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동창생들 - 5. 2004년 뉴욕, 뉴욕 ⑤

 

 

 


 김창호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조미란이 금세 보석으로 풀려났기 때문이었다. 유능한 변호사가 그 뒤에 있었다. 비용은 김창호 측에서 댄 것으로 밝혀졌다. 사흘만에 일정을 끝내고 귀국하기 전인 그를 다시 만났다. 영사관 옆 스타벅스에서였다. 김창호는 이번엔 아주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월스트리트 편드매니저가 무색할 정도였고 올백으로 벗어넘긴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그는 여기에 있는 동안 109경찰서, 메릴랜드, 보스톤 말고는 다닌 데가 없다고 했다. 정화가 메모를 했다. 이쪽 조직과는 관계가 없는 듯했다.
 "여행 좀 하지 그랬어요?" 정화가 물었다.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요." 김창호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실례되는 질문이지만 조미란과는 진짜 애인 사인가요?"
 "실은 아닙니다. 설희처럼 그냥 후배죠."
 "그냥 후배인데 변호사 비용하고 머물 집의 세를 지불했나요?"
 "그러려니 하십쇼."
 더 깊은 얘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정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희에 대해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그는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무죄 판결을 받고 연천을 떠났죠. 중학교 때 고모하고 부천에서 장사를 해 돈을 벌었고 그 다음에는 서울로 갔습니다. 고등학교 땐 고모가 사업에 실패하고 학교에 적응을 못했어요. 마침 그 애 큰아버지가 미국에 있던 터라 유학을 왔죠. 그 이후 주욱 이곳에 살았습니다. 그 정도만 압니다."
 "가끔 만나곤 했다는데요?"
 "아픈 추억이 있습니다."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픈 추억? 그게 뭘까?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그가 질문을 던졌다.
 "총명하신 분이 왜 경찰 생활을 하고 계신가요?"
 정화는 당황했다. 

 "왜라.....그냥 아버지 영향이죠. 처음엔 의욕이 넘쳤는데 요즘은 힘이 많이 빠지네요. 이 짓 말고 다른 거 할 게 없기도 하고."
 "오 경위님은 영어를 잘 하신다던데 무역회사나, 아니면 전공을 살려 외국인 경호회사 같은 데에 들어가면 보수도 좋고 일에 보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왜 가진 놈들에게 봉사하고 계신가요?"
 직설적인 말에 정화는 대답을 못하고 커피잔만 홀짝거렸다.
 "훗, 무역회사나 경호회사 직원이나, 가진 이들에게 봉사하는 직업이 아닌가요? 창호 씨는 혹시 자신이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 말에 김창호가 후우, 하고 큰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화제를 돌렸다.
 "설희에 대해 쟤들이 얼마나 파악하고 있던가요?"  
 "심각한 정도는 아니더군요. 자세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아무튼 조심하라고 전해주세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얼마 지나 김창호가 툭, 던졌다.
 "아끼는 친구가 여기에서 죽었죠."
 "누구 친구요? 창호 씨?"
 "아니요, 설희 친구인데 자살했어요. 설희 말로는 분명 타살이었지만 의혹에 묻히고 말았답니다. 그 뒤로 방황하고 있습니다."
 정화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게 언제 일이죠?"
 "아마 2년이 넘었을 겁니다."
 "죽은 사람 이름은?"
 "이수진이라던가......같은 학교 유학생 친구였습니다. 그 정도만 압니다. 자세한 건 혹시 설희를 만나면 물어보세요. 저한테도 애길 잘 안 하니까."
 김창호가 이만 돌아가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얘기를 더 나누고 싶었기에 조금만 더 있다 가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사적인 얘긴 안 하겠다며 거절했다.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어차피 직무 상 얻을 정보는 다 얻었다. 커피값은 그가 지불했다.
 택시를 타기 전에 악수를 건넨 김창호가 정화 손에 자기 명함을 쥐어주며 말했다.
 "설희를 잘 부탁합니다. 한국 오시면 꼭 연락하세요.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그가 떠난 뒤 명함을 보았다.
 - 1급자동차정비 일신공업사 상무 김창호.

 

 영사관으로 돌아와 이수진에 관한 사건기록이 있나 검색해 보았다.
 있었다. 109경찰서와 공조수사를 했던 사건이었는데 보고서는 A4용지 분량으로 두 장이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 이수진은 2001년 8월 21일 아침 7시에 뉴욕  퀸즈브리지 포인트 해변에서 알몸 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그녀는 보스톤 매사추세츠 주립대 경영과정 2학년 생이었다. 거주지인 보스톤에서 사건 발생 전날 저녁 8시 경 서점에 간다며 집을 나선 것으로 밝혀졌는데 검시 결과 몸 여러 군데에 타박상이 있었고 성관계와 마약 복용 흔적이 나왔다. 직접 사인은 익사로 판명되었다. 관할 퀸즈 109경찰서는 유전자감식 결과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3명의 백인 용의자를 검거했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해변에서 파티를 하다 성관계를 한 건 사실이지만 살해한 건 아니라고 진술했다. 한 달 뒤 뉴욕 검시소는 자살로 결론지었다. 용의자들은 재판에서 마약복용 혐의만 인정되어 6개월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다. 용의자들의 이름은 각각 알란 킨스버그, 브렛 휴즈, 루이스 주카치다.

