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머피와 랫치드 수간호사 역을 소화한 잭 니콜슨과 루이스 플래처의 연기, 영화 구성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책으로도 읽었는데, 켄 키시라는 작가의 문단 데뷔작 치곤 대단한 작품이다. 그런데 역시 책보다는 종합예술인 영화가 더 가슴에 와닿았긴 하다.
켄 키시가 처음엔 영화제작에 함께 참여했다가 원작 화자인 추장이 아니라 맥버피를 중심으로 각본이 진행되자 도증에 관둬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문학이 영화에 종속당하지 않겠다는 자기 신념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의 속어이며 억업체제를 뜻한다.

사람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태어나자마자 특정 사회제제에 강제로 편입당한다. 부모를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체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난 역사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지구엔 만인을 만족시키는 체제는 없다. 지금의 자본주의도, 실험을 거쳤던 사회주의도 만인은 커녕 그 체제를 거머쥐고 있는 소수 집단에게 대다수 인민들이 봉사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체제 자산의 절대 몫을 장악하고 1%는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99%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착취, 전쟁, 빈곤, 기아는 그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건 그 수호자들이 인민들의 의식을 각종 수단으로 조종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현실에서 늘 탈출을 꿈꾸지만 앞에 놓인 길은 억압자가 되거나, 억압자의 관리자가 되거나, 방관자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스스로를 '루저'라고 자조하며 순응, 저항을 포기하는 것 밖엔 없다.
체제의 진실을 깨닫고 저항하는 자는 결국 유배되거나 거세되고 만다. 원작소설은 그 억압체제를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암시하진 않았다. 그러므로 사실주의라기 보다는 실존주의 경향이 강한 작품이다. 미국 주류사회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고 히피 문화에 영향을 주었다.

나를 잠깐 돌아본다.
나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소설 속 정신병동 같은 조직에 몸담은 적도 있었다.
하도 괴로원 때론 맥머피처럼 저항했고 때론 추장처럼 탈출했다.
물론 순응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보면 나도 참 종잡을 수 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병동에서의 탈출은 실패했다. 그러나 늘 일탈은 꿈꾸고 있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시를 좋아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그는 일찌기 이 세계가 모순과 위선, 추악함으로 가득차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다.

 

 옛날 중앙일보 기사를 보면 재밌다. 온 여성을 열광시켰다는데  과연 그럴까? 기사를 그렇게 쓴 이유가 짐작이 간다. 예나 지금이나 남성보다는 여성이 문학, 영화의 주고객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위험한 동창생들 - 5. 2004년 뉴욕, 뉴욕 ⑤

 

 

 


 김창호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조미란이 금세 보석으로 풀려났기 때문이었다. 유능한 변호사가 그 뒤에 있었다. 비용은 김창호 측에서 댄 것으로 밝혀졌다. 사흘만에 일정을 끝내고 귀국하기 전인 그를 다시 만났다. 영사관 옆 스타벅스에서였다. 김창호는 이번엔 아주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월스트리트 편드매니저가 무색할 정도였고 올백으로 벗어넘긴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여기에 있는 동안 109경찰서, 메릴랜드, 보스톤 말고는 다닌 데가 없다고 했다. 정화가 메모를 했다. 이쪽 조직과는 관계가 없는 듯했다.
 "여행 좀 하지 그랬어요?" 정화가 물었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요." 김창호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조미란과는 진짜 애인 사인가요?"
 "실은 아닙니다. 설희처럼 그냥 후배죠."
 "그냥 후배인데 변호사 비용하고 머물 집의 세를 지불했나요?"
 "그러려니 하십쇼."
 더 깊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정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희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그는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무죄 판결을 받고 연천을 떠났죠. 중학교 때 고모하고 부천에서 장사를 해 돈을 벌었고 그 다음에는 서울로 갔습니다. 고등학교 땐 고모가 사업에 실패하고 학교에 적응을 못했어요. 마침 그 애 큰아버지가 미국에 있던 터라 유학을 왔죠. 그 이후 주욱 이곳에 살았습니다. 그 정도만 압니다."
 "가끔 만나곤 했다는데요?"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픈 추억? 그게 뭘까?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그가 질문을 던졌다.
 "총명하신 분이 왜 경찰 생활을 하고 계신가요?"
 정화는 당황했다. 

