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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그녀의 가슴속, 한(限)의 아름다움이 보이나요?

 

 


전생에 자신은 황후였다는 여자가 있습니다. 소녀 시절에 스스로 지어 붙인 “경자”라는 이름을 자신의 본명인 “천옥자” 앞에 두었지요. 그 뒤 그 이름은 인생의 아름다움과 슬픔, 외로움들을 신비롭게 표현할 줄 아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여류화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천경자 화백은 어려서부터 독특한 감수성을 가지고 화가가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녀가 자랄 당시 대부분의 여자는 소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일제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천 화백은 교육과 문화에 열린 가정환경 덕분에 광주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지요.

고등학교를 마칠 때 즈음 집안에 혼담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을 공부하고 싶었고 일본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물론 집안의 반대가 심각하였지요. 천 화백은 정신병자 흉내를 내면서까지 부모님께 유학을 보내달라고 졸랐습니다. 미친듯이 웃다가, 울기도 하고, 중얼거리면서 집안을 돌아다녔지요. 결국 부모님은 허락하셨고, 그녀는 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동경여자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온 천 화백은 유학 중 만난 남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다시 신문기자였던 두 번째 남편을 만났지만 곧 헤어졌습니다. 진주를 품은 조개처럼 쉽지 않았던 인생의 고개들이 그녀의 가슴 속에 쉽게 식지 않는 예술혼을 잉태한 것입니다.

“나물 캐러 갔던 동네 소녀가 허리띠인 줄 알고 꽃뱀을 집으려다가 물려 죽은 일이 있었어요. 무서우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끌리는 그 장면이 어렸을 때부터 머리에 남아 언제가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지요. 그러나 내가 처음 그린 뱀은 꽃뱀이 아니라 한 뭉텅이의 푸른 독사였어요.”

인생의 실패와 좌절을 맛보고 그녀가 자신의 삶에 저항하기 위해 택한 소재가 뱀이었습니다. 그녀는 전남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뱀에 대한 이미지를 탄생시켰습니다. 6.25로 인하여 부산으로 피난을 갔던 천 화백은 그 곳에서 자신이 그린 뱀 그림 전시회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젊은 여자가 뱀을 그렸다’면서 신기해하였구요. 그것이 “천경자”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한 것입니다.

또한 그녀의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이미지는 꽃과 여인입니다. 아마도 가장 일반적인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것이 꽃과 여인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아름다움이 주로 보여지고 있지만, 그 아름다움은 외롭기도 하고 슬퍼보이기도 하지요. 고독의 미와 아픔의 성숙이 천경자의 예술을 다른 작품들과 다르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던 1974년, 18년간 재직하던 홍익대 교수직을 버리고, 문득 천 화백은 아프리카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남태평양과 유럽, 남아메리카까지 계속되었지요. 그곳을 돌아보고 그 여행에서 느낀 선명한 색감과 원시적 인상을 자신의 작품 세계에 반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보여졌던 안타까운 인간의 또 다른 모습들을 아름답고 평화로운 자연에 비추어서 그림으로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전이었던 1991년 천 화백은 힘든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립 현대 미술관 소장의 “미인도”에 대한 진품 시비 사건 때문이지요. 천 화백은 끝까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말하였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많은 감정사들이 그녀의 작품이라고 판결하였고, 입장이 난처해진 미술관에서도 천 화백의 작품이라 주장하였지요.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천 화백은 자신의 작품들을 서울 시립 미술관에 기증하고, 큰 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뒤 진품 위조 사건은 범인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천 화백은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은 채 지금도 스케치북을 옆구리에 끼고 중남미를 여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 자살의 미 (1968) ]
누구보다 많은 열정을 품었기에 또한 그만큼의 한(限)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여인. 그녀의 인생에 자살이란 단어가 들어왔을 때 느꼈던 나름대로의 차가운 미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잿빛 푸른 색으로 그려진 꽃과 구름으로 자살이라는 가장 극한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청춘의 문 (1968) ]
천경자 화백을 유명하게 만든 작품 중 하나 이지요. 죽은 사람인양 회색빛 여인의 얼굴은 꿈을 꾸고 있는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또한 그녀의 얼굴은 전통적 한국 여인과는 다르지요. 환상적인 여인의 얼굴과 분위기에서 천화백이 바라는 이국에의 동경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천 화백의 꿈이자 이상인 듯 합니다.

 

 

 꽃과 나비 (1973) ]
한 무더기 아름답고 화려한 꽃다발 아래에 반라의 여인이 한가롭게 누워있습니다. 그녀의 피부색은 그녀가 여기 한국의 사람은 아니라고 느끼게 하고 있네요. 그리고 화려한 공작새와 꽃들도 먼 이국의 정서를 물씬 풍기게 합니다. 여느 천 화백의 그림처럼 색감과 구성이 화려합니다.

