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인연이 그런 것이란다. 억지로는 안되어.
아무리 애가 타도 앞당겨 끄집어 올 수 없고,
아무리 서둘러서 다른 데로 가려 해도 달아날 수
없고잉. 지금 너한테로도 누가 먼 길 오고
있을 것이다. 와서는, 다리 아프다고
주저앉겄지. 물 한 모금 달라고."


- 최명희의 《혼불》중에서 -


* 물 한 모금의 인연도 억지로는 안됩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필연의 뿌리가 있습니다.
놀라운 섭리가 그 안에 있습니다. 하늘이 내린
특별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더 귀하고
소중하게 키워가야 합니다.
그냥 맺어진 인연이 결코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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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시

너무 많이 읽히고 너무 많이 팔린 시는,  대중적이어서, 가벼워 보여서 잘 읽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많이 읽히고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것, 마음속 한켠 적시기엔 충분하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소금 인형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지식을 넘어서


우린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의 마음을
지식들로
믿음들로
자료들로
또 세상의 이야기들로 채우려고.
그렇게 우린 인간의 생각들의 되어 버리고
그대신 우리 자신을 잃어 버린다.
'어떻게'를
'왜'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목적을 생각하는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우리 존재를
온갖 경험들로 위장한다.

평화는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
그 평화의 자리에서
보다 깊이 아는 것이
무한한 조화와
열린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물안개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거리에서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모두가 타인인 곳에서
지하도 난간 옆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한 세기가 저물고
한 세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모두가 타인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신이 눈을 만들고 인간이 눈물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그에게
무언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눈물이라고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겁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속의 물풀처럼 절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초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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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보았지요



언젠가 산길을 걷다가
바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바람, 그 자체로서 그를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길섶에 우뚝 선 나뭇잎이 살랑대거나
목이 긴 원추리가 흔들거리는 것을 통해 비로소 바람을
보았던 것이지요. 땀으로 젖은 내 살갗에 바람이
닿았을 때 이윽고 그가 바람이 되었듯이 사람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나 이외의 또 다른
사람이 있어야만 그제야 나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겠지요.


- 이지누의《우연히 만나 새로 사귄 풍경》중에서-


* 사람도 바람입니다.
때론 솜털처럼, 때론 태풍처럼 불어와
살갗을 건들고 마음을 흔드는 당신이 나의 바람입니다.
당신을 통해 사랑을 배웠고 아픔과 그리움을 알았습니다.
당신이 내게 불어와 비로소 내가 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바람입니다. 무시로 나를 흔들어 떨게 하는
모진 마력의 바람입니다.

                                                                                                   2005.  5.  6. 고도원의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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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2005-05-06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아침 좋은 글을 보내 주시는 고도원 집사님께 감사드리며...
 
섹스에 관한 일곱가지 거짓말 - IVP 소책자 시리즈 69 IVP 소책자 시리즈 50
앨리스 프라일링 지음, 강선규 옮김 / IVP / 1998년 6월
구판절판


섹스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파괴적이면서 널리 퍼진 거짓말 가운데 하나는 사랑과 확신이 섹스를 통해서 온다는 것이다. 우리는 친밀함에 굶주려 있고, 섹스가우리의 굶주림을 채워 줄 수 있다는 거짓말을 믿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섹스에 대한 일곱 가지 거짓말의 정체를 밝히려 한다. 가장 중요한 진실은 결혼과 무관한 섹스가 결코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4~5쪽

거짓말 1; 섹스는 친말함을 가져온다. 많은 사람들은 끎어 오르는 호르몬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진정한 친밀함을 갈망해서 혼외 성경험을 한다. 그들은 육체적 결합이 정서적. 지적, 영적 결합을 이루어 낸다는 거짓말을 믿고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진실은 , 육체적 결합 즉 성기를 통한 섹스는 친밀함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친밀흠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친밀함은 언어적, 정서적 영적 그리고 육체적인 대화로부터 생겨난다.