 "왜라.....그냥 아버지 영향이죠. 처음엔 의욕이 넘쳤는데 요즘은 힘이 많이 빠지네요. 이 짓 말고 다른 거 할 게 없기도 하고."
 "오 경위님은 영어를 잘 하신다던데 무역회사나, 아니면 전공을 살려 외국인 경호회사 같은 데에 들어가면 보수도 좋고 일에 보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왜 가진 놈들에게 봉사하고 계신가요?"
 직설적인 말에 정화는 대답을 못하고 커피잔만 홀짝거렸다.
 "훗, 무역회사나 경호회사 직원이나, 가진 이들에게 봉사하는 직업이 아닌가요? 창호 씨는 혹시 자신이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 말에 김창호가 후우, 하고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화제를 돌렸다.
 "설희에 대해 쟤들이 얼마나 파악하고 있던가요?"  
 "심각한 정도는 아니더군요. 자세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아무튼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 지나 김창호가 툭, 던졌다.
 "아끼는 친구가 여기에서 죽었죠."
 "누구 친구요? 창호 씨?"
 "아니요, 설희 친구인데 자살했어요. 설희 말로는 분명 타살이었지만 의혹에 묻히고 말았답니다. 그 뒤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정화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게 언제 일이죠?"
 "아마 2년이 넘었을 겁니다."
 "죽은 사람 이름은?"
 "이수진이라던가......같은 학교 유학생 친구였습니다. 그 정도만 압니다. 자세한 건 혹시 설희를 만나면 물어보세요. 저한테도 애길 잘 안 하니까."
 김창호가 이만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얘기를 더 나누고 싶었기에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사적인 얘긴 안 하겠다며 거절했다.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어차피 직무 상 얻을 정보는 다 얻었다. 커피값은 그가 지불했다.
 택시를 타기 전에 악수를 건넨 김창호가 정화 손에 자기 명함을 쥐어주며 말했다.
 "설희를 잘 부탁합니다. 한국 오시면 꼭 연락하세요.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그가 떠난 뒤 명함을 보았다.
 - 1급자동차정비 일신공업사 상무 김창호.

 

 영사관으로 돌아와 이수진에 관한 사건기록이 있나 검색해 보았다.
 있었다. 109경찰서와 공조수사를 했던 사건이었는데 보고서는 A4용지 분량으로 두 장이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 이수진은 2001년 8월 21일 아침 7시에 뉴욕  퀸즈브리지 포인트 해변에서 알몸 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그녀는 보스톤 매사추세츠 주립대 경영과정 2학년 생이었다. 거주지인 보스톤에서 사건 발생 전날 저녁 8시 경 서점에 간다며 집을 나선 것으로 밝혀졌는데 검시 결과 몸 여러 군데에 타박상이 있었고 성관계와 마약 복용 흔적이 나왔다. 직접 사인은 익사로 판명되었다. 관할 퀸즈 109경찰서는 유전자감식 결과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3명의 백인 용의자를 검거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해변에서 파티를 하다 성관계를 한 건 사실이지만 살해한 건 아니라고 진술했다. 한 달 뒤 뉴욕 검시소는 자살로 결론지었다. 용의자들은 재판에서 마약복용 혐의만 인정되어 6개월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다. 용의자들의 이름은 각각 알란 킨스버그, 브렛 휴즈, 루이스 주카치다.

 

 조사관 이름을 살펴보았다. 당시 영사관에선 고상기라는 이름의 형사가 109경찰서에 파견되어 조사를 한 걸로 나와 있었다. 109경찰서의 사건담당 형사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언 그레이시 형사.
 지금은 경감으로 진급해 풍기단속반을 지휘하고 있는데 정화와 자주 마주치는 인물이다. 경찰서 내에선 각종 부패와 연관돼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지만 당당하게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소문에 듣자면 뉴욕경찰국장과 돈독한 관계가 있다고도 했다.
 보고서엔 2002년 7월에 내사종결이 되었다는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재판에서 증언을 한 사람은 모두 12명이었다. 그 가운데 주디 림이 있었다. 재판기록을 찾아보았지만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뉴욕 언론기사 몇 개가 스크랩되어 있었다.