 

 

 이탈리아 기행 (1973) ]
1960년대 말에 시작된 천 화백의 유랑은 많은 작품의 소재를 만들었습니다. 1969년에 갔던 이탈리아에 대한 감흥을 3년 동안 이 작품으로 완성하였지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열었던 보티첼리의 그림과 멋진 건축물이 찍힌 사진, 여인의 장갑 그리고 양주병과 꽃으로 화폭을 채웠습니다. 몇 안 되는 소재들이지만 화려하게 표현된 이 작품으로 그녀는 자신의 느낀 이탈리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孤 (1974) ]
머리에 가득 꽃을 꽂은 이 여인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 큰 눈과 처연한 입술의 끝은 한없이 슬퍼보입니다. 무심한 듯 허망한 듯 바라보는 여인의 시선이 그녀의 짙은 피부색보다 더 내 가슴을 더 막막하게 합니다. 늘상 외로움을 품고 살았다는 천화백은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덧입혀주었습니다.

 

 

 사월 (1974) ]
1974년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돌아온 뒤 그린 그림 속 갈색 피부 여인의 머리칼에는 연보랏빛 등꽃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사월의 신비로움과 화사함이 꽃잎 끝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네요. 강렬한 호랑 나비의 무늬보다 여인의 연보랏빛 입술에 먼저 시선이 가는 것은 왜일까요.

 

 

 

[ 인도 올드 델리 (1979) ]
올드 델리는 수 천년 동안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많은 성곽들과 모스크,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는 인도의 오래된 도시입니다. 우리의 옛 시골 장터처럼 형성된 올드 델리 길가의 사람들의 모습을 풍경화로 담아내었네요. 인도의 전통 의상인 사리를 입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이국적 정서를 느끼게 됩니다.

 

 

뉴욕 센트럴 파크 (1981) ]
맨하탄 중심부에 있는 센트럴 파크는 뉴욕을 대표하는 공원이지요. 그 곳을 대표하는 공원을 그리면서 자신이 느꼈던 또 다른 이국의 정서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네요. 한가로운 공원의 한 켠에는 다람쥐가 놀고 있구요, 마차를 몰고 있는 마부는 또 다른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듯 합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의 가지들이 배경을 가득 채운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두상 (1982) ]
너무나 강하고 화려하여 슬프고 애처로운 이 그림은 천경자 화백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지요. 그녀가 느끼는 아름다움은 슬픔의 애상에서 시작된 것임을 뼈 속 깊이 사무쳐 느끼게 하지요. 쏟아지는 꽃비 속, 처연한 눈망울의 여인은 차가와 보이지만 사랑이 필요한, 누군가를 바라고 있는 천 화백의 또 다른 얼굴인 듯 합니다.

 

 

 황금의 비 (1982) ]
황금색 꽃들이 비처럼 내리고 있는 공간. 그 속에 있는 갈색 피부의 여인이 아름답습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내 자산의 가슴 속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한 그녀의 눈동자가 인상적이지요. 그녀의 인상은 너무 강렬해서 그림을 내려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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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2005-05-01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3학년때 이던가. 천경자의 그림과 글에 한때 심취했던 적이 있었다. 그녀의 그림에선 유달리 한을 가진 듯한 여자들이 많이 등장했던것 같다.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책들을 알라딘에서 구하려니 다 절판 되었네..
 




청도 박일주 작품






































자연과 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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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 2005-04-2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수록 매혹적인.....
 




박채배 "무궁화"


문인상 "삶"


- 우용태 "민화비룡"


- 민병문 "설악의 기운"


김영배 "기러기"


- 곽봉수 "새천년의꿈"


- 양남자 "비상"


- 박충호 "금강산만물상"


정기철 "해질무렵"


- 최진옥 "향기"


- 박창수 "화조"


이범주 "월광곡"


남유소 "기원"


- 김봉민 "해와달"


- 김귀인 "산수"


- 박문수 "연꽃"


- 서기순 "매화"


최선미 "천리"


- 이양원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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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Rockefellow Center의 Christmas Tree 점등식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

Tree 앞의 스케이트장에서도 축하공연이 벌어지고 있다.


LA Hollywood서 열린 제73회 Hoiiywood Christmas Parade에 등장한 Disney캐릭터들.

운전을 하고 있는 아저씨도 신이 났는지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인 키티로 장식된 트리 앞에

발걸음을 멈춘 한 여성이 인형을 만져보고 있다.


Berlin의 한 쇼핑센터에서 열린 Christmas Sale 개막행사에서

Santa복장을 한 사람이 줄에 매달려 마치 하늘로 날아오르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04/11/25)


독일 Dusseldorf의 한 쇼핑센터에서 열린 Christmas Sale 개막행사에 금색 나뭇 잎을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나와 공연을 하고 있는 여자.