-6쪽

거짓말 2: 이성 관계에서 일찌 감치 섹스를 시작하는 것이 서로를 아는데 도움이 되고, 그 관계를 더욱 발전 시킨다. 이 거짓말은 쉽게 믿을 수 있을 만큼 매혹적이다. 그러나 관계의 초기부터 푹넓은 육체적 탐구를 하거나 성관계를 갖게 되면 섹스가 최상의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즉각적인 관능적 쾌락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이런한 종유의 쾌락, 즉 결혼 이외의 관계에서 일찌감치 성적 경험을 하는것은 지속적이고 행복한 결혼 생활로 가는 최선의 길이 아니다.절제되지 않은 육체적 성교가 관계를 지배할 때 관계의 다른 부분들이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건강한 결혼 생활 속에서 섹스는 인생의 지적, 정서적 , 실제적인 측변들과 나란히 자연스러운 제자리를 차지 한다.
-6~7쪽

거짓말3 : 제약이 없는 일시적인 섹스는 즐거움과 자유를 가져온다. 이것은 시트콤에서 하는 말이며 우리 사회가 단언하고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기간의 섹스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최상의 섹스가 아닌 차선의 것에 만족하고 있다 .몇가지 이유에서 서로에 대한 헌신이 없는 섹스는 여성에게 특별히 파괴적일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기 때문에 그들이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오해이다. 남성과 여성이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다르다는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그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긴 하지만, 여성들은 헌신이 없는 섹스의 결과로 나타나는 숨겨진 불안이나 신뢰의 부족으로 인해 특히 더 상처를 받는다. 좋은 섹스는 시간이 흐르면서 치유의 매개체가될 수 있는 것으로, 신뢰를 필요로 하며 신뢰는 일생을 함께하는 겨혼 생활에의 헌신 가운데 가장 훌륭하게 자라난다.-8~9쪽

거짓말4 :성적으로 소극적인 사람은 억눌려 있거나 병들었거나 얌전한 체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것은 매우 위협적인 거짓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은, 미성숙한 섹스는 정서적 , 육체적 , 문화적 건강에 해롭다는 것이다." 성적인 절제의 정도와 사회의 진보의 정도 사이에는 불변의 상관 관계가 있다. 성적으로 관대한 문화는 문화적 에너지, 창조성, 지적인 발달과 개성의 측면이 더 적었고, 일반적 문화의 향상이 더 느리게 나타났다" (Reo cristenson, Christianity Today, 1982.2.29.p 16)개인으로 서나 사회로서, 우리가 왜 우리의 에너지, 창조성 그리고 지적인 발달을 순건적인 성적 쾌락과 바꾸고 있는가? 만족을 뒤로 미루는 것은 억압적인 것이며 얌전한 체하는 것으로 보이느니 차라리 속아 버리는것이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9~11쪽

거짓말 5 : 섹스는 자유이다. 혼전 성교는 자유의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친구들의 압력 때문에 성적인 면에서 문란한 사람들은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 진정한 자유는 진리를 믿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요한 8 : 32) 자유케 하는 진리에 대적해서, 하나님의 적은 거짓말을 한다. "마귀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 8: 44). 우리 사회는 혼전 성교가 자유의 표헌이라고 거짓말하는 대변자가 되었다.-11~12쪽

거짓말 6 : 하나님도 분명히 지금이 20세가라는 것을 알고 계신다. 어떻게 혼전의 성관계가 아직도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하나님은 지금이 20세기라는 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은 살인, 절도, 우상 숭배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을 때롸 동일하게 지금도 유해한 것임을 알고 계신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일곱 번째 계명에서 하나님은 "간음하지 말라 " (출 :20: 14)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지 않으셨다.하나님은 남의 흥을 깨뜨리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이런한 규칙을 주신 것이 아니다. 물론, 호르몬은 하나님이 만들어 내신 것이다! 우리의 창조자 이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적대적이시기는 커녕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가장 훌륭하고 가장 만족스러운 성적 경험을 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다. 바로 결혼 생활 속에서 성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호르몬은 좋은 것이다. 섹스는 즐거운 것이다. 혼전의 절제와 결혼 생활에서의 정절의 선택이 내권리와 기쁨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가장 행복한 성을 경험하기로 선택하는 것이다.-12~13쪽