 - 매춘 혐의 한인 여성,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

 - 뉴욕경찰, 한인 여대생 살해를 계기로 한인 매춘조직 조사

 - 이수진 살해 용의자들, 범행 부인

 - 한인 여대생 살해 용의자들 보석으로 풀려나,  등의 제목이었다.
 제이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수진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하자 그녀는 대뜸 왜 그걸 찾느냐고 물었다. 기억하고 있는 사건인 모양이었다. 정화는 주디 림에 대해 더 알아볼 게 있어서 그런다고 대답했다. 제이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찰관과 관련된 사건 기록을 타 서에 유출할 수 없다는 내부규정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 말에 정화는 경찰관이 관련되어 있다는 건 몰랐고 설렬 그렇더라도 참 희한한 규정이라고 말했다. 제이시는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판기록이 있느냐는 질문엔 열람 절차가 꽤 복잡해 일 주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직접 법원에 가서 열람신청을 하는 게 빠를 거라고 했다. 정화는 전화를 끊었다. 어쩐지 제이시가 비협조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이었다. 제이시가 재판기록을 이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의 배경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고맙다고만 했다.
 재판기록은 분량이 꽤 많았다. 이틀에 걸쳐 틈틈이 기록을 읽어보았다.
 이수진은 한인 유학생 매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의문의 실종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관련자들의 증언과 정황을 보면 타살 혐의가 짙었다. 용의자들에 대한 무혐의처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뉴욕검시소의 자살추정 결과였다.
 주디 림은 두 차례 증언을 통해 이수진이 타살된 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유학생 매춘과 관계도 없고 평소 마약을 복용하지 않았으며 다음 날 다운타운에서 만나 영화구경을 같이 하기로 한 사람이 자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저녁에 스포티한 복장으로 인근 서점에 책을 사러 나갔다는 이수진이 그 길로 보스톤에서 차로 4시간이나 떨어진 뉴욕 해변까지 스스로 갔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며 용의자들에 의한 납치살해로 밖엔 판단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부실조사를 질타하고 있었다.
 경찰이 부실조사를 했다는 정황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었다.
 사체 발견 직후 사건 현장을 훼손했으며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들을 소환하는 데에 2주일이나 결렸다. 용의자들의 통화 기록과 휴대폰 이동경로도 조사하지 않았다.  용의자들의 차량이동경로도 부실했고 도로나 해변에서 찍힌 CCTV기록도 공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 증거를 인멸할 기회까지 만들어주었다.

 타살을 주장한 한 증인은 용의자 가운데 한 사람은 경찰관, 다른 한 사람은 워싱턴의 유력 정치인 아들이기 때문에 경찰이 축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증거불충분'을 들어 용의자들을 살인 혐의에서 제외시켜 주었다.

 한편 재판과정에서 이수진이 매춘과 관련되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뉴욕경찰과 이곳 언론이 이수진을 두 번 죽인 셈이 되는 것이다.


 정화는 파일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사건 뒤엔 뭔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뉴욕 경찰이 평소 사건처리를 하는 방식을 보면 같은 사건이라도 유력자와 관계된 인물이 용의자일 경우 미적지근하게 수사를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흔히 미국을 과학수사에 정통한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유전자 자료 관리도 부실하고 특히나 흑인이나 아시아계, 히스패닉이 피해자일 경우 수사인력 투입도 부실하거니와 대충 덮고 넘어가는 사건이 부지기수다. 과학수사란 것도 알고보면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식 편견, 인종차별, 경찰부패가 뉴욕 경찰 안에 만연해 있었다. 의혹이 가시지 않은 채 가까운 친구를 잃은 설희의 아픔과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됐다.
 마음 같아선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상부에 요청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제로였다. 정계나 군부를 비롯한 한국사회 전반이 그렇듯 경찰도 미국 경찰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화는 저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오언 그레이시 경감이 퀸즈 플러싱에 있는 한 유흥주점에서 누군가에게 총기로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 이틀 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붉은 바캉스 검은 웨딩 (Red Vacance Black Wedding)  한국 | 90 분 | 개봉 2011-12-08

 

 

 

 

 


1. 첫 번째 이야기
 다소 계몽적이다.
 현단계 결혼제도가 인간의 동물적 본능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즉 불완전한 제도가 얼마나 인간에게 치명적인지를 외도 남성의 사회 격리와 남성기 절단으로 보여준다. 이는, 외도와 쾌락추구의 결과가 여성에게 더 손해라는 속설을 뒤집고 남성에게 더 가혹하다는 걸 시시하고 있다.
 상속의 평등화,  중산층 이하 계층의 경제적 붕괴에 따른 이혼의 증가, 자발적 성매매 여성 수의 증가. 성범죄 처벌 강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여성 인식의 변화, 독신여성의 증가, 간통죄는 존재하지만 실제 처벌받은 여성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 최근에 있었던 성매매 여성 불처벌 헌법소원......이렇게 현실에선 여성이 성에 있어서 주도권을 쥔 강자로 등극하고 있다. 제작자의 의도가 어쨌든지 간에 이 영화는 그걸 일부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 코믹하게.