추운 날씨 때문인지 왼쪽에 서있는 사람의 코가 유난히 빨게 보인다.


독일 Dusseldorf의 쇼핑센터에서 열린 Christmas Sale 개막행사에 운집한 사람들.

Santa복장을 한 여자점원이 환하게 웃으며 고객을 맞고 있다.


홍콩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알려진 80층의 Two IFC(가운데)빌딩 앞에 세워진 15m의 대형 Tree.

어디선가 불빛을 쏘아올리자 지나가던 커플이 발걸음을 멈추고 이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대형Tree앞을 지나고 있는 엄마와 아이.


크리스마스 볼에 새겨진 무늬? 이는 영국 서머셋 하우스 앞의 아이스링크의 모습으로

광장주변의 모습이 크리스마스 볼안에 비춰지고 있다.


어둠속에 반짝거리는 Tree모양의 불빛.

밤에 비춰진 모습이라 그런지 불빛으로만 이루어진 트리 같다.

London Trifalga Square에 세워진 이Tree는 Norway수도 Oslo시장인 퍼 디틀레브-시몬센에 의해 점등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를 도와준 영국인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해마다 노르웨이국민이 헌정하는 것으로 금년의 것은 58번째라고 한다.


반짝이는 Tree와 하늘을 수 놓은 불꽃.

Brazil Rio De Janeiro에 있는 로드리고 데 프레이타스 호숫가에 세워진 Tree의 점등식 장면이다.

호숫가 주변 건물에서 Tree를 감상하며 Christmas를 보내는 것도 색다른 분위기가 될것같다.


언뜻보면 tree와 Tree앞의 작은 배를 타고 있는 구경꾼의 실루엣만이 보여 마치 물위에 떠있는 Tree같다.

그러나 이는 Brazil Rio De Janeiro 로드리고 데 프레이타스 호숫가에

세워진 82m 높이의 대형 Christmas Tree로 280만 개의 조명등으로 장식되었다고 한다.


Santa모자를 쓴 아이들이 사진기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지난 30일 Bulgaria수도 Sophia중심가에서도 높이 25m의 대형 트리의 점등식이 있었다.


Finland Helsinki의 상원Square앞에서 천사로 분장한 여점원이 Christmas Sale 시작을 알리고 있다


서울 남대문에서 Christmas장식품이 진열된 상점앞을 지나고 있는 할아버지.

빠듯한 주머니형편에 손자들에게0 줄 선물이 걱정스러운지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다.


Indonesia Jakarta의l Shopping Mall에 전시된 Christmas Tree.

언뜻보면 그냥 평범한 Tree같지만 Tree앞에 서있는 남자와 비교해보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Tree는 21m나 되는 대형 Tree로 Shopping Mall 5층까지 우뚝 솟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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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조용히 식어가는 차 한 잔에서
사람의 생애를 봅니다
우리 한생애도 그저
저 혼자 식어갈 따름입니다.


여름내 짙은 녹음이던 잎새가 한꺼번 에 퇴색하고 쏟아져내리는
가을날의 일을 두고 사람의 생애를 떠올리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까?
그 낙엽이 천천히 썩고 흙에 스며들어서 다 사라졌다가,
다시 녹음으로 꽃으로 가을 열매로 돌아오는 순환 의 길에서
저하고 내가 남이 아닌 것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이 있을까?

온세상이 모두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지냅니다.
삼라만상이 같은 말을 쓰고 살아서 두루 통합니다.
저는 말하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 면
정작 답답하고 아쉬운 것은 사람인 나 아니고 저쪽입니다.
잎새 하나 겨우내 혼자서 답답해하였 겠습니다.


벼익은 논이 햇살 아래서 밝은 금빛입니다.
그 안에 피·여뀌·방동사니 따위가 심심찮게 섞여 있습니다.
제초제로 피사리를 하여 말끔하게 황금빛 일색인 논은 왠지 쓸쓸합니다.
잔디뿐인 골프장처럼 독점으로 일색이 되자면 곁엣것에 혹독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 먹자고 키우는 벼의 독점상 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쌀을 위한 노동은 귀한 일.
고된 일의 금빛 결실 위로 바 람이 지나가면서 하는 이야기 이렇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모자라면 나누고......

―어제도 마을 골목길에
밝은 주황색으로 불켠
조등(弔燈) 하나 조용히 내걸렸습니다.
근조(謹弔)!

온천지가 붉고 누릅니다.
가을 이 깊어, 밤알도 가을비도 붉어진 대추알도 다 쏟아져버렸습니다.
천하가 한 도량이라더니 곳곳에 깨달 음이 쏟아지는가 봅니다.
절간 마당에 홍시 떨어지는 것도 그 소식일지 모릅니다.
익으면 꼭지 떨 어지는 법입니다.