 

 조사관 이름을 살펴보았다. 당시 영사관에선 고상기라는 이름의 형사가 109경찰서에 파견되어 조사를 한 걸로 나와 있었다. 109경찰서의 사건담당 형사이름 하나가 눈에 띄었다.
 오언 그레이시 형사.
 지금은 경감으로 진급해 풍기단속반을 지휘하고 있는데 정화와 자주 마주치는 인물이다. 경찰서 내에선 각종 부패와 연관돼 있다는 눈총을 받고 있지만 당당하게 근무하고 있는 중이다. 소문에 듣자면 뉴욕경찰국장과 돈독한 관계가 있다고도 했다.
 보고서엔 2002년 7월에 내사종결이 되었다는 스탬프가 찍혀 있었다. 재판에서 증언을 한 사람은 모두 12명이었다. 그 가운데 주디 림이 있었다. 재판기록을 찾아보았지만 첨부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뉴욕 언론기사 몇 개가 스크랩되어 있었다.

 - 매춘 혐의 한인 여성, 해변에서 사체로 발견

 - 뉴욕경찰, 한인 여대생 살해를 계기로 한인 매춘조직 조사

 - 이수진 살해 용의자들, 범행 부인

 - 한인 여대생 살해 용의자들 보석으로 풀려나,  등의 제목이었다.
 제이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수진 사건에 대한 수사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주선해 달라고 하자 그녀는 대뜸 왜 그걸 찾느냐고 물었다. 기억하고 있는 사건인 모양이었다. 정화는 주디 림에 대해 더 알아볼 게 있어서 그런다고 대답했다. 제이시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경찰관과 관련된 사건 기록을 타 서에 유출할 수 없다는 내부규정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그 말에 정화는 경찰관이 관련되어 있다는 건 몰랐고 설렬 그렇더라도 참 희한한 규정이라고 말했다. 제이시는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판기록이 있느냐는 질문엔 열람 절차가 꽤 복잡해 일 주일 정도 걸리기 때문에 직접 법원에 가서 열람신청을 하는 게 빠를 거라고 했다. 정화는 전화를 끊었다. 어쩐지 제이시가 비협조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음 날이었다. 제이시가 재판기록을 이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의 배경이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고맙다고만 했다.
 재판기록은 분량이 꽤 많았다. 이틀에 걸쳐 틈틈이 기록을 읽어보았다.
 이수진은 한인 유학생 매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의문의 실종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관련자들의 증언과 정황을 보면 타살 혐의가 짙었다. 용의자들에 대한 무혐의처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뉴욕검시소의 자살추정 결과였다.
 주디 림은 두 차례 증언을 통해 이수진이 타살된 거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유학생 매춘과 관계도 없고 평소 마약을 복용하지 않았으며 다음 날 다운타운에서 만나 영화구경을 같이 하기로 한 사람이 자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저녁에 스포티한 복장으로 인근 서점에 책을 사러 나갔다는 이수진이 그 길로 보스톤에서 차로 4시간이나 떨어진 뉴욕 해변까지 스스로 갔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며 용의자들에 의한 납치살해로 밖엔 판단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의 부실조사를 질타하고 있었다.
 경찰이 부실조사를 했다는 정황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었다.
 사체 발견 직후 사건 현장을 훼손했으며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들을 소환하는 데에 2주일이나 결렸다. 용의자들의 통화 기록과 휴대폰 이동경로도 조사하지 않았다.  용의자들의 차량이동경로도 부실했고 도로나 해변에서 찍힌 CCTV기록도 공개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 증거를 인멸할 기회까지 만들어주었다.

 타살을 주장한 한 증인은 용의자 가운데 한 사람은 경찰관, 다른 한 사람은 워싱턴의 유력 정치인 아들이기 때문에 경찰이 축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증거불충분'을 들어 용의자들을 살인 혐의에서 제외시켜 주었다.

 한편 재판과정에서 이수진이 매춘과 관련되었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뉴욕경찰과 이곳 언론이 이수진을 두 번 죽인 셈이 되는 것이다.


 정화는 파일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사건 뒤엔 뭔가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뉴욕 경찰이 평소 사건처리를 하는 방식을 보면 같은 사건이라도 유력자와 관계된 인물이 용의자일 경우 미적지근하게 수사를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흔히 미국을 과학수사에 정통한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유전자 자료 관리도 부실하고 특히나 흑인이나 아시아계, 히스패닉이 피해자일 경우 수사인력 투입도 부실하거니와 대충 덮고 넘어가는 사건이 부지기수다. 과학수사란 것도 알고보면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식 편견, 인종차별, 경찰부패가 뉴욕 경찰 안에 만연해 있었다. 의혹이 가시지 않은 채 가까운 친구를 잃은 설희의 아픔과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됐다.
 마음 같아선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상부에 요청하고 싶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제로였다. 정계나 군부를 비롯한 한국사회 전반이 그렇듯 경찰도 미국 경찰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정화는 저혼자 한숨을 내쉬었다.

 

 오언 그레이시 경감이 퀸즈 플러싱에 있는 한 유흥주점에서 누군가에게 총기로 피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 이틀 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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