 

2. 두 번째 이야기

 

 

 


  오인혜의 파격 노출과 정사씬으로 주목받은 부분.
  결혼제도란?  사랑이란?  본능의 해소란?
  인간은 날 때부터 다수의 이성과 성교하도록 설계되었다.  심각하게 고민할 것도 코멘트할 것 별로 없음. 그냥 보면 됨.

 

3. 영화 앞부분, 제작자와 배우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박철수 감독은 영화의 엄숙주의와 형식주의를 깨고 싶다고 했는데  글쎄, 기존 영화판이 어떤 엄숙주의와 형식주의에 빠져 있는지에 대해선  솔직히 잘 모르겠고 이 영화가 그걸 깨뜨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마부인' 시리즈나 '거짓말', 김기덕의 영화들을 엄숙하다거나 형식적이라고 생각하는 팬들이 과연 있을까?
   박 감독에게 차라리 김기덕처럼 거대자본판에 도전하는 정신이라도 있었으면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위험한 동창생들 - 5. 2004년 뉴욕, 뉴욕 ④

 

 

 

 

 

 정화는 김창호의 행적을 미행이나 간접정보를 통해 얻기보다도 직접 대면하기로 했다. 업무가 밀려 일일이 챙길 시간도 없거니와 만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묵고 있는 호텔로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그는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동의했다.
 다음 날 오전 10시에 정화는 호텔 로비에 있는 커피숍으로 갔다.

 스포티한 차림의 건장한 체구를 가진 젊은 동양남자가 앉아있는 걸 보고 그가 김창호라는 걸 직감했다. 정화가 다가가자 그가 일어나 아는 체를 했다.
 "오정화 경위님? 김창홉니다."
 그가 내민 손은 크고도 투박했다. 그러나 따뜻하고 정중했다. 조직폭력집단의 행동대장 손을 잡아보긴 처음이라 손에 전율이 왔다.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다소 이국적이었다. 콧날이 시원했고 눈이 컸지만 어쩐지 눈매가 날카롭게 느껴졌다.

 둘은 커피를 시켰다. 정화는 그에게 보안관찰 대상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뉴욕 체류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예정이고 누구를 만날 것인가에 대해 물었다.
 "간단합니다." 김창호가 운을 뗐다. "조미란이라는 여자가 지금 경찰서유치장에 있죠? 석방되는 대로 만나볼 예정입니다."
 "그녀완 어떤 관계입니까?" 정화는 수첩에 메모를 하며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 애인입니다."
 설희가 그의 애인일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진짜 방문목적을 숨기기 위해 지어낸 말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애인을 험한 곳에 두셨네요?"
 "걔가 좀 철이 없어서요. 수고스럽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정화는 그 태도에 웃음이 나왔다.
 "김창호 씨가 미안해 할 게 뭐 있어요. 전적으로 조미란 씨 책임이죠. 그나저나 보석으로 나와도 정식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아마 이곳으로 주거가 제한될 걸요? 그때까지 여기 계실 건가요?"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바람에 대화가 잠깐 끊겼다. 종업원이 다른 테이블로 간 뒤 창호가 입을 열었다.
 "그렇진 않습니다. 온 김에 몇 군데 더 돌아보고 곧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그 몇 군데가 어딘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한 군데는 메릴랜드입니다. 제 아버지가 거기에 계시죠. 어릴 때 헤어졌다가 수소문을 해서 6년 전에 제가 이곳으로 와 만나고선 이번이 처음입니다."