눈 쌓여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걸어서 우체국에 다녀오다가
길가에서 만난 검은 새 한 마리,추위에 이렇게 혼자 앉아 있으니
서서 바라보는 나하고 우리 서로 무연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습니다.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를 안다 하는 겨울 추위에 배고픈 너도 혼자 로구나.
겨울 춥다.
겨울을 춥게 나자.
봄이
봄 같기 바라면서......

추운 겨울을 가난하고 외롭게 견디는 새에게
눈 쌓인 대지에 다시 뿌리는 눈은 가혹합니다.
새의 눈빛이 의젓해도 깃털은 바람에 떨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회의도 비관도 없이
그저 조용히 살아가는 작은 몸뚱이가 오늘은 깊어 보입 니다.

원주에서 제천 가는 낡은 국도변에
이렇게 키 큰 소나무 두 그루 서로 다정하게 삽니다.
그 훤칠한 아름다움 위에 눈발이 내리기 시작하면
아름다움에 깊이가 더하는 듯합니다. 자연이야 스스로 깊은 법,
편만한 대지가 공부하는 이에게 한 권 경전이라니
온 세상이 그대로 큰 도량입니다.
책 읽을 겨를이 없으 면 서가가 어리석은 장식이 되듯
세상풍광도 그저 있어서는 임자 없는 무주공산입니다.

물은 흐르면서 맑아집니다.
아 래도 아래로 가면서 곤두박질치고 휘돌고 쏟아지는 것이 다
그 일입니다. 물의 성품입니다.
그렇 게 쉼 없는 물은
흘러가는 길에 세상 시름을 가져가기도 하여 물소리에 세상을 잊습니다.

큰 물줄기 하나 겁없이 쏟아지는 자리 에는
큰 소리도 같이 있기 마련입니다.
호언장담처럼 거침없이 쏟아지는 힘을 짐짓 웃어주기라도 하는 듯,
가벼운 몸을 바람에 싣고 유유히 건너가는 소리없는 낙엽 몇 장 보입니다.
그 큰 소리, 거 침없는 급전직하,나와 무슨 상관인가?
나는 가벼운 내 삶을 그저 지킬 뿐.
그런 사람들 몇몇 천천 히......
세상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쏟아질 때나 고여서 썩어갈 때나
물은 물, 제 모습대로 삽니다.
오늘은 조용히 흐르는 넓은 물입니다.
그 고요 속에 범람과 소용돌이가 깃들어 있다 한들
오늘 조용한 것을 흔들 지는 못합니다.
오늘은 일 없이 천천히 걷습니다.
물의 마음입니다.

이른 봄 날, 길을 가다가 문득 개울물 소리 들었습니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개울에
멀리서 온 맑은 물 이 가는 물길을 내면서 흐르고 있었습니다. 봄입니다.
하지만, 개울이 제 폭과 제 깊이를 다 움직여서 내는 소리를 듣기에는 철이 아직 이릅니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골짝엔가 시린 물방울을 떨구 는 잔빙이 아직 남아 있을 터입니다.
그 물을 지나오면서, 시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여울인 것을 생각 했습니다.
그러니까 소리는 흘러가는 시간의 흔적이기도 하고 자연의 말소리이기도 한 셈입니다.
찬기운으로 천지를 붙들어매던 겨울이 지나고 낮고 넓은 물이 제 힘껏 봄날을 흘러가면
그 말소리 더욱 우렁찰 터입니다. 그날은 그 말씀 듣겠습니다.
오늘은 잔물소리 나직하여 정겹습니다.

같은 달빛은 서로 나누어 쪼이기만 해도 남남이 아닙니다.
그는 오늘,사람 없는 솔숲으로 갔습니다.
숲속의 자기 수행과 가 난한 마을의 고된 노동과
어느것이 더 소중한가 하고 묻는 사람은 어리석습니다.
일하지 않는 수 련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노동이 모두 부끄러운 일입니다.
가난한 세상이 달빛 환히 뒤집어쓰고 있는 데, 산골짜기 솔숲이라고 그 빛 못 얻어쓰겠는가?
그 숲에 달빛이 좋아서 바람도 소리하고 지나갑니다.

벌써! 가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에는 찬바람 일찍 부는 법,
어떤 이들은 마음으로 벌써 한겨울을 살고 있을지도 모 릅니다. 슬픈 일입니다.
누구라도 수십의 가을을 누리고 나면 이승을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잎새 떨구며 퇴색하는 가을이 아쉽고, 생각은 깊어가고,
골똘한 생각의 끝이 아! 하는 탄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도 하는! 가을입니다.
기억하시지요?
깃발도 바람도 아니고 마음이 나부끼는 것이라 던 조사의 말씀.
큰나무가 잎사귀를 바람에 다 맡겨버리는 일이 그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음 은 나뭇잎도 흔들고, 당신의 옷깃도 흔들고, 가난한 세상도 흔듭니다.
가을, 바람 부는 날. 우리들 마음 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바람을 따라서 흐르다 보 니 오늘은 문밖입니다.
바깥 세상이라고 작은 한 몸 누일 자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문 안팎의 구 별이 부질없어서,
그 문밖에도 온전한 푸르름을 키우고
낙엽을 바람에 다 내어줄 줄 아는키 큰 나 무들 드문드문 삽니다.
쓸데없는 드높음입니다.

