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을 갔다. 호수 전체가 꽝꽝 얼어 있었다. 스케이트, 하키, 낚시를 하는 사람들. 얼음 위로 초록 똥을 갈기는 청둥오리들에게 뭔갈 던져주는 사람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많았다. 오늘은 오랜 만에 해도 나고 바람도 불지 않으며 영상인 날씨여서 실은 모두 햇빛을 쬐려는 이들일 터였다. 얼음판에 있지 않은 이들은 모두 어딘가에 앉아 자기 몫의 빛을 몸 속 어딘가에 저장하고 있었다. 소년과 엄마는 위쪽 그네에 앉아 이불을 꺼내 덮고 아예 책을 읽고 있었다. 백발의 남자는 둥글게 스케이트를 타면서 담배를 피우고, 내 앞의 소녀는 맨손으로 얼음덩이를 페트병에 집어 넣으려 애를 썼다. 몇 덩이를 겨우 집어넣은 아이는 이제 내가 앉아 있는 놀이터의 모래를 그 병에 쏟아붓고 있었다. 오늘은 모래도 얼지 않아 꽤 재미있는 놀이가 되었을 것이다. 소녀의 손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처럼 행복하게 얼어 있었다. 내 아이와 남편은 나무막대를 얼음판에 던져 누가 빨리 가져오나 시합을 한다. 말은 달려야 한다고, 그게 규칙이라고 하면서 대부분은 일삼아 미끄러져 다닌다. 작은 녀석은 집 앞에서부터 지금껏 자고 있다. 바다나 호수, 배 근처에 가려고 하면 녀석은 꼭 오랜 낮잠을 잔다. 하루에 세 번씩 커피를 마실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재래시장에서 본 노동자를 생각한다. 한 남자가 파란 작업복을 입고 시장에서 핫도그와 빵을 사먹고 있었다. 빵을 한 입 베어 먹고는 그걸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 핫도그 한 입 먹고 나서는 다시 그 빵을 꺼내 먹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옷가게 주인남자도 생각한다. 그 남자는 자신의 옷가게-실은 천막으로 만든 텐트-를 떠나 광장에 나와 작업복 남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 다 아마도 추위 때문이었으리라. 오늘 같은 날씨면 두 사람은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린 유모차를 끌고 얼어붙은 호수를 가로질렀다. 윗집 우즈벡 아저씨가 알려준 아시아 가게를 가기로 한 참이다. 마침 쌀이 다 떨어져가기 때문. 큰 가게 정도로 상상을 했지만 거긴 가락시장 같은 소규모 가게들의 거대한 연합체였다. 난 금방 지쳤다. 실내엔 담배 연기, 독일어가 통하지 않는, 끝도 없이 열지어 서 있는 네일아트, 마사지, 미장원들. 두부와 고구마, 냉동새우와 갈치, 만두피, 맛살을 샀다. 가게에서 만든 생두부 3조각이 2,50유로. 한 조각이 1유로. 언제까지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일하는 남자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나가는 여자가 대신 3일 밖에 못 먹는다고, 이후에는 신맛이 나더라고 했다. 그런 대화를 곁에서 나눴는데도 남자는 처음에 내가 달라고 한 3조각을 포장하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여윈 팔을 잡고 다시 1조각만 달라고, 고쳐 말했다. 가게의 여자들은 내게 모두 베트남어로 말을 걸어 왔다. 낯선 남자의 팔을 잡은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겨우내 우리집엔 손님이 없다. 이젠 내가 했던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는 것도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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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1-02-27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곳도 서울의 겨울만큼이나 추웠는가봐요. 모쪼록 따스한 훈풍이 자주 자주 불어주길, 멀리서라도 바랄게요.

sandcat 2011-03-09 05:07   좋아요 0 | URL
덕분에 이곳도 '보옴'이 온 듯합니다.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가게에선 겨울물건 세일들을 하더군요.
이곳에서 살면서 온기에 대한 감수성은 높아졌을 겁니다. 그저 구들장에 허리 한 번 지지는 게 소원이고 뼈만 잘 꺼내 들고 으글으글 한바탕 햇빛에 구웠으면 싶어요.
알라딘에 들어오면 보고 싶은 책이나 영화를 메모하게 되서 괴롭습니다. 글 올리는 것도 까먹어서 저거 보세요. 읽기 힘드셨지요. 댓글도 어떻게 달아야 하나 선뜻 말이 안 나옵니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아 생기는 병인가봐요. 사자 같은 치니 님, 이라고 쓸려다가 말고, 백야에 관한 말을 할까 싶기도 하고 며칠간 갈피를 못 잡고 댓글을 고민했습니다. 사는 게 꼭 영자판으로 쓴 한글 편지 같아요.

에..그래도 보옴이 좋긴 좋네요.
잘 지내시고요.