 대답이 시원스러웠다.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나요?"
 "미군 군무원입니다. 백인이죠. 곧 이라크로 간다고 하더군요. 주한미군 시절에 동듀천에서 제 어머니와 만났죠. 어머니는  이곳으로 같이 와 고생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정화는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그의 평범하지 않은 가족사가 짐작이 됐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선 더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다른 행선지는요? 초면이니 오늘은 거기까지만 묻기로 하죠. 출국하시기 전에 저를 다시 한 번 만나셔야 합니다."
 "보스톤에 갑니다. 후배가 있어서요. 아마 조금 뒤에 저를 안내하러 이리로 올 겁니다."
 "혹시 그 후배가 임설희 학생인가요?"
 그러자 그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정화는 얼마 전에 그녀가 찾아와 조미란과의 면회를 성사시켜준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아하, 그 경찰관이 오 경위님이셨군요."
 "얘길 하던가요?"
 "네. 서울에서 전화통화를 했는데 이상한 경찰관이 하나 있다고 하더군요. 무슨 말이냐고 하니까 더이상 대답은 안 했어요. 이거, 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그가 고개를 숙였다.
 "연천 K초등학교 동문들 맞죠? 임설희, 조미란 씨하고."
 "많이 조사하셨네요?" 그가 싱긋 웃었다. 기회다, 하고 임설희가 무죄판결을 받은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막 질문을 하려고 할 때였다. 그런데 그가 로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침 왔네요. 여기야, 설희."
 다가온 임설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정화와 창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정화에겐 인사도 없었다.
 "이 여잔 여기 왜 있어?" 
 "데이트 좀 하고 있다, 왜?" 김창호가 넉살스럽게 말했다. "지난 번에 볼 때보다 많이 말랐어."
 "상관하지 마."
 둘은 그다지 친해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을 듣다가 정화는 슬며시 일어났다.
 "왜요? 조금 더 있다 가시지요?"

 김창호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정화가 명함을 건넸다.
 "아닙니다. 규정대로 하루에 한 번은 이 번호로 제게 꼭 전화를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면서 정화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조심해야 할 거예요. 이곳 경찰도 주시하고 있거든요. 저만치에 앉아 있는 뚱뚱한 흑인남자 보이죠? 회색 티셔츠를 입은. 뉴욕시경 사복경찰입니다."
 정화가 쳐다보자 사복은 테이블에 있던 잡지로 황급히 자기 얼굴을 가렸다. 두 사람도 그걸 확인했다. 김창호의 눈이 휘둥그래졌고 설희도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정화는 둘에게 슬쩍 미소를 지어 보이곤 돌아서서 커피숍을 나왔다. 왜 그 말을 해주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문득 혼자라는 자각이 찾아왔다. 그녀는 아침이슬처럼 외로움을 느꼈다.

 

 저녁에 로빈을 만났다. 일 주일 전에 그의 오피스텔 침대를 같이 쓴 뒤 둘 사이는 스스럼이 없어졌다. 식사를 하는 내내 그는 테이블 아래로 발을 가져와 정화의 발목과 종아리를 간지럽혔다. 화제는 주로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절대 일 얘긴 하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로빈이 물었다.
 "이제 뭐 할까?"
 "영화 보러 갈까?"
 그러자 그의 표정에 서운한 기색이 감돌았다. 침대로 직행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러나 그녀는 뜸을 들이기로 했다. 그의 성격과 속내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번의 정사 뒤에 그는 약혼자가 있지만 부모님이 짝지워준 사이라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화는 여자를 침대로 이끌기 위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곤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침대 테크닉은 일품이었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그는 잠깐 지나가는 인연에 지나지 않았다.
 근처 작은 영화관으로 갔다. 이번 작품은 <13구역>이라는 SF물이었다. 현란한 화면이 눈길을 사로잡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그는 시종 노골적인 스킨쉽을 걸어왔다. 전혀 FBI답지 않았고 마치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 바람에 영화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정화에게도 느낌이 왔다. 결국 중간에 극장을 나와 모텔로 들어갔다. 
 서두르는 로빈을 달래고 욕실로 가 먼저 샤워를 했다. 그가 중간에 들어오자 그녀는 적당히 몸을 닦고 나서 그를 남겨두고 침대로 갔다. 그리곤 시트 속으로 들어가 티브이를 보며 장차 벌어질 유희를를 기다렸다.