누군가, 이 집에 사람 살 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혼자 오만하면 당연한 노릇
사람 살지 못하고 아무도 드나들지 않습니다.

깨어보니 아침입니다.
어제 아침과 오늘 아침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기와 여기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매인 데 없는 마음에 집을 짓습니다.

다툼 없이 조용해지고 나 야
그 문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
마음에 비로소
조용한 소리!

조용하여 깃드는 것이 있 으니
좋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 길에 눈 비 바람 다 맞고 사는 낡은 부도 하나.
없으면 허전하였을지도 모릅니다.
남을 이기고 쉽게 살기를 꿈꾸다
이제 고요한 존재가 되기를 꿈꿉니다.
그도 욕심입니다
막돌이, 제자리에서
그저 막돌로 살아가는 일이 어려운 것을 알겠습니다.

꽃들은, 혼자 조용히 제 꽃을 제가 피워내는데
사람은, 실없는 이름을 다투느라 소란스럽습니다.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는가?
하는 이도 있지만 이름은 사람이 지어낸 손가락질일 뿐입니다.
꽃 한송이 환히 피어나는 것, 이름 때문이 아닙니다.
진면목은 이름보다 먼저 있습니다. 이름 없이 흔한 것들이
한꺼번에 꽃피어 흐드러지면 그도 장관입니다.
세상에 이름 있는 꽃이 과연 있기는 한가?

눈에 보이는 몸뚱이가 마음을 가려서
마음은 정작 어려운 물건이 되는 것처럼,
눈에는 움 직이고 형상 있는 것이 먼저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새떼를 버리고 빈자리를 보아야 한다니 그도 어려운 노릇입니다.
하지만,그림 그리는 흰 종이가 본래 바탕이듯 허공이 본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 마 음 두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그놈 잡아다 구워도 먹네!

멀고 깊은 자리는 힘들여서 천천히 찾아들어야 깊은 줄 압니다.
그 깊은 데를 차를 달려서 보고 오면 허탕입니다
언제고 다시 가야 합니다.
그렇게 다녀오는 것에는 밟을 답(踏)에 조사할 사(査) 를 써서는 안됩니다.
상선암.
어디나 그 이름 자리는 깊습니다.
거기 이르는 길이, 호젓하고 조용했습니다.
그 자리 일러주시던 이는 지난 봄날 이승 떠났습니다.
다비장,소나무 향기,그 깊은 데 화엄사 언저리 꿈 같습니다. 스님!
그이, 그 깊은 자리로 혼자 가셨습니다.

밖에서 지붕선만 보아도 집에 든 마음을 알겠습니다.
창이 커서 방이 춥겠고 등뼈가 길어 식구가 많고 입이 여럿이라 살림이 넉 넉치 않겠습니다.
공부하는 이들의 집이라 아무것 없고 좌복 위에 사람만 앉아 있습니다.
그 집이 허리가 휘도록 애를 쓰고 공을 들이는데
봄날 꽃소식은 환하게 밝고 사람의 마음 소식은 캄캄하면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너는 여기 있으니 ‘잡’ 소리를 듣지 않는구나.
논밭에 들어 있으면
너도 별수 없는 잡초라 ‘잡놈’이 되는 것이지. 세상 은 그렇게 어렵습니다.
욕 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잡’ 없는 세상이 갈수록 멀어지는 듯합니다.
대승사 제일 높은 자리 산신각 아래, 마른풀 열매가 바람을 타고 있었습니다.
다시 가보지 않았으 나 그 일가가 거기서 여전히 살고 있을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인적 없이 적적한 자리에 잠시 다녀 간 사람이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하니 마른풀이 실없다 하겠습니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았는데
그대가 내 소리를 들었다 하시는가?

해 전에 성전암에 다녀왔 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사람 떠나간 흔적을 찾는다 하였더니
그 자리에 피고 지는 꽃나무도 웃 고 나이 먹어 의젓하신 나무들도 웃습니다.
자네 왜 걸음하였는지 다 알겠다 하는 기색들이십니다.
뭐 볼 게 있다고 헛걸음을 하시는가? 하는 말씀을 꾸중처럼 듣다가 그 산을 내려와,
길게 뻗은 아 스팔트를 달리다 이런 솔밭 등성이 하나 만났습니다.
그 자리도 물어오시는 바가 있습니다.
―어 이! 성전암 다녀가는 그대는 누구신가?
―알고 가시는가?
―모르고 갑니다!

