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의 시
너무 많이 읽히고 너무 많이 팔린 시는, 대중적이어서, 가벼워 보여서 잘 읽히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많이 읽히고 팔리는 데는 이유가 있는것, 마음속 한켠 적시기엔 충분하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소금 인형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우린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의 마음을
지식들로
믿음들로
자료들로
또 세상의 이야기들로 채우려고.
그렇게 우린 인간의 생각들의 되어 버리고
그대신 우리 자신을 잃어 버린다.
'어떻게'를
'왜'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목적을 생각하는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우리 존재를
온갖 경험들로 위장한다.
평화는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
그 평화의 자리에서
보다 깊이 아는 것이
무한한 조화와
열린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겁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모두가 타인인 곳에서
지하도 난간 옆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한 세기가 저물고
한 세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모두가 타인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신이 눈을 만들고 인간이 눈물을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나는 다만 그에게
무언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눈물이라고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겁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게 달라고 물 속의 물풀처럼 절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초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