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2. 2012년 5월, 강남 ②

 

 

 

 

 

 

 청담동 유흥가의 밤.

 강남경찰서 형사과 강력3팀장 오정화 경위는 하품을 하며 운전석의 김규영 경사를 돌아보았다. 그는 스마트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비록 시선은 유흥가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동자에 촛점이 없었다. 그와 파트너가 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나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말수가 적은 그는 남들이 기피하는 정화의 파트너를 자원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렇고 집안 일에 대해 한 번도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물론 굳이 규영도 정화의 사생활에 대해서 묻진 않았다. 편했지만 그게 어떨 때는 지루하게 느껴졌다. 바로 옆 공원 화단에서 풀벌레 소리가 났다. 수컷이 짝을 찾는 게 틀림 없었다. 장시간 차 안에 앉아 있는 건 지겨운 일이다. 드디어 졸음이 몰려왔다.

 그녀 나이 어언 서른 여섯 살, 요즘 들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 새벽 한 시. 유흥가의 화려한 불빛이 업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어울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유혹적으로 춤추고 있었다. 밤 깊은 골목엔 젊은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취객, 호객꾼, 대리운전기사들로 넘쳐났다. 주변 아파트 단지는 대개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다만 몇 가구에 불이 켜져 있을 뿐이었다. 잠복을 하고 있는 다른 팀으로부터는 아직 별다른 연락이 없다.
 
 정화는 차에서 내려 자판기에서 커피 두 잔을 뽑아 하나를 규영에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규영이 말했다. 그의 시선 끝은 모텔로 들어가는 중년 남녀에게 있었다. "참 말세네요, 말세."
 "뭐가?"
 "보셨죠? 모텔에 들어가는 것들. 과연 그들은 부부일까요?"
 "그거야 사생활이지." 정화가 차에 등을 기대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초짜 같이 왜 그래, 어디 한두 번 봐? 그런데 요즘 아내하고는 어때?"
 강력팀 형사의 결혼생활이 원만할 리가 있겠는가, 그걸 증명하듯 결혼한 지 2년도 안 된 그의 책상엔 가족 사진이 없다. 그러나 정화는 곧 그 질문을 한 걸 후회했다. 그의 수려한 얼굴에 그늘이 진 걸 발견한 것이다.
 "사생활이죠." 규영이 곧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래. 우리, 다른 얘기 하자."

 그러나 규영은 화제를 바꾸지 않았다.

 "아침에 1팀에 배당된 수서동 모텔 살인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죠? 공무원 남녀. 불륜관계였다는군요."
 규영이 왜 자꾸 그런 이야길 꺼내는지 정화는 신경이 쓰였다. 자기의 고민과 관련이 있는 건지, 아니면 정화의 자유분방한 남성편력을 꼬집으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후자는 아닐 듯했다. 그런 생각은 정화의 자격지심에서 나왔으리라.
 "불륜이라......난 꼭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아."

 정화는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고 생각했다.
 "무슨 말씀이죠?"
 예상했던 대로 규영은 어리둥절한 눈초리로 경찰대 출신 만년 경위를 바라보았다.
 "아직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는 도덕 기준으로 보면 그렇겠지." 정화가 운을 떼었다. "그렇지만 나는 바람 피우는 남녀들이 생물학적 욕구에 솔직하다고 생각해. 남자는 될수있으면 많은 유전자를 퍼뜨리고, 여자는 강한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많이 생산하는 것 말야. 이미 1부1처제는 무너지고 있어. 아니지, 인류역사 상 그게 구현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거야."
 "어려운 얘기네요. 동의할 수도 없고요."
 "세계 200개 이상 국가들 가운데 1부1처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10%에 지나지 않아. 그걸 제도로 가진 서구사회에서도 구성원의 25%만 결혼을 해. 놀랍지? 그 대신 싱글족, 한부모가정, 동성애가정 등 새로운 가족 형태가 출현하고 있어. 마음에 안 들거나 관계가 식상해지면 헤어질 자유가 있고 어떨 땐 한 사람이 두세 명의 이성과 느슨한 관계를 맺기도 해. 프랑스 대통령 애인 얘기 알아? 예전에 지금 애인인 대통령을 비롯한 좌우파 정치인들과 동시에 섹스를 나누고 있었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야. 정확한 자료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기혼자들 가운데 외도를 하는 여성 비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어. 여성들이 일터로 진출함에 따라 경제적 지위가 올라갔고 남자를 접할 기회와 능력도 많아지는 게 그 이유지. 물론, 먼저 그랬던 건 남자들이야."
 "꼴페미 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마치 남자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것 같아요." 규영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정화는 어깨를 으쓱, 했다.
 "너무 무책임한 말씀을 하고 있는 거 아세요? 그렇게 되면 사회가 어떻게 되겠어요? 애들은요?"
 "지금 당장 그러자는 게 아니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지혜를 모아 차근차근 풀어나가자는 거지." 정화가 한 발 물러섰다. "너도 알겠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고 우리가 타깃으로 삼는 성범죄들 말야, 성폭력이나 매매춘, 특히 '치정에 의한 살인'이라고 표현하는 사건들이 왜 많이 일어나는지 알아? 인간의 본능을 제도나 법, 도덕으로 마구 틀어막으려하니까 탈이 생기는 거야. 그 밑바닥엔 부익부빈익빈이라는 이 사회의 아주 고질적인 불합리성이 도사리고 있지만."
 사실 지금까지의 논지는 정화가 미국에 파견나갔을 때 뉴욕주립대의 '성과 심리학'이라는 강좌를 청강하고 나서 메모해 둔 것이었다. 규영이 따분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그에겐 낯선 얘기일 게 뻔했다. 더 이상 논쟁을 하지 않기로 한 것 같았다.
 "참 아는 것도 많으셔. 팀장님은 그래서 결혼 안 하시는 겁니까? 자유연애 하려고요?" 규영의 말투에 약간의 비아냥이 들어 있었다.
 "내가 결혼 안 한 이유를 꼽자면 여러가지야. 남자에게 구속을 받지 않으려 하는 이유도 있지. 그렇다면 네 분석이 맞아.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야."
 "이유가 더 있다면요?"
 "충실한 결혼생활을 할 자신이 없어서 그래. 우리 직업이 그렇잖아? 게다가 사랑이 결혼을 통해 생활이 되면 말이지......그 사랑은 점차 눈 녹듯 사라지기 마련이지. 그게 상처로 남을 것 같아."
 규영은 말이 없었다. 양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턱을 괴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화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골치아픈 애길 해서." 그나저나 오늘 우리 만난 지 처음으로 대화 많이 했네?"
 그러자 규영이 정화에게 얼굴을 돌렸다.
 "팀장 님, 물어볼 게 있는데요......"
 정화가 응? 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규영은 "다음에 얘기할게요." 하며 다시 침묵모드로 빠져들었다. 정화가 차에서 몸을 뗐다.