당간에 내걸린 누더기 한 벌도 일자불설(一字不說)이라......
한 말씀도 아니라지만
―오늘은 누더기에 입이 생겼습니다.

누구나 제 살아온 껍데기 를 버리고
이렇게 이승을 떠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옛적 달마가 동으로 오셨다더니 이제 소문만 남았습니다.
다시 오시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조주의 뜰에 천년 묵은 잣나무 아직 푸릅니다.
다람쥐들 드나드는 것 보니 잣도 벌었는가 봅니다.

원효는 당(唐)으로 가다 돌아섰다고 했습니다.
우리 시대는 머릿속부터 남의 땅입니다.
천 년을 남의 머리 남의 가슴으로 살았으면
이제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사랑하고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명당이 발복하게 한다고 합니다.
묏자리 하나 제대로 잡아 앉으면
나라도 얻고 돈도 얻고 명예도 얻고 온갖 영화를 다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다 얻는다는 그 자리를 다투는 면면들을 보면 안 믿기도 어려워집니다.
벌써 절반 넘게 갖춘 사람들이라 그 자리 얻으면 마저 다 얻을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대단한 풍렐値지렇??다 믿는다 해도,
그렇게 많이 누리고 살면 정말 좋은지는 확신하기 어려운 노릇입니다.
많아서 좋은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염주는, 새 끈을 꿰었더니 다시 쓰겠습니다.
새 임자가 생겨서 들고 다니는 것 보았습니다.
괜찮으시지요?
주전자에는 늘 물 끓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니 그리 여기기는 하지만
지나는 바람에 가끔 솔깃합니다.
모르는 새 다녀가셨던가요?
차 한잔 하러 들르시지요!

그이는 오실 때처럼
가벼운 빈손으로 가셨습니다.
철들고 나서 내내 빈손이었습니다.
내내 빈마음뿐이었습니다.
촛불 꺼지듯 가셨으니 촛불 켜듯 오실 터입니다.

조용한 자리에는 슬픔도 기쁨도 나고 죽음도 없다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빗자루로 평생 티끌을 쓸면서
마음 자리도 다 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 자리를 모르는 사람이라 혼자서 슬픔을 붙들고 삽니다.
제 안에 있는 욕망과 씨름하고 사는 것입니다.
재산이 많으니 근심도 많다는 격입니다.
빚잔치해서 다 내주고 나야 시원하고 깨끗해집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 는 일이 대장부 일이라 했습니다.
이 밥도둑놈들아!
지는 꽃잎에게 묻습니다. 안 자고 안 먹고 꽃 피우셨는가?
꽃잎은 말없이 웃고 집니다.
졸음 이기지 못하여 잠에 듭니다.
무엇 이기지 못 하면 죽음에 드는 것인지요?

꽃이 피었습니다.
온통 밝습니다.
저 밝으니 나도 밝습니다.
밝은 그 꽃을 보고 마주 웃어줍니다.
저는 꽃피운 보람 있고 나는 저 만나 기쁨이 있습니다
좋은 날입니다.

새 한 마리가 나를 피해 저쪽 나무로 옮겨 앉습니다.
―네가 나를 잘 아는구나!
단박에 아 는구나!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정진도
세상에서는 겉멋이 되고 분위기가 됩니다.
어느 수행자가 좌 탈이 소원이어서
방 안에 연탄불을 피우고 앉아 사투를 벌였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모양 내고 살려는 욕심이 대개 앉아서 죽겠다는 바보짓과 비슷한 꼴입니다.
미물이 사람보다 나아 서 배추 한 포기 위에서 한생애를 다 보내는 청벌레도
꾸미고 살지는 않습니다.
꾸미고 죽지도 않 습니다.
청벌레 한 마리,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 터뜨려 죽입니다.

적적하고 고요한 삶이 귀 해진 지 오랩니다.
뜻깊은 자리마다 길을 내고
바퀴 달린 물건들이 바퀴벌레처럼 누비고 다니면서 더러운 것을 흘려놓습니다.
조망이 좋은 산꼭대기 암자에도 바퀴벌레는 거침없이 올라오고 내려갑니다.
나가서, 문 닫아걸어라!

기계는 낡으면 애물단지 가 됩니다.
냉장고·자동차·컴퓨터가 다 그렇지만 첨단의 기계일수록 망가지면 곧 쓰레기가 됩니다.
손으로 만든 옛 물건이 손때가 묻을수록 편하고 아름다워지는 것 보면 ‘첨단’이 무언가 다시 생각하 게 됩니다.
깊이 있고 아름답기도 한 노경이 흔치 않은 것도 시대가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상 가상으로, 뜻하지 않은 돌발사고에 사고사, 비명횡사가 흔해졌습니다.
존재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는 셈 입니다.
뿌리 없는 시절입니다.