 욕실을 나온 그가 몸에 두르고 있던 타월을 집어던지고 냉큼 시트 속으로 들어와 정화를 안았다. 알몸인 걸 확인하더니 시트를 집어던지고 그녀의 나신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멋져, 정화."
 그 말에 정화가 허리를 비틀며 중요한 곳을 손으로 가렸다. 교태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온 정성을 다해 그녀의 몸을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은 유두에, 손은 그녀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부지런을 떨어댔다. 정화는 눈을 감고 그것이 주는 쾌감을 온 몸으로 즐기면서도 머리속으론 그가 이런 관계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그와의 관계는 욕망의 분출이지 결코 바랐던 사랑이 아니었다. 이윽고 정화 입에서 갸녀린 신음이 새어나오자 그의 숨결과 애무가 더욱 거칠어졌다. 창 밖에서 마른 대지를 세차게 두드리는 장대비 소리가 들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위험한 동창생들 - 5. 2004년 뉴욕, 뉴욕 ③

 

 

 

 

 

 "자료가 온통 왜 이래? 온통 '의심이 가지만 아직 범죄 증거는 없다'네."
 정화는 실망했다는 듯 서류철을 덮었다.

 그러나 속으론 꽤 충격을 받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설희를 어느 정도 '역경을 딛고 자란 입지전적 여성'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리는 것은 범죄 전력이나 특정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용의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뉴욕경찰국이 왜 설희에 대한 뒷조사를 하고 있는가하는 가장 기초적인 의문이었다.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거 아닌가?"
 "여긴 뉴욕이야." 제이시가 말했다. 9.11 이후로 다들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 테러나 강력범죄에 대해선 인권이 부차적이지. 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야." 
 흥, 그 시민이란 '미국 시민'이겠지, 정화는 속으로 비웃었다. 제이시가 철을 다시 보관함에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참 이상하지 않아?. 범죄 소굴을 돌아다니고, 관련자들을 만나고 다니지만 범죄 흔적이 전혀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자기 주변을 지나치도록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어. 그게 우리에게 의심을 사고 있는 부분이지. 차라리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안 그러더군. 마침 이번 건이 일어나 우린 꽤 주목하고 있지."
 "그래? 어떤 점에서?"
 "조사해 보니 조미란은 데이빗 로드가 운영하고 있던 클럽의 중간관리자더군. 이번 원정의 알선책일 가능성이 커. 그 조미란을 림이 면회했단 말야. 짚이는 게 없어?"
 "오우. 그런 점은 충분히 의심이 가네. 그러나 림이 말하길 조미란은 그저 옛 친구라고 하던데?"
 "그거 굉장한 친구를 뒀군."
 "이 자료 카피할 수 없을까? 참고하려고."
 "우린 한국 경찰이나 관리를 안 믿어. 부패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
 그건 맞는 소리다. 하지만 그동안 살펴본 바로는 미국 공무원사회의 부패가 더하면 더 했지 한국보다 하나도 나을 게 없었다. 노골적인 말에 정화는 발끈했다.
 "지금 네가 말한 경우를 두고 한국에선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하지."
 "아하, 그래? 미안해." 정화의 공격에 제이시가 말했다. "흥분하지마. 원래 내 말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어. 나도 여기 동료들 안 믿어." 
 제이시는 일을 해야겠다며 정화의 등을 사무실 밖으로 떠밀었다. 정화가 나오면서 물었다.
 "이제 저 파일에 내 이름도 올라가겠군?"

 제이시가 정화의 물음에 답을 하지 않곤 윙크를 던졌다. 
 "수고해 정화, 림한테 수상한 구석 있으면 좀 알려주고. 굿바이." 
 그리곤 자기 방문을 쾅 닫았다. 정화는 제이시가 적인지 친구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어이, 이쁜이. 오늘 밤 시간 있어?"
 경찰서 문을 나서다 마주친 백인 경찰 하나가 정화에게 말했다. 오언 그레이시 경감. 여기에서 그런 언어희롱은 흔히 당하는 일이다. 슬그머니 엉덩이를 두드리는 놈도 있었다. 항의해 봤자 허사였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만의 리그에 충실했다. 기 죽지 않으려면 똑같은 방법으로 응수해야 한다. 
 "뻑 큐." 정화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세웠다.

 

 정화는 애마인 혼다를 몰고 영사관으로 향했다. 그녀 기억으로, 약 10년 전 당시 설희는 동급생 살인사건 용의자로 지목되어 가정법원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는 전방부대 사단장이었고 정화는 엄마와 함께 여름방학을 거기서 보냈다. 가끔 길에서 만나고 했던 조그맣고 까무잡잡한 여자아이, 설희 사건은 지역 내에 아주 유명했다. 그러나 방학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와 대학입시에 집중하는 통에 그 뒤로 사건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영사관으로 돌아와 설희가 작성한 민원서류의 신원정보를 바탕으로 교민기록을 찾아보았다. 22세. 학생, 보스톤 거주. 내용은 간단했다. 교민 관련 수사기록엔 아예 그녀 이름이 없었다.

