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대 정치가요, 문장가이며, 학자였던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은,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가?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라는 시에서 고려의 국운(백설)이 다 기울어져 간 곳에 간신(구름)들이 득세하여 야단들인데, 반가운 매화(임금님)은 어느 곳에 계시는지?.(피었는가?) 참으로 답답하고 궁금하구려, 노년(석양)에 홀로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임금님을 향한 지조의 둘 곳을 찾지 못하네 라고 하므로써, 고려의 쇠망을 막아 보려고 이 성계(李成桂)(1335-1408)의 세력을 저지하려다가 실폐하여 유배 생활로 여기 저기 전전하던 때에 매화를 임금으로 지칭하여 지은 시이며.
같은 예로써, 권섭(權燮)(1671-1759)의 시조 '매화사장'가운데,
모첨에 달이 진제 첫 잠을 얼풋 깨어 반벽잔등을 의지 삼아 누웠으니 일야에 매화 발하니 님이신가 하노라 .
이렇게 매화를 영조대왕(英祖大王)(1694-1776)인 님으로 비유한 예 라고 한다.
해마다 첫사랑의 애틋함으로 제일 먼저 매화 끝에 피어나는 나의 봄
눈 속에 묻어두었던 이별의 슬픔도 문득 새가 되어 날아오네
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하여라
- 이해인 님의 [매화앞에서] 중에서 -
無 題
ㅡ 글 / 만해 한용운 ㅡ
桑楡髮已短 葵藿心猶長 늙은 나이라 머리칼 짧아지고 해바라기 닮아서 마음은 장하다.
山家雪未消 梅發春宵香 산집엔 눈이 아직 녹지 않았는데 매화꽃 피어 봄밤이 향기롭다.
머리는 새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늙어서도 매화꽃 피는 봄밤의 향기를 즐긴다는 말인것 같습니다.
홍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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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정수혁(鄭守赫)
가지마다 눈을 흩고 봄빛을 독차지해 산호로 깎아 낸가 송이 송이 눈부시다.
아리따운 젊은 여인 애교 흠뻑 머금은 듯 향기 바람 절로 일어 정든 임을 애태우네.
매화삼경 梅花三更
그대 외로움이 깊은 날은 밤도 깊어라 문 밖에는 함박눈 길이 막히고 한 시절 안타까운 사랑도 재가 되었다
뉘라서 이런 날 잠들 수가 있으랴 홀로 등불 가에서 먹을 가노니 내 그리워한 모든 이름들 진한 눈물 끝에 매화로 피어나라
李 外秀 글
매화에 얽힌 이야기
조선 전기 종실宗室 가운데 강양군江陽君 이 정李定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매화를 얼마나 사랑하였던지 일생동안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이 정이 죽음을 당하여 분매盆梅의 가지를 꺾어 코에 가까이 대고 향내를 맡으면서 매화시 한수를 짓고 싶었지만, 도저히 글씨를 쓸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옆에서 임종臨終을 지켜보던 사위에게 절명시絶命詩를 받아 쓰게 하였다.
이제 겨우 쉰 살이 되려는데 병이 드니 (年將知命病相催) 지붕 모퉁이 아득하고 마음은 아리고 서글프구나 (屋角悠悠楚些哀) 매화는 사람에게 병고가 생긴 것도 알지 못하고 (梅蘂不知人事變) 한 가지에 먼저 꽃을 피워 향기를 보내 오네. (一枝失發送香來)
이 시를 다 받아 쓰고 난 뒤 그는 숨을 거두었다.
일생동안 가까이 두고 사랑하며 길러왔던 분매가 주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우선 가지 하나에 몇 송이의 꽃을 피워 청향淸香을 선사하고 있지만, 생의 마지막을 맞고 있는 이 정에게 있어서는 매화가 사람에게 변고가 생겨 죽게된 것을 알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하면서도, 결코 자신을 모른체 하지 않고 그의 죽음 앞에 ?꽃을 피워 향기를 보내주는 아름다운 보은報恩의 정을 느끼게 하는 시다.
이 정은 매화를 좋아 했을 뿐만 아니라 거문고와 술을 좋아 했으며,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그가 죽을때에 이 정은 이 세가지 물건을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거문고와 《자치통감》, 술항아리 하나를 묻어 주었다고 한다.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
뜰을 거니로라니 달이 사람을 좇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닞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그림자 몸에 닿네.
ㅡ 매 화 -ㅡ
선녀의 얼음 살결
눈(雪)으로 옷 해 입고
향기로운 입술로
새벽이슬 마시었네
속된 봄꽃들의
붉은 빛에 물들세라
신선 고장 향하고자
학을 타고 날으는 듯
ㅡ 글 / 이인로
세종때의 문신 강희안은
白放天寒暮 (백방천한모)
黃肥雨細時(황비우세시)
看兄一生事 (간형일생사)
太早亦遲遲(태조적지지)라며 매화를 노래했다.
추운날 저녁무렵 흰 꽃이 벌고 가랑비 내릴 때
열매 노랗게 살찌내 매화의 일생을 지켜보건대
너무 이르고 또한 너무 더디누나란 뜻이다.
벚꽃을 닮기는 했으나 벚꽃처럼 야단스럽지 않고,
배꽃과 비슷해도 배꽃처럼 청상(靑孀)스럽지가않다.
군자의 그윽한 자태를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격조 있는 꽃이 바로 매화다.
그래서 옛날에 장원급제하면 머리에 매화를......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이라 하지 않던가.
매화는 한평생을 춥게 살아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청빈한 선비라면 결코가난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올곧은 선비는 지조를 자신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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