풍요로운 세상이라 가난하게 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쓰고 버리는 것만 뒤져다 써도 호사를 하게 생겼습니다.
이 세상의 살림살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마도 ‘낭비’가 될 터입니다.
가난한 삶 이라야 깊고 아름답습니다.

이승을 살고 가는 일이 가볍기로 하면 새털이 무색한 것이지만
무겁기로 하면 태산보다 오히려 무거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 길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것이 세상의 평가인 줄 알지만 결국은 우리 심중의 일입니다.
제가 저지른 일이라 평생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마련입니다.
스스로 살펴서 어두우면 서둘러야 합니다.

노장의 잔소리는 늦가을 벼이삭이 바람결에 내는 소리입니다.
익을 대로 익은 소리라 겸손히 들으면 배가 불러질지도 모릅니다.
기다려주지 않는 것이 시간입니다.
―봐라, 사람들아!
시간 없다! 노인은 노심초사.
― 고맙습니다!

차 한 잔에 무슨 마음? 하기도 하지만
무릎 꿇고 앉아서 혼자 조용한 순간이면 몸뚱이 문득 마 음덩어리이기도 합니다.
차 한 잔에 가득 마음! 입니다.
진초록의 대숲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바 람 소리에 덩달아
넘쳐버린 마음은
주워담을 길 없이 번져나고 있습니다.
마음 벌써 대숲 밖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우리들 서로 만납니다.
길 없는 길에도 같이 가는 큰길 있고 좁은 오솔길 있습니다.
그 길을 여럿이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초록 이정표에는 곳곳의 지명이 선명하게 박혀 있지만,
영어로도 크게 적혀 있지만,세상에는 길 없습니다.
마음에 이르는 길 없습니다.
그 길에서 살펴보니 아, 내게는 눈도 없습니다.
눈 없이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본지풍광을 깨달 아 아는 것이 대장부의 일이라 했습니다.
옳은 말이지만 대장부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꼭 같이 해당하는 말이려니 짐작합니다.
세상은 사람을 내다버리는 데 이르렀습니다.
휘황한 소비 와 환락의 불빛 아래서 시들고 타락해가는 젊음과,
쓸모없어서 일찍 버려지는 장년과 노년의 삶에,
이제 파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 모두가, 마음을 내팽개치고 사는 때문이라 하면
너무 막연하다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마음이 탓입니다.

소나무 그림 중에도 백미 라 하는
<세한도>보다 훨씬 잘생긴 소나무가 즐비한 옛 무덤자리가 있습니다.
몇 해째 소나무들 이 말라 죽는 것 안타깝더니 이제 젓가락만큼씩 한 어린 소나무들이
그 밑에 번지고 있더라는 소식입니 다.
노인네와 고사목은 절의 자연스러운 풍광이라 한 경전의 한 대목이 기억납니다.
어린 아이와 어린 나무도 자연스러운 풍광 아닐 리 없거니와,
노유가 한 자리에서 어우러지면 더 아름다워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효율과 속도 따위가 대접받는 시절이라 ‘나이먹은 것’에 대한 존경이 흔치 않습니 다.
하지만 큰 그늘을 드리운 느티나무만 보아도 노경의 아름다움과 뜻깊음을 알 만합니다.
늙마의 일이, 자리를 지키면서 그림자 안에 깃드는 생명들을 쉬게 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머지 않은 종명(終命)을 생각하고,
이렇듯 작고 철없는 생명에게
몇 마디 이야기를 전해주는 일쯤은 그래도 ‘늙은이의 마지막 일’이 됨직합니다.
저 소나무 한 그루가 목숨 자리를 알아서 그 소식 전하시는가?
어린 소나무에게 이르는 전등(傳燈)의 사연이 궁금합니다.
소리 없이 천둥칩니다.

힘들면 몸부터 주저앉고 눕게 되는 것에서도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죽은 몸뚱이가 적막한 것을 알면 더 분 명해집니다.
사람은 끝내 고요한 데 이르게 생긴 존재입니다.
늦가을이 온통 기품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았습니다.
늦가을 오색 장엄 앞에서 겨울 백발을 짐작키도 어려울 것이 없고
봄 어리광 여 름 장난을 이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거 짓말이 흔한 시절에는
거짓이 가득 차 있는 내 속부터 살펴야 합니다.
살피면 절로 밝아집니다.
마음에 환히 떠오르는 달 있으면 손가락이 무슨 소용?
해 지면 달 떠오르고 꽃피고 나면 지고
우리들 나고 스러지고 당연한 것이 당연히 오고 가는 그 자리에서
개나 사람이나 어리석어서 달 을 보고 자꾸 짖습니다.