 경찰청 전산망에 접속해 옛 사건기록을 검색했다. 생년월일이 일치한 걸 보니 그 임설희가 맞았다. 재판이 있었지만 무죄로 결론이 난 사건이었다. 정화는 저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해지는 걸 느꼈다. 기록을 자세히 읽어보았다.
 무죄판결을 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목격자의 진술번복이었다.

 그 목격자 이름이 눈에 익었다.

 바로, 109경찰서에 유치되어 있는 조미란이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그 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사건 뒤로 설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현재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제이시가 보여준 기록을 떠올리며 김창호란 인물에 대한 사건기록을 찾아보았다. 동명이인이 많아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았다. 곧 기록 몇 개가 튀어나왔다. 폭력 전과가 2개, 청부살인미수가 1건이었다. 기록 어디에도 설희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설희와 같은 초등학교를 나온 걸 확인했다. 나이는 설희보다 두 살 위였다. 어쨌거나 임설희, 조미란, 김창호는 초등학교 동창생들인 셈이다. 
 조서에는 김창호가 고 1때부터 동두천 일대의 한 폭력조직에 가담한 걸로 나와 있었다. 고3 때 폭력으로 처음 입건된 뒤 학교를 그만두었고 20살에 상대 조직폭력배를 린치한 죄로 1년을 복역했다. 출소한 뒤 근거지를 안양으로 옮겼고 거기서 JJ파라는 작은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던 중, 청부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법원이 상해 죄만 인정, 교도소에서 1년을 복역하는 데 그쳤다. 
그 이후의 기록은 없었다.

 

 세 사람의 관계를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맨하탄에 있는 한인운영 편의점이 백인 소년들에게 털렸다는 것이었다. 정화는 접속을 중단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근 준비를 서둘렀다.

 원래 영사관엔 경무관 급 대외협력관 아래 다섯 명의 동료가 더 있다. 그러나 교민 민원 관련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되어 협력관과 교민동향을 파악하고 있던 경감이 귀국해서 지금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폭주하는 업무를 감당해 나가고 있다. 동료들의 임무와 근무시간이 모두 제각각인지라 영사관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할 틈이 거의 없다.

 정화는 한인 관련 범죄정보수집과 대외협력 임무를 맡고 있다. 수사권이 없어 한인 범죄들은 모두 뉴욕 경찰이 처리하고 있다. 그 정보를 모아 서울에 보고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미국 동부지역의 각 사건 현장과 경찰서들을 수시로 방문해야 했다.

 대단한 격무여서 교민사회의 세세한 사정에 대해선 파악할 틈도 없다. 아니, 실제로는 파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교민을 조심하는 건 정화의 철칙이었다. 뇌물수수, 청탁, 투자사기, 도박, 매춘, 마약, 간통......교민과 접촉하다 패가망신한 공무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정화는 권총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국인들은 경찰이나 일반인이나 심심하면 총를 쏘아대기 때문이다. 단 하루라도 도심이나 브루클린에서 총성이 멎는 날이 없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이라크와 아프간에도 포탄과 미사일을 퍼붓고 있다. 도대체 이 망할 놈의 나라란, 그녀 입에서 욕이 절로 나왔다.

 

 이틀 뒤, 109경찰서에서 사건 처리결과를 보내왔다. 9명 가운데 8명은 약식재판에서 벌금을 내고 방면되었지만 제이시의 귀띔대로 알선책 혐의를 받은 조미란은 풀려나지 못했다. 제이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조미란이 변호사를 선임했고 다음 주에 있을 재판에서 보석으로 풀려날 것 같다고 말했다. 결과를 알고 있는지 설희로부터는 연락이 없었다.
 며칠 뒤 서울에 보낼 정례보고서를 꾸미느라 하루 종일 컴퓨터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L.A.영사관 경찰로부터 업무협조 팩스 용지 한 장이 날아왔다. L.A.를 거쳐 뉴욕을 향해 가고 있는 한 보안관찰자의 동선을 파악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정화는 그 인물의 인적사항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바로, 김창호였다.

 참고란에 '안양 JJ파 행동대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만날 이들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