이 물었다.
 정화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별다른 게 없었다. 참 시시하게 살고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쓸쓸해졌다. 그러다가 뭔가 머리를 반짝 스쳤다.
 "영화 감상." 정화는 그걸 취미로 승화시킨 것에 마음이 뿌둣했다. "가끔 쉬는 날이면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감상하곤 해."
 규영이 불법다운로드를 하면 곤란하지 않느냐고, 불펌카페가 분명하다고 했고 그녀는 저작권 행사를 두고 가진 자의 횡포라며 맞섰다.
 "네가 유튜브에서 음악 듣는 거랑 똑같아."
 "그런 면도 있네요." 규영은 굳이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그러더니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뭐냐고 물었다.
 "<라쇼몽>." 정화가 말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 건데 본 적 있어?"
 규영이 고개를 저었다.
 "인간 본성이란 무엇인가, 진실과 거짓의 경계는 무엇인가, 한 사건을 다각도로 본다는 게 어떤 것인가......이리저리 헷갈릴 때 그 영화를 보곤 해. 아마 열 번도 더 봤을 걸?"
 "인생에 그다지 자신이 없는 모양이군요."
 정화가 그렇게 말하는 규영을 째려보았다. 규영은 정화의 가슴과 바지께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이 녀석이? 정화가 눈치를 주자 규영이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농담입니다. 그 카페주소 좀 알려주세요. 실은 저도 영화 좋아합니다." 뭐가 재미있는지 그는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래?  <무비인>이라는 사이트인데 주소를 이메일로 보내줄게."
 "그래주시면 고맙죠."
 젊은 남자와 공감대가 하나 생겼군. 정화는 기분이 확 풀어졌다.


 한 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상황이 발생했다는 징조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규영은 쉬지 않고 헤비메탈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댄스동아리에 대한 얘기도 해주었다. 지난 달 소년소녀 가장들을 위한 초청행사에서 그가 몇몇 동료들과 함께 셔플댄스 공연을 한 걸 본 적이 있다. 다시 30분이 더 흘렀다. 길거리의 사람들도 드문드문했고 딱히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도 없었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규영의 어깨를 툭 쳤다. 
 "김 형사, 철수할까?"
 그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3시 반이네요." 했다. 정화는 다른 팀에 전화를 걸어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두 시간이나 일찍 자리를 떴다는 걸 과장이 알면 내일 회의에서 한소리 들을 것이다. 새끼, 맨날 책상머리에나 앉아 있는 주제에, 정화는 속으로 욕을 해주었다. 어떻게 된 게 이놈의 조직은 경감이나 경정만 되면 도통 현장에 안 나가려고 했다. 정화가 경찰 수사권 독립에 반대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피곤한데 팀장님 오피스텔에서 자고 가면 안 돼요?" 신사동 네거리에서 규영이 물었다.
 "안 돼." 정화가 단호하게 말했다. 속으론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얘가 오늘따라 갑자기 왜 그러지? "집에 가서 마눌 찌찌 만지면서 자."
 규영이 피식, 웃었다. 그는 정화를 그녀의 임시 거처인 포이동의 허름한 오피스텔 앞에 내려주곤 자기 집 쪽으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 그녀는 오피스텔에 들어와 옷을 벗으려다가 멈칫, 하곤 규영이 킥킥거린 이유를 알아차렸다. 청바지 앞 자크가 활짝 열려 있었던 것이다. 음모 부위에 분홍색 키티가 그려진 흰 속옷이 다 드러나 보였다.
 '새끼.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나?'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자명종 소리에 정화가 눈을 떴다. 7시 30분. 네 시간만 잔 것이다. 대충 씻고 아침도 거른 채 택시를 타고 경찰서로 갔다. 정문에서 의경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물었다. 처음 보는 신참이었다. 정화는 핸드백에서 아이디카드를 꺼내 보여주고 정문을 통과했다.

 팀 사무실엔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고 있었다. 간밤 당직이던 박 란이 다가와 깍듯하게 상황보고를 한 뒤 퇴근하겠다고 말했다. 정화는 그러라고 하곤 방을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27세 여경인 박 란은 정화가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게으른 데다가 젊은 여자 특유의 오만함을 드러냄은 물론, 은연중에 정화 앞에서 대놓고 텃세를 부리곤 했다. 그 막 돼먹은 성격을 단박에 고친 게 정화였다. 체력단련실로 데리고 가 흠씬 패주었던 것이다. 결국 박 란은 엉엉 울며 무릎을 꿇고 빌 수 밖에 없었다. 