상한 콩을 골라서 퇴비더 미에 쏟아버렸는데,
그 반편들―찌그러지고 썩고 병들어 문드러진, 콩들이
소복하게 파란 싹을 틔 워냈습니다.
온전한 생명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죄송천만이었습니다.
제 속의 어둠을 툭 터 뜨리면서 산벚나무 꽃피었는데......
살지!
힘겨운 삶도 살아보면 기쁨 있는데......
어리석음이 제 목숨을 제가 내다버립니다.

마음 한가운데 색이 앉아 지냅니다
그러면 서로 부끄럽습니다
면목없습니다.

마음 한가운데
어 둡고 답답한 기운이 들어와 앉아서 편치 않습니다.
뱃속이나 마음속이나 방귀 크게 뀌고 나야 시원스러 워집니다.

마음을 가만히 살피면
오색 종이가 들어 있는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현란하고 변화무쌍합니다
마음의 천변만화가 한눈에 보입니다.
그 마음이 어디서 왔는가?
―빨래 다 걷어내고 나니
빨랫줄에 빈 하늘이 잔뜩 내걸렸습니다.
―그 하늘에 구름무늬가 들어 있는가?

이승 떠나면서
마 지막으로 눈에 담고 떠나게 될 풍광을 아시는가? 묻습니다.
모르면 눈 없는 사람 알면 지레 죽은 사람 입니다.
―창문 열고 보면 그날도
허공에 구름 떠가고 있을 터,창문 닫아도 허공에 구름 흘러가기 마찬가집니다.

밤 이슥토록 일하고 뜰에 나서는데 어둠 깊은 산의 외줄기 능선 위로
조각달과 초롱한 별이 하늘에 지켜 서 있는 것 보였습니다.
피곤한 삶을 지켜 선 것이 거기도 있었구나 하고 어둠 속을 돌아보니
희미한 달빛에 조용히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더 있습니다.
아직 삽자국이 선명한 흙덩이들과 낮은 지붕들과 멀리 잣나무 숲입니다.
그것들로 봄밤이 문득 아름답습니다.
한낮 햇살이 눈부시고 그 따사로움이 세상 키우는 힘이지만,
어둠 속에 온기 없이 희미한 달빛만으로도 마음 이렇게 넉넉해집니다.
이만큼만 나누어 도 한시절 겨우겨우 살아가기는 하려니......
차고 기우는 달은, 밝고 어두워지는 마음과 다를 바 없습니 다.
육창(六窓)의 달.

월인천강(月印千江)이라 고,달 하나가 천 줄기 강물에 두루 비쳐
있는 아름다움에다밝은 지혜의 두루한 힘을 넌지시 실어 보인 표현이 있습니다.
TV의 작은 화면에 비치는 이미지와 메시지의 힘은 지혜 아니어도 한없이 크고 거침 없습니다.
밝은 지혜의 언어는 어디 사시는가?
현주소가 궁금해집니다.
큰 강을 건넜습니다. 썩은 물도 흐르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 꺼지지 않는 불빛의 홍수 속에서 많이 희미해진 도시의 달이 비치어 있었습니다.
낯익은 풍광인데 눈물겹습니다.

하늘 보면, 다 버리고 사 는 것이 옳은 줄 알게 됩니다.
맑은 날, 하늘에 가득한 별들의 사방팔방 연속무늬를 배경으로
가 끔 떨어지는 별똥을 만납니다.
별도 때가 되면 꽃 지듯 떨어집니다.
별이 지는 것입니다.
하 늘에서, 지는 별을 보고
땅에서는 달빛의 하얗게 빛나는 배꽃의 낙화를 봅니다.
사람도 지는 법.
별 보고 꽃 보는 우리들도 그렇게 지고 맙니다.


무심한 눈이 되어서 바깥을 조용히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바라 보아도 좋고
새떼들이 먹이를 찾아 몰려다니는 겨울풍경을 그리 바라보아도 좋습니다.
그 눈으로 제 삶의 갈피와 구석구석을 조용히 보고 있으면저
혼자 소란스러운 것이 가여워지기도 합니다.
그 렇게 가여운 것이 바로 나인 줄 알게 되기도 합니다.

비 오는 날 툇마루에 앉아 내다보는 경치 중에 제일 가까이
있는 것이 낙숫물 떨어지는 풍경입 니다.
저 혼자 듣는 낙숫물에 천천히 마음을 맡겨가노라면
낙숫물은 문앞에 드리운 발처럼 조용히 그저 있고,
나는 한없이 작아진 마음 한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문득 그 일뿐,바깥풍경도 무엇도 다 사라지고 없습니다.
세상은 그 물방울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 버리면 오히려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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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5-06-11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은 그저 물방울, 다 버리면 오히려 새롭습니다...다시 인생은 있는 그래로의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게 됩니다. 즐기게 됩니다. 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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