거짓말 7 :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는 없다. 아마 그것은 사실상 기다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일 수 있다. 우리에게 능력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을 취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따. 이 거짓말에는 어는 정도의 진실이 있다. 결혼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섹스를 최선으로 경험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 증명' 할 수 는 없다. 두가지 방법 모두를 해 볼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증명할 수 없다. 하나를 선택한다면 놓쳐버린 다른 한편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무런 증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것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최선인 것을 알고 계심을 신뢰하는 것도 포함된다. 비록 우리가 그 이유들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다해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성적 행위와 관련해서 하는 선택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진리들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기도한다. 당신이 성적 행위와 관련해서 내리는 선택은 하나님이 당신으 믿음을 표현하기를 요청하시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감히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살 자신이 잇는가?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믿는 것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대부분의 거짓말들과 모순될지라고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철저한 신앙으로 당신을 부르고 계신다.-1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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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2005-05-31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이 소책자 읽었는데...
가끔씩 드는 "내가 바보인가"회의감 중에, 힘이 되는 오아시스와도 같은 책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

리안 2005-05-31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나님의 서재에서 알게된 책이었어요 ^^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정말 힘이 되는 말씀이죠?

오즈 2005-09-26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번 봐야겠는데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라 교향악이 울려 퍼지고  있는 이 아름다운 세상 속에서 감사의 기쁨과 함께 고통이 느껴지는 연유는 무엇일까?   봄에 활짝 핀 이름 모를 꽃이라도, 바라보는 이에게 기쁨을 주는 모습을  보며 배움의 시간을 갖는다.  " 나는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나와 관계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며, 세상 사람들은 타인을 바라볼 때 그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자신에게 더욱 엄하게되고 항상 마음가짐과 몸가짐을 여미게 된다.

   때때로 나를 포함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신앙의 사람들에게서조차 손가락질을 당하는 바르지 못한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교회의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불균형 속에 오는 교회 지도자들의 신앙 인격의 부재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더욱이 일부 지도자들은 보편적인 신앙의 가치와 자신의 개인적인 신념을 동일시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신앙으로 포장하기에 이르러 때로는 교회에 분열이 일어나고, 목회자와 성도 간에, 성도와 성도 간에 상처를 주는 일이 끊이없이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교회의 실태를 바라볼때에 가슴이 아파 옴을 견딜 수없다. 

  교회의 머리는 물론 그리시도이지만, 눈에 보이는 교회의 중심에는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의 지도자들이 있고 성도들은 이들을 통해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얻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특별히 불신자가 예수님에게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안내자가 바르게 서 있지 못하면 따라가는 사람도 바르게 나아가지 못함은 당연한 일이다.  누가복음 6장 39절에 "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돌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라는 주님의 음성을 이 시간 나에게 주시는 질책으로 아프게 받아들여아 한다.

  먼저 교회의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야하며 또한 낮아지고 섬기는 지도자의 신앙인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중심이 되는 신앙과 안목으로는 양들을 이끄는 지도자는 양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그들을 사랑하는 진정한 목자가 될 수없다. 세상은 날로 각박해지고 있으면, 이단 사이비 등 다양한 무리들이 양들을 유혹하고 있는 이때 , 올바른 진리 속에 바른 길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오셔서 오로지 남을 위한 삶을 사셨기에 용서와 화합과 푱화와 영원한 생명을 심어 주셨으며 세상에 소망을 전할 수 잇었다. 마땅히 세상에 소망을 증거 해야 하는 우리 교회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기에 그분의 섬김과 나눔의 삶을 본받아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며 온세상을 구원하신 주님이 오늘 한국 교회에서 그 중심에 서있는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신념과 신앙을 살피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는 인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명하고 계심을 청종해야할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깊은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간구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감찰하실 찐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그러나 사유하심이 주께 있음은 주를 경외케 하심이니이다 "  (시편130: 1~4)   책장 앞에 놓여있는 장미꽃 한송이를 바라보며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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