 

 얘길 하다보니 오랜만에 떠오른 옛 생각이 있었다. 정화는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나이 때문일까, 요즘 그런 일이 잦았다. 5월 중순이지만 올해는 아직도 날이 추웠다. 밤공기는 탁하기만 했다. 화장실이 있는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 안엔 남녀 청소년들이 군데군데 앉아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 가운데 나이가 가장 많은 녀석이 기껏해야 중3 정도? 두 쌍은 아예 지남철처럼 붙어 서로의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한 녀석이 그녀가 보고있는 걸 눈치채고 욕설을 했다.
 "조또, 뭘 봐, 아줌마?"
 정화는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20대 때 같았으면 벌써 놈은 그녀에게 곤죽이 되도록 맞았을 것이다. 말세라던 규영의 말에 한편으론 공감이 갔다. 

 어린 여자 아이가 변기에 몸울 숙이고 음식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골반바지가 밑으로 내려가 희멀건한 엉덩이살의 골까지 다 보였다. 여자 망신이군, 정화는 눈살을 지푸리고 빈 변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안은 엉망이었다. 변이나 피가 묻은 화장지, 생리대, 담배꽁초가 바닥에 널려 있었고 변기도 더럽긴 마찬가지였다. 일을 보는 동안 악취가 코를 찔렀다. 남자들이 이를 알면 아마 뒤로 나자빠질 것이다. 정화가 몇 번 본 남자 화장실도 더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 더럽진 않았다.

 문을 열고 나오니 아까 그 여자아인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여자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세면대에서 손을 씻으며 그들이 나누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마스카라가 짙은 여자가 립스틱을 바르고 있는 여자에게 말했다.
 "생리가 나올 것 같아. 오늘은 대충 끝내고 들어갈래?"
 "아이요. 좀 더 해야지요" 립스틱 여자가 대답했다. 말투가 조선족이었다. 각각미니 스커트와 몸에 꽉 붙는 바지를 입었다. 그다지 세련되지 않은 얼굴과 몸매. 노래방 도우미들이 분명했다.
 "오늘도 2차 갈 거야?" 마스카라가 다시 물었다.
 "언니는 관계 없어요. 내 일이니까요."
 "그러다 탈 난다. 욕심부리지 말고 일찍 들어가."
 그 말마따나 그녀들은 성범죄의 주 대상이다. 경찰 생활 10여 년 동안 룸살롱 여종업원이나 노래방 도우미들의 처참한 시신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그러나 정화는 거기까지 듣고 화장실을 나왔다. 입구에 SUV 차량이 보였고 남자 하나가 서성이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술판은 계속되고 있었다. 보도방 영업이나 청소년 심야술판도 단속 대상이었지만 오늘은 그 임무가 아니었다. 풍속사범 단속팀에 연락을 취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안 그래도 대형 사건 때문에 업무가 폭주하는 판이었다. 이런 건은 관할지역에서만 하루에 100 건도 넘게 접수되고 있다. 당직근무자들에게 성가신 일만 생길 것이다. 


 수원에서 여성 토막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 일선 경찰관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시도 때도 없는 비상근무에 불심검문 근무가 그들을 괴롭혔다. 수원 경찰의 거짓말이 속속 드러나자 여론은 나빠졌고 언론은 연일 선정적인 성폭행 사건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 그들의 임무는 강력2팀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나이트클럽 여종업원 피살 사건의 용의자가 이 일대에 나타날 거라는 첩보에 따라 수사동 건으로 바쁜 1팀을 제외하고 지금 주변엔 주 담당인 2팀과 정화의 3팀, 그리고 수사과와 형사기동대를 포함, 2인 1조 10여 개 팀이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정화와 규영은 낮에 이천 현장 주변의 숙박업소를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하고 왔던지라 심신의 피로가 말이 아니었다.  

 "규영아, 안 졸려?" 정화가 차에 오르며 물었다. 남들 보는 앞에선 김 형사로, 팀원들까리 있을 땐 이 스물여덟 살짜리 초짜 경장에게 이름으로 부른다. 규영은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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