 토스터에 식빵을 넣고 스위치를 켰다. 빵이 구워질 동안 포트에 물을 끓여 봉지커피를 탔다. 신문을 보고 있을 때 규영이 들어왔다.
 "일찍 일어났네?" 정화가 포트에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커피 한 잔?"
 "아니요, 제가 타죠. 새벽에도 얻어 먹었는데." 정화와 규영의 손이 동시에 포트 손잡이를 잡았다. 그 때 서창민과 감식 담당 장기식 형사가 들어와 그 모습을 봤다. 서 형사가 말했다. 
 "어럽쇼? 그림 좋은데요? 두 사람 혹시 어제 집에 안 들어가고......"
 "형님!" 규영이 그의 말을 끊었다. "아침부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하지만 그의 귓불은 이미 벌겋게 되어 있었다. 이길재  형사가 들어오는 바람에 분위기가 바뀌었다. 
  "벌써 오셨네요?" 이길재가 정화에게 인사를 했다. 그는 마흔 한 살의 경사로, 계급은 낮지만 경찰 생활은 그녀보다 한참 고참이다. 그렇기에 너무 예를 갖추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언제나 깍듯하게 상관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는 수사전산망 조회와 증거물의 기술적 분석, 그리고 휴대폰 통화내역 조회를 맡고 있다. 파트너인 박 란이 당직이었던지라 그는 어제 혼자 잠복근무를 섰다. 정화가 고개를 까닥 숙이곤 신문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퇴근한 박 란을 제외하고 팀원들이 모두 모였다. 다들 피부가 푸석푸석하고 눈동자가 빨갰다. 서창민과 장기식 몸에서 그리 상쾌하지 않은 냄새가 났다. 피씨방에서 게임을 하다 온 듯했다. 

 

 정화 팀이 이천 사건을 맡게 된 것은, 지난 달 미사리에서 자취를 감춘 40대 전업주부 2명이 약 10일 뒤에 이천의 한 야산에서 매장된 시신으로 발견된 직후였다. 처음 이 사건은 실종자수사팀에서 맡고 있었다. 시신이 나오자 서장은 강력3팀장 오정화 경위를 비롯한 수사관 6명으로 전담수사팀을 꾸리기로 결정했다. 지휘 검사는 새파란 애송이였는데 원점에서 수사를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이 사건을 약칭 '이천 건'으로 부르기로 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지난 4월 18일 오전에 두 여자의 실종 신고가 들어왔다. 전날 오후 헬스클럽에 들른 뒤로 소식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클럽 CCTV를 확인한 결과 두 남자가 여자들 주위에 있었다. 두 여자의 휴대폰은 미사리 근처에서 꺼진 걸로 나타났다. 평소 강남경찰서에 접수되고 있는 실종자 신고는 하루에 십여 건에 달했다. 처음에 단순 가출로 추정한 경찰은 일단 여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클럽 회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지만 별무소득이었다. 경찰의 수사는 미적지근했다.
 실종 추정일인 19일 오전에 두 여자의 계좌에서 1,000만 원 가까이 빠져나갔다는 가족의 새로운 신고가 들어오자 그제야 실종수사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천과 장호원의 세 은행 CCTV에 찍힌 장면엔 공통점이 있었다. 인출자는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남자였다. 미사리와 이천, 장호원 일대를 집중 탐문한 경찰은 이틀 뒤 미사리 한 카페 주차장에 세워진 실종자의 승용차를 발견했고 카페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심문한 결과 두 남녀가 그 날 밤 11시까지 함께 술을 마신 뒤 카페를 나갔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휴대폰이 꺼진 시각과 일치했다. 경찰은 남자들의 몽타쥬를 작성해 두 여자의 사진과 함께 이천과 장호원 일대 숙박업소와 유흥업소 뿌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시신은 낙엽과 흙으로 덮여 있었는데 두 사람은 모두 알몸 상태였다. 감식반이 조사한 결과 여자들 몸에 범인의 지문이나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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